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종

책이름(시리즈 분류)
빌레몬서
Date
날짜
20131004
성경구절
몬1:23-25
시리즈 순서
빌레몬서(4)
종류(주일, 새벽 등)
새벽
2013.10.04
빌레몬서 강해(4)
열매 맺는 종”
몬 1:23-25
2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00:00-10:00)
좋은 영화나 좋은 그림은 항상 어떤 사건과 결말에 있지 않고 사람이 주제입니다. 사도바울도 평생 선교에 세 차례에 걸친 여행을 통해서 늘 마지막에 남기는 인사말에 자기의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남기죠. 로마서 16장에 보면 많은 동역자들의 명단이 맨 끝에 열거돼있습니다. 또 그는 평소에도 성도들에게 열매 맺기를 구합니다. 특별히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는 너희 속에 싹이 나고 열매가 맺는 것을 내가 참 기뻐한다. 그 열매라는 표현이 이자 또는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물질적인 이자나 이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관한 소개에요. 영혼의 문제를 얘기하는 거겠죠?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서구 유럽의 교회를 가끔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보면 사람이 남지 않고, 건물만 남았어요. 휑하니 그 넓은 건물을 유지조차 할 수 없어서 저 한 켠을 막아서 난롯불 켜놓고 머리 하얀 할머니들 몇 분만 옹기종기 모여서 20명도 채 안 되는 어르신 들이 그 넓은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갑니다. 그 건물이 유지가 안되죠. 헌금 수입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 건물의 찬란한 전통과 역사의 기록을 팔아서 관광객 수입으로 건물을 유지 합니다. 이런 풍경들이 호주를 가도 그렇고 영국을 가도 그렇고, 유럽의 교회가 지금 그 모양이 돼있어요. 우리 한국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요. 교회는 사람을 길러내고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남겨야 됩니다. 오늘도 빌레몬서를 맺으면서 사도바울이 마지막 인사말에 몇 사람 이름을 거론하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첫 번째 인물이 누구입니까? 에바브로. 에바브로입니다. 에바브로는 또 다른 말로 디도라고 부르죠? 이 디도는 굉장히 바울의 선교 인생 속에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었는가? 골로새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 분은 한 번도 사도 바울이 골로새를 방문한 적이 없어요.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 가까운 지역인 전체 지역을 성경에서는 통틀어서 아시아존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마 와서 복음을 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돌아가서 그는 골로새 교회를 담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게 되죠. 지금 이 빌레몬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 곁에 누가 있냐 하면 에바브로 디도가 있어요. 지금 바울은 연금 상태에 있죠. 항상 이 디도는 바울이 곳곳에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를 한 현장에 바울의 의도를 전달하고 바울을 대신해서 화목을 이루고 심부름을 했던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런 분들의 수고에 대해서 성경이 그렇게 딱히 구체적으로 소개를 하지 안아요. 그저 성경은 어차피 세세한 모든 이야기를 기록 할 수 없는 책이니까 결과론적인 구속에 관한 이야기만 기록을 합니다.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그저 바울 정도, 그가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나타났고 어떤 결과가 나왔고 이런 정도를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런 복음의 열매가 맺어지기 까지, 사실 사이사이에 곳곳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 이런 소중한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렇게 나타나고 보여지는 일이나 사람 보다도 그 분들도 물론 수고를 했고 중요한 역할이었겠지만 그 결과가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측면에서 땀 흘리고 기도하고 수고한 이들의 가치를 역사는 놓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 때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건강한 균형과 시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지금 사도바울 옆에서 옥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몸이 약했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이 사도바울을 위하셔서 아주 독특한 인물 하나를 또 하나 평생 붙여 놨죠. 우리 네 명 이름 중에 마지막에 누가가 기록 돼있습니다.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이 누가는 의사죠. 사도행전 16장서부터 바울과 동행을 시작한 인물인데 누가는 의사에요. 그리고 꽤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보면 늘 감옥에든지 사도바울의 그 험한 여정 속에 누가가 늘 동행을 해요. 그래서 그의 병약한,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약한 건강을 갖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고 치료해주고 마치 평생 선교의 주치의 역할을 합니다. 지금도 한국에 살면 의사 생활 하면서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아주 럭셔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끔 이해가 안 되는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아는 후배인데 치과의사에요. 치과의사는 사실 응급한 환자도 별로 없고 돈을 많이 벌죠. 아무래도 한국에서 뭐 의사 위치면 먹고 사는 문제는 걱정이 없는 사람이죠. 젊은 분이에요. 생긴 것도 스마트하고 언변이 좋아요. 2시간을 혼자 얘기해도 사람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명문대를 나온 장래가 촉망되는 이 친구가 모든 걸 다 접고 저 러시아 위쪽에 중앙아시아죠. 그 험한 데입니다. 몹시 기후가 험하고, 가족을 다 데리고 그리고 떠나버렸어요. 떠나기 직전에 엄청난 격렬한 저항이 있었어요. 누구였을까요? 물론 부모님들이죠. 너 미쳤니? 조금만 더 생각해 봐라.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가야 될 길에 대해서는 분명합니다. 좌면 우고 할 것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곤 훌쩍 떠나버렸어요. 그 친구가 가서 뭘 하냐 하면 바로 선교사님들, 그 가족들, 그 지역의 사람들을 고쳐 주면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평신도 선교사로 지금까지 사역을 하는 걸로 제가 듣고 있습니다. 누가도 복음에 붙잡혀 그는 바울의 평생 곁에서 주치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누가는 헬라 사람이거든요 곁에 이방인이 한 사람 붙어 있다는 것은 선교 행로의 굉장한 이점이 되요. 내가 예를 들어서 캄보디아로 선교사로 가야 되는데 캄보디아에 정통한 캄보디아 본국 사람을 내가 잘 알고 있다면 얼마나 유익이 되겠어요.
(10:01-20:00)
게다가 이는 지적인 능력이 있어요. 의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정확하고 섬세합니다. 의사는 어떤 면에서 몸에 대한 공학도거든요. 논리적이고 섬세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바울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바울의 행로에 대해서 누가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결국 그가 뭘 쓰죠? 이방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 사복음서 중에 어떤 책이 있을까요? 너무 쉬운 건 반응을 안 하시더라고요. 누가 복음이 있습니다. 누가는 바로 누가복음의 저자입니다. 의사로써 아주 섬세한 터치를 기록하죠. 그리고 그 데오빌로라는 로마 고위 관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를 전도하고 특별히 사도행전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바로 이 누가가 사도 바울 곁에서 주치의 역할을 하면서 성령의 역사에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스토리를 오늘 후대에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남기는 역할을 독특하게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건, 그 사건의 결과 또는 열매,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그 결과가 열매가 맺어지기 까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긴긴 숨어있는 수고에 대해서 평가절하하는 또는 평가하지 않는 그런 우를 범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그걸 알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이런 소중한 동역자들의 섬김과 함께 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알고 반듯이 그는 서신 끝에 이런 동지들의, 평생 목숨을 같이 한 친구들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이 복음 사역에 바울과 함께 이렇게 쓰임을 받습니다. 또 우리는 이 인물들을 다 거론할 수 없지만 한 두 사람 정도 인물을 더 소개를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가 거론 돼있냐 하면 또 나의 동역자 누구입니까? 마가.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이죠. 그리고 이 마가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죠. 마가의 다락방. 그런 걸로 봐서 120명 정도의 성도가 머물 정도의 공간, 다락방을 소유 할 정도의 집이라면 그 규모는 대 저택입니다. 그런 걸로 봐서 이 마가는 상당한 부잣집 아들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 또 다른 성경에 보면 이 마가는 놀랍게도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바나바의 조카에요.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 할 일이 있어 많은 재정이 필요로 할 때 자기 밭을 팔아서 교회에 바쳤던 인물이죠? 바나바도 부유한 걸로 봐서 이 일가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집에서 교회가 시작이 되죠. 그래서 마가는 바울과 함께 바나바와 함께 처음에는 선교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따나 나섭니다. 그런데 바울의 행로가 얼마나 살인적인 스케줄입니까? 결국 이 부잣집 도련님이 중도 하차를 해요. 이 일 때문에 뜻밖에 기독교 역사에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그 착한 바나바가 바울과 대판 싸움을 벌여요. 바울은 이 때까지만 해도 혈기가 왕성한 때이기 때문에 아주 단 칼이었어요. 저런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저 친구는 도저히 못 데리고 가겠다. 중도 하차 시키자 .그리고 바나바는 당연히 성령이 충만하고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또한 자기 조카이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끝까지 기다리고 동행시키자. 이 일 때문에 성경에 기록 될 정도로 다툼이 일어나요. 둘이 크게 다투니라 라고 기록돼있어요. 우리는 뭐 지들끼리 싸운 걸 뭘 성경에 까지 기록을 했을까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속에 어떤 경우를 통해서라도 손해 보는 경우는 없지요. 이 두 사람의 다툼으로 헤어집니다 바나바하고 바울하고. 그러면 당신은 당신 갈 길 가십시오. 우유부단한 마가 데리고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도저히 저 친구하고는 못 갑니다. 헤어져 버려요. 그리고 이 때부터 바울은 실라라는 바울과 실라. 유명한 커플이죠. 실라는 대동해서 둘이 갈라서 버려요.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이 갈라선 두 커플의 선교 행로를 뒤져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묘하고 절묘하게 두 사람의 행로를 역사하시는지를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은 이런 것 같아요. 다툼과 갈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세요. 이 말은 이런 뜻은 아니에요. 우리가 싸워도 되겠구나. 이런 말은 아니에요. 서로 약하고 한계가 있고 못나서 다투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 토부towb 라고 그러죠. 하나님의 선을 이루세요. 오히려 이 갈라진 두 사람의 행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더 확대되고 전파되고 효과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 수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 한국 교회사도 보면 많이 나누어지죠.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많이 나누어 져요. 그런데 그 갈등과 다툼과 나눔이 이 조국 땅 전역에 또 복음이 퍼져 가는 소중한 이유가 되어있는 결과를 오늘 우리가 만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안 다투는 게 제일 좋은데 서로 연약해서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세요. 그렇게 헤어집니다. 그런데 디모데 후서 마지막 장에 보면 이제 그 디모데 후서는 바울에게는 마지막 글이었어요. 그는 그 글을 남기고 결국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죠. 마지막 글이 될 줄을 모른 채 그 글을 쓰는 가운데 부탁을 합니다. 마가를 좀 데려오라. 그는 내게 유익하니라. 그리고 마가와 영적인 화해를 시도합니다. 불편했던 젊은 날, 그를 떨쳐냈던 그 기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 같아요. 에이 내가 그때 참 목회적으로 철이 없었구나 기다려 줬어야 되는데 그게 늘 영적인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병들어가는 몸을 추스러 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디모데 후서 대필을 시키면서 그 기억 한 켠에 갖고 있었던 마가를 데려 오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내게 유익한 자니라. 세월이 흘러 마가도 철이 들고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있어요. 여기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마가를 이렇게 동역자로 열거해 놓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기 또 한 인물을 만나는데 아리스다고입니다. 여러분 이 아리스다고는 제가 많은 설교집도 읽고 설교도 들어보고 책도 보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아리스다고를 주제로 설교한 경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정말 우리 학교 다닐 때 추억을 되살려 보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의 존재감이 없는 그런 친구들 가끔 있죠. 졸업 앨범 한번 뒤져봐야 아 이 친구 참 우리 반이었지? 이 정도의
(20:01-25:11)
인물. 그런 인물이 아리스다고입니다, .그런데 이 아리스다고는 마게도냐 출신이에요. 마게도냐에 도착을 해서 사도바울이 야소네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죠. 그 때 아마 복음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아리스다고는 사도 바울이 붙잡혀 고난 당하는 지독한 현장마다 이 사람이 등장을 해요. 이 사람은 우리가 좀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9절을 한번 보세요.
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지라.
에베소에서 지금 난리가 났어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돌팔매질하고 난리가 났을 때 그 때 누가 같이 붙들리죠? 아리스다고입니다. 아리스다고가 이 혹독한 협박과 곤욕을 같이 치러요. 그 다음에 어디로 가냐 하면 사도행전 27장으로 가보세요. 몇 군데만 확인시켜 드릴께요. 27장 2절을 한번 볼까요? 이게 지금 로마서로 호송되기 위해서 배를 타는 겁니다. 바울이.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데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이 배가 가다가 뭐를 만나죠? 그 유명한 유라굴라 폭풍을 만나요. 죽을 뻔하죠. 이 아리스다고는 특이하게도 지금도 바울의 감옥 생활을 함께 하고 있지만, 유라굴라 광풍을 같이 만나죠. 에베소에서 둘이 다 죽을 뻔하죠. 이렇게 바울이 지독한 고난을 겪는 현장에 이 사람은 늘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지 않았다면 그 외로운 싸움을 사도 바울은 함께 하지 못했을 겁니다. 딱히 무슨 큰 격려의 말이 없어도 옆에 있어서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소중한 바울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던 거에요. 그런 것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걸 하시지만 누구를 통해서 완성되고 이루어 가도록 하십니까? 사람을 통해서, 우리 삼일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건물을 남기는 교회가 아니라, 어떤 결과물에 집중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고 우리 예수님이 제일 사랑하시는 많은 영혼들, 많은 리더들을 만들고 키우고, 사람을 남기는 우리 삼일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서 여러분들이 또 달려가는 한 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내 주변에 무심히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내가 고마워 하지 못했던, 그 수고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런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한번 기도합시다. 또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나를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었던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또 오늘 금요일이죠? 뜨거운 밤이 될 수 있도록, 세상이 말하는 불금이 아니라 영적인 불타는 기도의 밤이 될 수 있도록. 또 떠날 250여명의 간사들, 오늘 MT가 있습니다. 저도 같이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들에게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 주여 한번 부른 다음에 소리 내어 기도합니다.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