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라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00:00-05:00)
지난 주는 세상 속에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환란과 핍박과 고난과 오해가 있지만그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 그것이 어쩌면 비틀려 진 세상의 생리 속에서는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다. 오늘은 그 다음 단계로 그 제자들과 성령님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좀 나눌까 합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그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집중적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6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실족이라는 말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세상이 공격하고 우리를 오해하고 환란과 핍박으로 무너뜨리려 할 때 바로 그 상황을 실족이라고묘사를 했어요. 넘어질 수 있다 그 말이에요. 2절을 한번같이 읽어볼까요?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라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이렇게 돼있어요. 이 출교라는 말은 사실 원문을 보면회당에서 쫓아낸다 그 말이에요. 유대인들의 가장 극형은 이 공동체의 중심, 예배의 본산지인 회당에서 퇴출시키는 겁니다. 죽음보다 더 끔찍한행위에요.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 말이에요. 누가? 그 당시 그리스도를 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오늘 날에도그런 유사한 박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을 수 있어요. 자 그것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들을 죽이는시도도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출교와 순교를 예고했어요.얼마나 끔찍한 일이에요. 그런데 여기 잘 보시면 뜻 모를 표현 하나가 우리 눈에 걸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뭐 하는 일이라 하리라? 네,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여러분 이 섬긴다는 말은 라트레이야 라는말을 쓰는데 예배를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이렇게 이해를 가졌다 그 말이에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일이 하나님을 뭐 하는 일로 이해를 했다고요? 예배하는 일로 이해를 했다고요. 이 본문을 연구하고 묵상하다 읽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살포시 제 마음 속에 은근히 동의가 되냐 하면 ‘야, 나 같아도 그랬겠다.’ 그렇죠? 이게정말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라면 우리도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IS나 이런 종교열광주의나 극단주의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 그거에요. 과거에있었던 십자군 운동 같은 경우에도 얼마나 끔찍한 역사의 폐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까? 이런 종교적 광기로벌어진 역사적 오류들이 열거하자면 얼마나 많습니까? 레리 오스본이라는 목사님이 쓴 책인데 우리나라 말번역으로는 ‘당신의 열정이 위험한 이유’라는 말로 번역이됐어요. 그런데 이 원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영어로 ‘우연한 바리새인들’입니다. 거기논지를 읽어보면 바리새인들이 의도해서 바리새인들이 된 게 아니란 얘기에요. 그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순수하게 시작했다는 거죠. 그 순수한 열정이 개인 경건을 심화하고 강조한 나머지 거기에 비해서 떨어지는뒤쳐지는 사람들을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뭐하게 되죠? 은근히 비교하게 되요.
(5:00-10:00)
열등하게 취급하게 되요. 여기에서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바리새인이 될 수 있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대부분 여기서 바리새인의 오만한 자리에 길로 앉게 된다는 거죠. 어느 날 어 하고 눈떠보면 자기가 바리새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데 모르고 있다는 거에요. 그게 문제에요. 그래서 그 책제목이 원제가 ‘우연한 바리새인’ 어시덴탈이라는 말을 써요. 마치 사고를 만난 듯. 미국에 제가 살던 동네 이름이 어시덴탈이에요. 이름이 굉장히 웃겨요.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그렇게 자의적으로 된게 아니라는 거에요. 처음엔 다 순수하게 시작을 했다는 거죠. 자그런데 중요한 게 그런 종교적인 열정이 상대적으로 따라오지 못하거나 자기 쪽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무지막지한 종교적 폭력을 가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런 실례가 굉장히 많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신명기 20장을 강해를 했어요. 우리 교회가 주일 저녁 예배가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좋아요,아주 좋아요. 분위기도 좋고 시간도 널널 하고 아주 상세한 성경해석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저도 참 좋고, 좋습니다. 제가 그 본문을 준비하면서, 강해를 하면서 참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어떤 대목에서 은혜를받았는가 하면 하나님이 헤렘법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을 명령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다 진멸해라. 그러니까 이 헤렘법에 근거해서 전쟁을 명령할 때 얼마나 대의명분이 정확하고 분명합니까? 그런데도 거기에 예외 시키는 경우가 있었어요. 결혼한 사람들, 또 농사를 실컷 지어놓고 아직 결실을 못 본 사람들, 이게 다 뭐에관한 이야기들이죠? 일상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이에요. 그런데이런 걸 하나님이 무시하지 않았어요. 이런 사람들은 전쟁에 제외시켜라.제가 그 대목을 읽다가 참 하나님은 따뜻한 본질을 갖고 계시는구나. 죄에 대해서 우상에대해서는 엄하시지만 하나님의 기본적인 성품이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분이구나. 그러니 소위 국가주의가얼마나 무서운 조직적 폭력을 가할 수 있다 그 말이에요. 국가주의가.우리가 애국해야 되지만 국가주의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행복을 짓밟고 무시할 때가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복음적이냐 아니냐는 얼마나 계명과 율법을달달 외우고 잘 알고 있고 그거를 지키려고 애쓰느냐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넘어서야 되요. 어디로 넘어서야되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과 그들의 행복을 겸허히 함께 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누구의 본질이냐 하면 하나님의 본질이란 말이에요. 그래서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첫 설교인, 공식적인 첫 설교죠. 산상설교를보면 그 산상설교의 동기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너희는 이렇게 이렇게 들었으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슨뜻입니까? 그들이 듣고 행하고 있는 것은 율법에 머물러 있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결말 즘에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율법과 서기관들의 의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렇게 결말이 나요. 그걸 넘어서야 된다는 말이에요.
(10:00-15:00)
율법, 지켜야 되지만 그 율법 지키는 궁극적인 이유가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개인의 행복에대한 공감과 그 사랑이 기초하지 않으면 그 율법은 창백한 율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이거를 우리가종교에 심화되다 보면 놓치고 못 볼 수 가 있다는 거에요. 바리새인들이 처음에 얼마나 율법에 순수하게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를, 예수 믿는 사람들을잡아죽이고 공격하고 박해하는 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걸로 오해를 했다고요. 이게 뭐죠? 무지에요. 무지. 뭐에대한 무지입니까? 말씀에 대한 무지죠. 구약의 계명과 율법을잘못 알고 있는 거에요. 자, 그 이유를 3절에서 어떻게 소개하는가 볼까요?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이거보다 분명한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누구와 누구를 알지못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까그 율법이 그 성경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맞대어지지 않으면 그건 창백한 법조문에 불과하다 그 말이죠. 믿습니까?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이끌어가고 싶은 최종적인 목적지인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자 다음절을 한번 볼까요? 4절.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이제 무엇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대요. 뭘 기억나게 하시는 걸까? 5절부터 그 내용이 소개가 되는데 제가 읽겠습니다.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아버지께로 간다 그 말이죠.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이 본문을 읽다가제가 조금 동의가 안됐어요. 분명히 앞에 보면 제자들이 세족식 하다가 예수님이 자꾸 어디 간다 하시니까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분명히있었어요. 그런데 왜 예수님께선 여기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예수님은 떠나신다고 항상 얘기했는데 왜 묻는 자가 없다고 얘기하셨을까? 자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조금 쉽지 않은 내용이에요. 제자들은분명히 ‘어디로 가십니까?’ 근데 제자들이 물었던 그 물음은사실 목적지에 대한 물음이었어요. 예를 들어서 철없는 아이들이 엄마가 옷을 차려 입고 화장을 하고 그러면애들이 궁금하니까 “엄마 어디가? 어디가?” 근데 엄마는 지금 일자리를 구하러 면접을 보러 가야 되요. 떨어질지, 될지 초조해요. 이게 꼭 돼야 아이들 생계를 책임지는데. 근데 애들은 단지 뭘 물은 거죠? 어디? 목적지, 장소를 물은 거에요. 그런데엄마가 외출하는 이 길은 기가 막힌 길이에요. 이것들을 또 집에 남겨두고 벌이를 하러 나가야 되는 그결정을 받으러 나가는 길이에요.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이해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보고 어디 가시는 대요 하고 물은 의미와 예수님이 이제 십자가를 향해서 뚜벅뚜벅 죽음을향해서 걸어가는 그 길의 의미와는 간격이 있어요? 없어요? 간격이너무 멀다 그 말이에요. 예수님이 여기서 한 말은 너희가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의 의미에 대해서 묻는자가 없었다 그 말이에요. 자 그리고 이제 6절을 볼까요?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15:00-20:00)
그러니깐 선생님이 자꾸 이상한 소리 하시니까 왜 자꾸 부정적인 소리를 하시지? 고난을당할 것이라 그러고 붙잡힘을 당할 것이라 그러고. 그러니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아 우리가영광의 이 땅의 권력을 헤게모니를 쥐고 로마의 정부를 물리치고 이 땅의 백성들의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지막 권좌에 오르는 그날에 이르기까지이런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라는 그 정도의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7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아멘. 이제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오늘 최종적 본론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그랬어요. 이 실상이라는 말이 신천지에서 아주 좋아하는 자주 쓰는표현이에요. 좋은 건 거기서 먼저 다 가져다 써요. 실상을말하노니. 진짜를 얘기하겠다. 이제 본론을 얘기하겠다 그말이에요. 근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뭐라? 유익이라그랬어요. 유익. 이 유익이라는 말이 성경에 보니까 아주재미있는 말인데 쉼페로 라고 돼있어요. 여기선 두 종류의 유익을 얘기해요. 첫째는 어떤 종류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이 주는 유익. 예수님의 죽음을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고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그 유익을 얘기합니다. 이게 첫 번째 유익이에요. 쉼페로.두 번째 유익은 오늘 여기 본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님이 오실 것이다. 내가 성령님을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해서 이제 성령님의 오심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주된 다룰 내용은 그 부분이 될 것 같아요. 자 그런데, 여기 한가지 좀 숨을 고르고 우리가 생각해야 될 부분은 우리 보수진영인 장로교 입장에서는 성령님에 대한 언급을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사실은 더 많은 영역에 손해를 신앙적으로 떠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의 맥락과도 조금은 이유가 있어요. 우리한국교회에 성령님이 소개될 때 사실은 오순절 계통 쪽으로 성령님이 한국 교회에 소개됐어요. 그러다 보니까성령님이 한편에는 왜곡 되이 소개됐거나 한편에는 편협 되게 소개됐습니다. 왜곡됐다는 말은 말 그대로신학적인 많은 오류를 이 오순절계통에서 범했어요. 성령에 대해서. 그래서성령 받았다는 사람들 보면 무서워, 일단. 상식적으로 봐도정상이 아니야. 근데 그거는 온전한 진짜 성령 받은 모습이 아니죠. 갑자기목소리가 변하고 눈에 형광 빛이 나고 사람이 갑자기 뭐가 내린 것처럼 쎄지고 막 그래요. 근데 그거는성령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한 성령충만의 모습은 아니죠. 성령님은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이에요. 게다가 편협 됐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는 것이 성령님을 받으면, 내주하시면전부 방언을 해야 되고 은사를 받아야 된다는 이런 잘못된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단 말이에요. 성령님이오시면 물론 은사를 주시죠. 그런데 은사 이콜 성령 받은 거. 이렇게공식화 해버리니까 성령님을 인간의 신학 안에다 제한시키거나 가두어버리는 오류를 편협 되게 범할 수 있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아유~ 성령에대해서 일단 말하는 거 우리가 좀 조심하자.’ 오랜 수십 년 동안 한국교회가 이런 분위기의, 특별히 보수진영에서는 있어왔어요.
(20:00-25:00)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시겠다는 분이 누구셨습니까? 성령님이셨어요. 그리고 우리의 진짜 밀접한 일상과 매일매일 우리가 부딪기면서 그분께 의지해야 되는 게 성령님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힘들고 외롭고 어렵고 할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는 부르짖고 예수님은 생각하는데 얼마나, 그분들에 비해서 얼마나 성령님께 의지하는 신앙의 영역을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까? 굉장히 적거든요, 분량상으로 볼 때. 이치적으로.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뭘 하시는가 잘 생각해보세요. 자 8절을 읽겠습니다.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가 와서 세 가지에 대해서 책망합니다. 죄에 대하여,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뭐하시리라? 책망하시리라. 여러분, 엘렝코 라는 말, 책망이라는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막 꾸짖고 야단친다는 그런 개념도 국어적 사전적 의미에서는 있지만 원문의 진의대로만 말씀 드리자면 엘렝코 라는 말은 이런뜻입니다. 법정 용어인데 법정에서 진짜와 가짜를 드러내서 부끄럽게 한다 그 말이에요. 이렇게 이건 줄 알고 살았는데 최종적 법정에서 진의가 드러났어요. 그러니까전혀 그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되죠? 부끄러워지는 거에요. 최종적 법정에서 진의가 드러나 진짜 가짜가 드러나서 부끄럽게 만든다, 부끄럽게된다 그 말이에요. 뭐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는 심판에 대해서. 이제 그 부분이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는가 한번 보십시다. 9절.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지난 주에도 이 부분은 강조했던 내용이에요. 우리가 죄라고 정의할 때는 윤리나 도덕적인 것은 하나의 증상이라고 말씀 드렸어요. 진짜 죄의 정의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게 인류의 죄입니다. 믿습니까? 여기에서부터 모든 윤리, 도덕적인 죄라고 불리는 증상들이 나타날뿐이에요. 이게 어디에서 드러난다는 거죠? 마지막 최종적법정에서 드러난다는 얘기에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조금은 억울하고 손해보고 섭섭하고 힘들고외롭고 곤고해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붙들어야 될 담대해야 될 이유입니다. 주께서 최종적 법정에서 모든것을 책망하시리라. 첫째는 죄에 대해서. 근데 죄의 정의는뭐라고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게 죄에요. 믿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이 심판에 이미 면제를 받은 사람이에요. 누구를통해서 십자가에 내 죄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다음에 의. 의가 뭔가 10절.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이말 이해가 되세요 여러분? 자 의에 대하여라 함은.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셔요 지금. 그래서 너희들이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근데 이게 뭐라고요? 의래요. 왜 이해하는 척하고 계세요? 이해가 되죠? 안되죠? 설명을드릴게요. 저도 이해가 사실 안됐어요. 이 말이 무슨 뜻인가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얘기 아니에요. 근데 그 십자가에 누구 때문에 죽으세요? 세상의 의 때문에 죽으세요. 맞죠 여러분? 세상의 의가, 그들은그걸 누구의 의로 오해하고 있죠? 하나님의 의로 오해하고 있어요. 이세상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유대인들을 통해서 세계의 권력자들을 통해서 십자가에 쾅쾅 못을 박았어요.
(25:00-30:00)
그리고 예수님은 그 이후로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무슨 과정을 거쳐가셨죠? 부활과 승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가셨어요. 그럼 잘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어요. 이걸 당시모든 사람들이 다 목격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의가 부끄러워진 겁니까?그렇죠. 세상의 의가 부끄러워진 거에요. 이해가되요 여러분? 그러니까 무슨 의가 또 진짜 의로 드러난 겁니까? 십자가의의가 진짜 의로 드러난 겁니다. 최후 승리 그 십자가의 의가 진짜 드러난 거에요. 여러분 우리 찬송가 150장에 보면 1절한번 띄워주실까요? 이런 가사가 있어요.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후렴가사인데 참 후렴을 부를 때마다 너무너무 목이 매이고 용기가 생겨요.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이미 참된 의는 십자가에서 증명이 됐어요? 안됐어요?증명이 됐어요. 뭘로 증명이 됐죠? 죽음의 권세를깨치시고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백여 갈릴리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 아버지에게 가시는 광경을 보이셨어요. 그러면 무슨 의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습니까? 세상의 의가 가짜이고십자가의 의가 참된 의라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우리 1절만같이 불러볼까요?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이 세상에 의는 십자가 의가 최후 승리의 의입니다. 믿습니까? 마지막까지 십자가 의를 붙드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까제가 1부때 요랬더니 그때 막 가방 싸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끝나는줄 알고. 남았어요. 결론이 아직도. 얼마나 웃겼는지. 내가 실수를 했지. 내가 잘못이지. 멘트를 결론처럼 하면 안 되는데. 십자가가 결론이니까 그렇게 멘트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세가지 결론을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제. 자막을 띄워주세요. 첫째, 열정보다 올바른 신앙. 너희가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10장의말씀이죠? 문제는 열정이 필요 없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에요. 열정이필요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이에요. 올바른 신앙은 어디서 오는 거죠? 성경을 바로 아는 데서 오는 거에요. 바리새인들, 얼마나 성경에 열심인 사람들이었습니까?
(30:00-35:00)
근데 바로 알지 못했다는 거에요. 근데 그 역할을 누가 해주시는 거죠? 성령님이 성령님. 우리 사도행전 8장띄워주실까요?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에티오피아 국고를 맡았던 장관이 수레를 타고 가면서 이사야의 글을 펼친 거에요. 근데도무지 무슨 뜻인지 깨닫질 못하자 성령께서 빌립을 그쪽으로 옮겨서 성령께서 그 이사야의 글의 의미를 열어주시죠.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고난을 받고 최후 승리를 하시는 가에 대한 지식을 넣어주십니다. 성령님은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 분입니까?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두번째. 세상의 심판보다 하나님의 심판. 예, 세상의 심판. 우리가 조심해야 될 지혜로워야 될 영역이 있지만 세상의심판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심판은 유한합니다. 사도바울도 마지막 감옥에 가두어져서 글을 남기며 이런 표현을 썼어요.
디모데후서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주실 것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의로우신 재판장이. 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을 뭘로 묘사했어요? 재판장.법정 용어로 묘사했어요. 왜 그럴까요? 세상은로마의 권력은 그를 붙잡아다 사형언도를 해놓고 집행만 남겨두고 있던 때에요. 얼마나 모순이고 억울합니까? 그렇지만 유유히 그는 감옥에 앉아서 세상을 정죄하고 세상을 심판해요. 아니다, 아니다. 이것이 최종적인 심판이 아니다. 내게는 더 궁극적이고 더 영원한 더 진정한 더 올바른 하나님의 평가가 내게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의 인도보다 성령님의 인도를기대하라. 믿습니까? 우리는 조금 어려우면 다급하면 연줄찾아 다니고 세상의 백을 기대하고. 아니에요. 스펙을 준비하는거 필요하지만 최고의 스펙은 뭡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에요. 하나님을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스펙인 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진짜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