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210
성경구절
요 1:29-34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6)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00:00-05:00)
우리는 지금 요한복음을 강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즘 1장이끝날까 했는데 여전히 오늘도 1장은 마치지 못할 꺼 같습니다. 1장이그만큼 중요하기에 꼼꼼하게 우리가 찾아볼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첫 절이 이튿날이라는 표현으로시작을 하죠. 그런데 여기에 아주 이상한 일정한 패턴이 하나가 발견이 됩니다. 요한은 이상하게 날짜를 명시해놔요. 그런데 그 명시한 패턴이 굉장히일정합니다. 자 여기서 말하는 이튿날은 지난주 설교와 연관성이 있는데 지난주는 이런 내용이었어요. 유대인들이 레위인과 제사장으로 구성된 종교지도자들을 세례 요한에게 파견을 해요. 그래서 사실상 같은 질문이지만 네 가지 형태로 묻죠. 첫 번째 질문이뭐였습니까?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엘리야냐? 아니면 그 선지자냐? 이렇게네 번에 걸쳐 질문을 하지만 세례 요한은 딱히 머라고 정확한 대답을 꺼내놓지 않아요. 그러고 오늘 본문은그 이튿날, 그 사절단이 다녀간 다음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튿날이라는표현이 어디에 또 등장을 하는가 하면 35절에 보시면 또 이튿날 요한이, 그리고 43절을 보시면 이튿날 예수께서. 자 그런데 이 패턴은 사실상 예수님의 첫 사역의 첫 주간에 등장하는 한주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겁니다. 이 이튿날이 그 절정을 어디에 두고 있는고 하니 2장 1절에 사흘째 되던 날,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그래서 이 날수를 정확히 합쳐보면 전부 6일이 됩니다. 근데 이 6일의 모티브는 창조의 모티브에요. 여러분 요한복음 1장 1절이뭐로 시작됐죠? 태초에. 태초에로 시작을 해요. 근데 이 태초라는 말이 또 어디에 견줄만한 표현이 등장을 합니다. 창세기1장 1절에 등장합니다. 태초에. 태초에. 근데 창세기 1장1절의 태초는 역시 창조가 6일동안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그 창조의 세계는 인간의 죄가 들어오고 이 질서가 무너지면서 병들고 부패하고 사망아래 놓이게 되죠. 세상은 원래의 질서를 잃어버리고 뒤죽박죽 돌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혼란에빠졌죠. 인류는 길을 잃었고 도탄과 죄악과 절망에 놓이게 됐습니다. 오늘요한복음 1장은 뭘 얘기하고 싶은 걸까요? 그랬던 세상을다시 창조하시고 고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말은 그렇게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이 창세기 1장 오늘 본문서부터의 의도적 요한의 힌트는 이것이 6일에걸쳐 가나혼인잔치의 절정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걸 암시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담아내고 싶었던 거죠.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오늘 29절 첫 절을 볼까요?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자 앞을 좀 봐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중요한 자기에게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에 대한 정체성을아주 명증스럽게 잘 정의한 이보다 더한 정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어린 양이로다. 여러분 그냥 늘 흔히 듣는 표현 같지만 이 표현을 조금 끊어서 이게 얼마나 중요한 표현인가를한번 확인하십시다. 우선 맨 끝에 하나님의 어린양은 어떤 양을 가리키는 걸까?
(5:00-10:00)
그냥 양 한 마리. 생물학적인 양을 설명하는 걸까? 아니면어떤 의미를 담아서 상징적으로 표현하는걸까? 이 어린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의 흑암의 고통과 역사 속에서 신음하다가, 부르짖다가 하나님의구원계획에항거한 바로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마지막 심판으로 애굽 전체에 생명있는 것은 첫 것을 죽이는 심판을 선언합니다. 첫 것을 죽였다는 것은 사실상 만물은 기력이 시작이기 때문에 전부를 심판했다는 의미기도 하죠. 거기에 히브리 노예들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들에게만은 하나님의 택한백성이기에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오늘밤에 애굽 전역에 장자의 애곡의 소리가 들릴 텐데 너희 가정에만은어린 양을 잡아서.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그 양입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흘린 피를 문설주에다 바르면 죽음의 심판이 히브리노예들의 가정만은 그냥 지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이 날은 패스오버. 유월절의 기원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말하는어린 양은 대속의 제물로서의 어린양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냥 생물학적인 어린 양이 아니라. 대속의 제물로서의 어린양을 얘기하는 겁니다. 예수는 대속의 제물로서오신 거에요. 자 그런데 그 어린 양 앞에 이런 수식어가 붙어 있어요.세상 죄를 지고 가는. 지고 간다니까 뭐 양 어깨에 잔뜩 뭔가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 염려, 걱정, 근심을대신 지시고 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여기 지고 갔다다는 말은 아이로 라는 말을 썼어요. 아이로. 이 아이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앞에 있는 어떤 것을제거하고 치워버린다 그 뜻이에요. 그러면 우리 모든 오고 오는 인류의 가장 궁극의 끝 문제점은 뭘까요? 죄의 문제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류는 수많은종교들을 만들어냈고 지금도 그 종교열광에 삐져서 혼돈의 혼돈을 거듭하고 미혹에 빠졌죠. 여기가 길일까? 저기가 길일까? 이곳이 진리일까?저곳이 진리일까? 자 그런데 섬찟할 만큼의 역설적인 표현 하나가 이 요한복음 마무리 즘가서 기록되어 있어요. 여기 똑 같은 표현을 담았어요. 다시말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다 라는 말을 아이로라는 말을 썼는데 이 말은 제거하다 치우다는 뜻이에요. 죄를. 자 그런데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자 띄워주세요.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이 빌라도는 로마의 관료요 바로 예수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인물이에요. 그런데그마저도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죄 없다 판단을 했고 오히려 그 입에서 그 유대인들이 끌고 와 고소하는 예수를 뭐라고 표현하고 있죠? 너희 왕이로다. 이 얼마나 역설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절 더 섬찟한 역설이 담아져 있어요. 우리 한번 같이읽어볼까요? 시작.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오히려 유대인들은 예수를 고발하면서 가이사. 가이사는 누굽니까? 로마의 황제죠. 그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 그런데 빌라도는 다시 한번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면 좋겠느냐? 이게얼마나 아이러니입니까? 근데 유대인들은 정작 진정한 왕을 놓고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가 하면 그들이 소리지르되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여러분 이 없이 하소서 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아이로 라는 표현을 써요. 아이로.
(10:00-15:00)
저를 제거하여 주십시오. 저를 치워주십시오. 그말이에요. 정작 그들의 왕이신 그들의 죄를 해결하시고 죄를 제거하시고 죄를 치우시기 위해서 어린 양으로오셨는데 유대인들은 아니 인간은 무지해서 오히려 그 예수를 없이하소서 아이로. 제거하소서, 치워주소서 하고 소리치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우리는 여기서 섬뜩한 마음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실체에요. 우리인간의 영적인 무지한 모습입니다. 이건 또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의 문제입니다. 이인류의 이인간의. 자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30절을보십시오. 1장 30절.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지금 요한이 말했고 예수를 두고 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알다가도 모를 얘기 하나를요한이 끄집어 내죠.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순서상뒤에 오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 사람이 나보다 앞선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여러분 예수님이 생물학적으로 요한보다 앞설 수가 없죠. 몇 개월늦게 낳습니까? 6개월 늦게 낳아요. 이미 마리아가 수태고지를듣고 제일 먼저 찾아간 데가 요한이, 요한의 어머니가 살던 산골짜기입니다. 엘리사벳. 그때 이미 요한은 복중에서 6개월째 되었던 때에요. 그러니까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난 사람이 요한입니다. 그리고 이 둘 사이는 사실상친척이죠. 그런데 생물학적으로는 뒤에 왔지만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다.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어린양이면서 동시에 우리의죄를 제거하러 이 땅에 오셨고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시다 그 뜻이에요. 그리고 이제 31절을 볼까요?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것 또한 말이 안됩니다.요한이 예수를 모를 수가 없죠? 그러면 여기서 나도 그를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은 33절에서도 써요.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그만. 두 번에 걸쳐 나도 그를 알지 못했다는 말을 씁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식이 없었다는말이 아니고 예수라는 존재는 당연히 친척 지간이니까 알 수 밖에 없죠. 그러나 그가 메시아인지 히브리말로그리스도인지 긴가민가했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지금 서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 설명합니다.33절.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자 이제 앞을 보십시다. 이제 우리가 좀 멈추어 서서 중요한 확인을 하고 지나가야 할과제가 이 문장 속에 있습니다. 뭐냐 하면 요한은 예수님이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알았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이제 그분의 증언자가 돼있는 겁니다. 증인이 돼있는 겁니다. 그럼무엇이 요한에게 이른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 자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이유를 얘기해요. 우리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띄워주세요. 그리고닥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자 이 본문을 그대로 두십시오. 가끔 우리 청년들에게 이런 교구를 맣닥드리게 됩니다. 예수를 믿습니까? 믿는대요.
(15:00-20:00)
그 분이 형제를 위해서 자매를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분이심을 구세주이심을 구주이심을 믿습니까? 믿는대요.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요. 성령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아 그건 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요. 이게 얼마나 모순적 대답입니까?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유심히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영. 하나님의 영은 누굴 얘기하는 거죠? 성령님을 얘기하는거에요.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아니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말이에요. 또 하나님의 영의 또 다른 표현이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단 말이에요. 자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고백하고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분으로 인지하고 믿고 깨닫고 알게 된 것은 이미 그 속에 누구의작용이라는 뜻입니까? 성령님의 작용이요. 이미 그 속에 누가내주하신다는 반증이 됩니까?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는 반증이 되는 거에요.그러니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게 되면 뒤집어 얘기하면 이미 그 속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내주가 충만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에요. 자 또 하나 두 번째 이유가 마태복음 16장을 띄워주세요. 한번 같이 읽습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자 이 대답은 어느 대화 끝에 나온 대답인가 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어요. 사람들이나를 누구라 하느냐? 어떤 이는 선지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위인이라 합디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대답을 10점 만점에 10점짜리 대답을 했어요. 그러면 저 같으면 어 너 그거 어떻게 깨달았냐? 너 기특하구나. 머리가 좋네? 연구 많이 했구나.근데 예수님의 대답은 달라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뭐가 있도다? 복이 있도다. 왜 복이 있다고 그랬을까요? 그 뒤에 이유가 설명됩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하늘에 계신 누구의 계시입니까? 내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가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깨닫고 믿고 그분을 증언할 수 잇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가 있어야 되요. 이거는우리가 더듬어 찾는 작업도 안 되요. 위로부터 계시가 임해야 되요. 믿습니까? 말씀이라는 계시가 임해야 되요. 그리고 그 계시를 성령님이 일일이작업해서 우리 마음 속에 믿음을 넣어주시고 생명을 넣어주시고 불어주셔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메시아로 증언하고 고백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믿습니까? 자 오늘 본문을 다시 가서 보시면 33절이 바로 그 얘기에요. 세례 요한이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33절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믿습니까? 이 성령의 역사와 아버지의 계시. 그래서이것을 선교지에 나가서 보면 너무도 극명하게 경험할 수 있어요. 뭐 별 얘기 안 했는데 교회 나온 지일주일밖에 안된 형제가 가서 외운 사영리 전한 것 뿐인데 왜 이제야 왔냐는 듯이 통곡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저 새까만 어린청년들의 눈물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 전하고 전하고 전해도 염소 시험지 씹듯이 덤덤한그런 또 맹한 상태의 반응을 무수히 또한 겪습니다. 이걸 무슨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겠습니까? 말의 재능으로 설득이 되겠습니까?
(20:00-25:00)
전도란 선교란 그래서 우리의 지혜나 설득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순종하여 경험하고 목도하는 것이 선교에요. 믿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복되다는 표현이 얼마나 적합한 표현인가? 여러분들은 그런 의미에서 복되도다. 믿습니까? 자 이제 다음 챕터로 넘어가서 35절 또 하루가 지나가요. 이때는 삼일 째 되는 날이겠죠?
35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자 여러분 또 앞을 보세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이 선언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이 선언은 29절에 나타났던 표현과 조금 미세한차이가 있어요. 29절은 전체 이스라엘을 향한 선언이었다면 35절의선언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요한이 설명한 선언이에요. 그러면 그 차이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 저로서는 중요합니다. 왜일까요? 대상은천태만상으로 달라졌어요. 메시지의 본질은 변했습니까? 안변했습니까? 메시지의 본질은 똑같아요. 복음이라는 건 그런거에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뭐 배우고 유식한 사람은 구원을 안받아도 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에요. 복음은 모든 인류를 죄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보는 겁니다. 미국사람이던, 한국사람이던, 배운사람이던, 못 배운 사람이던, 아프리카 사람이던, 아시아사람이던, 중요한 것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끔가다가 교회 안에서 막 큰소리치고 나를 뭘로 보고 말이지. 뭘로보긴 죄인으로 보지. 죄인, 죄인. 믿습니까? 대상은 달라졌는데 메시지의 본질은 하나에요. 하나님의 어린 양. 대속의 제물이다 그 말이에요. 너는 구원받아야 될 존재다 그 뜻이에요. 자 그런데 성경을 잘 보세요.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누굴 따라요? 방금 이 사람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누구의제자였을까요? 요한의 제자였어요. 그런데 여러분 요한의 제자들이보통제자들입니까? 에쎄네파의 멤버십을 가지고 쿰란 공동체에서 동거동락하며 유숙하며 메시아를 기다리고성경을 요한에게로부터 배우고 공부하던 제자들입니다. 정말 거기에서 모든 생활을 함께 고생을 겪어가면서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꿈을 나누고 새로운 나라를 기대했던 제자들이에요. 그런데 이 제자들이 보라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정확한 이 메시지 앞에 어디로 옮겨 버립니까? 예수를 따르니라. 이게 맞아요. 가끔 제자훈련 한다는 교회를 보면 목사의 제자를 만들고교회의 기능에 맞는 제자를 만드는 것이 제자훈련인줄 알아요. 참된 제자훈련은 예수를 따르게 해야 되요. 조직을 따르게 하거나 사람에게 열광하고 사람에게 환호하는 그런 제자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건 제자훈련이 아니에요. 사조직을 만드는 거지. 예수를 따르도록 해야 해요.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도 훈련도 연습도경배도 전부 마지막 끝은 예수를 따르도록 하는 게 결론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자꾸 사람을 따르게 하니까 삐치고 불평을 하고. 당연하지사람을 보게 하니까. 사람을 따르다 보니까. 사람에게 선한것이 뭐 있어요? 없어요. 사람에게 선한 것을 봤습니까? 아 고 애기 귀엽고 예쁘던데. 그건 아직 죄를 열매 맺지 않은 죄인이고, 어른들은 열매 맺은 죄인이고. 본질은 죄인이에요. 똑같아요. 인간을 너무 괜찮게 보지 마세요.
(25:00-30:00)
여러분 결론은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따라야 되요. 그 말은 내가 오늘도 예수의 구원이필요하고 그분의 대속이 필요한 존재구나. 자 성경을 보십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아 좀 쌀쌀맞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죠? 저를 보세요. 그랬으면 너희들이 참 잘 배웠구나 제대로 배웠구나뭐 이렇게 좀 덕담한마디 있을법한데 예수님이 획 돌아서시면서 따르는 그 두 제자들을 보면서 무엇을 구하느냐? 이런말이에요. 목적이 뭐냐? 나를 따라오는 목적이 뭐냐? 그 뜻이에요. 뭘 구하느냐? 이질문도 좀 시니컬 한 데 더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그 질문을 들은 이제 방금 요한의 제자였던 그러나 지금은 예수를 따르는 두 제자들의 반응이더 우리를 미궁으로 빠트립니다. 그들의 답 아닌 답을 보세요. 그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자 이 대화가 앞뒤가맞는다고 보세요? 무엇을 구하느냐 했는데 어디 계십니까? 이거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연스러워 보이세요? 아 그냥 성경 읽지누가 그런 거 까지 생각하냐? 혼자 해라 혼자. 같이 합시다. 네? 이 대화를 어떻게 보세요? 참이런 거 보면 예수님의 콜링은 참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세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랍비라 그랬어요. 이 말은 무슨 뜻이기도 하느냐 하면 예수님을 따라 나서긴 나섰는데 알고 나섰다는 얘기입니까? 모르고 나섰다는 얘기입니까? 모르고 나섰다는 얘기에요. 그냥. 우리가 다 그렇잖아요. 여기처음부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나에게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 정확하게 데이터 놓고 따르는 사람 여기에 몇 명이었어요? 없어요 그런 사람. 그냥 어쩌다가 어쩌다가. 그냥 뭐 자매가 가자 그래서 따라갔다가 또 돈 받으러 쫓아왔다가 예배 드리다가 예수 믿게 되고. 별의별 사연이 교회 안에는 다 녹아져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가더라고요. 결국이 제자들은 굉장히 신중한 스타일이에요. 뭔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질문에 상응하는 대답을 해야 되는데이런 뜻입니다. 아 이분이 랍비인 걸 보아서 순회교사처럼 돌아다니시는 분인데 이 마을에 계신 걸로 봐서어느 집엔가는 유숙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답을 꺼내기는 준비가 안된 거에요. 그래서 랍비야 어디 계시오니이까 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거처를가르쳐주시면 저희들이 좀 같이 가서 더 깊은 선생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싶습니다. 그 뜻이에요. 이건 굉장히 신중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성경에 보면 또 어떤 사람들은오라 그러니까 모든 걸 버려두고 따라나선 사람도 있어요? 없어요? 있단말이에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간증이 왜 위험한가 하면 그걸 자꾸 원리화 시킨다고요. 어떤 사람은 즉시 따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얻어터져서들어온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서 들어온 사람도 있고,어떤 사람은 그저 자기가 언제부터 믿은지도 모르게 그냥 순조롭게 삼베바지 방구 새 듯 그렇게 또 믿게 된 사람도 있고. 이런 표현을 요즘 안 쓰죠? 글을 많이 읽다 보면 이런 기막힌 문장하나씩이 걸려요. 자, 그래서 교회 안에서의 간증은 조심해야되요. 간증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자칫하면 그게 원리가될 수 있으니까. 성경 외에는 원리가 되어선 안되요.  사람의 경험이 아주 감격적인 어떤 스토리가 그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위험해요.
(30:00-35:00)
설교자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스럽게 비치려면 그런 스토리 쫙 검색해가지고 눈물 쫙 뺄 수 있어요. 그런데그것은 강단에 세워진 책무로서는 할 일은 아니에요. 자꾸 그런 스토리 얘기 해달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있어요. 편지 많이 받아요. 자성경을 다시 한번 보십시다. 39절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자 지금부터 야 요한이 참 집요하다 날짜도 꾸역꾸역 정확히 의도적으로 밝히더니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모인 시간을 밝혀요. 10시면 여기 6시간을 더해야 되요. 유대시간으로. 환산 하자면 오후4시입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거의 하루 종일 있었다는 얘기에요. 가서. 누구와? 예수님과. 별거 아닌 거 같아요? 자 요한복음 1장 14절 한번 보세요. 예수님이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뭔가?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뭐하시매? 거하시매.앞을 보세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거 하러 오셨거든요. 요한복음의전체 가장 메인 주제가 뭔지 아세요? 거하신다는 개념이에요. 주님은우리 일 시켜가지고 앵벌이처럼 뭐 돈 거둘려고 우리를 구원시키고 우리를 부르시는 게 아니에요. 한국교회전체 분위기 패턴이 어디로 지금 넘어가있는가 하면 무슨 사명 단체처럼 넘어가있어요. 비전 단체처럼 넘어가있어요. 여러분 사명과 비전중요하고 해야죠. 그러나 주님이 정말 저와 여러분들에게원하시는 건 그거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나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거에요. 그게 여기서는 거하는 개념이고머무는 개념이에요. 선교와 전도와 사역은 그 예수 그리스도와의 거하며 머무는 감격과, 여러분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머무는 이 경이로운 황홀함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한 경이가 있을까요? 더한 감격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높고 높은 신적인 자리를 스스로 내리시고 우리랑 뭐하기 위해서 오셨어요? 거하기 위해서 오셨다고요. 이거를 놓치면 아무리 겉으로는 열심히사역하는 거 같이 느껴지고 보여지더라도 피로현상이 금방 오고 탈진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렇게사랑했던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을 며칠같이? 하루같이. 그게 가능해지는 거에요. 가능해지는 거에요. 정말 주님과 교제하고 먹고 마시면서 그 안에 거할 때! 열매라는것은 띠 두르고 궐기대회 해가지고 열매 맺읍시다. 궐기대회 한다고 열매가 맺어지는 게 아니고 거해있으면주님과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으면 그러한 섬김과 감사와 감격과 열매는 저절로 흘러 넘치는 거라고요. 믿습니까? 이게 순서가 바뀌어있어요. 지금. 그 거함이 정확하면 이걸 놓치지 않으면 세상의 부귀영화가뭐 그렇게 시시하게 보여지는 거에요. 그분으로 충분한 거지, 그분의사랑으로 된 거지. 그래서 명예도 버리고 고난도 넘어서 사랑했던 육정도 끊고 아프리카의 영혼을 위해서배를 타고 떠날 수 있는 거에요. 프랑스의 어느 한 노시인이 아버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예수를 너무사랑했기에 말리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배를 타고 떠나요.
(35:00-40:00)
그때 그 시인이 지었던 시 귀 하나가 “예수 그는 누구인가? 내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내가는구나.” 그것은 딸이 아버지를 덜 사랑해서가아니라 예수를 너무 사랑했기에 예수가 사랑한 그 영혼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그 배를 뒤로한 아버지의 절규죠. 그런 거에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역 비전 소중한 겁니다. 그러나 그 소중함 보다 더 중요한 것은주님과 머무는 시간이 있는가? 거하는 시간이 있는가? 이귀한 보석 같은 황홀한 시간을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결코 놓치지 않는 은혜를 누리는 복된 존재가 될 수 잇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