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후예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61023
성경구절
창 4:16-26
시리즈 순서
창세기(11)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11)
가인의후예
창4:16-26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라멕을 낳았더라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이름을 불렀더라
(00:00-10:00)
이제 오늘은 중단 되었던 창세기 강해를 다시 시작합니다. 4장을 좀 마치겠는데요. 오늘 제목이 뭡니까? 가인의 후예입니다.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이런 영화가 있었던가요? 얼핏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가인의 후예. 가인은 아벨을 죽인 대가를 하나님께로부터 명시 받죠? 단 조건은 네 생명은 보호해 주겠다. 너를 누군가 보복하면 칠 배를내가 갚겠다. 이렇게 약속을 받고 가인은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성경 기자가 표현을 이렇게 했어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16절잘 보세요.
16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라고 돼있어요. 과연 인간이 하나님을떠나서 걷는 그 인생의 행로가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될까? 사뭇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는 이 가인의행로 속에 우리 모습을 또한 소스라치게 발견하게도 됩니다.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여러분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날 때 어디로 쫓겨났죠? 에덴 동쪽으로쫓겨 나요. 그리고 이 동쪽의 놋 땅에 거주하게 되죠. 가인은. 놋 땅이라는 말은 풋 노트에 보면 의미를 이렇게 해석을 하기도합니다. 유리함. 놋 땅이라는 것 자체가 유리하다 방황하다. 그것은 일찍이 가인에게형벌로 하나님이 내리신 숙명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12절을우리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네, 네가 밭을 갈아도 네가 밭을 갈아도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겠다. 그러니까 농사짓는 일을 해서는 먹고 살수 없도록 하나님이벌을 명시하십니다. 자연히 그 결과는 네가 온 땅을 헤매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방황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에덴 동쪽으로 놋 땅에거주하게 됩니다. 자, 그런데 17절을 한번 보십시다. 가인의 아내가 처음 등장을 하는데 이름은 밝히지않네요.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자, 앞을 보십시다. 그가 놋 땅에 거주하면서 뭘 쌓았다고 돼있죠? 성을 쌓아요. 여러분 이 성을 쌓는다는 것은 뭘 암시할까요?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허락한 벌을 순종하여 받는 삶일까요? 그렇습니다. 정면으로도전하는 모습이에요. 성을 쌓는다는 것은. 여러분 이 성은결국 인류의 도시의 기원이 되고 문명의 시작이 됩니다. 성을 쌓아요.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첫 째는 하나님이 가인에게 형벌로 내린 그 벌조차 숙명으로 받지 않겠다는 얘기에요. 따라서 또한 여기에는 성은 쌓음으로써 여기에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의미가 뭐냐 하면 내 운명은 내가 책임지겠다는뜻이에요. 분명 하나님은 가인에게 살인의 대가로 형벌은 주셨지만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러나 그 하나님의 보호마저도 그는 거절하고 성을 쌓았어요. 그말은 아니 하나님 필요 없어. 내 운명은 내가 책임져. 그런데이 생각이 뭘 기점으로 생겼냐가 중요해요. 에녹을 낳음으로. 에녹은가인의 아들로써 그 가지고 있는 이름의 의미가 전파하다 교수하다 가르치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자에요. 머여기 미혼자도 아직 대부분 많을 텐데. 자식을 낳기 전에 부모의 심정과 자식을 낳은 후에 인생과 인간을해석하는 의미는 하늘 땅 보다도 큽니다. 참 신기해요. 나를닮은 DNA가 유전자가 이 땅에 산고를 통해 태어나는 그림을 볼 때 그 것을 상상 속에서만 갖고 있던인생과 실제 그 결과물을 만날 때 의미는 달라요.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본능이 종족 보존 본능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마음 속에 깊숙이 들어왔던 것은 뭐냐 하면 내가 되겠다. 그런데시편 기자는 뭐라 그랬어요?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 그랬어요. 자식도내 자식이 아니에요. 여호와의 기업이라 그랬어요. 가인은사실 어쩌면 그 하나님이 허락한 형벌을 잘 감당함으로써 그는 회복할 수 있는 분기점에 서있었습니다. 그경계선이라 그러죠. 경계선이란 말은 리멘이라는 단어인데 무슨 단어가 파생되냐 하며 limit 라는 단어가 파생돼요. 누구나 인간은 여기서 다음으로 건너가야되는 경계선에 항상 서있게 됩니다. 순간순간. 저도 그런경우가 많고 여러분들도 그런 경우가 많을 거에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때 인간은 반듯이자기 성찰을 위해서 본질적으로 물어야 되는 질문이 있다는 거죠. 그 질문이 뭐냐 하면 이런 겁니다. 당신이 유일하게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당신이 유일하게 해야될 일은 무엇인가? 보통 그런 경계선에 설 때 인간은 답을 찾으러 돌아다녀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 질문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지금 네가 유일하게 할 것은 무엇인가? 그래야 그것이 성찰이 되고그 유일하게 해야 될 목표에서 인생이 비껴 서 있을 때, 그걸 하말티아 죄라고 얘기합니다. 죄란 뭐예요?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거죠. 가인은 사실 어쩌면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그 경계선에 서있었어요. 어쩌면이 경계선은 그에게 위기였지만 회복으로 가는 길목이 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그는 성을 쌓고 맙니다. 성을 쌓는다는 건 뭘까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 라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함께 이것은 너와 나의 삶이 아니라 너는 너고 나는 나에요. 단절을 얘기하는 거에요. 성은 철저한 단절을 얘기합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오늘 날과 같이 소통의 기술이 발달 된 시대는 없어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만큼 불통의 시대를 산 적도 없어요. 참역설이죠. 이렇게 소통의 기술이 발달 되어있는데, 지구촌이라면서요그런데 소통이 안돼요. 정부하고 백성하고도 소통이 안되고, 정부와청와대도 소통이 안되고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성은 그런 거에요.성을 쌓으면 너와 나 가 아니라 너는 너고, 나는 나에요.그러다 보니까 인간을 분석하게 되고 평가하게 되고 등수를 매기고 종속 개념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되요.비극이죠. 그런데 이 에녹 성이 사실은 인류의 문명의 기원이고 도시의 기원이에요. 그럼 보세요. 인류의 문명이 이렇게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발달한결과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었나? 아니라는 거죠. 편리하게는만들었어요. 그런데 편리한 게 행복은 아니잖아요. 참 편리해졌죠. 그런데 더 인간은 분주해지고 바빠졌어요. 옛날에는 부산 한번 가려면벌써 며칠 전부터 여장을 준비하고 아 해운대도 좀 보고
(10:01-20:00)
갈매기 소리도 좀 듣고 여유 있게 낭만을 그리면서 기차에 올랐어요. 그런데 요즘은 빨라져 가지고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또 와야 해요. 1박을할 수가 없어요. 지금보다 더 빠른 걸 또 만든대요. 그럼하루에 두 번도 왔다 갔다 해야 해요. 가능한 거리니까. 이제인천에서 비행기를 띄우면 뉴욕까지 네 시간에 주파하는 비행기가 곧 나옵니다 .그러면 미국도 하루에 왔다갔다 해야 해요. 어떡하자는 거에요? 인간이 고달파 지는거에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우리 나라백성들의 행복 지수가 저기 이름도 모를 어느 나라 백성들이 갖는 행복감보다 낮다는 거에요. 정말 곡성에서나오는 그 질문처럼 뭣이 중요한디? 그 질문이 저절로 나와요. 뭐가중요하냐. 우린 경계선에 서게 되면 반듯이 지금 네가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무엇이냐? 이 질문 앞에 반듯이 서야 되는데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면서 첫 번째로 성을 쌓고 삽니다. 스스로 고립과 단절을 가져오는 거죠. 너는 너고, 나는 나에요. 거기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죠. 성경을 잘 볼까요? 17절을 보세요.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이름으로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라멕을 낳았더라
지금부터 이 라멕이라는 가인의 6대손이아주 중요한, 가인의 후손으로써의 절정을 치게 됩니다. 과연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후예가 어떤 역사를 꽃 피워 내는가? 라멕을 한번 오늘 집중적으로 고민하게 될것입니다. 19절을 볼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여기에서 에덴 동산의 원초적인 가정의 질서가 깨집니다.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역설인지 아세요? 성경에서는 집과 가정과성을 동일한 단어를 써요. 베이트. 지키기 위해서 베이트를쌓았어요. 그런데 그 베이트의 가장 기초 단위인 베이트가 깨져요. 이게인간의 헛됨입니다. 그래서 시편 127편에는 여호와께서 집을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헛되도다 가 몇 번 등장합니까? 세번 등장합니다. 완전한 헛됨을 얘기합니다. 완전한 헛됨. 성을 쌓아서 공고히 하지고 벌인 일인데 가정이 무너지고 깨집니다. 첫번째 부인이름이 아다 입니다. 이 말은 히브리 말로 꾸미고 장식한다 그 말이에요. 굉장히 패셔너블한 자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가인의 후예의그 학습된 가문의 가치와 시각으로 그런 여자를 고르고 결혼했다는 얘깁니다. 소위 요즈음 이 시대가 요구하는그 있죠 왜? 무슨 라인, 무슨 라인 해가지고. 인간의 품성과 내면을 보지 못하고 장식이 요란한. 아다와 결혼을합니다. 그리고 씰라를 얻죠. 씰라는 그림자 라는 뜻입니다. 어두움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가 갖는 것처럼 당연히 이가정에는 그림자가 드리우고 어두움이 임합니다. 이렇게 해서 두 여인은 세 아들을 낳는데 세 아들만 낳았다는말은 아니겠고 세 아들이 소개가 됩니다. 더 낳을 수도 있었겠죠. 그아들들을 이제 보십시다. 라멕의 아들들이죠. 20절
20아다는 누굴 낳았습니까?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목축업자의조상이 됩니다. 그 아우 이름은 뭡니까? 유발입니다. 전부 발 자 돌림이에요. 유발. 그런데이 사람의 직업을 잘 보세요.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자 앞을 보실까요? 수금과 퉁소를 잡았다는것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음악인이었다는 얘기에요. 요즘식으로 얘기하면 음악인이 된 겁니다. 예능인이 된 겁니다. 확대를 하자면. 그러면 저는 예능인들도 알고 예능인들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그런데예능이라는 이 개념 자체는 사실 언제 의미가 더 풍성해 집니까? 먹고 등 따시고 배부를 때 이것이 의미가있는 거에요. 지금 총알이 속으로 빗발치고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앞에서 노래가 나와요? 악기를 연주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그렇지 못해요. 이 말은 성을 쌓고 지키기를 쌓기를 노력했기때문에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다는 얘깁니다. 이 시대가. 그리고이런 음악인들은 오늘 날의 발생한 직업의 직군이 아니에요. 저 갈대아 우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에 그 고고학 증거들을 보면 그때 이미 가수가 있었어요. 노래 잘 하는 자가 있었고 하프라던지 여러가지고대 악기들이 이런 새겨진 문형에 나타납니다. 이건 아주 오래 된 직업이에요. 유발이 그 직업을 갖고 있는 거에요. 이것은 이면에 이미 어느 정도먹고 살만한 부가 축적이 되었다는 얘기에요. 어쩌면 이것은 그것을 인생의 주된 목적으로 가치로 노력하고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귀결일 수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세 번째 아들 이름을 보십시다. 이제 22절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네, 그런데 이제 발 자가 들어가는아들이 하나 등장을 합니다. 두발가인. 이 사람은 쇠로 여러가지 기구를 만든대요. 이걸 우리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화를 시켰는데 히브리 원 뜻을 그대로 보면이 말은 날카로운 철로 날카로운 무기를 만든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이때 이미 무기를 생산하는 과정이생기고 직업이 생겼다는 얘기는 그만큼 전쟁과 싸움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이것도 어쩌면당연한 결론입니다. 성을 지키고 쌓아놓은 부를 지키려다 보니까 또 그것을 탐욕을 가지고 빼앗다 보니까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는 가인의 후예는 이런 패턴으로 점점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이 역사를 확대해 가는 거에요. 오늘 날에도 본질은 이거 아닙니까? 결국 뭐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인권이란 이름으로 명제는 내세우지만 그 뒤에는 반듯이 달라가 있고 석유가 있고 자원 싸움이 있잖아요. 똑 같은 겁니다. 이것이 가인의 후예가 걷고 있는 지금 인류의 모습이고또 우리의 모습이에요. 자, 그렇다면 오늘 이 후손을 이렇게꽃 피워 낸 라멕이 어떤 인물인가를 좀 더 세밀히 보십시다. 라멕은 어느 날 두 아내에게 노랠 하나지어 부릅니다. 23절을 보십시다.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말을 들으라 앞을 잠깐 보십시다. 이것이 노래의 형식으로
(20:01-30:00)
시의 형식을 띠어 여기 기록돼있기 때문에 이 의미가 별로 우리에게 와 닿지 않아요. 원문 그대로 느낌을 살려서 읽으면 이것은 굉장히 의기 양양해서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며 부르는 노래에요. 도대체 무슨 내용을 그렇게 거만스럽게 거들먹거리며 부르는가 그 뒤의 내용을 보니까 이러네요.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무슨 얘깁니까? 밖에 나가서 일을 하다가한 어린 소년이 실수로, 과실이죠. 실수로 자기에게 상처를입혔던 것 같아요. 뭐 돌이 튀어서 어딜 다쳤다든지, 그런데자기는 상처를 입었는데 그 분노 조절이 안돼서 그 소년을 어떻게 한 겁니까? 죽인 겁니다. 분노 조절이 안돼서 죽인 거에요. 문제는 죽인 것도 문제인데 더큰 문제는 이걸 자랑 삼아 지금 노래하고 있다고요.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더러운 것을자랑하는 거에요. 더러운 영광을 자랑하는 거에요. 저 예비군훈련 가보면, 남자는 개구리 복 입혀놓잖아요. 가관이에요. 뭐 학교 다닐 때 몇 명 잡은 거. 몇 대 일로 붙은 거. 술 먹고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가 그거를 자랑 삼아 얘기를 해요. 저기몇 분이 고개를 숙이는데. 자랑 삼아 얘기를 해요. 어릴때는 한 때 치기라고 봐도 여러분 철들만한 나이가 되어 그것을 자랑 삼는다면 그것은 심각한 거죠. 그런데라멕은 자기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사람을 죽인 것을 자랑합니다. 누구든지 나 못 건드려. 건드리기만 해봐. 이렇게 될 거야,그걸 아내들에게 자랑을 해요. 소년은 실수로 상해를 입혔는데 자기는 그 분노를 조절하지못해서 자랑을 해요. 여러분 여기 뭐가 빠진 사회입니까? 자비. 자비라는 말은 영어로 compassion 이라고 하죠. 두 가지 단어가 조합된 단어인 걸 아실 겁니다. Com 무엇 무엇과함께 with란 단어죠. passion 열정이라는 단어도되지만 원래 뜻은 괴롭다 고통스럽다 그 뜻입니다. 고통스러운 이웃과 함께 하는 게 자비에요. 그 자비가 사라졌어요. 이것이 성을 쌓고 사는 사람들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너와 나는 없어요. 여러분, 그런데 여기 아주 절정을 찍는 문장 하나가 우리 마음을놀라게 합니다. 24절을 같이 한번 읽읍시다. 시작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 이리로다 하였더라
네, 아마도 자기의 선조 가인에게 보호책으로하나님이 말씀하셨던 일곱 배의 징벌에 대해서 듣고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구든지 가인에게 보복하는자는 일곱 배의 벌을 받을 것이다. 이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뒤에 가관인 것이 라멕을 위하여 벌이 칠십칠 배 이리로다. 무슨뜻입니까? 가인을 손 대는 자는 일곱 배 벌을 받지만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나를 보복하거나 징벌을하려고 달려드는 자에게는 칠십칠 배, 또 다른 번역서에는 칠십 배의 일곱 번. 사백구십을 얘기합니다. 어떤 번역 성경에는 어쨌든 그렇게 응징할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누가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하나님이하셨습니까? 자기가 한 얘깁니까? 자기가 한 얘기에요. 그러면 이 성의 주인은 하나님입니까? 라멕입니까? 라멕이에요. 하나님이 아니에요. 자기가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성을 공고히 하고 거기가 영원한 것을 보장해 주고 모든 것을 지켜 줄 것처럼 속고 살아요. 이렇게 인류는 파멸로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겁니다. 아, 소망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를 이렇게 끝내실 건가요? 다행스럽게도 성경은 왜 복음이라고 말합니까? 그 다음절 때문입니다. 여러분 25절에 보시면 이렇게 돼있어요.
25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아담이 다시 나오죠.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자, 앞을 잠깐 보십시다. 가인에 의해 살해 된 아벨이 갖는 이름의 의미는 허무하다 그 뜻이에요. 이게인간의 원래 결말이고 모습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벨을 대신해서 아담에게 아들을 하나 주셨는데그 아들 이름이 셋 입니다. 셋. 다른 씨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5장은 그 셋의 후손이 등장을 하는데 4장 끝에 보니까 그 셋의 후손에 대해 성경 기자가 이렇게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마지막 절 시작.
26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이름을 불렀더라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다른 씨에게서 난 셋의 후손들이 놀랍게도 무너졌던 예배와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부흥을 일으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러분, 세상에 드러난 역사를 보면 가인의 후손이 확실해요. 이렇게 처참할것 같고 끝날 것 같고 답이 없고 모순투성이고 허무해요. 세상을 보면.정부 들어설 때마다 보랏빛 꿈을 얘기하지만 끝날 무렵에는 항상 어느 정부든지 이 지경이에요. 세상을봐도 그렇고 교회를 봐도 더더욱 그래요.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인가? 아니에요. 그 가운데서도 이 땅에 유일한 소망을 하나님이 교회 속에 남겨 놓으신 겁니다.셋의 후손을 통해서 감추어 두신 겁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라멕이 두 명 등장하는 거 아세요?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이 등장을 해요. 그런데 이 셋의 후손 속에라멕이 등장을 하는데 그 라멕이 누굴 낳습니까? 노아를 낳아요. 5장28절 자 보십시다. 이건 다른 족보입니다. 28절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누구라고 합니까? 노아. 온 땅이 홍수로 심판 받아야 마땅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 라멕의 아들 노아를 통해서 그루터기를 남기세요. 노아의 가족을 보존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유유하게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그 끈질긴 사랑은 한번도 중단되거나 포기된 적이 없다는 얘기에요. 믿습니까? 지난 추석 때 아이들하고 이제 낮에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서집에 가서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이놈들이 아빠 오랜만에 영화 좀 봐요. 니들끼리 가요. 아니 같이 가요. 그래서 요 가까운 데 가서 이제 저녁에 밀정이라는영화를 표를 끊어 들어가 앉았어요 저는 바로 자겠더라고요. 아빠 자더라도 뭐라 그러지 마라 하고 앉았는데어디까지 기억이 나냐 하면 앞에 감독 이름까지만 기억이 나요. 그 다음에는 정말 혼수상태로 잤어요. 의자도 푹신하다 보니까 깊숙이 파묻혀 가지고 정말 잘 잤어요. 그렇게잘 잘 수가 없어요. 그리고 끝날 무렵에 딱 눈을 떴는데 마지막 장면이 딱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30:01-33:02)
길다랗고 좁다란 길에 가로수가 양 옆에 주욱 서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감옥에서 풀려 난 송강호씨가 일본 순사죠. 그 정체는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가슴 한 켠에 조국 독립에 대한 아린 마음이 있어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이중적인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송강호씨가주욱 가로수가 늘어선 길을 걸어가면서 저쪽에서 의혈단 학생, 소년 하나가 이렇게 마주 걸어옵니다. 스쳐 지나갈 듯 하면서 질문을 하죠. 단장님은 잘 계신가? 의혈단 단장을 얘기하는 거에요. 예. 단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단장이 한 이야기를송강호씨에게 들려주는 겁니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이 그렇게전합니다. 그 얘기를 유심히 눈을 감고 듣던 송강호씨가 이제 스쳐 막 지나가면서 그 소년에게 그 소년은아마도 조국 독립의 푸른 비전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을 거에요. 마지막 남긴 말이 뭔지 아십니까? 꼭 다시 보세. 꼭다시 보세. 그 당시 군자금도 떨어지고 독립 투사들은 여기저기서 체포가 되고 감옥에서 죽어가고 독립은영원한 요원한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상실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꼭 다시 보세. 우리를 까내어 보면 저를 포함해서 여기 앉아있거나 서 있을 사람 아무도 없어요. 우리 속의 내용을 보면 찌질이에 진상에 뭐 형편없죠. 나를 보면그래요. 그러나 우리 지난 주 설교처럼 십자가 언덕을 넘어 주께서 완성하실 그 베드로를 볼 때 우리는오늘도 눈물 겨운 사랑에 묶여서 또 일어나 이 길을 가는 겁니다. 성을 쌓는 것이 피난처가 아니에요. 예수만이 여러분들의 피난처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일어나십시다. 나의 피난처 예수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