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셀나무의 꿈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70317
성경구절
창 21:22-34
시리즈 순서
창세기(30)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30)
에셀 나무의 꿈
창21:22-34
22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너와 함께 계시도다
23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00:00-10:00)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에셀나무의 꿈. 다시 한번 해볼까요? 에셀 나무의 꿈. 비전이라 할까 하다가 비전은 좀 많이 왜곡되어서 비전이라는 말보다는 꿈이 낫겠다 싶어서 제목을 에셀 나무의꿈이라고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 이 스토리는 흔히 잘 안 다루어지는 본문이기도 하죠. 우리는 지난 주 창세기 12장의 애굽으로 내려갈 때 아브라함이 아내를누이라 속여서 위기에 빠뜨렸던 케이스와 또 이 아비멜렉, 그랄 땅에 들어갈 때 또 거의 비슷한 케이스인데왕을 속여서 또 한번 더 아내를 위험에 빠뜨렸던 두 케이스의 비슷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두 사건이 갖는 차이가 무엇인지를 공부했습니다. 물론 기억을 못하시겠지만. 다시 한번 복기를 하자면 이런 겁니다. 창세기 12장의 케이스는 초점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세상에 드러내는중요한 사인이었어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그 당시 최고의군주는 애굽 왕 바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구를 혼내셨죠? 바로를혼내셨어요. 그리고 이제 아비멜렉은 두 번째 케이스인데, 이두 번째 유사한 사건은 왜 다시 복사판처럼 등장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하나님께 초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자녀인 성도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포커스가 다르죠. 전자의 사건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에 대한 설명이라면 후자의 사건은 이 세상에 속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어떤 존재인가를 성경 기자가 사실은 설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굉장히 좀 적나라할 정도로인간의 약점과 추함과 넘어짐을 감추지 않죠. 자, 우리는오늘 다시 이 아브라함이 남의 땅에 들어와서 또 겪게 되는 좀 생소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죠 22절을보십시다. 22절.
22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너와 함께 계시도다
자,앞을 잠깐 보실까요? 22절은 느낌, 슬쩍 봐도어떤 느낌이 듭니까? 22절. 좋아 보여요? 별로인 것처럼 보여집니까? 좋아 보시죠? 이방 왕과 이방의 군대 장관이 아브라함에게 얘기하는 거에요. 그얘기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말은 사실은 이들이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아니고 이제 그 땅에 들어와 산지 어언 5년이 훨씬 지났어요. 시간이 좀 지났단 말이죠. 그런데 그 동안에 아브라함의 삶을 주목해보니까 누가 함께 하시더라는 것이 보여진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사람 참 이상한 사람이다. 마치 누가 기억이 되죠? 요셉. 요셉 같아요. 만사에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시는 걸 온 세상의권력이 목격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서론에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가를사실 이제 구체적으로 성경 기자가 설명하고 들어가는 거죠. 아브라함의 이런 악과 실수와 상관없이 이군대 장관과 아비멜렉의 눈에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보였다는 거죠? 이상하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 앞에 사실은 그럼 그렇지~ 이런 존재가아니라, 이상하다~ 그렇게 비춰져야 해요. 왜 저렇게 살까? 바보 같은데? 이상하다. 그렇게 살아야 해요. 아브라함이 그렇게 비춰지는 겁니다. 그 안에서. 그리고 이제 그 다음 절을 한번 보십시다. 23절에 보시면, 제가 읽겠습니다.
23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자,한번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볼게요. 지금 아비멜렉은 어쨌든 간에 이 땅의 주인이에요. 왕이에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아브라함은 이 땅에 흘러 들어간 객이죠. 나그네요, 말하자면 식객이죠. 그런데지금 이 그랄 왕 아비멜렉과 비골이 찾아와서 아브라함에게 하는 행태는 누가 갑입니까? 네, 아브라함이 갑이에요. 그런데 원리적으로는 누가 갑이에요? 아비멜렉과 비골이 당연히 갑이죠. 그런데 실질적인 내용은 지금 누가갑 행세를 하는 거죠? 아브라함. 그래서 이 본문은 적어도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야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갑처럼 살고 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고용되어 있고 매여있고 남의 월급 받고 있지만 뭐처럼 사는 거에요? 갑처럼 살라는 거에요. 실질적인 왕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논리를보여주는 겁니다. 정확하게 이 땅의 군주는 아비멜렉이에요. 그런데지금 이 아비멜렉이 누구에게 사정을 하고 있어요? 아브라함에게. 내가너에게 후대한 것처럼 너희도 우리 자자손손 잘 대해줘라 그 말이에요. 실질적으로. 그걸 어떻게 하고 지금? 맹세를 요구하고 있어요. 약속해줄 수 있겠니? 이거에요. 어쩌다가전세가, 입장이 뒤집어진 겁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 속에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실질적인 자리입니다. 그렇게 우리 자리 매김을 새롭게 해야 해요. 이때 아브라함이 불쑥 무슨 알지도 못하는 건수 하나를 끄집어 내요. 그건수가 뭔가 잘 보세요. 몇 절을 보시냐 하면 25절
24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뭐 하고 있죠? 책망하매 완전히 갑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봤더니 알지도 못하는 일을 꺼내는 거에요. 당신뭐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내가 뭐 그렇게 하겠소.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게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종들과 부하가 우리 종들, 우리 식구가 파놓은 우물을 자기네땅이라고 기득권을 주장하고 빼앗았겠죠. 이 일은 희한하게 이삭도 그대로 겪습니다. 블레셋들이 와서 전부 우물을 메워 버려요. 빼앗아 버려요. 이것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이에요. 아브라함도 그런 일들을 아마 이 땅에 거주하는 동안 겪었던 것 같아요. 빼앗기고당하고. 그런데 지금쯤 와서 입장이 바꿔진 거에요. 그러니까아브라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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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틈을 노려서 아비멜렉에 진상을 떨어놓습니다. 그때 중요한 반응 하나가 있어요. 아비멜렉의 반응을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성경을 보십시다. 26절 다같이 시작.
26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아비멜렉이 알았다 그랬어요? 몰랐다 그랬어요? 그런데 거짓말입니까? 진짜입니까?진짜입니다. 여기서는 거짓이냐 진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아비멜렉이 몰랐다는 것이 중요해요. 자, 그런데 또 질문을 할게요. 몰랐는데오늘 본문을 보니까 지금은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알게 되었죠? 그렇죠. 바로 그거에요. 누가 얘기해 줬죠?아브라함이 얘기해 주기 전까지는 이 진실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어요. 이게 원래 누구 것인지를 몰랐어요. 이 소유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되는 지를 몰랐어요. 자기 종들이 기득권만주장해서 강제로 뺏은 지도 몰랐어요. 이걸 우리는 보통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영적인 무지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뜯고 할퀴고 생채기를 내는 것은 몰라서 그래요. 그럼 누가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해해야 해요. 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저들이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게 세상의 생리에요. 그러니까미치죠. 거품 물죠. 우리는. 어떻게 이럴 수가. 항상 그럴 수가 있다니까요. 여러분 속지 마세요. 그게 원래 우리가 맞닥뜨린 그림이에요. 아비멜렉이 몰라요.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알게 되었다고요? 아브라함이 깨닫게 해주고 말해서 알게 되었어요. 말해서. 그럼 그 책임은 아브라함은 오늘날 누구입니까? 우리의 대표 아니에요. 성도의 그림 아닙니까? 성도는 이 세상 속에 그 역할을 맞은 거에요. 말해서 알려줘야 해요. 그가 받든 안 받든. 그러자 이제 두 사람의 대화가 더 깊게 이어갑니다. 성경을 잘 볼까요? 27절. 26절을 마저 보십시다.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이건 진실이었어요.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이 복음을 이 진실을, 진리를 여러분들이 말하지않으면 듣지 못해요. 알지 못해요. 우리 교회 5부 예배까지 드리는데 태신자 작정하라 그러고, someday 그런걸하냐, 항상 사회적 지표와 수치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어요. 우리는아직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니까요 듣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니까요. 이걸 누가 알려 줘야 해요? 우리가 알려 줘야 해요. 이게 진실입니다. 이게 성경의 팩트입니다. 받든 안 받든 그것은 상대방 몫입니다. 우리는 알려 주고 말해야 될 책임이 있어요. 믿습니까? 어떻게, 이제 내일 모레 태신자 작정하는데 결정 되셨나요? 얼마나 좋은 기회에요? 나 혼자 하려면 용기가 없었는데 방법도 잘몰랐는데 교회가 이렇게 긴 숨을 가지고 석 달에 걸쳐서 그런 기회를 함께 갖는다는 거 얼마나 좋은 찬스입니까? 그기회 유실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세상 속에 던져진 우리의 삶의 과제입니다. 자, 그러자 아브라함이 잘 보세요.27절 이렇게 됩니다.
27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뭘 세웠죠? 언약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 언약을 세우는 대가가 양과 소입니다. 이것은 여기 언약은베리트라고 되어 있어요. 이 언약은 사실상 몇 가지 의미가 있어요. 일방적인언약이고 반듯이 완성될 언약이고 신실한 언약을 얘기할 때 베리트란 단어를 써요. 자 여기에 멈추는 것이아니라 성경을 잘 보세요. 28절
28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자,그러니까 이 암양 새끼는 사실상 우물의 뭐를 확정하는 겁니까? 예, 우물의 소유권을 확정하는 겁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은 블레셋 땅의사람들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은 거기서 생성이 됐어요. 그런데 이 우물은 팔레스타인땅의 생명줄 같은 위치입니다. 이 우물은 나그네에게뿐만 아니라 이 중동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생명 줄입니다. 땅도 중요하지만 그 땅에 우물이 있냐 없냐는 결정적입니다. 그런데이 소유권을 누가 확보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확보하고 있어요 대가를 지불하고.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길 없는 세상에, 생명이 없던 땅에 어떻게 생명 줄과 길을 만드셨습니까? 자기 몸을십자가에 달리 우셔서 대가를 지불하시고 이 땅에 우리에게 생명 줄이 되어 주시고 생명의 우물이 되어 주신 겁니다.그것을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했던 원천의 고백이 그 얘기입니다. 너는 맨날 이 목 마른 물을 길러 오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 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 이 우물가에서 벌어진 사연, 바로 이 물은 예수님을 상징하기도합니다. 자, 그런데 이 우물의 약속이 여기서 머무는 게아니에요. 성경을 또 보십시다. 3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31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네,브엘세바. 원래 브엘이라는 말이 우물이죠. 세바, 샤바 이게 일곱이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그런데 일곱은 히브리인들에게는 맹세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foot note에 보면 이 브엘세바가 뭐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표현되어 있죠? 맹세의우물이라고도 번역이 가능하다고 foot note에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우물가의 맹세,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훗날 자기 생명을 걸고하신 맹세의 우물입니다. 자, 우물 가에서 언약이 이제 완전한언약이 이루어 졌어요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의 마지막 결론 같은 행동을 잘 보세요. 그것이 오늘 이 본문의절정인데 마지막 부분을 한번 볼까요? 32절.
32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의 행동은 간단히 요약하면 그우물 가에다가 무슨 나무를 심었어요? 에셀 나무를 심었어요. 그리고거기서
(20:01-30:00)
예배가 공식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왜 에셀 나무일까요? 여러분 이 에셀 나무는 그림 좀 하나를 보고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 띄워 주시겠어요? 예, 이게 브엘세바 마음에 있는 에셀 나무인데 어마어마하죠. 이스라엘에서자라는 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높고, 울창한 나무에요. 이 나무는 자 이제 그림을 거둬도 되겠습니다. 이 나무는 몇 가지로설명을 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토양이 거의 돌밭에다가 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거의 사막이에요.그런데 이 사막에서는 나무가 자라다가 못 자라요. 죽거나,말라집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남는 나무가 이 에셀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까 보신 것처럼 브엘세바는 저 예루살렘에서 저 남쪽이에요. 저도그 브엘세바를 가봤는데 왜 갔냐 하면 브엘세바에 브엘세바 히브리 대학이 있어요. 거기에 유명한 고고학과가있습니다. 그래서 거기 이제 제자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거기에 가보니까 진짜 사막 거의 대부분이 사막투성이인데 에셀 나무가 얼마나 높이 자랐는지 그런데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 나무는 땅 밑에 뿌리가한 몇 미터까지 내려갈 것 같습니까? 예, 쓸데 없는 질문이죠. 거의 100m 어마어마하죠. 그래서그 깊은 땅 밑에서부터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지표가 아무리 깊게 말라 들어가도 그 수분을 넉넉히 공급 받을 수 있다고 해요. 뿌리 깊은 나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 나무가 높이 자라고 옆으로울창하게 자라요. 그러면 상식적으로 뭐 하기 쉬울까요? 쉬기쉬운 곳이죠. 그래서 항상 유대인들은 나그네를 환대하는 의미에서 마을마다 에셀 나무를 싶어요. 그래서 에셀 나무를 심는 것은 어떤 넉넉함이 있는가 하면 우리 이 마을은 어떤 나그네든지 들어와서 이 그늘에서안식을 누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배려가 우리 마을에는, 우리 공동체에는 준비 되어 있다. 이러한 명제적 선언이 됩니다. 그게 에셀 나무에요. 그런데 아브라함의 이 행동은 단순히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서무엇이 시작이 됐죠? 예배가 시작이 됐어요. 그리고 훗날우리 사무엘상 22장을 한번 띄워 주세요.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여러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사울이에요. 그런데 그가 통치를 상징하는 그림이묘사될 때 어디에 지금 앉아있어요? 에셀 나무에 앉아있어요. 그리고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에 앉았고 이것은 통치의 시작을 얘기합니다. 왕국의 통치의 시작을 얘기하는거에요. 그리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그리고사무엘상 31장에 보면 이런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같이읽어 볼까요? 시작.
13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그래서 훗날 죽은 사울을 다윗이 시신을거두어서 어디에 장사합니까? 에셀 나무. 이것은 사실상 왕국의통치의 시작의 자리요, 마침의 자리를 얘기해요. 자, 그러면 아브라함이 나그네 입장에서 그 팔레스타인 땅에 흘러 들어가서 제일 먼저 확보한 게 뭐죠? 우물이에요. 그런데 우물을 확보하기 이전에 사실은 그는 나그네로들어갔지만 몇 년이 흘러 입장이 마치 갑을이 뒤집어지듯이 바뀌어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값을치르고 산 우물 곁에다가 에셀 나무를 심어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의 왕국이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에셀 나무를 심는 행동속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우리에게도 중요한 자산입니다.우리는 지금 마치 이 세상에 성도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아무 해답 없이 살아가는 듯 자기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세상 사람도 그렇게 비춰질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뚜벅 뚜벅 신앙인으로써 이 세상에 주님의 말씀 약속을 붙들고 순종하면서 한 걸음한 걸음 남은 안식을 향해 걸어갈 때, 거기에는 무엇이 심어지는 겁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확대됩니다. 여러분 그것이 언젠가는 울창한, 누구나 이 땅에 곤고한 자들이 쉼과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에셀 나무로 자라 날 것을 확신합니까?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와 그 비전을 심어 주신 거에요. 이렇게실수투성이와 허물투성이 인생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담아요. 하나님의 약속을. 에셀 나무의 꿈을 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시작하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훗날 그 에셀 나무 밑에서비록 실패한 왕이긴 했어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그 나무 밑에 앉았을때는 아직 왕궁도 없고 이스라엘 조직 아무것도 없을 때였어요. 이제 막 나라가 겨우 희미하게 왕국의모양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서 시작됐다는 거에요? 에셀 나무 밑에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백성들을 형제로 자매로만나면서 우리는 아무 말 서로 주고 받지 않아도 우리의 오고 오가는, 주고 받는 눈빛과 더운 입김 속에서뭘 보는 거죠? 피차간 에셀 나무의 꿈을 보는 거에요. 그것은혼자 이루어지는 꿈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로 하여금 함께 버성겨 그 꿈을 이루기를원하시는 거에요. 믿습니까? 오늘 이 밤에도 하나님은 나에게어떤 에셀 나무의 비전을 허락하셨을까? 그것은 반듯이 어디서부터 자라죠? 브엘세바, 생명 줄이 되는 그 우물 곁에서부터 시작이 된 하나님의꿈이었어요. 우리가 먼 역사의 언덕을 넘어 유추해 보자면 그 에셀 나무의 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그 보혈의 십자가의 언덕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겁니다. 철저하게 무너지고 실패했던 그 십자가의 흉측했던, 끔찍했던 사건이 2000년 후에 수많은 생명을 건져내고, 짓밟고 핍박했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이 땅에 일구어 놓을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어요? 요즘 이제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지금 이 땅에는 최고의 지도자가 부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식은 심상치 않아요. 대통령이 없는 나라에 미국의국방부 장관이 특별기를 타고 날라오고, 우리 나라 안보 담당이
(30:01-33:11)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사일을 쏴 올리고, 지금 세계의 모든 전략적 무기가 한반도를 중심으로다 몰려왔어요. 가장 최고의 정치 참여는 뭘 것 같습니까? 기도하는일이에요. 뭐 어떡하겠어요? 가장 최고의 정치 참여는 기도하는일입니다. 이번 주간에 유시민씨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참 기억에 남아요. 민주주의란 좋은 지도자를 뽑는 제도가 아니다. 지도자가 뽑혔을 때못된 짓 못하게 하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전권을 바꿀 수 있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굉장히공감이 갔습니다. 흘러 온 근 현대사를 보면 꼭 그래요. 우리가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기준도 이제는 좀 성경적 가치로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여러분들 가운데 건강하고 좀 비상한 좋은 그리스도인의 정치인들도 나오고, 이왕이면 대통령도 나오고 그리고헌법 재판관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는보기 드물게 만나는 것 같아요. 시간상. 그런데 걱정하지마십시오. 우리는 오늘도 가장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이 기도의 자리에 나온 겁니다. 여기서부터 에셀 나무를 심는 거에요. 믿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단순히 나라를 위한 문제뿐만 아니라 자기 개인의 인생도 그래요. 아직 직장도 그렇고, 결혼 문제도 그렇고 답답하겠죠. 그렇지만 오늘도 나무를 심자. 예수님의 보혈의 강에 마르지 않는모든 이들의 쉼터가 되고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나무를 심자 그것이 이 지상에 교회가 이 시대 앞에 감당해야 될 마지막 소명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멘, 우리 찬양 하나 할까요? 주음성 외에는. 우리 찬송가를 드리겠습니다. 43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