창세기 강해(45)
왜벧엘로 가야 하는가?
창35:1-8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자가 없었더라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00:00-10:00)
금요일 밤을 이렇게 매번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이창동감독이 만든 오아시스라는 영화 다들 보셨죠? 저는 그 영화 처음에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그 여진이굉장히 컸습니다. 그리고 한 세 번 본 것 같아요. 제일먼저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놀랐고. 한국에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구나 라는데 한번 놀랐고세 번째는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는 얼개를 유심히 보면서 이분은 역시 영화인이다, 참 천재다 이런 면을몇 군데서 발견을 합니다. 혹시 여러분 그 오아시스의 엔딩 장면 기억 나세요? 경찰서에 붙잡혀 있던 설경구씨가 홍종구로 나오나요? 이름이? 분명치는 않은데 좀 이렇게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분이죠? 모든행동을 충동적으로 하는 분인데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한테 따돌림도 당하고 오해도 받고 경찰서도 들락 날락 거리고,말하자면 완전히 사회에 소외 된 계층이죠. 이분이 우연치 않게 더 심한 장애를 앓는 문소리씨가배역을 했죠. 그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그들을 곱게 보지 않고 자꾸 갈라놓고 떼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있다가 목사님 한 분이면회를 가요. 그래서 형제들한테 부탁을 합니다. 기도할 때만이라도수갑 좀 풀어주면 안되겠냐? 그것까지 거절을 못하고 경찰들이 수갑을 풉니다. 그리고 이제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데 튑니다. 목사님이 눈을 뜨고기도를 했어야죠. 그리고 이제 튀어요. 누굴 찾아가냐 하면바로 자기 가슴에 들어와 있는 그 심한 장애를 가진 여인을 찾아가요. 찾아 가는데 그 여인이 사는 집밖에 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이제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난리를치는 거에요. 경찰관이 쫓아왔죠. 경찰관이 올라올 때마다나뭇가지를 잘라요. 못 올라오게. 동네가 난리가 났는데 그소리를 듣고 문소리 씨가 아주 불편한 동작으로 기다시피 해서 창문을 열고 신음도 아닌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불타는 마음을 나무 꼭대기에서위기에 있는 자기 연인에게 사랑을 쏟아 보내죠. 참 아주 뜨거운 장면입니다. 모양새는 그렇게 설치가 돼있어도. 그때 라디오에서 두 곡의 음악이나와요. 나는 그 첫 번째 곡은 굉장히 아주 고수가 부르는 노래인데 누군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그당시에 얼굴 없는 역할을 했던 김범수씨가 부른 발라드 곡이에요. 그리고 거의 끝날 무렵 마지막 노래는아주 이상한 노래가 나옵니다. 그 상황과는 전혀 반대되는 경쾌한 세상 노래가 나옵니다. 쿵짝 쿵짝 하면서. 이 배경 음악 하나도 그 배치가 감독의 의도를담았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 어울려요. OST자체가 안 어울려요. 그건 의도적이었다고 봐요. 이렇게 세상 한 구석에서는 절절한 사랑으로연약한 사람들끼리 아파하는데 세상은 그 현장과는 너무 동떨어지게 아주 경쾌하고 유쾌한 노래가 마지막 OST로흘러 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도 히트를 쳤지만 외국에서 대단한 충격을줬다 그래요. 평가에 의하면. 금요일 밤은 꼭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서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나 라는 개체와 정말 절절한 만남을 갖기를 원해서 한 주간의 삶을묶어서 이 자리에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아랑곳 없고 상관없이 불금이다 해가지고 이제 먹고 마시고토하고 온 밤을 이제 몰려 다니게 될 겁니다. 마치 그 교회는 이 세상에 그런 측면에서 떠도는 섬 같아요. 그러나 오늘 낮에도 일찍 잡혔던 약속이 있어서 어제 비행기가 늦게 도착을 해서 밤 12시 다 돼서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분과 약속을했기에 만났어요. 제가 이제 그분을 먼저 보자 그랬어요. 그분은나이는 뭐 저 보다 한 열 몇 살 어린 후배 목사님이지만 기성 교회와 시대의 고난 앞에 아주 맨 몸으로 맞서서 아주 외롭게 바보 같은 목회를 하는후배에요. 그래서 많은 고민이 또 그 친구에게 있어요. 또우리 교회 문제를 위해서도 전혀 상관없지만 알게 모르게 전면에 나서서 또 같이 아파해주고, 그 교회성도들과 같이 힘을 모아주는 아주 귀한 형제여서 제가 얼굴을 좀 보고 싶어서 보자 그랬어요. 그러면서이제 사실 자기는 대학 다닐 때 군목 출신이기 때문에 대모, 시위 이런 거 하곤 전혀 번지 수가 달랐고그럴 수 있는 형편도 아녔고, 하다가 목회 현장에 던져 졌는데. 군에서오래 있었더라고요. 한 10년 가까이 있었어요. 너무 교회가 세상 속에서 공허한 소리만 외치고 또 그냥 명분만 던지는, 이건아니지 않는가 하는 절실한 마음에 어느 날부터인가 자기가 본의 아니게 투사적 이미지를 갖게 되어 너무 괴롭다. 자기가꿈 꾸던 목회는 이게 아닌데. 음반도 내고 나름 낭만 있는 젊은 분인데 그런 고백을 하기에, 본인은 외롭게 생각하지만 뜻밖에도 당신 외롭지 않다. 그래도 어딘가에는당신과 같은 뜻과 의지를 가지고 또 함께 동지적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애쓰고 수고하는 교화가 있고 청년들이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말라는 격려를 했습니다. 그런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제일 목회자로서의 관심, 공통 분모가 뭐냐 하면 세 가지에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게 가장 무섭죠. 그렇죠?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게 뭘까요?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있을까? 있더라고요. 그 죄에 대해 무감각 한 거에요.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잇더라고요. 이 분이 그 얘길 해요. 제가 늘 고민하던 같은 주제를 던지는데깜짝 놀랐어요. 제일 무서운 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게 제일 무서운 거죠. 그런데 그보다 더 심한 게 그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다는 게 더 소름 끼치는 걸 겁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게 있더라고요. 그 무감각이 잘못된 신앙과 만날때 괴물이 돼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괴물이 됩니다. 요즘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런 유형의 크리스천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깜짝 놀라리만큼 많이 양산해 냈다는 거에요.최근에 모 사단장과
(20:01-20:00)
사단장 부인 스토리를 여러분 뜨거운 뉴스 속에, 어떻게재미나게 읽으셨습니까? 그분들이 다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에요. 아세요? 뭐 제약 회사 사장 뭐 씨는 페이스 북에 돌아다니던데 자기 운전을 해주는, 자기생명을 담보로 섬기는 운전 기사에게, 최소한 전통이 있는 그룹의 회장님이신데 그렇게 험한 욕과 말을그렇게 하면서 그런데 그분도 아주 유명한 장로님이라 그러더라고요. 야,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각 정권 때마다 크고 작은 사건 뒤안길에는 대형 교회가있고, 명문가의 주의 종들이 있어왔어요. 왜 왜 이런 괴물들이자꾸 생산되는 걸까? 오늘은 좀 그런 차원에서 야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본문도 안 읽었네요. 우리 창세기 35장을 좀 볼까요? 1절서부터 8절까지만교독합시다.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자가 없었더라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여러분 우리는 지금 창세기 강해를 연속적으로들어 오면서 한 가지 큰 흐름 하나를 눈치 챌 때가 됐어요. 숲 속에 있다 보면 자기가 지금 어느 위치쯤걸어가고 있는지 못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전체 지도를 내용상 확인하면서 이 성경의 스토리를쫓아갈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가?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은 하나님의 땅에 평안히돌아왔죠. 그러면 당연히 그가 약속하신 땅 벧엘로 바로 왔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장막을 치고 더구나 거기에 밭을 샀어요. 거기가 어딥니까? 세겜입니다. 세겜이에요. 거기서부터인생의 두 번도 있을 수 없는 흉측하고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지난 주 제목이 세겜의 잔혹사입니다.끔찍한 야곱 속에 아직도 옹골차게 박혀 있는 그 인간의 이중성을 우리는 확인했어요. 그렇죠? 가나안 땅에 평안히 돌아 온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세겜에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장막을 치고 그 밭을 산 순간부터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놀랍게도 야곱의 그 20년가까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며 눈 부칠 겨를 없이 모았던 재물서부터 끔찍한 마음에 애증관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가치를 쳐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의 손길이에요. 오늘은 35장에서 이것을 한 주에 다루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다음주까지 걸쳐 35장을두 차례 나눌 겁니다. 오늘은 일단은 벧엘에 올라간다는 이 말이 갖는 의미가 뭔가? 다음 주에는 가장 사랑했던 여인 라헬이 베들레헴 길에서 마지막 베냐민을 낳고 길에서 죽습니다. 그 장면을 우리가 다음 주 확인하게 될 거에요. 오늘은 일단 전반부만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벧엘로 올라가라는 말은 워낙 알고 있고 들었고 해서 여러분들이 굉장히 익숙한내용이고 스토리에요. 이제 본문을 한 절 한 절 보면서 8절까지가능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면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자 여러분 34장 31절이 어떻게 끝이 났나요?31절만 한번 같이 읽읍시다.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앞을 보실까요? 34장 마지막 절과 새로 시작되는 35장 1절 사이에 매끄럽다고 보이세요? 아니면 좀 어색하다고 느껴지십니까? 어색하죠? 문장 자체가 내용도 그렇고 문장의 표현도 그렇고 자연스럽게넘어가는 듯한 문장이 아닙니다. 굉장히 어색해요. 마치 이런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받지 않으세요? 지금 34장의 지난 주 전체 그림의 내용은야곱이 계속 아직도 자기 본의의 중심적 사고를 못 내려 놨어요. 심지어 딸의 그 비극 앞에도 자아를포기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히려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야곱의 야비함이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오죽하면 아들들이 34장 31절에 뭐라고 버럭 소릴 지르냐 하면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대우함이 옳습니까? 라고 항의를 해요. 당신의 딸도 아니에요. 우리 누이입니다. 여기에 그 아들들의 그 아버지에 대한 한이 얼마나깊은가를 여러분 보이지 않으세요? 아버지 딸이 이렇게 되야 이게 보편적인고 맞는 가치 아닙니까? 그런데 디나는 누가 낳은 딸이었다고요? 바로 첫째 부인 레아가 낳은마지막 딸이에요. 사랑하지 않았던 여인이었어요. 그리고 지금항의하는 아들들은 바로 그 디나의 친 오라비들입니다. 가정 속에서 그들이 겪었던 이 야곱의 편애적 편견때문에 얼마나 자녀들로써 또 아팠을까요? 34장 31절은그렇게 끝이 나요. 그런데도 야곱은 지금 눈만 멀뚱 멀뚱하게 앉아 있고 말귀를 못 알아 들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야곱 귓구멍에 대고 아예 네비게이션을 그려 줍니다. 벧엘로가라. 뭘 너 눈 그렇게 뜨고 생각하고 앉았냐? 벧엘로 가! 그럼 왜 벧엘일까요?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왜 벧엘이어야 하는가?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야곱이 벧엘에 도착했을때가 창세기 28장 이에요.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하던길에
(20:01-30:00)
만났던 기억에 지울 수 없는 장소입니다. 그는 노숙을 했어요. 그 말은 가다가 잘 곳이 없었다는 정도의 약한개념이 아니고 세상 천지에 아무도 그를 맞아 줄 곳이 없는 외로운 상태였다는 뜻이고 홀로였다는 뜻입니다. 그당시에는 아무리 고대 사회라 해도 유대인들은 나그네 환대법이라는 게 있어서 자기 지역에 들어오는 길을 가던 나그네에게는 숙소를 제공할 의무가 있어요. 그 마저도 환대하는 가정이 없었다는 거에요. 야곱이 얼마나 외로운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어딥니까?아니죠. 벧엘이 아니죠. 어딥니까? 벧엘 아니야? 벧엘이 아니죠. 루스. 벧엘은 나중에 고쳐진 이름이죠. 루스라는 곳입니다. 기억 나시죠? 벧엘의 원래 이름이 뭐에요? 루스에요. 루스. 그러면그 이름을 벧엘로 바꿀 때는 그 이름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 거에요. 그렇겠죠? 루스라는 지명은 고대 언어의 우가릿이라든지 그런 언어들의 그 당시 뿌리를 보면 이게 뜻밖에도 루스라는 말이무슨 뜻인가 하면 황폐, 절망 그리고 이제 요즘 표현으로 얘기하면 카오스의 현장. 카오스라는 말이 뭐죠? 혼돈. 이세상이 만들어졌을 처음 상태가 뭐였습니까? 카오스의 상태였어요. 그때하나님의 영이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전 우주의 질서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해가 만들어지고 달이 만들어지고별들이 만들어지면서 그 카오스가 정리가 되죠. 그런데 이 카오스라는 의미를 가진 루스에 나중에 뭐로이름이 바뀌었습니까? 벧엘. 오늘 여기서는 엘 벧엘이라고합니다. 엘 벧엘. 엘 벧엘은 풋 노트에 보니까 벧엘의 하나님. 그럼 이 벧엘을 물론 이 당시에는 지명을, 장소를 말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엘 벧엘은 여러분들에게 무엇이어야 합니까? 무엇이어야할까요? 하나님께 돌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상태. 그래서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다. 35장 1절을 보시면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여기 올라가라는 표현이 등장을 해요.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올라가서 거기서 뭐 하라 그랬죠? 올라가라. 거기서 뭐 하라 그랬죠?거주하라. 여러분 올라가라, 거주하라, 제단을 쌓으라. 한번 따라 해볼까요? 올라가라, 거주하라, 제단을쌓으라. 그런데 이 용어가 놀랍게도 군대적 표현을 인용했어요. 이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야곱의 인생에 전쟁을 선포하십니다.이제부터는 나는 너를 기다려왔고 은혜로 너를 이끌어 왔지만 네가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내가 네 인생에 본격적으로 개입해서 네 인생에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잘 보세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사실상 하나님은우리의 대적인 원수에게 전쟁을 선포한 게 아니에요. 사실은 누구에게 전쟁을 선포한 거에요. 나에게 전쟁을 선포한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거에요.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손발을 묶는 작업을 한 거에요.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기시려면 우리의 손발을 묶으셔야 해요. 버둥거리지못하게. 그래야 잡아요. 제물을 제단에 드릴 때 제일 먼저손발을 묶잖아요. 그 다음에 숨통을 따요. 그래야 축 늘어져서온전히 드립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 작업을 선포하시는 겁니다. 이게 전부 전쟁 용어에요. 거주하며 라는 말은 하나님이 거기서 드디어통치를 시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야곱의 톨레돗은 세 가지 차원에서 반듯이 근거를 깔고 해석을하고 이해를 해야 해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게 뭡니까? 땅, 자손, 하나님의 통치에요. 맞죠? 이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핵심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 창세기 35장의 그 세 개의 요인이 다 등장을 합니다. 이게 뭘까요? 아브라함에게 땅, 자손, 통치는개인적 차원에서의 언약이었다면 이제 야곱 때 들어와서는 이삭을 지나 야곱 때 건너와서는 이게 민족적 언약으로 확대됩니다. 이걸 보통 우리는 언약의 갱신이라 그래요. 이 벧엘을 왜 돌아와야했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했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그 약속했던 장소는 단순히 약속했던 장소적 개념만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 온전히 인생을 내어 맞기는그분의 통치 아래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싸움을 얘기하는 거에요. 제가 아까도 우리 교역자 여러분하고저녁을 먹으려고 좀 일찍 장소로 가는데 오늘 한 서너 시, 다섯 시 이 정도 시간에 얼마나 더웠습니까? 종일 달궈졌던 지열이 올라오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숙자한 분이 우리 교회 앞에 쉼터 같은 곳 있죠? 거기 축 늘어져가지고 눕지도 못하고 앉아 가지고 책을열심히 읽고 계세요. 그래서 이제 궁금해가지고 옆에 조용히 가서 앉아서 이 더운데 무슨 책을 그렇게열심히 읽으세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처다 보지도 않고 얘길 잘 안 해요. 글자가 빼곡한 책인데 더 궁금하더라고요. 가만히 보니까 그 글자의패턴들이 아주 낯이 많이 익은 패턴이에요. 저게 옛날에 내가 많이 봤던 무협지 같은데. 그래서 제가 무협지 읽으시는군요? 그랬더니 웃어요. 어떻게 아세요? 그래요. 저도이거 많이 읽었죠. 제가 읽었던 무협지 제목만 열 개가 넘습니다. 기억나는거 읊어 줬더니 웃어요. 언제 읽으셨냐 그래서 중학교 때 많이 읽었다고. 그래서 다른 남는 시간에 뭐하시냐 그랬더니 더워서 밤에 잠도 못 잔대요. 너무더워서. 그러면 이제 저녁 시간, 점심 시간, 아침 시간 밥 주는 데를 찾아서 다니는데 그것도 하루 큰 일과랍니다. 왜냐하면거기는 나 오길 기다리는 곳이 아니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놓치면 밥을 못 먹는 거에요. 그런데이분 상태가 몸이 아주 삐쩍 말랐어요. 그래서 어디 편찮으시냐 했더니 아니래요. 그런데 왜 몸이 이리 마르셨어요? 그랬더니 자기 이를 보여주는데이가 하나도 없어요. 연세가 몇이신데 이가 하나도 없어요? 그랬더니오십 중반 밖에 안됐어요. 젊죠. 저보다 젊죠. 왜 이렇게 됐냐 했더니 이를 한 대만 치과 가서 뺐대요.
(30:01-40:00)
그리고는 그 한 대 빠지고 나서부터그때부터 이 이가 다 연쇄 작용을 일으켜서 그때부터 빠지기 시작하는 이는 자기 손으로 뺐대요. 그래서어떤 음식을 먹어도 씹지 못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무른 음식만 대충 입안에서 우물우물해서 넘기다 보니까살이 찔 수가 없죠. 그래서 이제 물 한 병 사드리고 제가 물었어요.가족은 있냐 그랬더니 대학 졸업한 딸이 하나 있죠. 연락은 되세요? 가만히 계시다가 제가 끊었어요. 연락을. 그래서 더 이상 가슴 아픈 사연 나올까 봐 묻질 않았어요. 그랬군요. 혹시 아내 분은요? 네, 제가40대일 때 먼저 세상 떠났어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아니 그러면 가정도 있으셨던 분인데 왜 이러고 생활을 하시냐고.한참 대답을 안 하다가 툭 어쩔 수 없이 한 마디 대답을 꺼내 놓는데 다 술 때문이에요. 술때문에 그래요. 알코올 중독이에요. 이분이. 끊었냐 그랬더니 아직 못 끊었대요. 자기 인생은 뭐가 이렇게 씌운것 같은 인생이었답니다. 그 술, 제 표현으로 말하면 술귀신에 씌워 가지고 술에 붙잡혀서 술의 지배를 받고 술의 통치를 받아서 아내로 그 술 때문에 무너지고 사랑하는 외동딸과도 다 소식이 끊어지고. 결국은 자기가 그 술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인생은 이렇게 됐다는 거에요. 그술 때문에 무너지기 전까지는 무슨 생활을 하시냐 그랬더니 이분이 외항, 고기 잡는 큰 배 있죠? 큰 배를 타고 몇 달씩 고기 잡으러 갔다가 돌아오고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런분이 생활이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술에 그만 인생이 무너진 거에요.그러니까 사람은 어둠의 세력의 지배를 받던지 하나님의 통치의 지배를 받던지 둘 중의 하나지, 중간지대는 없어요. 어느 정신과 의사가 글을 썼는데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정신 건강이 좋은 사람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몰두하는 사람이 오히려 정신 건강이 좋대요. 그런데어중간한 사람이 생각이 많고 신경 쇠약에 걸리고 불면증이 있고. 어중간한 사람.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사람들.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하나님께 몰두하면 돼요. 그게진짜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야곱의 인생 속에서 너무 답답한 모습을 보는 거에요. 야곱은 아닌 건 아닌데 또 기도 아니고. 속된 표현인데 애매하게. 결국은 이 말귀 못 알아듣는 야곱을 향해서 귓구멍에 대고 벧엘로 올라가라. 그러면서그에게 전쟁을 선포한 게 올라가라, 거주하라, 제단을 쌓으라. 그건 완전한 정복을 얘기하는 거에요. 여기서 말하는 벧엘은 사실야곱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지일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죠? 하나님의 목적지는 벧엘이 아니에요. 누굽니까? 여러분들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지에요. 우리 자체가 뭐였어요? 카오스와 같은 인생이었잖아요. 혼란스런 인생이었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언약으로 내 인생을찾아 오셔서 명제적으로 벧엘이라고 칭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 벧엘이 진짜 루스에서 벧엘이 되는 과정까지,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과정처럼 힘들고 멀고 험해요. 놀라운 것은하나님은 결국 우리에게 세 가지를 확인 시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성경의 전체 결론이에요. 여러분 4절을 한번 같이 볼까요?시작
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여러분 어떠세요? 지금 야곱은 하나님에게 이미 붙들린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불구하고 그 집 권속들 안에 우상들이 버글버글했어요. 이것이 사실은 야곱의 모습을 넘어서서 우리 속에투영할 수 있는 모습이에요. 우리 속엔 이런 우상 없나요? 있습니다. 그 우상이 나일 수도 있어요. 이런 우상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430년이라는 애굽의 종 생활을끝장을 내시고,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함을 입혀서 출애굽 시킨 다음에 제일 먼저 하신 작업이 뭐에요? 출애굽 시킨 다음에 제일 먼저 하신 작업이 아말렉과의 전쟁 아니에요. 그아말렉과는 전쟁은 어떤 상대적 개념이 아니에요. 물론 성경에서는 역사의 실제 군대가 등장을 하지만 그아말렉이라는 군대 속에는 거기에 우리 모습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아말렉과의 전쟁은 모세가 기도했더니이겼더라 무슨 기도의 승리에만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셔야 해요. 아말렉은 구원 받은 이후에, 즉 홍해를 건넌 이후에 부딪힌 최초의전쟁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 전쟁은 애굽에서 주는 밥 먹고 종살이하고 있었으면 만날 이유도 없고싸울 이유도 없는 전쟁이었어요. 그런데 구원 받은 백성에게는 처음으로 만난 전쟁이 아말렉이에요. 그럼 그 아말렉이라는 존재는 누가 이겼습니까? 여호수아가 이겼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 전쟁을 끝내지 않으세요. 분명히 여호수아가 이긴전쟁인데 하나님은 출애굽기 17장 마지막 절에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그 전쟁을 안 끝내신 거에요. 그래서 그 전쟁이 가진 영적인의미를 알아야 해요. 그 전쟁은 구원 받았지만, 예수의 피로구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 속에 남아있는 옛 사람의 우상들, 옛 사람의 그림자들을하나님의 순종과 통치와 칼날로, 은혜로 진멸하는 싸움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말렉과의 전쟁이갖는 영적인 의미에요. 우리가 상대적 전쟁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면 안 돼요. 그건 곧 내 안의 예수 믿었지만 늘 분기 탱천해서 일어나는 혈기, 탐욕, 음란 이런 것들. 이게 뭐에요? 내가예수 믿고 구원 받았지만 아직도 내 안에 빼곡히 박혀 있는 옛 사람의 희미한 그림자에요. 시집을 갔으면신랑 외에는 한눈을 팔아서는 안돼요. 남자도 마찬가지에요. 결혼을했으면 그 배우자 외에는 한 눈을 팔아서는 안돼요.
(40:01-47:48)
여러분 이성 간에는 우정? 그런 거 있을 수가 없어요. 동창회 가서 번죽스럽게 그거 다 글쓰는사람들이 글 속에 표현되는 상상 속의 이야기에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더럽고 추잡한데. 세상이 얼마나 음란스럽습니까? 별별 핑계만 있으면 다 얽혀가지고 이상한 짓들 하려고 하고. 거기에여러분들이 냉정하고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태도를 갖지 않으며 안돼요. 다 무너져요. 저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많지만 이 술 문제에 있어서 언젠가 다시 한번 강조하려 해요. 술, 이성 교제, 혼전순결 이런 문제 지금 교회 안에 다 무너졌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준비하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동성애문제입니다. 이게 지금 보통 심각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대만에가서도 대만의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목사님하고 대화를 깊게 나누었어요. 대만은 우리보다 더 장난 아니에요. 이미 남녀 화장실 구분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어떡할라고 그래요? 이제 같이 써야 해요. 이런 문제서부터 이게 왜 이렇게 무너지기시작하는가 하면 우리가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안 괜찮아요. 이정도가 어디 있어요? 신앙 생활에. 신앙 생활은 전부 아니면전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도 사랑도 그렇게 요구하세요. 그래서하나님이 이 야곱의 인생에 뭘 선포하셨다고요? 전쟁 같은 사랑을 선포하셨다고요. 늘 불안한 눈빛과. 난 그 임재범 노래 듣다가 야, 이건 성경 보고 누가 가사 썼다. 누가 창세기 보고 썼구나. 그 가사에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요. 절절하게. 여러분 세상 노래도요. 인싸이트를 주는 게 많아요. 태평양을 건너. 땡벌인가요? 이제마무리를 좀 하겠습니다. 다음 주 라헬의 죽음이 갖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다룰 텐데 여기서는 7절로 넘어가서 좀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7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리브가는 누굽니까? 야곱이 어머니죠?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는 기사가 여기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엘벧엘이라 명칭을 합니다. 야곱의 벧엘에 관한이야기가 전반부 끝을 맺게 되죠. 이것이 갖는 의미가 뭘까요? 우리청년들하고 한 몇 년쯤 신앙 생활을 같은 현장에서 함께 해야 이들과 스토리가 만들어 질까? 엘벧엘이라는말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20년 30년을 해도 거기서 하나님과 자기와 사이에 아무 스토리가 없다면 이렇게 이름을 붙일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이런 거죠. 저는 먼 훗날 한 2~30년 후에 청파동에서 만난 하나님, 거기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차곡차곡 쌓여져 있습니다. 2012년 7월 2일 어느 날 갑자기 이 청파동에 부름을 받아서 그 청년들과 세상 곳곳을 누비며 함께 했던 선교의 여정이라든지또 그들의 꿈과 같이 아파하고 고민했던 공감했던 가슴앓이라든지. 한 2~30년후에 삼일 교회를 생각하면 제가 그렇게 이름을 붙일 것 같아요. 청파동에서 만난 하나님. 말하자면 엘벧엘은 야곱에게 그런 드디어 하나님에 대해서 놀랍게도 눈금 하나가 쓰여진 겁니다. 이제 겨우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사연 하나가 만들어진 거에요. 여러분, 벧엘에 올라갔는데 제일 염려되는 게 뭐냐 하면 지난 주 세겜의 잔혹사를 통해서 주변 국가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이 조그마한, 한 줌밖에 안 되는 가족을 덤벼든다면 당해내겠어요? 그런데그 모든 주변 부족들에게 하나님이 두려운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모든 걸 다 닫아놨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평안히 하나님의 목적지인 벧엘에 올라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창세기 35장은 다음 주 나올 이야기이지만 오늘 너무 예고편을많이 말씀 드리는데 라헬이 길에서 죽는데 그 죽음을 통해 베냐민이 태어나요. 그래서 열두 지파 이스라엘나라의 한 축이 태어남으로써 완성이 됩니다. 나라가 완성이 되는 거에요. 야곱의 허리에서. 이것은 일관되게 하나님이 홀로 시작하신 전쟁 속에홀로 이루신 승리를 그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오늘도 이 벧엘로 이끄신,회개도 우리의 의지나 우리의 어떤 몸부림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이 나를 강권적으로사로 잡으셔서 입을 열게 하시고 부르짖게 하시고 회개케 하셔야 우리는 회개할 수 있어요. 우리는 회개할 능력 자체가 안돼요. 그 정도인 것만 깨달아도 괜찮은 겁니다. 오늘이 밤도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는 우리 삼일의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찬양 하나 하고 기도하십시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