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냄새 가득한 집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721
성경구절
요 12:1-3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29)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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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표적의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었죠. 전반부는 표적으로 가득한 기록이었고 12장 이후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향해서 걸어가는 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부분은 표적의 사실상 마무리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표적을 기억해 보니까 가나 땅에 혼인 잔치로 시작이 됐어요.기억 나시죠? 그런데 오늘 마지막 표적이 잔치로 끝이 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종국으로 맞을 환희스런 운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 과정에는 질곡의 길도 있었을 것이고 또 험로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결국에는 주님의 테이블에같이 앉는 잔치로 우리 운명은 마름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믿습니까?자, 그런 관점에서 오늘 이 잔치가 우리들에게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보도록 하죠. 1절을 보시면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유월절은 히브리인들에게 최고의 절기이고 또 명절입니다. 이 절기가뜻하는 의미는 구약에 배경을 갖고 있어요. 400년간의 깜깜했던 어둠의 세월을 끝장내고 떠나기 전날밤, 어린 양의 죽음이 기초된 그 희생의 피를 통해서 그들은 모세를 선두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죠. 그들의 가파른 운명 길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결국에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아름다운 역사의 무대를 누구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런의미에서 유월절은 어린 양의 죽음이 기초된 희망의 여정이라는 것을 놓쳐선 안돼요. 여기 엿새 전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 이제 주님은 자기가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그죽음의 길을 향해서 바짝 다가와 서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 바로 나사로남매가 사는 아주 슬픔 많은 땅이고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주님은 유독 생전에 이곳을자주 찾고 방문하셨고 그 중에 가장 애정을 가지고 사랑했던 가정이 오늘 여기 등장하는 나사로의 가정이에요. 그런데이곳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2절을 보니까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뭐가 열려 있습니까? 잔치가 벌려있어요. 잔치. 아까 모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첫 번째 표적이잔치로 시작을 해서 마지막 표적이 이렇게 잔치로 마감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제 계시록에 어린 양의혼인잔치로 이 역사는 이렇게 종료가 될 것입니다. 그 역사로 곧 우리 앞에 도래하겠죠. 자, 그런데 여기 보니까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삼 남매의 첫 번째 역할이 소개돼요. 마르다입니다. 마르다. 마르다는 여전히 뭘 하고 있었어요?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일. 아마잔치를 준비했겠죠. 그런데 여러분 이 잔치는 누구를 위해 베풀어진 잔치입니까? 네, 예수를 위해 베풀어진 잔치에요. 그러면 마르다의 이 섬김과 수고는 누구를 위한 섬김과 수고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위한 섬김과 수고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보통 누가복음의딱 한 장면만 놓고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두 자매의 평가를마지막에 이렇게 내렸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마음이 분주한데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택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마르다를 몹쓸 여자로 누명을 씌워 버렸습니다. 그리고마리아는 아주 말씀을 사랑하고 또 순종한 여자로 과도하게 자리매김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금요 기도회시간인가요? 또 얼마 전 선교 기간 중에 이 본문을 가지고 누가복음 10장의내용인데 설교를 했었습니다. 여러분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취사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것은 우선 순위의 문제에요 오해해선 안됩니다. 따라서 합니다. 마르다가 없으면 밥은 누가 하나? 제일 중요한 거에요. 예수님이 거기서 말씀하신 것은 우선 순위의 문제를 말씀하신 거에요. 그러니까이것을 너는 마르다 과냐? 마리야 과냐? 이분법적으로 오해해서는안됩니다. 그건 우리 안에 신앙의 두 영역을 얘기하는 거지, 이것을이분법적으로 이해를 해서는 해석이 엉키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 나와서 그냥 주방에서 봉사만 하는 성도들은마르다 과? 아니에요. 그 일도 중요합니다. 믿습니까? 예, 주님이거기서 강조하신 것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원리와 이치를 따라서 수고를 해도 늦지 않다 그 말이지, 일은필요 없다 그러면 주차 봉사 누가하고, 밥은 누가 하고, 뭐먹고 선교할 거에요? 필요한 겁니다. 오늘은 이게 주제가아니니까 이 정도로 지나갑시다. 그런데 여기 잘 보시면 2절에
2.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하고 이제 두 번째삼 남매 중의 역할이 소개되고 있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앞을 잠깐 보십시다. 지난 주 이 나사로는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나사로는 죽어 있었어요. 병이 들어 있다가 주님이 미적거리는 바람에 도착하니까 이미 죽어서 나흘이나 되어 뭐가 나고 있었어요? 냄새가 나고 있었어요. 죽었던 자입니다. 그래서 그 시신이 썩는 사망의 냄새가 풀풀 나던 장본인이 나사로입니다. 그런데주님이 그를 무덤에서 걸어 나오라 명령하시니 놀랍게도 마지막 표적으로써 부활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자, 바로 그 인물이 나사로에요. 그런데 그가 지금 어디에 앉아 있어요? 예수님을 위해 베푼 잔치 자리에 누구와 함께? 예수님과 함께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함께 앉아 있다, 이 자리는 식사자리입니다. 유대인의 식사 자리는 이제부터 그대는 나와 친구요, 가족이요, 공동체의 한 일원입니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편 23편에 보면 비슷한 그림이 소개 되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그 상이 식탁입니다. 테이블이에요. 그 말은 다윗이 왕위에 앉은 다음에 자기를 죽이려했던 사울의 아들들을 어디에 앉힙니까? 식탁에 앉힙니다. 식탁에. 이제 그대들은 나와 한 가족이다. 지금 나사로가 누구의 가족이 되어있는 겁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한 가족이 된 거에요. 어제까지만해도 죽어서 냄새가 나던 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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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노릇하던 인생이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그 사망을 끝장 내시고, 사망을 부셔 버리고 이제잔치 자리에 앉히셔서 그 잔치를 향유하고 공유하고 있어요. 누구의 그림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그런 표정으로 들어서는 안 되요. 이건놀라운 구원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주님의 구원하심이 없었다면 바로 지금 사망이 왕노릇 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 뻔 했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배의 자리, 생명의 자리에 주님의 초대로 앉아있는 거에요. 자 그런데 그 다음그림을 한번 보십시다. 세 번째 역할입니다. 마르다의 역할, 나사로의 역할 이제 세 번째 역할을 소개 받습니다. 3절을 중요하니까한번 우리 찬양대원들만 한번 같이 읽을까요? 시작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오늘 본론입니다. 중요하겠죠? 자 여기 우선, 향유 그리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이라 그랬어요. 무게 단위로 썼는데 이게 어느 정도의 당대 값어치를 얘기하는지 아직 요한은 소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바로 이어서 4절에 보니까 제자 중 하나로써 예수를 잡아줄 가롯 유다가 발언을 합니다. 발언의 내용을 들어 보십시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자 앞을잠깐 보십시다. 악인도 역할이 다 있어요. 금방 그 사이에뭘 했나요? 계산기 두드려 보니까 저걸 팔면 당대 얼마 값어치입니까?삼백 데나리온이에요. 지금 원단위, 달러를 쓰는입장에서는 이 삼백 데나리온의 분량이 감이 잘 안 잡힐 테니까 당대 문화 개념에서 설명을 드릴게요. 하루노동자들이 죽어라 일해서 받는 품삯이 1데나리온 이에요. 그러면1년 내내 명절 안 쉬고, 안식일 안 쉬고 매일 일해서 안먹고, 안 쓰고, 안 입고 모아도 365 데나리온이에요. 그러면 이 당시 사람들에게 반듯이 쉬어야 하는날이 안식일이에요. 52일은 쉬었을 거에요. 어쨌든 1년에. 7일 단위로 하루를 쉰다면.자 그러면 이 사람들도 당연히 우리네들처럼 명절이 있었겠죠. 명절 끼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삼백 데나리온이면 어느 정도 분량입니까? 노동자가 1년 동안매일 일해서 안식일 빼고, 명절 빼고 매일 일해서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모아도 시원찮을 액수에요. 그 정도 액수에 해당하는 향유를 이 가난한 남매의 집에서 특별히 마리아가 모아 두었던 것을 예수님 발에다가부어 버립니다. 자, 여기 큰 메시지가 있어요. 우선 당시 발을 닦는 신분은 종들 밖에 없어요. 그러면 스스로 마리아는예수님의 뭐로 자기 자신을 자리매김 한 겁니까? 종의 신분으로 자리 매김을 한 거에요. 게다가 여인들에게 머리는, 이 머리카락은 신체 중에 가장 고귀한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가장 고귀한 것을 스스로 종의 신분으로 내려 앉아서 그걸로 예수님 발을닦고 있는 거에요. 모두를 부어서. 이게 뭘까요? 이때 가롯 유다가 나섭니다. 야,이사람들아 그걸 팔아서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으면 좋을 뻔 했는데. 그다음에 무슨 말을 했을까요?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짓을 하고 낭비를 하느냐? 굉장히 절약 정신과 검소함과 이런 걸 강조하는 줄 알았는데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가롯 유다의 본심을들통을 냅니다. 6절을 다같이 시작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놓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정확하게 도둑놈입니다. 이것을헬라 시제 그대로 읽으면 다시 한번 제가 읽을게요. 헬라 시제대로.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를 생각함이 아니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놓는 것을 늘 훔쳐 가곤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항상그는 회계를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삥땅을 친 거에요. 요즘은 삥땅이란 말을 안 쓰나요? 굉장히 시장 언어인데. 예수님도 헬라어를 쓰신 걸 보면 시장 언어를많이 쓰셨어요. 그리고 또 우리네 정서에도 시장 언어가 확 들어오잖아요. 그렇죠? 문어체보다. 지금어줍잖게 예수님 따라 하는 거에요. 시장 언어를 많이 쓰셨어요. 문제는시장 언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걸 뭐라 하냐 하면 거룩한 낭비라 그래요. 항상 거룩한 낭비는 언제 발생하느냐? 우리 신앙의 영역 속에 거룩한낭비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야 합니다. 자, 선교. 세상 사람이볼 땐 가장 덜 떨어진 일 같고 한심한 일 같아요. 금쪽같은 시간을 왜 저 험지에 가서 다 쓰고 옵니까? 교회가 돈 대주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 시선에서 볼 때는 뭐에요? 낭비하는 거에요. 쓸데없는 짓이고.그런데 우리 시각에서 볼 때는 이걸 거룩한 낭비라 그래요. 야, 말은 잘 만든다. 아니요. 말은잘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 거룩한 낭비가 언제 일어나냐 그걸 잘 생각하셔야 해요. 절대적인 가치에 눈이떠졌을 때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것들이 어느 날 다 놔져 버려요. 가장 확실한 예를 하나 들께요. 어느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어요. 소작농이었는데 밭을 갈다가 보화를발견하게 돼요. 숨겨 두고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몽땅 팔아 치워요. 그리고가서 그 밭을 삽니다. 질문. 밭 때문에 밭을 샀나요? 보화 때문에 밭을 샀나요? 네, 보화때문에 밭을 샀어요. 그러면 밭을 갈다가 그 밭을 가는 행위는 누가 벌어먹고 사는 생계 수단이에요. 일상이라 할 수 있죠.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내 인생에 절대적가치가 갑자기 눈이 떠진 겁니다. 이거구나! 이게 진짜구나. 이게 전부구나. 확 눈이 열어지는 순간 지금까지 전전긍긍하고 하던모든 것들이 분토처럼 여겨지고 배설물처럼 여겨지는 거에요. 그 고백을 바울이 하잖아요. 족보로 말하면 나보다 화려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육체적전력으로 얘기하면 나도 너희 못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발견되는 순간 내가 모든 것을 배설물로여겼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오는 거에요. 여러분예수를 만난다는 건 이런 겁니다. 그 예수라는 절대 가치에 눈이 열어지는 순간 가슴과 가슴이 맞닿는순간 나머지는 다 배설물로 여겨지면서 그때부터 거룩한 낭비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걸 세상 사람들은미쳤다고 얘기하고 쓸데없는 짓이라 얘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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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롯 유다처럼 낭비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낭비라고 하죠. 여러분 3절을 다시 볼까요?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무슨 냄새가 가득해요? 마리아의 헌신의 정절인, 기름 부었던 향유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기시작해요. 한 장만 앞으로 넘겨서 11장 39절을 봅시다. 전체가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자, 무슨 냄새가 나고 있었어요? 사망의 냄새로 진동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온 집안에 무슨 냄새가 가득해요? 향유 내음이가득해요. 할렐루야. 무엇이 이런 역사적 반전을 가져왔을까요? 예수의 부활의 권능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었어요? 원래? 사망의 왕 노릇 하던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현장에, 그 메커니즘속에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데 잉여인간 쪽에 한 서려고 무한 경쟁 속에 매달려서 질주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요즘저녁마다 신명기 강해를 합니다. 신명기 강해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자선을 자비를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공동체가 제도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책임지라는 명령을 합니다. 아주 중요한 명령이에요.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절박한 화두가 뭔지아세요? 매주 얼마나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사건과 사고들이 많습니까?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사망의 냄새로 진동을 해요. 포털 사이트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 시대가장 절박한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질병이 뭡니까? 우울증이에요. 여러분지금 우울증이라는 병을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있어요. 그만큼 오랜 세월이 사회로 곯아왔고 병들어 왔고 이젠 전체적인 사회의 분위기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그런대도 그건 네가약해서 그래, 네가 심리적으로 병이 들어서 그래, 그래선안 돼요. 그렇게 그런 병들을 가지고 개인의 연약함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이젠 이미 그 도가 넘어섰어요. 이제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들어와 있습니다. 우울증은 안 앓아봤지만그 겪었던 분들의 회복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슴이 찢어질 정도의 통증이 있어요. 정말 섬뜩했겠구나. 이렇게 베란다에 서 있으면 물이 차오른대요. 물이. 느낌에. 몸을 던져도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을 것 같고 얼마나 무서워요. 자 그러면 그런 현상들이 왜 개개인에게 벌어질까? 그걸 단순히 개인이연약해서 그럴까? 이렇게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이사회의 거대한 구조가 사실은 그렇게 만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자본주의는 너무 숙성과정을생략한 채 달려왔기 때문이에요. 국가의 내거는 catchphrase와 대인 명분에 맞추어진 자본주의 성장이었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문제가많아요. 독재정권 시절에는 반공 ideology에 맞춰서 힘이 있어야공산주의를 이길 수 있다, 이 논리에 끼워 맞춰가지고 자본주의가 대기업은 편히 봐주고 정경유착이 돼서그냥 무한질주를 해왔어요. 거기에 보이지 않게 희생 된 개개인이 개인의 문제로, 그건 네가 능력이 없어서 뒤떨어진 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나요? 그게 바로 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지금 세상입니다. 이것을 치료할수 있는 방법은 복음의 메시지 밖에 없어요. 복음은 이 사회, 교회에뭘 지금 명령하고 있는가? 거기에 우리가 복음적 대안을 가져야 된다는 거에요. 지금 예수님과 함께 어제까지 죽음의 냄새 속에 썩어가던 한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얻어서 예수님과 이 잔치 자리를공유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도 희망은 복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믿습니까? 자 성경을 또 보십시다.4절
제자 중 하나로써 예수를 잡아줄 가롯 유다가 말합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여러분 이 의도는 우리가 밝혔어요. 도둑 심보라는 의도를 우리가성경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여기 대비를 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이행위를 예수님은 7절 이렇게 평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 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누굴 보고 한 얘기냐 하면 지금 자기 전 존재를 부어서 예수님의 절대적 가치 앞에 오든 걸 헌신하고 있는, 감사를 고백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한 거에요. 자, 그러면 유다와 마리아를 비교해 보죠. 같은 예수님을 놓고 유다는예수님을 넘겨 줄 준비를 하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해석대로 무슨 준비를 하고 있다고요? 장례를 준비하고있다고요. 이 장례는 뭘 의미할까요? 이제 곧 십자가에 죽으실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말합니다. 오늘 이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가나 마태 기자는 생략하지 않은본문 하나가 있어요. 읽어 드릴 테니까 들어 보세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이 여자가 행한 일도, 이 여자는 누구죠? 마리아입니다.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복음 전파되는 곳마다 마리아의 이야기가나온 적 있어요? 없죠. 마태도 이 얘길 했고, 마가도 이 이야기를 했어요. 이것은 마리아라는 한 개인의 personality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마리아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십자가를 향한 준비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삶은 앉으나 서나 먹든지 마시든지 십자가를 위한 준비의 삶이어야 합니다. 믿으십니까? 그것이 우리가 이 시대에 부여 받은 사명입니다. 우리 삶의 기초에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십자가를 위하여걸어가는 삶. 주님이 이 땅에 남겨진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는 몫을,그럼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자는 뭘, 돈이 없고 늘 물리적으로 궁핍한 사람을 얘기하는 걸까요?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 또한 세속적 시각이에요. 성경에서 푸토코스라는 절대 결핍에 해당하는 가난함 이라는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 결핍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돈이 아무리널널하게 쌓아놓고 있어도 가난한 사람이 많아요. 궁핍한 사람이 많아요.그래서 잘 사는 것 하고
(30:01-31:23)
부자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돈은 없지만 잘 사는 사람이있어요. 맞죠 여러분? 부자인데 참 불쌍하게 사는 사람들이대부분이에요. 그걸 구분하셔야 해요. 애들이 부자 집 갔다오면 그래요. 아빠 쟤네 집 되게 잘 살아. 그 때마다 그언어 속에 담긴 의미를 교정해 주어야 해요. 태근아, 네생각에는 잘 사는 기준이 뭐냐? 그리고 질문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뭐자가용도 몇 대있고 집도 3층이고. 3층은 거 어떻게 오르내려요. 그런 건 잘 사는 게 아니란다. 정말 잘 사는 건 예수님 위해서사는 게 진짜 잘 사는 거란다. 너무 유아적인 가르침 같죠? 아니에요. 그게 진짜에요. 믿습니까? 이귀한 주님의 고백이, 마리아의 헌신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일어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