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
왕권!
창 1:24-31
24 하나님이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그대로 되니라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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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세기 강해 세 번째 시간인데 좀 훌쩍 여섯째 날로 건너 뜁니다. 우선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은 창조의 순서와 질서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가를 간략하게 이해하기 쉽도록설명을 드리지요.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운행하시다는 문자적 의미는 알을 품다. 그 품어진 알이 부화의 기간이 끝나면 껍질을 깨고나와서 자라고 온전한 성숙한 생명이 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한 자녀들을 그렇게 양육하고 이끌어 가신다는 주님의 시각에서운행하시니라. 설명을 드렸어요. 오늘은 첫째 날부터 여섯째날까지 구조를 보면 일정한 원리가 있습니다. 우선 여섯 날을 절반으로 나누어서 삼일 삼 일씩 이해하면됩니다. 첫째 날서부터 셋째 날까지는 하나님께서 공간과 틀, 기초를만드신 날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넷째 날 서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 기초 위에 그 공간에하나님께서 채워 넣으실 피조물들을 내용을 창조하신 날이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날입니다. 그리고 이 날들은서로 어떻게 짝을 이루는가 간단합니다. 첫째 날은 넷째 날과 짝을 이룹니다. 둘째 날은 다섯째 날과 짝을 이룹니다. 그리고 셋째 날은 여섯째날과 짝을 이룹니다 .이렇게 앞의 3일은 공간, 기초, 틀을 창조하신 날이라면 뒤의 3일은 그 공간과 기초 위에 채워 넣으실 내용물들을 창조하신 날이다 정도로 이해를 하고 오늘의 초점은 육일 째되는 날의 창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24절을 한번 볼까요?
24 하나님이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러분, 여기에 일관 된 패턴 하나가 있죠. 다른 모든 창조물들은 종류대로창조하셨어요. 종류대로, 종류를 따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의 창조는 이 창조의 방법이 달라집니다. 그 이야기를 성경 기자가 26절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26 하나님이이르시되 우리의 뭐를 따라? 형상을 따라 무엇대로? 종류 대로가 아니라 그 모양대로 창조하셨다. 자, 이제 이 내용이 오늘 핵심 주제가 됩니다. 자, 우선 여기 복수를 썼어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이렇게 돼있어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말그대로 삼위 하나님 복수를 얘기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 세 분이 삼위 하나님으로써 이 다른 피조물의 창조의 역사에도 동역을 하셨지만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실때 이 삼위 하나님이 동역을 하셨어요. 자, 그런데 여기까지는우리가 이해를 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의 형상을 따라 그랬어요. 그리고 뒤에는 모양대로 이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형상은 뭐고모양은 뭘까? 어떤 학자들은 형상이나 모양이나 용어만 틀렸지 같은 개념이라 해석하는 분도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경에는 형상이라는 체렘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쓰고 또 모양이라는 데무트 라는 단어를 구분했어요. 그러면 성경 기자가 의도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단어를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른 단어를 사용했다면 여기엔 분명이유가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선 이 형상과 모양의 상관 관계. 각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먼저 설명을 드리고 여기에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적용을 해야 될 것인가 생각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형상이라는 것은 문자적 의미는 체렘. 이 단어는 무엇을 새기다 그 뜻이에요. 이 단어는 이렇게 긍정적인 측면에 쓰여지기도 했지만 열왕기 하 같은 데 보면 우상을 새기다 할 때 이 단어를씁니다. 그러니까 이 단어는 정확한 문자적 의미가 뭔가를 새기다 라는 뜻입니다. 이 형상에 체렘. 그러면 조심스럽기는 하나 예를 하나 들죠. 학교마다 가면 반신 동상도 있고 전신 동상도 한두 개씩은 만들어 놨어요. 여기신촌에 있는 연대만 가도 그 뒤 켠에 언더우드 동상이 서있습니다. 언더우드는 아시는 대로 연대를 실질적으로설립한 설립자 격이죠. 그런데 그 동상을 보면 우린 대번에 누구를 설명하고 싶은 것인가를 알 수 있어요. 그 동상은 누구를 설명하고 싶은 거죠? 첫째는 설립자를 기리고 나아가서그 설립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자는데 초점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그 동상만 보면 우리는 언더우드를 연상하거나유추하거나 생각할 수 가 있어요. 그런데 두 번째로 그 동상이 언더우드는 아니죠. 동상이 언더우드는 아니에요. 뒤집어서 그 동상이 언더우드가 될 수없는 이유가 뭘까요? 그 동상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그 동상에는 언더우드를 유추하거나 기억하거나 생각나게는 할 수 있어도 그 동상이 언더우드는 아니에요. 그이유는 정확히 하나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뒤집어얘기하면 우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뭐냐 하면 우리가 그런 동상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만들 수는 있는데 이건 다른 차원에서 우상이라는 것은 생명없는 것을 경배하는 걸 우상이라고 얘기합니다. 우상은 생명이 없어요.말 그대로 인간이 새기고 만든 겁니다. 그런데 그 형상물이 갖는 본질은 뭘까요? 그 사람을 기억케 하고 유추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데 동상이나 새기는 것에 본질이 있는 겁니다. 자, 이것을 적용을 한번 해보십시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바로 거기에 이유가 있어요. 우리를보면 믿지 않는 자들이나 다른 이들이 누구를 유추하고 생각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 이 우리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결코 간단한 얘기가 될 수 없어요. 과연 사람들이 내 삶을 보고 나를 보고 하나님을 유추하고 생각할 수 있는가?쉽지 않은 얘기거든요. 나아가서 또 뒤에 보니까 우리의 모양 데무트라는 말을 썼어요. 모양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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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은뭘까요? 모양이라는 말은 사실상 특이라는 형식의 개념보다는 닮다 그 말이에요. 이 말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히면 이런 뜻이 됩니다 .그 형상의특성을 나타낸다 그 뜻이에요. 집에 아이들 낳아서 키우고 양육하지 않습니까? 아들이던 딸이든 그 아들 속에 딸 속에 끔찍하게도 아비의 모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신기해요. 있어요. 제가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자랐는데 동인동이라는 동네가 있어요. 저희 아버님이 군인이셨어요. 직업 군인이셨어요. 워낙 친구들을 좋아하셔서 늘 집에 술친구들이물어 물어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네비게이션도 없었고 물어 물어 오는 게 일반적인 집 찾는 방법이죠. 골목에 아버님 친구들이 딱 나타나면 거의 군복들을 입고 계십니다. 그러면거의가 골목에서 놀던 저를 보고 어이 저기 송소령 아들이네 그래요. 어릴 적 제 모습 속에 고대로 아버지의그 몇 가지 특성이 담아져 잇기 때문입니다. 그리곤 집을 찾아와서 놀고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아버지 모습을 많이 닮긴 했는데 키는 안 닮았어요. 저희아버님은 병적 기록부에 키가 굉장히 커요. 77,78인가 해요. 옛날어른으로써 굉장히 큰 거죠. 29년 생이셨으니까. 저희 어머님이33년 생이시니까 네 살 차이입니다. 황금의 나이차죠. 네 살이면. 그래서 저는 키는 외탁을 했어요. 어머님 쪽을 닮았어요. 나쁜 건 다 외탁을 하고 이상해요. 어쨌든 여기에서 모양이라는 말은 사실 어떤 틀이나 형식의 개념 보다는 DNA닮은 꼴. 특성 이런 얘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우리의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라는 말은 둘 다 공통점이 하나 있죠. 이것은 기어코 구분해서 사용은 했지만사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를 통해서 누가 유추돼야 합니까? 그리스도. 하나님. 그런데과연 그런 삶의 자리가 내 형장 속에 삶의 현장 속에 지금 가능한 상태인가를 돌아보면 우리는 좀 뜨끔거리는 부분이 많죠. 이 얘기를 조금 더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우리 골로새서 1장을 띄워 주세요. 그는 그리스도를 얘기하는 거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여기 이 말을 이렇게 곡해해서는 안돼요. 그러면 예수님도 우리보다 먼저 창조되셨나? 그 얘기가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영원 전부터 존재해 계신 분이다 란 말이지.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뭐라고요?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는 누구를 볼 수있는 거죠? 신약 성경에서 이 얘기를 사도바울이 요한복음 14장을띄워주세요. 다같이 시작
9 예수께서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러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빌립이라는 사람은 깨닫는 게 둔한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빌립과 대화 중인데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거에요. 예수님이 답답해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누굴 봤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버지란 얘기가 아니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이란 얘기가 아니잖아요. 내 속에 누가 반추되어있단 말일까요? 내 속에 성부 하나님의 모습이 있지 않느냐?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똑 같은 원리입니다. 또 하나 볼까요? 요한 복음 12장 다같이 시작
45 나를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를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한 군데만더 볼까요? 로마서 8장 아주 중요한 구절 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여기 미리 알다 라는 말은 택함 받은 우리 성도들을 얘기합니다.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누구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그 아들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맏아들은 누가 되신 겁니까? 그리스도. 그럼 맏아들의 개념은뭐에요? 제가 맏아들이에요. 제가 만약 우리 집안의 혼자라면외아들입니다. 독자입니다. 저 하나입니다. 이렇게 표현을 하죠. 저는 장남입니다. 맏아들입니다 이렇게 표현을 할 때는 형제들이 있단 얘기에요. 원래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세요. 그런데 여기 지금 뭐라 그랬어요? 본받게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무슨 형제 중에서? 많은 형제 중에서. 많은 형제는 우리 성도들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부활의 무슨 열매로? 첫열매. 첫 열매라는 것은 대표 열매로. 첫 열매라는 개념은다음 열매가 있다? 없다? 있다. 다음 열매가 잇다. 우리를 얘기하는 거에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 목적을 로마서 8장 29절에서 이렇게 설명을 하죠.
29 하나님이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누구의 형상을 본받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야 해요.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의 형상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그러면 이 논리 구조가 어떻게 되는거에요? 우리는 누구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어요? 하나님의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형상을 우린 잃어버린 겁니다. 그래서누가 그걸 회복하시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가. 그래서 우리로하여금 그 예수 그리스도를, 그분의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무슨아들이 되었다? 맏형이 되신 거에요. 우리를 형제로, 하나님의 아들들로 부르시기 위해서 맏아들이 되신 거에요. 우리 고린도후서 4장 4절을 볼까요?
4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정확하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사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습으로오셔서 이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회복해 내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 속에 투영되고 나타나야 돼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이우리를 볼 때 우리 삶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그리스도가 유추되고 하나님이 기억되게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것이 현실적인 우리 삶의 중요한 과제인것입니다. 자, 이 부분을 이만쯤 하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27절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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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나님이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 이 단순한 마디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유교적인오랜 전통의 뿌리 때문에 또 거기에 근거된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아주 여성들의 지위나 가치 면에서 미개한 문화가 굉장히 많아요. 뭐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해서 여권 신장이 됐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더 후퇴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의 가치와 남성의 가치는 창조의 원리 속에 동등합니다. 단역할과 배역은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가치 면에서는 동등해요. 오늘은남자 여자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이것은 2장에 조금 더 창세기 기사가 구체적으로 등장을 하니까그 다음을 보십시다. 28절을 볼까요? 하나님은 왜 인간을창조하셨는가? 28절
28 하나님이그들에게 뭐를 주시며? 예, 복을 주시며. 자저를 보세요. 드디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진술됩니다. 첫번째 이유가 뭐예요?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복이 뭘까요? 히브리 말로 복은 바라크. 바라크. 자 그러면 히브리 말의 바라크 라는 복의 우선 문자적 정의가 뭔가를 이해해야 하겠죠. 가장 첫 번째 정의가 무릎 꿇다 경배하다 찬양하다 이 뜻입니다. 뭐가복이에요 하나님께 무릎 꿇어 순종할 수 있는 관계로 들어와 그 분을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성도의 복이다 그 말이에요. 성경에서는 놀랍게도 바라크 속에 담긴 복의 정의를 이 땅의 물량적이고 물질적으로 소개한 적이 없어요. 아쉽죠? 아쉬워야 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잘못 가졌던 생각에 대해서바로 잡아야 될 필요가 있어요. 기독교는 어디에도 물질적인 것을 궁극적으로 복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말하지 않았어요. 물질을 또한 무시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우 리는 여기에서 바라크 라는 이 문자적 정의는 첫째가 무릎 꿇어 그 분을 경배하는 관계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찬양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인간의 복된 위치에요. 믿으십니까?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복을 주시며 그 복의 구체적인실례를 소개합니다. 그 복이 어떤 복이냐? 이렇게 돼있어요. 28절에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앞을보십시다. 여기 정복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다스리라. 여러분이러한 표현들은 누구에게만 허락되는 권한인지 아십니까? 왕에게만 허락되는 권한이에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을 에덴의 왕으로 권한을 주신 겁니다. 자여기에서 서구 신학의 오해와 맞물려서 한때 깊은 혼란이 있었던 때가 있었어요. 뭐냐 하면 이것을 단순한정복의 개념으로 이해를 했어요. 그래서 억압하고 짓누르고 쟁취하고 빼앗는 정복으로 이해를 했어요.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이 말은 이 바라크라는 이 복에 연결 된이 명령은 무슨 뜻인가 하면 생명의 확대를 얘기하는 거에요. 여러분 기독교가 퀄리티가 올라 갈수록 그분명한 실체는 생명의 고급함으로 드러나야 해요.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 문화가 들어갈 때에는 그 곳에는회복과 생명의 존중이 나타나게 돼있어요. 억압과 쟁취과 짓누름이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나라의 본성은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고 섬기러 왔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이명령 속에 담아진 나라의 왕권의 특성은 섬기면서 봉사하고 자기를 내어주는 왕권을 얘기합니다. 생명의복을 얘기하는 거에요. 바라크 속에 연결된 복의 정체는 두 가지입니다 .후손을 통한 생명의 복을 얘기합니다. 제가 성경 한 구절만 읽어 드릴테니 들으십시오. 창세기 15장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어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큰민족을 이루려면 후손이 번성을 해야 해요. 큰 민족을 이루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렇게 돼있어요. 이 아브라함의 유명한 언약은 이삭을주시겠다는 약속인데 언약인데 그 이삭은 바로 오실 후손을 담아내는 혈통이에요. 그리스도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사망과, 여러분 원래 하나님이 이 땅을 제대로손보시기 전에 땅의 원래 상태는 혼돈, 공허, 흑암의 상태였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서 일단 그 혼돈을 질서로 잡았어요. 그리고 공허한 땅을 하나님의 충만한생명으로 채워 넣으셨어요. 그러자 어두움이 거두어집니다. 이것이창조의 질서에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가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의복이 되는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물리적인 복을 언약했거나 약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는 삶의 현장에는 모든 썩은 생명의냄새로 말미암아 썩은 냄새가 다 거두어져야 해요. 그래서 그 땅이 살아나고 그 땅이 회복되고 어둠이거두어지고 공허가 채워지며 생명으로 풍성케 되야 되는 것이 이 명령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이 풍성해 진다 그랬어요. 그것이 기독교가 지향하는 복의 본질이에요. 여러분들이 머무는 비즈니스 현장에, 일터에 캠퍼스에 가정에 공허와어둠과 혼돈이 물러가고 그 사망의 썩은 냄새가 나는 그런 어두움이 아니라 생명이 그것을 거둬내는 그래서 죽었던 것이 회복되고 재창조되는 역사가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가. 아담의 범죄로 이 창세기 이야기는 결국 뭘 설명하고 있는가 하면 이왕권을 잃어버렸어요.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담이 이왕권을 상실했어요. 그래서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이 왕권의 회복입니다.계시록 22장을 띄워주세요.
1또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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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뭐합니까? 왕권의 회복을 얘기하는 거에요. 결국 아담은 에덴의왕권을 위탁 받은 존재였어요. 그런데 그걸 상실했어요. 실락원의스토리는 왕권의 상실이에요. 계시록은 왕 노릇 하는 것으로 종말이 회복됩니다. 끝이 납니다. 자 이 이야기를 베드로 사도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이렇게 설명했어요. 베드로 전서 2장을 띄워 주세요.
9 그러나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떻게땅을 정복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통해서, 성품의얘기에요. 그 사망의 냄새와 혼돈과 무질서를 거둬내는 거에요. 거기가회복이 되고 생명의 본질이 회복되는 이것을 오늘 베드로 사도는 그러나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제사장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누군가를 대신해서 희생 되어지고 드려지는존재를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처럼 로마서 5장에서 이 이야기를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17 한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의왕 노릇은 어디 아래서 하는 겁니까?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그러니까창세기의 우리를 복 주기 위해서 만드셨어요. 그 바라크 라는 복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을 얘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모세가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잃어 버렸고 신앙을 상실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 회복을위해서 계시를 통해 시내산 밑에서 이 말씀을 받아 적은 겁니다. 어쩌면 이 똑 같은 원리가 오늘 다시이 창세기의 창조의 질서와 명령을 통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될 삶의 자리죠. 마지막으로 로마서 5장을 다시 한번 띄워 주실까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첫사람 아담을 얘기하는 거죠? 사망이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으니 지금은 사망이 왕 노릇 하는 세상이에요. 이 세상 구조가. 온갖 살인과 분쟁과 썩은 냄새가 온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질서 속에 원리 속에 이 땅이 지금 던져져있어요. 거기에 우리는 더욱 은혜와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의통치 방식은 세상의 군주, 세상의 왕이 아닌 그런 억압하고 착취하고 빼앗는 그런 원리와 질서의 통치가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방식을 쫓아 그 분의 아름다운 덕을 어둠의 땅에 혼돈의 땅에 텅 빈 공허한 세상에채우고 전하는 사명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 속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또 8월을 시작하는 한 달 속에 남은 선교의 일정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실현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