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기도하시다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1013
성경구절
요 17:1-8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39)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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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 17장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래된 영화인데, 막 개봉한 영화를얘기하면 스포한다 그럴까 봐. 오래 된 영화 중에 버킷리스트라는 영화 잘 아시죠.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 이라는 흑인 배우인데, 아주 연기파죠. 두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을 합니다.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극적으로반대죠. 잭 니콜슨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괴팍한 노인으로등장을 하고 모건 프리먼은 역시 자수성가 했지만 성실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생을 보낸 분이에요. 두사람 다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한 병실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지러진삶의 과정을 회복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인데 이 두 분이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서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내용이에요.내용 보다는 제목에 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이 어휘를 들여다 보면 아주 끔찍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버킷이라는말이 옛날 우리 일본식 영어 표기로 바께스 그랬죠. 양동이란 뜻입니다.버킷, 양동이 위에다가 죄수들을 올려 놓고 교수형을 하죠.목에 밧줄을 걸고 킥 더 버킷. 양동이를 차요. 그러면집행이 이뤄지는 거에요. 그런 시대적 중세 시대의 배경을 담고 있는 그 끔찍한 어의가 세월이 지나면서의미도 달라지고 순화되어서 요즘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리스트 정도로 이해를 낭만스럽게 갖고 있습니다. 좋아요. 예수님도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남은 시간 속에 첫번째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가 어쩌면 오늘 요한복음 17장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보는 거죠. 여러분 이 요한복음 17장은 우리들에게 어떤 장으로 인식되어 있는가하면 굉장히 독특한 장입니다. 특별히 중보기도의 장으로 유명하죠. 또는신학적 표현으로는 ‘대제사장의 기도’ 정도로 이해를 갖고있습니다. 둘 다 맞는 표현이긴 해요. 그럼 이 17장은 몇 토막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가? 크게 세 토막으로 구성이되어 있어요. 첫째 오늘 8절까지인데 예수님이 먼저 자신을위해서 기도하세요. 오늘 다룰 내용이 이 부분입니다. 그리고두 번째 토막은 예수님이 당시 제자들, 그 제자들이 이 땅에 남겨져야 하는데 그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토막이 그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될 저 역사의 산등성이를 넘어 구현될 새로운 공동체오늘 날 우리라고도 할 수 있죠. 교회라 명명하는 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 대목에서 예수님이 기도를 남긴 장면이에요. 보통 다른성경에는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면, 또 기도를 설명하시는 부분, 또는기도를 가르치는 내용,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라든지 이런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드물게, 아주 드물게 예수님이 직접 기도하시고 그리고 그 기도한 내용이 유난히 상세하게 기록된 내용이 바로 오늘 요한복음17장이에요. 그래서 신앙 생활을 좀 했다 하는 분들은 요한복음17장을 아주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름요한복음에서 어느 장이 제일 좋냐? 하면 대부분 17장이라고말할 정도로 요한복음 17장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성도들의 신앙에도 굉장히 밀접 되어있는 장입니다. 그러면 그 장을 좀 깊숙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을 한번보십시다. 1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하사
자 앞을 잠깐 보십시다. 보통중보기도 하면 우리 인식 속에 어떤 이해가 편견으로 남아있는가 하면 누군가의 필요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걸 보통 중보기도라고 이해를합니다. 맞아요. 그런데 뜻밖에도 이 중보기도의 장이라고잘 알려진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중보 기도를 하시는데 첫 번째 타깃이 너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자신이에요. 제일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어떻게생각하세요? 이건 평소 우리가 보던 예수님의 모습과 상이하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언제나 희생하시고, 언제나 양보하시고 언제나 자신은 뒷자리에 있고그런데 이상하게 중보기도의 첫 번째 대상이 자신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편견을 깨야 해요. 보통 중보기도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 맞는 얘기인데 순서적으로 먼저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해요?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해요. 예수님이 왜 이러셨을까? 제가 두 주 동안 이 본문을 묵상하는 가운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더라고요.아 그게 맞다. 상식 선에서 한번 생각을 해보자고요. 지금자신의 심정조차도 너덜너덜한대 가진 것도 없고 가난한데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의 유익을 주려면 우선내 안에 내용이 부요 해야 뭘 나눠줄 거 아니에요. 나도 지금 박박 긁어봐야 나올 게 없는데, 그리고 심정은 너덜너덜한대 그 상태로 누군가에게 유익을 주거나 누구를 도울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단 말이에요. 진짜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누굴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해요? 예, 자신을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해요. 동의하십니까? 여러분? 반듯이 자신을 먼저 기도하세요. 우리는 나를 위해 먼저 기도한다그러면 굉장히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오해를 갖고 있어요. 아니에요. 그게맞는 순서에요. 여러분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자기도 엉망인데 미국의 트럼프까지 기도하고 그러지 말란 말이에요.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지금 잘 지내요. 가서 보니까 시끄럽게 하며 잘 지내요. 미국은 딴 게 걱정이 아니고트럼프 때문에 걱정이더라고요. 그 얘긴 하지 말고, 그 얘기나오면 조국 얘기 나오게 되고 복잡해요. 좌파냐 우파냐 그러고. 저는신파에요. 신파. 좌도 우도 아니고. 자, 그런데 이제 성경을 좀 보십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첫 번째 마디가 뭐죠? 때가이르렀사오니. 앞을 보세요. 우리 말 성경을 유심히 생각해보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했을 때 이것이 시제가 어느 시제 같습니까? 미래 시제 같습니까? 현재 시제 같습니까? 완료형 같습니까? 셋 중의 어느 것 같아요? 뉘앙스상. 느낀 대로 말하면 되니까 정답을 있을 수 없어요. 우리 말 성경에 보면 뭐 같아요? 때가 이르렀사오니. 미래? 미래는 아닌 것 같아요. 현재? 현재도 애매해요. 이르렀사오니. 완료형입니다. 문법에 보면 정확하게 완료형으로 썼어요. 자, 그러면 또 물어봅시다. 성경에서 우리가 지금 요한복음을 수십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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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가운데 요한복음에 때,헬라 말에는 호라 라고 되어있어요. 때 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 시간은 무슨 사건과 연결이 반듯이 되어 있다 그랬죠? 그렇죠.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제일 유명한 사건,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 어머니, 그랬어요? 여자여.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여기도 때가 나오죠.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모든 호라 라고쓰여진 때 라는 말은 반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시간과 죽음을 향하는 시간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면때가 이르렀사오니, 무슨 형으로 썼다고요? 완료형으로 썼다고요. 그럼 예수님은 지금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아직 안 죽었단 말이에요. 안 죽었는데 왜 완료형으로 썼죠? 예수님이 죽었사오니 이런 말이 된단 말이에요. 이 말은 이렇게 생각하면쉬워요. 쉬운 걸 지가 어렵게 얘기해 놓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러네요. 그런데 우리가 그냥 밋밋하게 읽는 것 하고 이 함의를 들춰내서 이해하는 것하고 좀틀립니다. 그래야만 되는 이유가 있어요. 왜 완료형으로 썼는가하면 이 완료형이란 의미 속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은, 즉 시제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필요한 거에요? 하나님께 필요한 거에요? 우리에게 필요한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시제나 시간이란 개념이 전혀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그냥 존재하는 거에요. 맞죠 여러분? 하나님은완료형으로 말씀하셨으면 이 속에는 심지어 뭐까지 포함된 내용인가 하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다시 오심의 완성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은 지금 때가 이르렀사오니 완성되었단 말이에요. 이제그 일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뭔가를 지금 기도하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모든 사역의 본질적인 시작은 뭐로 시작하죠? 기도입니다. 이기도가 왜 중요한지 결말에 가서 다시 말씀을 드릴 거에요. 자, 그런데그 기도의 내용을 또 조금 더 들어가보십시다.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또 앞을 보세요. 여기 아들은 누굴 가르칩니까? 예수님 자신을 얘기하는 거에요? 이 말은 자신을 어떻게 해달라는 거에요? 영화롭게 해달라는 거에요. 간단히 얘기해서. 이것도 좀 이상하다. 평소의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느낌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언제나자신은 항상 뒤에 있어요. 그리고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그런데여기서는 예수님이 자기를 좀 영화롭게 하래요. 영화나 영광은 같은 개념이에요. 여기 영화를 찾아보니까 독사 라고되어있어요. 헬라 말에. 뱀이 아니에요. 영화롭게 하다 는 독사조 라고 되어있어요. 이게 무려 스물 세 번 기록 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에 영광, 영화는 중심 주제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여기서 자기를 영화롭게 해달래요. 즉 자기를 좀 영광스럽게 해달래요. 이것도 굉장히 예수님 평소의모습과는 낯선 모습이에요. 과연 이 말이 갖는 의미가 뭘까? 그래서우리가 신학작업이라는 게 필요합니다. 신학 작업이라 하면 보통 어렵게만 생각하는데 절대 어렵지 않아요. 지금부터 설명을 꼼꼼히 들어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독사 또는 독사조라는 영화 또는 영화롭게 하다 라는 말이 등장할 때는 짝꿍 단어가 반듯이 따라 다녀요.그 짝꿍 단어가 뭐냐 하면 호라, 때라는 단어입니다. 1절에도 때 라는 단어가 영화라는 단어와 함께나왔어요. 그런데 다시 상기하자면 이 때는 무슨 때를 얘기한다고요? 십자가의죽음의 때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면 삼단 논법에 의해서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영화롭게 해달라는 말은 무슨 사건을 염두에 둔 발언일까요? 십자가의그 죽음의 잔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소위 우리식 개념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인간적인 영광을 자기에게 달라는 그런 세속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말은 즉 그 십자가의 죽음의 잔을 내가 잘 마실 수 있도록 아버지여나를 좀 도와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십자가의 죽음의 잔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에게 갈등이었어요. 십자가를 지기 전 마지막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처절하게 기도합니다.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이 이뤄지기 원하나이다. 마지막날 밤까지 주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싸움 하시고 씨름 하셨어요. 그냥 덜커덩 마신 게 아니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고뇌하셨던 그 고뇌의 본질이 뭘까요? 십자가에서못 박히면 아플까 봐? 그런 육신적인 고통이 아니에요. 예수님에게가장 처절한 몸부림은 육신적인 고통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단절이었어요.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는 순간이었어요. 아버지는 이 아들을 놓아야 하셨어요. 그래야 뭐가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속의 사역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 아들은뭐 때문에 오셨어요? 그 일을 위해서 육신의 몸을 입혀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요. 그게 성육신 사건이에요. 그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라. 우리 가운데 거했다는 말은 육신으로 텐트를 쳤다, 장막을 쳤다 그 말이에요. 사랑하는 우리 삼일의 성도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이 나를 영화롭게 해달라는 말은 뭘 잘 감당하도록 기도하신 거죠?그 십자가의 죽음의 쓴 잔을 내가 잘 마실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게 예수님에게는뭐였어요? 영광이었어요. 영화였어요. 그니까 예수님의 영광과 영화의 본질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박수 받고 면류관 쓰는 게 영광인데 예수님의 영광은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성취하는 게 예수님에게 영광이었어요. 자, 세 번째 토막을 볼까요? 1절끝에 보니까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앞을 보실까요? 내가 영화롭게 되야만, 내가 그 죽음의 잔을 잘 마셔야만 이게 누구에게 영화롭게 된다는 겁니까? 내아버지께 영화롭게 된다는 거에요. 그러면 왜 이게 아버지께 영화롭게 됩니까? 자식이 아니 아들이 독생자가 죽는 문제인데. 그 아들 사랑 안 했나요? 아니에요. 이 영화 속에는 무엇이 감춰져 있는가 하면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사랑한 우리를 향한 사랑의 기초가 그 속에 담아져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들의 영화나 아버지의 영화는본질이 같은데 이 공통분모가, 최대 공약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향한사랑이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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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대속의 제물로 보내실 거에요. 그냥 소풍 보내듯 보낸 건가요? 아버지의 가슴을 찢는 심정으로 아들을보냈는데 그 아들도 아버지가 보냈으니까 그걸 순종한 게 아니라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니까 순종했는데 아들도 기꺼이 스스로 십자가에 자기 몸을 내어놓으셨어요. 그 속에는 무슨 사랑에 기초한 거죠? 우리를향한 사랑이 기초된 거에요. 그러니까 아, 아들의 영화 속에아버지의 영화가 같이 본질이 담아져 있는데 그 공통 분모는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구나 그것이 가장 적극적으로 꽃피워진 현장이 어딥니까? 어디에요? 십자가 십자가에요. 갈보리언덕에 피 흘려 세워진 십자가에요. 거기에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났고 하늘 아버지의 피 눈물 나는 영광이함께 입맞춤을 한 겁니다. 그 밑바닥에는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어요.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오셨다고요. 우리 요한복음 4장을 한번 볼까요? 띄워 주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은 유명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눈 현장에서 제자들과 지금 대화하는장면입니다. 누가 선생님에게 먹을 것을 갖다 드렸냐? 하니까제자들이 우문을 하는 겁니다. 현답을 하시는 거죠. 예수께서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여기 양식의 개념은 뭐죠? 양식의정의는 객관적으로 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게 양식이에요. 뭐냐 하면 우리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양식에따라서 우리는 힘을 쓰고 힘을 받고 살게 되어있어요. 그게 양식이 되기 때문에. 예를 들면 이렇게도 표현을 하죠. 어떤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골프하러 가자 하면 배가 부르대요. 그럼 그 사람에게 골프는 뭐에요? 양식이에요. 양식. 어떤 청년은 돈을 벌어가지고 미국에 있는 청년인데 실화에요. 원 없이 돈을 벌어가지고 침대 밑에다가 다 깔고 한번 자본 적이 있대요. 하루종일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더래요.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양식은 dollar였어요. Dollar. 양식의 정의는 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게 양식이에요. 예수님에게양식은 뭐에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예수님에게는 살아가는 힘이에요.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35절 다같이 시작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건 생명 구원을 얘기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이 끝 부분에 보니까 너희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뭐가 희어지게 되었다는 겁니까? 밭이. 그러면 고개가 다 벼들이 숙여져서 색이 희다는 얘길까요? 제가 이것을막연히 좀 알고 있었어요. 저의 모든 지식은 늘 그래요. 얕고넓고 막연해요. 이번에 교회에서 보내주셔서 이스라엘에 가서 현장을 다니면서 장교수님 하고 이야기 하는가운데 이 본문을 얘기하시더라고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 나라도 그랬잖아요. 염색을 하고 옷에 물을 들여서 입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귀족이나왕족 외에는 대게 다 원단이 허연 옷을 입고 다녔다고요. 대부분이. 고대사람들은. 그러면 추수 때가 되면 농부들이 그 허연 옷을 입고 그 밭 사이사이로 들어가서 허리를 폈다숙였다 하면 낫질을 하겠죠. 그럼 멀찍이서 보면 밭 색이 어떻게 보였겠어요? 흰색으로 보였다 그 말이에요. 사람들이 입은 옷 색깔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알았다고요. 밭이 허연 거 보니까 추수 때구나, 그 얘기에요.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그 얘기에요. 그러니까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녀들을 되찾기 위해서, 사탄의 손아귀에 들어간 자녀들을찾아오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십자가에 대속의 잔을 마시는 영화를 받겠다 그 말이에요. 왜? 그 일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이유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이루어 드리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기때문에. 제가 이번에 사막에 오랜 시간을 차로 달렸습니다. 사막에. 사방에 아무 것도 없어요. 물도 없고 그냥 사막이에요. 얼마나 태양은 또 뜨겁습니까? 2주 후에 우리 성도들에게 전할 이본문을 가지고 묵상을 하는데 이런 질문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우리가 만나기만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런 수식어를 쓴단 말이에요. 인사말처럼,겸손의 한 수식어처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영광을 돌린다는 게 뭐에요? 뭘 영광을 돌린다는 거에요? 스페셜한것을 잘 준비해서 선물 드리듯 드리는 게 영광을 돌리는 걸까요? 두 가지에요. 결국은. 첫째는 그분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해서 그 말씀의 권위 아래내가 그분의 자녀와 피조물답게 서있는 위치에서 이해가 닿지 않아도 설득이 오지 않아도 해석이 되지 않아도 그냥 뚝심을 가지고 서있는 거에요. 너 거기 서있어, 예 알겠습니다.이해가 안 되는데요? 기다려 봐. 서있는 거에요. 그냥. 계속 이해는 안 돼요. 그런데이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인정하는 태도이기 때문에 서있는 거에요. 이게 뭐죠? 그 분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태도 중 하나입니다. 그게뭐에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소금의 느낌을 드러내고 빛의 색을 드러내서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세상 만민이 알도록 하는 전율을 드러내는 거에요. 야, 진짜쟤 보면 하나님 살아계셔. 이렇게 살라는 거에요. 물론 쉬운일은 아니에요. 이게 첫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또 하나의 태도에요. 그 과정이 만민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통로라 그 말이죠. 두번째는 뭘 것 같아요? 이 17장 자체가 이미 답을 주고있어요. 예수님 여기서 지금 뭐하고 계시죠? 기도하고 계세요. 너무 뻔한 얘기 같은데 기도하는 거에요. 기도하는 게 왜 하나님께영광을 돌리는 거에요? 우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사는복잡하게 얘기해도 생각은 단순하게 해봅시다. 나의 모든 사소하고 소소하고 절실한 모든 필요들을 마땅하고당연하다면 당연히 누구에게 구해야 할까요? 만약에 우리 애들이, 우리자식들이 아버지가 시퍼렇게 살아있고 능력이 되는데 등록금이나 지들 쓸 것 같다가 자꾸 옆집 아저씨한테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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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을 하고 꿔 달라 하고 와이프도 자꾸 옆 집에 가서 그 아저씨한테핸드백 좀 사달라고 하면 그게 미친 거지. 저희 집이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예를 드는 거에요. 정상이라면 필요가 생길 때 아버지, 제가 뭐 써야 되는데, 이게 참 뻔뻔스러운 것 같은데 이것은 곧누구를 누구로 대접하는 거죠?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접하는 거에요. 아버지를아버지로 대접하는 것만큼 가장 그분에게 권위와 능력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태도는 없어요. 기도는 가장적극적으로 그분을 그분으로 대접하는 태도에요. 맞습니까? 맞습니다. 요즘 덥기를 합니까? 춥기를 합니까? 얼마나 새벽에 일어나기 좋은 계절이에요? 또 결론이 새벽기도가 아니라기도하자는 거에요. 기도. 우리가 두 달여간 선교하느라 바빴다면또 겨울 선교를 위해서, 우리 일생은 선교를 위해서 사는 거에요. 두달 선교 끝나면 또 넉 달은 준비하는 기간이에요. 예수님도 그 십자가를 지어야 되는 대속의 사역을 뭐로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아버지께 기도로 준비하고 있어요. 아버지여나를 영화롭게 해주십시오.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이 죽음의 잔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 좀 도와 주세요. 아니, 예수님도 기도했는데 우리가 뭐라고 기도를 안 해요? 뭐 어쩔라고요? 우리가 뭐라고 기도를 안하고 살아요? 그런데 소소하고 사소한 것을 그게 맞냐 틀리냐는 나중 문제에요. 틀릴수도 있어요. 그건 여러분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께서 알아서 걸러낼 일이고 우리는 무조건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아버지께 나아가서 눈물을 찍던 콧물을 찍던 모든 필요를 그분께 구하는 것이, 응답이되고 안되고 그 문제가 아니에요. 맞냐 틀리냐 그 문제가 아니에요. 뭐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태도라 그 말이에요. 그게영광을 돌리는 거에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분의 말씀의권위를 인정해서 그분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내는 현실. 때로는 그 현실이 매우 반복되고 지리하고 답답할수 있어요. 버려진 짐 같은 경우일 수도 있어요. 따라서합니다. 습작 없이 걸작 없다. 버려진 시간 같죠? 아니에요. 그게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그 시간이 녹아지고 쌓아져서하나님의 타이밍이 오면 걸작의 의도가 드러나는 거에요. 그걸 잘 감당토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시 때때로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고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잃어버린 기도의 자리를회복하는 멋진 가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일어나십시다. 주님큰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