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이 날은 안식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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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요한복음 5장 말씀을 좀 나누겠습니다. 명절이라고 돼있어요.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무슨 명절인지는 표시가 안돼있어요. 그래서 유월절인지 초막절인지 맥추절인지 알 수가 없어요. 안 밝힌이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명절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명절중에서 이 날인 무슨 날이라고 돼있죠? 안식일입니다. 여러분명절도 대단하지만 명절에 끼여있는 안식일은 엄청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명절이 되면 다 와요. 예루살렘으로 모여서 어마어마한 인파가 운집이 됩니다. 이 조그마한도시에 이 당시만 해도 전 세계 디아스포라들이 벌써 몇 달 전부터 와서 여기에 여러 날을 명절을 지내죠. 많은사건도 일어나고 그렇습니다. 장소는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은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성전이 있는 수도요 자존심의 전부입니다. 그런데2절에 보니까 그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 영어 번역에 보면 sheep gate라고 돼있죠? 제사에 쓸 양을 가지고 출입하는 문이다그 말이에요 문의 용도를 붙여서 양문 이렇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연못이 하나 있어요. 히브리 말로 보니까 베데스다 이렇게 돼있네요. 베데스다라는 말은많이 들어보시겠지만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서 두 단어가 합해진 합성어입니다. 베이트, 히브리 말로 집이죠. 헤세드, 자비, 능력, 성실, 사랑, 긍휼. 성경의 모든 좋은 개념은 이 단어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녹아내고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헤세드라는 단어에요. 그 두 단어가 합해진 표현이 베이트, 헤세드. 붙여 읽으면 베데스다. 그러니 이 이름 자체만으로도 껌뻑 죽죠. 얼마나 좋은 이름입니까? 자, 그런데거기에 세 종류의 환자들이 모여들어 지금 소개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니까 이렇게 돼있어요.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 잠깐 앞을 보실까요?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 이 세 종류의 인생의 공통점이 뭘까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들이여기에 지금 모여 있어요. 명절 날, 안식일에. 왜 모였나? 이유를 이렇게 소개하는데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신앙이 왜곡되면신화가 되요. 이런 전설을 만들어서 언제 일진 모르지만 물이 움직일 때 누군가는 먼저 들어가면 그 병이깨끗이 낫는다는 전설에 매여서 아마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천은 간헐천쯤 되었던 것 같아요. 가끔움직였겠지요. 들어갔다가 뭐 피부병이 낫거나 뭐 나을 수도 있었겠죠.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절대 불행한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마지막 하나라도 붙들려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찾는거에요. 이번에 이제 우리 삼일 교회가 이제 다음 주 부활절인데 부활절 헌금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드리면 그 예물을 모아서 저 강북 쪽에 성서 대학이란 대학이 있어요. 작년 말 즈음에 거기 교수님 한분이 찾아 오셨어요. 우린 교단 배경이 없습니다. 학교도가난합니다. 학생 수도 적습니다. 그런데 그 엘리베이터 시설이이 엘리베이터가 용도가 장애인들이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엘리베이터에요. 저도 몇 번 타봤는데 가다서다 그래요. 아주 위험해요. 그것을 이번에 꼭 좀 교체하고싶은데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장로님과 우리 목사님 한 분이 가셔서 현장을 봤어요. 정말 위험해요. 이번에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을 그런 몸이 불편한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새로 교체하는데 사용하려고해요. 그런데 비싸더라고요. 진짜 비싸요.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조금 더 비용이 많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거기에전액 쓰려고 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 지금 보시면 아주슬픈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 전설을 붙들고 마지막 인생의 끝에 희망이라고는 그거밖에 이제없는데… 모여 든 거에요. 성경을 좀 볼까요? 이제 한 사람에게 조명이 됩니다.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자, 앞을 잠깐 보십시다. 이름은 몰라요. 그런데 이름만큼 38년이라는 숫자가 중요했겠죠.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이 병의 연수를 밝히고 있어요. 우리 같으면이름을 밝히는 게 순서 아니겠어요? 그런데 이름은 몰라요. 그런데이 사람이 몇 년 동안 병을 앓았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38년.38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역사에 아주 중요한 숫자가 됩니다. 신명기 2장 14절을 좀 보세요. 같이한번 읽읍시다. 시작.
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네, 여기 보시면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몇 년 동안이라? 38년이에요.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몇 년 방황했습니까? 40년입니다. 맞죠. 여러분대답이 맞아요. 그런데 왜 여기 38년이라는 숫자가 등장을하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방황은 두 기로 나뉘어집니다. 처음에 홍해를 건넜겠죠? 제일 먼저 도착한 데가 시내산이에요. 여기에서 율법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가나안을 향해 출발할 때까지가 정확하게 2년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받은 후 가나안을 향하여 들어갈 때까지가 몇 년입니까? 자연히38년이에요. 자, 그러면이 38이라는 숫자는 무엇과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받기 전의 시간이 아니라 율법을 받은후의 시간이 몇 년이에요? 38년입니다. 맞죠 여러분? 자 그러면 율법이라는 것은 왜 줬어요? 거기에는 십계명도 주셨고여러 세칙이 있어요. 왜 주셨어요? 사람을 사랑하고 이웃을사랑하고 약한 자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커플로써,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격자로서 어떻게꾸며지고 성숙되고 돌보며 사랑하며 만들어져야 되는가를 훈련시키기 위한 지침들이에요. 율법이라는 게. 그런데 그 주신 율법을 잘못 곡해해서 공연한 종교적 과잉과 과열만 담아서 하나님이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과 이율법을 전혀 다르게 쓰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사랑하라주신 율법을 야, 우리가 작년에 이틀 금식했는데 올해는 하루 더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율법에 주지도않은 세부 규칙들을 소위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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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위에다가그걸 가져다 놔요. 어떻게? 그걸 지키면 율법을 지키는 거고그걸 안 지키면 나쁜 놈이 되어 버리는 거죠. 오히려 사랑하라고, 성숙하라고준 율법이 잘못된 해석과 덕지덕지 덧붙여지는 세부 규칙들을 통해서 율법의 본질이 훼손되고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된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안식일이에요. 지금 이 사건이 어느 날 벌어지고있죠? 안식일 날 벌어지고 있어요. 자, 성경을 또 볼까요? 6절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오래된 줄 아시고
자, 앞을 보십시다. 보신다는 말과 이 보신다는 말은 안다는 말과 동의어에요. 예수님이 두 가지를 보셨어요. 누운 것을 봤어요. 성경에 누웠다는 말은 죽어있다는 말이에요. 지금. 여러분 3일도 몸이 불편해서 누워있으면 죽을 판인데 지금 이 사람은몇 년 누워있었던 거에요? 38년. 죽은 거나 다름 없는삶이었죠? 누워있는 것을 보셨어요. 그런데 그 병이 이미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것을 보셨어요. 우리 안에 그런 거 없어요? 누워있는 상태. 그리고 우리의 인위적인 작용이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이미 그 병이 깊은. 그런 거 없어요? 자, 그 대상에게 예수님이 아주 어색한 질문을 하나 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제가 이 글을 묵상하다가여러분들의 시선에서 한번 이해를 해봤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아니이걸 뭘 질문이라고 하시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걸뭘 질문이라고 하시나? 그 환자의 상태를 뻔히 아시는 분이신데. 그럼환자의 믿음을 테스트하시는 건가? 더더욱 그건 아니에요. 왜? 이 사람이 나중에 고쳐지지만 이 사람의 믿음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나중에확인이 되겠지만. 자, 사실은 이 환자의 답변을 드러내고싶어서입니다. 답변을 한번 보십시다. 7절 다같이 시작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우린 여기서 아주시퍼런 현실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자리는 베데스다. 자비의 자리입니다. 긍휼의 자리입니다. 사랑이 베풀어져야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예수님의 질문앞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런데 환자는 뭐라고 대답을하냐 하면 이렇게 대답을 해요. 7절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사람이 없어. 이걸 영어 번역으로 보면 조금 더 뉘앙스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요. 나를 연못에 넣어 줄 그 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돼있습니다. I have a not a man. 그 한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도와줘요? 지금 세상에 이 현장에서도 무시무시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여기도 경쟁사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사회인데, 그렇지 않아요? 누가 넣어줘요? 아무도 이 사람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오직 한 분 외에는. 지금 그 자비의 주인이 여기 와 계시는데 환자가아직 이 분이 누군지 모르니까 그 푸념을 넋두리를 예수님께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말씀하십니다. 8절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여기까지는 별 탈없어요. 어느 성경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기적과 치유 기사구나 하고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정말 이 사건이 말하고 싶은 것이 그 다음 절부터입니다. 10절을보십시다. 이 날은 무슨날이죠? 안식일이죠. 자,잠깐 보십시다. 원래 인생의 문제는 에덴 동산에서 뭐가 깨진 겁니까? 안식일이 깨진 거에요. 쉼과 안식은 성경에서 구분되어 있어요. 여러분 안식이 쉼은 아니에요. 이제 이 차이를 여러분들이 아시려면오늘 저녁에 신명기 강해에 참석을 하세요. 오늘 저녁에 그 개념을 정확히 설명을 드릴 겁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안식이 깨진 게 문제에요. 그래서 3~40대뿐 아니라 5~60대 남자들이 그렇게 ‘나는 자연인이다’ 를 많이 본대요.그런데 그걸 보면 저도 많이 봐요. 그거. 정말그 한 켠에 아 좀 저러고 싶다 라는 로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과연 그게 능사일까? 보면 볼수록 좀 허무해요. 사실은.허탈하고. 다 처자식을 떠나서 심산 유곡 골짜기에서 홀로 공기도 좋고 몸에는 스트레스도없고 좋겠죠. 그런데 그건 안식이 아니에요. 인간의 문제는결국 완전한 그리고 온전한 안식에로의 긴 여정입니다. 인간은 안식이 깨져있는 거에요. 쉼도 없고 안식도 없어요. 어떤 사람은 계속 쉬는데 안식이 없죠. 그 사람이 제일 슬퍼요. 자, 그런데성경을 잘 보세요.
10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저는 여기 읽다가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어요. 아, 이래서 종교가 무섭구나. 이 사람은 그저 몇 일 누워있던 사람이 아니고 죽음과 같은 삶에서 38년을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누워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그 생명이 살아나고 회복되고 온전해진것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안식일 날, 그 날을 어긴 율법에 벗어난 행위에 대해서 무섭게 질책을 하고있어요. 이게 종교의 섬찟한 표정이에요. 그런데 더 끔찍한것은 이게 밖에 있을까요? 안에 있을까요? 안에 있다는 거죠. 끊임없이 율법주의자들은, 종교인들은 그게 맞았냐? 틀렸나? 옳은 거냐? 그른거냐에만 관심이 있어요. 거기에 생명이 회복이 되고 생기가 돌아오고 삶의 새로운 시작이 있는 그 기쁨과 감격은없어요. 그런데 원래 안식이라는 의미가 그거라고요. 생명이피어나고 꽃들이 피고 결실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그런데 거기에 대한 일절 관심이 없고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그 교조적인 율법만 지켰냐 안 지켰냐? 그래서 편을 가르고 편견을 통해서 단죄를 하고 이게 종교에요. 그러니까 종교는 무서운 거에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에요. 엄밀한 의미에서. 편의상 종교로 분류가 되지만 기독교는 예수 생명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거죠. 또 점입가경 식으로 16절을 좀 볼까요?
16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17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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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궁금해서 찾았을까요? 아니에요. 이 흐름을 보면 이거에요. 정확하게. 너에게 그런 지시를 해서 이 안식일 거룩한 율법을 깬자가 누구냐? 끝까지 이 생명의 회복과 온전함이 생기가 돌아 온 삶의 새 출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대답이 나옵니다. 이 환자를 통해서 13절.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못하니. 알았다? 몰랐다? 몰랐어요. 어, 이거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인데. 여러분 요한복음을 우리가 지금까지 주욱 흐름을 보면 첫 번째 표적이 물로시작된 모티브에요. 물의 결핍. 그래서 그 물로 포도주를만듦으로써 중단되었던 결핍의 현장이 회복이 되죠. 중요한 건 연회장의 사람들이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알지 못했어요. 알지 못했어요. 3장으로 넘어가서 한밤중에예수를 찾은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성 니고데모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대화 끝에 예수께서 판정을 하죠.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볼 자가 없다. 그런데 알았어요? 몰랐어요? 아이고 참 지금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어머니 모태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 영적인 무지. 인간의 영적인 무지를 여지없이 폭로시킵니다. 4장. 우물 가에서 물로 대화가 시작이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빈정대죠. 아이고 참, 그런 물 있으면 나 좀 마시게 주십시오. 드디어 자기를 계시하세요. 내가 그 물을 줄 수 있는 샘터이다. 예수님은 자기가 물이라고 얘기하시는게 아니에요. 내가 그 물을 주는 샘이라 그랬어요 샘. 근본적인얘길 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5장입니다. 또 모티브가 뭐예요? 물이에요. 이 물은 인간을 고칠 수도 없고 회복할 수도 없고 살게 할 수도 없어요. 오직샘터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사람을 고칩니다. 그리곤 이 사람을 14절에서성전에서 만나요 자, 볼까요?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네, 이 사람이 죄때문에 병이 생겼다는 말이 아니에요. 인간의 모든 근본적인 문제는 에덴 동산에서 안식이 깨짐으로써 모든고난과 슬픔과 살인과 미움과 질투와 모든 삶의 문제가 비틀려지기 시작한 거에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근본 문제는 죄의 문제에요. 그 얘길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주님은 이 주제를 안식일로 끌고 가시죠. 왜? 안식일이야말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선포하신 날이고 그것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안식일 어겼다고별 해괴한 해프닝이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론은 뭐냐 하면 자연스러운 결론이 하나 도출이 돼요. 이 환자가고침 받은 것은 이 사람의 믿음 때문입니까? 아니에요. 이사람의 회복은 이 사람의 어떤 믿음과도 아무 인과 관계가 없어요. 오직 누구의 자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에요. 최고의 지혜가 뭘까요? 그리스도의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자비입니다. 최고의 자비는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그 알량하고 누더기 같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누더기 같은 자존심이라니까자존심 상하세요? 아니에요. 신앙을 가장 방해하는 게 인간의자존심이에요.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서 신앙을 배워야 해요. 아이들이잘못했어요. 그럼 엄마가 야단치죠. 너 앉아. 왜 그랬어? 그럼 어린아이가 이제 울먹 울먹해요. 입을 삐쭉 삐쭉하면서 그러다가 얘가 아주 고도의 수단을 씁니다. 왕~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의 품에 달려 들어요. 엄마~ 그럼 엄마가 꼬옥 안아 주면서 태근아 다시는 그러지 마라 그리고 용서해 주시죠. 싹수가 파란 거에요. 이런 아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는 거에요. 가장 최고의 지혜는어떤 상황과 어떤 상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 앞에 자기를 맡길 수 있는 지혜입니다. 성경은 전부 그얘기에요. 믿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모든 누더기가 되어버린여기저기 상처투성이 뿐인 자존심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우리가 성찬에 참여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주님의 자비에 다시 한번 우리의 한 주를 맡기는 큰 지혜와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