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2)
동행
창5:21-24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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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에녹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좀 나누겠습니다. 지난 주는 4장에 가인의 후예에 대해서 라멕에 초점을 맞춰 말씀을좀 나눴죠. 아다와 씰라. 두 아내를 둔 라멕의 도시건설, 성을 쌓는 역사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오늘은 5장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먼저는 5장 전체 속에 에녹의 위치를 좀 보겠고좁게는 에녹의 인생 자체를 좀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5장전체를 대강 이렇게 쓱 훑어 봐도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어떤 단어입니까? 5장에서 보면. 제 얼굴에 본문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좀 보십시다. 죽었더라라는 단어입니다. 몇 군데만 좀 볼까요? 4절부터 읽겠습니다.
4 아담은 셋을 나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담의 일대기를 그려놓고 있죠. 또7절을 보시면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10절에도 보니까 죽었더라. 14절에도 보니까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7절 그는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20절 구백육십이세를 살고 죽었더라
여기까지만 합시다. 일정한 패턴이 있죠? 살고 죽어요. 결국은 다 죽습니다.이것이 일류의 족보요, 일류의 흔들 수 없는 역사의 일관성이에요. 그런데 이 5장의 죽음의 족보 그리고 죽음의 역사 속에 유일하게죽음을 비껴간 인물이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에녹입니다. 21절부터 한번 볼까요? 이렇게 돼있죠.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라고 돼있어요. 살았더라. 그리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절이죠? 에녹이 하나님과 뭐했다고 돼있어요? 동행하더니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학자들 간에는 죽음을 보지 않은 게 아니고 죽었는데 에녹도 별 수 있는가, 여느 일류처럼 죽었는데 워낙 신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냥 수사적 표현으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 라고 묘사를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 그의 생물학적인 죽음을 수사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이 결론은 좀 나중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참고하는 가운데 나올 겁니다.후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에녹에 대해서 이 특이한 인생을 살다 간 에녹에 대해서 좀 조명을하겠습니다. 에녹의 인생을 추적하려니까 답답한 게 뭐냐 하면 별 기록이 없어요. 성경에 그렇게 많은 자료가 없을뿐더러 단 두세 줄 밖에는 에녹에 대해서 기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봐도 딱히 에녹의 인생을 추적이라는 표현을 빌려 가면서 할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성경이 이 에녹의 인생을 아담의 7대손으로써 일곱 번째 배치했을때는 보통 7대손이 보통 중요한 인물이 배치하는 법이거든요. 이유가있을 건데 우리가 차근차근 한절 서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누구를 낳았습니까?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에녹이 이 땅에 총 머문 일생의 기간은 몇 년입니까? 삼백육십오년입니다. 그 다음 절에 설명을 하고 있죠?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외우기 좋죠? 1년이 몇 일입니까? 365일이에요. 마치 하루를 1년씩환산한 것처럼 삼백육십오 년을 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편안하게생각을 해서 상식적으로 365년을 이 땅에 머물렀다면 이 땅에 하나님과 동행한 시간도 365년이어야 맞는데 성경의 기자가 일부러 구분해서 300년 동안 동행하더니. 구분을 해놓고 있어요. 이상하죠?머문 시간이 365년이라면 자연스럽다면 동행한 시간도 365년이어야맞습니다. 그런데 동행한 기간은 몇 년이었다고요? 300년. 그렇게 구분을 해놔요. 자 우리 복잡한 암산이 아니더라도 그러면에녹의 인생에 몇 세쯤 중대한 변화가 왔어요? 65세. 그래서이제 65세에 에녹의 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올 만한 어떤 가정사가 있었는가? 개인사가 있었는가? 네티즌들을 통해 다 조사를 시켜 봐도 별 일이없었어요. 장기하씨가 부른 노래처럼 별 일없이 살았어요. 집에누가 암이 걸린 것도 아니고 부도가 난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그냥 정말 별 일없이 살았어요. 그런데65세에 성경을 슬쩍 놓치고 지나갈 뻔 했는데 보니까 아들이 하나 태어나죠? 그 아들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 잘 알죠. 누굽니까? 므두셀라. 므두셀라는 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죠? 가장 장수한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몇 살을 삽니까? 969세를 살아요. 이 사람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인물인지몰라도 어쨌든 성경에 기록된 인류 중에는 가장 장수한 인물이에요. 글 아들이 태어납니다. 자 지금부터 이 에녹과 므두셀라의 출생에 얽힌 감춰진 이야기를 좀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에녹이라는 말은 하노크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세 가지 정도 의미를 담고 있어요. 첫째 가르치다. 전파하다, 교수하다. 뭐 다 비슷한 이야기겠죠? 가르치다, 전파하다, 교수하다 또는 증언하다.그러면 적어도 에녹이 이 땅에 셋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 왔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에녹이라는 이름을 주셨을 때 그 인생에부여 된 사명이 있었어요. 그는 마땅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그 여호와의 이름을 증언하고 가르치고 전파하는자로써 살아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65세 까지는 어떻게살았어요? 그냥 별 일없이 살았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살아가는것처럼 그냥 살았어요. 먹고 자고 시집 가고 장가가고. 그게나쁜 게 아니잖아요. 남한테 해코지 하는 일 없이, 피해주는 일 없이 통장 잔고 늘려가는 재미에 평수 늘려 가는 재미에 그냥 남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른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정에 하나님이 아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아들 이름이 심상치 않아요. 므두셀라. 이 므두셀라라는 말은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므흐트. 플러스 셀라흐. 므흐트 셀라입니다. 이 말은 사전의 힘을 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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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부여해서 재해석을 하자면 이런 뜻입니다.이 사람이 죽으면 곧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에요. 자, 나른한 일상을 살아가던 에녹에게는 이것만큼 청천벽력 같은 인생의전환점을 맞이하는 사건은 없을 거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확하게 에녹이 이 이후로부터 몇 년을 하나님과동행했다고 돼있죠? 300년. 300년 동안의 하나님과 동행의시간은 필연적으로 므두셀라의 출생과 연결을 시킬 수 밖에 없어요. 성경을 볼까요? 5장 21절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했다고 돼있어요. 에녹의 인생이갑자기 뒤집어지고 뭔가 홀린 듯 바뀔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아들의 출생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 이름이뭐냐 하면 이 자녀가 죽으면 곧 심판이 임한다. 그래서 뭐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동행. 자, 그러면 동행의히브리적 의미가 뭡니까? 우리가 보통 동행 하면 같이 걷는다 정도로 이해를 합니다. 예,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그런데 이 히브리 말의 동행이란 뜻은 같이 걷는다 라는 개념도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앞세워서 그를 떠밀고 간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동행의 주도권, 주어는 누구에게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있어요.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 앞에 세워서 그를 떠밀고 가는 겁니다.몰고 가는 겁니다. 마치 목자가 양을 몰듯이. 그러니까동행의 주어나 주도권도 사실은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있지 않아요. 오늘 이 에녹과 같이 일방적으로하나님이 찾아 오시는 사건으로부터 동행은 시작이 됩니다. 믿습니까? 그게동행의 의미에요. 이 때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몰리게 됩니다. 저는 아직도 이렇게 뿌얘요. 뭔가 동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다는얘길까?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결국 신약 기자의힘을 빌려서 종합적으로 성경 전체에 에녹의 그림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서를 한번 띄워 주세요. 유다가 기록한 내용입니다.
14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언하여 이르되 에녹이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해서, 후대의사람들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을 유다가 인용한 겁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누가 전한 메시지인가 하면 에녹 시대에 에녹이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경고한하나님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시대 사람들을 15절에어떻게 함축적으로 정의했어요?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경건하지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그 사람들에대해서 에녹이 무슨 역할을 했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메가폰 역할을 했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나팔 역할을 했다는 거에요 .이렇게 살아서는 큰 일 납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메가폰을 들고 떠들었다는 것이아니라 에녹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내용을 통해서 그것을 메시지화 하고 드러냈다는 얘기에요. 여러분이 이야기를 또 훗날 히브리 기자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띄워 주세요.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이제 밝혀 졌네요. 에녹은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죽음을보지 않고 어떻게 했어요? 옮겨집니다. 아버지의 품으로,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이게 무슨 내용입니까? 동행의 내용이에요. 오늘 식으로 얘기하면 선교적 제자의 삶이 뭔가? 띠 두르고 거리에나가서 예수 믿으세요. 이것도 제자로서의 삶의 한 토막인 것은 분명한데 일터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뭐냐에 대해서 마치 표지판역할을 하는 삶을 살아냈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리고 6절은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듯이 그가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땅의 결실과 땅의 열매에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살 때, 이 때가 노아가 이제 태어날 시기입니다. 그 시기의 사람들을 예수님이어떻게 정의하셨죠? 시집 가고, 장가 가고 먹고 마셨다 그랬어요. 그 말을 곡해해서는 안됩니다. 시집 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는 것이정죄하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만 인생의 목적을 두고 사는 삶의 행위를 지적한 겁니다. 사람들이 거기에만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가 있는 양 살더라 그 말이에요. 그게예수님의 고발이었어요. 이 시대 사람들이 그랬어요. 그런데에녹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듯이 그가 계신 것과 두 번째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할지니라. 에녹의 모든 궁극적인 가치는 어디에 초점이 있었습니까? 위에계신 하나님께. 그래서 골로새서 기자가 뭐라 그러죠? 위의것을 생각하라. 우리가 주일 날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한번 또 다시 우리의 내면과 정신을 흔들어놓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뭐냐 하면 한 주간 동안은 이 땅에 매몰되어 살 수밖에 없어요. 모든 시선을, 모든 고개를 땅에 박고 땅의 것을 킁킁거리며 살아가다가 주일 날 하나님 앞에 경배의 자리를 통해서 주일 날다시 한번 우리의 중심이 그 가운데서도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사는가? 그것이 에녹이 지양했던 삶의 방향성이었고경향이고 가치였습니다. 그 얘기를 하는 거에요. 여기서 우리는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네요. 첫째는, 첫째는 에녹은므두셀라라는 이 자녀가 죽으면 곧 심판이 임한다 라는 이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자기 인생을 전체 덮어 버리는 경고음을 통해서 대오각성하고그의 인생의 패턴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디에 초점이 있었습니까?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세상 사람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늘 처음처럼,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늘 처음 처럼이 아니에요. 늘 마지막 날처럼. 이 예배가내 인생의 마지막 예배처럼. 그 사람과의 만남이 내 인생의 마지막 만남처럼. 아직도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주를 알지 못하는 그 영혼들을 향해서 마지막 만남처럼. 그래서 건강한 종말관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몇 날 몇 시에 예수님 오신다 이런 관점이 아니에요. 성경은 그런 관점으로 종말을 소개한 적이 없어요. 건강한 종말관은늘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그것이 에녹이 하나님 앞에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 이름 속에 너무 너무도 엄청난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주신 거에요. 이 아들이 죽으면 심판이 임할 것이다. 사람이 내일을 누가 알아요?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다가 무슨 일을 만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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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요? 에이, 예배 드리러 갔더니 저 목사가 재수 없는 소리만 하네. 아니요, 재수가 없다니요, 세상 사람들이 겪고 당하는 모든 슬픔, 분노, 불행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안 당합니까? 그것을 맞이하는 태도가 달라야 될 뿐이지 똑같이 겪고 똑같이 당합니다. 오히려더 심하게 오해를 받고 모욕을 당하죠. 선지자들처럼. 예수님처럼. 그래서 에녹은 65세 되던 해부터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중요한 비밀이었고 두 번째 이유가 뭐냐하면 그를 그렇게 하나님 앞으로 걷도록 내몰았던 중요한 동기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에요. 약속의 말씀. 그래서 경건치 않은 세상을 향해서 그는 하나님의 나팔수가 되어서, 하나님의메가폰이 되어서 시대를 깨우고 시대를 흔들었어요. 여러분 이렇게 살면 안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곧 심판이 임합니다. 오늘 우리는 에녹처럼 살고 있습니까? 아니 에녹이 되어 살고 있습니까? 성경은 에녹처럼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에녹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에녹이. 그렇게 살려 하니얼마나 많은 삶의 부담과 조롱이 있었겠습니까? 노아 시대에 노아가 산 꼭대기에다가 곧 임할 홍수 심판을대비하여 뚝딱거리며 온 가족이 망치질에 톱질에 못질에 방주를 만들 때 얼마나 조롱했어요? 돌았구만.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 일획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임합니다. 이제그 이야기를 우리가 므두셀라의 경우를 통해서 한번 만나봅시다. 5장 25절을볼까요? 25절을 보면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누구를 낳습니까? 자, 앞을 보세요. 여러분 여기 라멕이 등장을 해요. 지난 주 우리 라멕 공부했죠? 지난 주 라멕은 누구의 후손이었습니까? 가인의 후손이었어요. 그 라멕은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고 문화를타락시켰던 멸망의 자손의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5장의 라멕은 다른 후손이에요. 이름이 똑같아요. 누구입니까? 셋, 아벨을대신하여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 셋의 후손으로써 라멕입니다. 아담의칠 대손이죠. 그런데 이 라멕이 아, 육 대손인가요? 육 대손인가요? 잘 모르겠네요. 에녹이칠 대손이에요. 라멕이 칠 대손이 아니고. 그런데 이 므두셀라가낳은 아들이 라멕입니다. 몇 살에 낳았어요? 백팔십칠 세에. 그리고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노아를 낳습니다. 성경을 한번 볼까요? 27절
27 그는 구백육십 구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죠.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노아입니다.
29 이름을 누구라 합니까? 노아라 합니다. 자 이제 앞을 보십시다. 우리 살짝 계산을 좀 해볼 필요가 있는데므두셀라가 백팔십칠 세에 누굴 낳았다고요? 라멕을 낳아요. 그럼이 라멕이 백팔십이 세에 낳은 아들이 누굽니까? 노아입니다 그러면 노아가 태어날 때 할아버지 나이가몇 이에요? 더하면 되겠죠? 삼백육십구 세. 어려워요? 계산 단순하잖아요. 다시. 이해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므두셀라는 187세에 누굴 낳았다고요? 노아가 아니고 라멕. 라멕을 낳았어요. 라멕은 182세에 누굴 낳아요? 노아를낳아요. 그러면 므두셀라의 손자가 노아입니다. 그러면 노아가태어나던 해 할아버지는 몇 살이에요? 369세가 되죠. 그런데므두셀라는 969세에 죽어요. 그러면 노아가 태어난 몇 년후에 죽었다는 얘깁니까? 600년 후에 죽어요. 969세까지살았으니까 그러면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므두셀라가 죽어요. 그러면그 해에 뭐가 나야 해요? 홍수가 나아 해요. 우리 창세기7장 11절을 자막으로 보십시다.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 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네,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가 므두셀라가죽게 됩니다. 정확하게. 그런데 그 해 실제로 뭐가 터집니까? 하늘의 창이 열리면서 홍수가 터집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 땅을용서하지 않고 지면에 패역한 세상을 정화시키기로, 심판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어요. 방주 안에 그 방주를 준비했던 노아만, 가족만 달랑 남은 자로 살려놓습니다. 그래서 노아란 이름이 안식케 하다. 안위하다 그말이에요. 오늘 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 된 교회는 이 세상에 실질적인 노아의 방주 역할을 감당해야돼요. 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녹이 65세 되던 해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통해 주셨던 메시지가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습니까?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까? 일년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노아가 육백세 되던 해 므두셀라가 969세입니다. 그 해에 이 땅에 심판이 임해요. 그와 같이 앞으로의 세상도 주님이약속하신 것처럼 반듯이 심판이 옵니다. 그런데 아까 유다서를 본 바와 같이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어떤사람들이에요? 영적으로 마비가 된 사람들이에요. 지금 이나라 정부만 해도 그래요. 이것이 정치적인 경제적인 군사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싸움이고 영적인 문제에요. 최태민 그 사람은목사가 아닙니다. 사교집단의 교주에요. 불교, 기독교, 천도교라는 교리를 슬쩍 믹싱해가지고 자기가 영세교 라는교리를 하나 만든 거에요. 그리고 그 최태민의 사상과 신기를 그 딸이 물려 받은 겁니다. 얼마나 지금 기가 막힌 상황이 이 대한민국 한 복판에 지금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 기독교인들이정신을 차리고 깨달아야 해요. 이런 때일수록 이 혼탁한 나라를 위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남북이 말할 게 없어요. 지금 남북이. 그 시대 사람들이 영적으로 이렇게 혼미하고 어두웠습니다. 에녹의경고의 음성을 듣지 않았어요. 노아의 경고의 음성을 듣지 않았어요. 그런데여러분 그 므두셀라라는 인류 역사의 성경 기록상 가장 오래 산 인물의 그 나이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구백육십구 세. 가장 오래 산 인물이에요. 그 이유가 뭘까요? 뭐라고 보십니까? 하나님의 한 영혼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패역한 세상을 향한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에요. 거기 하나님의 자비가 감춰져 있다고요.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그의 나라와 그의 나타나실 것을 두고 명하노니 말씀을 전파하라는 바울의 삶의 기초를 잘 드러내야 됩니다. 지금이 세상에는 영을 분별하지 못해서 사슬에 매여있는 기관들, 국가들, 나라들이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30:01-33:09)
천만에 가까운 기독교인들을 보유했다는 이 대한민국 한복판에도 지금 이런 일들이버젓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지고 벌어지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어요.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내가 서있는자리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소명의 자리에서 우리는 에녹처럼 하나님의 나팔수가 되야 됩니다. 세상을깨우는 경고음이 되야 되고 표지판이 되야 됩니다. 우리는 한 세 가지로 오늘 말씀을 결론짓고 싶습니다. 첫째, 매일 뭐처럼요? 마지막날처럼. 매일 우리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나를움직이고 내 인생을 핸들링하는 것은 어떤 공동체의 이념이나 교회의 비전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해요. 심지어는 교회의 비전마저도 비전이라는이름으로 탐욕에 붙들려 있을 때가 많아요. 결국은 마지막 시대에 진정한 싸움의 끝은 말씀으로 어떻게분별이 되어 서있는가 그 싸움일 겁니다. 이렇게 국회 안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고 정,재계 안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나라는 무당 놀음에 신나게 놀아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참 누구를 질책하기 앞서서 오늘 우리가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가 우리 위치에서 교회가 교회의 위치에서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자들의 위치에서 구실을 제대로 했는가하는 참 자괴감과 반성과 회개가 안 나올 수가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그 날이 언제일는지 알 수 없으나 이제 가까운 것 같아요.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땅끝까지 어둠의 땅에사슬에 묶여 있는 그 영혼들을 구원해 내는 시대의 등대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다가 그 길 끝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놀라운 행복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 일어나십시다. 저 죽어가는내 형제에게 우리 찬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