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부활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421
성경구절
요 5:24-29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16)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00:00-05:00)
좋은 일 있어요? 예수님보다 더 좋은 일이 없죠. 오늘20절을 좀 보십시다. 본문. 20절을 보니까 이렇게 시작이 되요.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자 여러분 더 큰일을 보이신답니다. 이 큰일이 과연 뭘까? 24절로 넘어가죠.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생명으로 옮길 것이니라? 옮겨졌느니라? 옮겼느니라. 옮겼느니라. 이게 완료입니다. 끝난거에요. 자 그런데 이것이 무슨 사건으로 이루어졌는가가 오늘 핵심이에요. 오늘29절로 넘어가죠. 같이 한번 읽습니다. 중요하니까.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자여기 두 가지 좀 문제가 생겨요. 우리가 얼핏 알고 있기는 우리만 부활하는 줄 알았는데 성경을 보니까악한 일을 행한 자는 무슨 부활로,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러니까객관적으로 얘기하면 부활은 우리만 하는 겁니까? 악한 자도 하는 겁니까? 제 말이에요? 성경의 얘기에요? 성경의얘기죠. 그러니까 악한 자도 부활을 해요. 그러면 그들이경험하는 부활과 소위 우리가 경험하는 부활의 차이가 뭘까? 성경에 이렇게 소개해요. 악한 일을 행한 자는 무슨 부활로? 예. 그들이 맞이할 부활은 무엇 때문에 부활하냐 하면 심판을 받기 위해서 부활을 해요. 이 심판은 결국 멸망과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 가는 이 심판을 받기위해서 그들도 부활을 겪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맞이하는 부활은 어떤 성격이 있죠? 29절에 보니까 생명의 부활로. 어떤 자에게 이 생명의 부활이 주어져요? 선한 일을 행하는 자. 자 이 대목에서 걸려요? 안 걸려요? 난 선한 일 해. 자유로울수 있는 사람 있나요? 우선 저부터 손이 내려가는 대요. 분명히우리가 배운 구원이라면 특별히 개혁주의 입장에서 배운 구원이라면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는다고 배웠는데 맞습니까? 여러분? 예. 확실해요. 에베소서 2장 8-9절에도보니까 이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라고 그랬어요. 왜? 행위에서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게 우리 개혁주의가 지향하는 정확한 구원관이에요. 그런데 여기 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여기에서 선뜻 나는 충분히 들어가 라고 자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저도 이 팩트대로 문장대로의 기준이라면 별로 자신이 없어요. 자 그러면 이제 문제가 생겼죠? 오늘 이것을 알아야 부활의 의미가 뭔지를 정확히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선마태복음 25장을 좀 띄워주세요. 저하고 한절 한절 교독하면서설명을 듣고 또 다음절을 읽고 하겠습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인자는 예수님을 얘기하겠죠?
(5:00-10:00)
32절 같이 읽읍시다. 시작.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여기 본문을 잘 보시면 목자가 무엇과 무엇을 구분한답니까? 양과 염소, 양과 염소. 그리고 양은 오른 편에 앉히고 염소는 왼편에 앉히는거에요. 여기도 보니까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자 그러면 목자는 왜 양과 염소를 구분할까? 유대인들의 목동 스타일을 좀 이해해야 합니다. 스타일보다는 문화죠. 그 문화는 양과 염소의 특성 때문에 자연적으로생성된 문화에요. 평소에는 꼴을 먹일 때는, 먹이를 먹이러다닐 때는 같이 섞어서 풀어놓고 같이 다닙니다. 보면 양이나 염소나 섞어 다녀요. 교회에도 양과 염소가 또 있다고 그래요 누가? 그런데 하루 해가저물고 저녁이 오면 얘네들 편안히 쉬게끔 잠자리를 마련해줘야 하니까 우리로 들입니다. 들일 때 절대얘네들 같이 안 재워요. 왜냐하면 같이 재우면 둘 다 못 잡니다. 자는생리적 현상이 달라요. 집에도 이런 경우가 있죠? 남자는열이 많아 몸에. 그래서 아무리 이불을 덮어줘도 걷어차고 배 다 드러내고 이렇게 자는 남성들이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아내는 이불을 꽁꽁 뒤집어써야 자는 스타일이 있어요. 한침대에서 동거가 가능할까요? 불가능해요. 따로 자야 해요. 심하면 각방을 쓰거나. 절대 이건 같이 못 자요. 그것처럼 양과 염소의 체질이 달라요. 그래서 얘네들은 같이 못 자요. 생리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어요.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양은 양끼리, 염소는 염소끼리 구분을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다음절을 한번 보십시다.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자 여기서 질문을 한번 던지죠. 양이 뭐 선한 일을 한 게 있나요? 오른 편에 앉을 만한 특별한 헌신을 한 게 있나요? 그냥 염소들하고풀 뜯어먹고 다닌 거 외에는 없어요. 염소도 마찬가지에요. 구원은마치 이렇게 그냥 은혜로 택정함을 입는 거에요. 무슨 인간의 조건이나 기준이 근거가 돼서가 아닙니다. 자 그런데 그 다음절부터 성경을 좀 보십시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상속받으라
여기 예비된 나라라는 말은 확정된 것을 얘기합니다. 이것도 완료형으로 썼어요. 그 다음에 35절 시작.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누가 이랬다는 거에요? 양들이. 아니 양들이아니라 양편에 구분된 우편에 앉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 했대요. 그런데 좀 뜬금없는 반응이 이어나옵니다. 다음절. 시작.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절 시작.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여기서 초점이 뭘까요? 지금 이렇게 반응하는 양쪽의 구분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반응이에요.
(10:00-15:00)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러면 질문이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은 자기가 한 것을 인지하고잇는 겁니까? 못하고 있는 겁니까? 예. 못하고 있어요. 인지를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 그런데 인지를 못했다는 것은 무슨 뜻이죠? 자기도 모르게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죠? 그걸 뭐라그러냐 하면 본성, 또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했나 봐. 그런데 나는 전혀 몰랐거든. 인지를 못하는 거에요. 이걸 뭐라고 그런다고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그리스도인의 경향, 또는 본성이라고 얘기하는 거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한가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갑시다. 그러면 이런걸다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일까? 그 말이 아니에요. 거꾸로이 얘기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고 우편에 앉을 백성이 약속된 백성이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옮겨져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분명히 믿음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향이 어떻게 나와야 된다는 얘기입니까? 그렇죠. 저절로 나와야 된다는 얘기에요. 이것이 마치 뭐처럼? 새로워진 본성을 통해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게 우리의 새로 창조된 본성으로써 저절로 나와야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마태복음 7장에 보면 집 짓는 얘기가 나와요. 두 사람이다 집을 지었어요. 그런데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났죠. 그런데한 집은 끄떡없이 서있는데 한 집은 무너졌어요. 둘 중에 무너진 건 뭔가 잘못된 거에요. 찬송가 가사에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죠. 잘 짓고 잘 짓세 우리집 잘 짓세. 그래서 이거를 집 짓는 싸움으로 이해를 잘못 가져요. 행함의싸움으로 이해를 잘못 가져요. 여러분 이거는 행함의 싸움이 아니에요.그 다음 찬송가 후렴구절을 놓쳐선 안됩니다.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만세반석이 누굽니까? 그리스도. 그러니까 그 인생의 집이 제대로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지어진인생이라면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이런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본성이 어떻게 나와야 된다는 거에요? 저절로. 저절로. 그런데우리 한국의 교회의 패턴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신앙을 강요했죠. 열매를 맺자. 열매를 맺어야 된다. 열매를 맺어야 헌신을 하는 것이고, 열매를 맺어야. 그래서 열매에 집중했어요. 그러니까 아직 뿌리도 확인이 안되고 가지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무조건 유사열매를 맺느라고 헛된 종교생활을하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요한복음 15장에는정확히 뭐라 그랬어요?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나니.거기 중요한 게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절로. 뭐 보광사 그런 절이 아니라. 저절로 열매를 맺는 그게 본성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이게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도들이 경주해야 될,관심을 가지고 놓치지 말아야 될 초점이 뭐냐 하면 열매가 아니에요.
(15:00-20:00)
열매보다 더 중요한 게 내가 가지로써 포도나무인 예수에게 제대로 앤 트리스토스. 그안에 가지가 접붙여져 있는가? 접붙여져만 있으면 저 뿌리로부터 근본적인 양분이 나무를 통해 가지로 들어가면열매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저절로 맺히는 거에요. 헌신하자. 이게 무슨 교회 봉사가 궐기대회 식으로 되어선 안돼요. 무슨 무브먼트가되어선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꾸 억지가 나오는 거에요. 왜기꺼이 즐거운 헌신과 주님을 향한 사랑을 자꾸 억지로 만드냐 그 말이에요. 제가 종종 우리 청년들에게드는 비유 중에 하나가 이런 비유 들어봤을 꺼 에요.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 대문 앞에 장미꽃 백 송이를가지고 밤도 새요. 밤인들 못 새겠어요? 그런데 장미꽃 백송이를 가지고 밤을 새야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소린지 알겠어요? 딱 한 분이 격하게 고개를 흔드는데 경험자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양과 염소의 비유는 그런 선한 일을 해야 우편에 앉는다 그 얘기가 아니에요. 우편에 앉기로 택정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중요한 본성이 되고 경향이 되야 된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이 경향이라는 말이 얼마나 오묘하고 설명할 수 없는 난제인지 아십니까?근데 이 난제를 예를 하나 들게요. 여기에도 교회 나오기까지 참 많은 사연 사건 사정이있었을까 에요. 제가 아는 몇 분만 소개를 해볼게요. 우리교회 얘기는 아니고. 어느 분이 사업을 하다가 IMF때 부도를두 겹, 세 겹을 맞으니까 견뎌내나요? 기도원으로 누가 도망을하면 안 쫓아온다 그래서 글로 도망을 갔다 붙잡혔어요. 거기서. 기도원에서. 체포가 돼서 결국 마지막 가지말아야 될 곳 까지 들어갔는데 거기서 건축하다가 부도를 만나서 들어온 목사님을만난 거에요. 감옥 안에서. 그래서 형무소 동기가 된 겁니다. 깜방 동기가 된 겁니다. 한방에서 목사님한테 매일 성경공부를 배우고, 이분이. 그러면서 자기가 왜 기도원으로 도망갔었나 그림이 그려지는데이분을 만나려고 기도원으로 하나님이 잠깐 하나의 사인처럼 인도를 하셨구나. 지금은 아주 신앙생활을 잘하세요. 여러분 그 외에도 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교회 빚 받으러왔다가 목사님 말씀 듣고 막 은혜 받아서 빚 탕감해주고 집사 된 사람도 있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좋아하는사람 따라 왔다가 그 사람보다 더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자매나 형제들도 많이 만나고. 이거 무슨 학술적으로설명이 되겠어요?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겠어요? 그런 거죠. 하나님이 택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우리 인생사에 하나님이 여기저기 널어놓은 수많은 사건과 사연과 사정 속에서어떤 위치에서도 걸려들어요. 아 이게 딱 좋은 표현이다. 걸려든다는말이 맞아요. 어떻게 하든 걸려들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집요한 사랑의 손길을 피해갈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본성적으로 경향상 이 선한 일을선한 이웃을 위해서 품성적으로 행위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이에요. 믿습니까? 이런 일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고. 자 빌립보서를 한번띄워주실까요? 여기 아주 중요한 말이 있어요.
빌립보서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거이니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20:00-25:00)
우리 안에 의라는 것은 내 의가 아닙니다. 누구의 의죠? 그리스도의 의. 하나님의 의에요.다음절. 다같이 시작.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여러분 이 글이 바울이 썼어요.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러면이 시대의 배경은 로마제국입니다. 그 시대를 이해하려면 세가지 사상의 흐름을 이해해야 됩니다. 당연히 헬레니즘을 이해해야 되요. 참 역사라는 게 오묘한 게 로마는그리스도를 먹었지만 정신으로는 지배를 당했어요. 그렇죠 여러분? 헬레니즘을알아야 해요. 두 번째는 유다이즘을 몰라서는 안돼요. 히브리즘이라고도하죠. 그리고 또 하나는 로마의 사상을 알아야 해요. 철학. 그러면 로마의 철학은 뭡니까? 로마의 철학은 힘이 정의에요. 정의가 힘이에요. 근데 그 힘의 정점이 어디입니까? 로마 황제의 보좌입니다. 황제의 보좌는 세가지 개념이 출발하는 곳입니다. 통치가 시작이 되고 심판이 거기서 이루어지고 최종적인 땅의 모든 영광이 보좌로 귀속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는 약하거나 또는 어떤 장애인 여자 이건 선으로 여기질 않아요. 힘있는게 선이에요. 그런 시대에요. 그래서 바울이 일부러 권능이라는표현을 차용하는 겁니다.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부활의 저 권능이라는 말을 조금 더 직역하면 권세라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로마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예를 들어서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요한이 절망 속에 너무도 가진 것없고 힘없는 핍박 속에 매일 죽어가고 피 흘려가는 환란과 고난과 압박 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계시록이라는 글을 남겨요. 그때 그 첫머리에 요한이 하늘의 보좌를 봅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싶었던 걸까요? 이 땅에 로마의 황제가 앉는 보좌가 최종적 권력이 아니다. 더 진정한 최종적 심판, 최종적 영광, 최종적 권력이 하늘 보좌 위에 있다. 이사야는 그거를 어떻게 봤죠?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절대권력이 쓰러지던 해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통곡 속에 끝났다. 조국 이스라엘도 여기서 끝인가보다. 이제 우리 주변에 앗수르, 바벨론, 곧 우리를 먹으러 들어올 것이다. 입 가진 사람마다 저주를 퍼붓고실망을 쏟아내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을 때 이사야가 비통한 마음으로 성전 앞에 안에 홀로 들어와 앉아서 하늘의 보좌를 봐요. 보좌에 앉으신 옷자락이 지상 성전을 덮어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무슨뜻이죠? 너희들은 절망을 쏟아내고 끝장이라 말하지만 여전히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그 하나님의 통치가이 지상에 섭리하고 운영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이사야선지자가 거기서 안의 죄를 보고 하늘의 비전을 보고 세상의 죄를 바라보면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보내소서. 새로운 역사의 소명 앞에 눈뜨지 않습니까? 그게뭐죠? 그게 부활의 권력이에요. 권력.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부활이라는 것은 저 물리적시간 끝에 내게 보장된 어떤 약속 정도가 아니에요.
(25:00-30:00)
사망의 냄새가 풀풀 나는 이 죽음의 땅에 우리는 생명 가진 자로써 본성적 그리스도의 경향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내야 되는가? 이 부활은 매일 내가 그 권력을 가지고 살아내야 되는 과제에요. 믿습니까? 그런데 왜 사망의 땅에서 죽은 자처럼 삽니까? 여기 부활의 권능, 할 때 이 권능이라는 말이 얼마나 재밌는 단어인가 하면 누워있는데 일어난다 그 뜻이에요. 여러분들은 이 사망의 환경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이 땅에서 같이 죽은 자처럼 누워있어서는 안돼요. 거기서 뭐해야 되요? 일어나야 되요. 매일 일으켜야 되고 일어나야 되요. 뭘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들이는 산 예배자,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언어와 여러분들의 몸짓과 여러분들의흘린 땀이 닿아지고 대어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죽음의 냄새가 거두어지고 사망의 그림자가 흩어지는 바로 그런 부활을 사는. 그게 부활의 권력을 가진 자에요. 과연 부활을 그렇게 살아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시스템이나 구조나 메커니즘을 보면 다 우리는 생명을 죽이는데 있어요. 그걸 온몸으로 손해를 각오하고 저항하고 부르짖고 정말 비참하게 누군가의 도움 없으면 살아 갈 수가 없는 그들을향해서 일으켜주고 손 잡아주고 그게 어떻게 나와야 된다는 얘기에요. 저절로 나와야 된다는 얘기에요. 저절로. 믿습니까? 그게우리가 부활을 맞으며 새롭게 하나님 앞에 붙잡혀야 될 시대적 소명입니다. 우리 삼일교회는 바로 그것이본성이 되야 되요. 여러분들의 삶에는 그것이 경향이 되야 되요. 이렇게말하는 사람 있을 거에요. 누군 그런 마음 안 먹습니까? 근데안되잖아요. 왜? 안 되서 또 실패하더라고 그런 마음을 계속가지세요. 계속.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굳은 살이 베기듯언젠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렇게 자리매김 만들어 주실 줄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도 훈련해야 되고 연습해야되요. 믿습니까? 이것이 빠지면 부활, 그저 내 목숨 하나 생명으로 옮겼다는 차원의 부활? 그렇게 큰 의미없어요. 이 부활은 확대 돼야 되고 흘러가야 되고 나누어져야 되고 점 점 점 강이 되고 바다로 이루어져서생물이 살아나고 모든 죽었던 땅이 꽃이 피고 사막의 열매를 맺는 그런 기적을 봐야 되는 거에요. 요셉한 사람이 한 시대를 먹여 살렸듯이 부활의 권력을 가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의 모든 언저리마다 그런 생명의 냄새로 사망이 100이라면 우리는 120, 150 그 사망을 덮어버리는. 믿습니까? 누가 십자가에서 그것을 이루어놓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 그부활의 권력 앞에 다시 한번 이 시대의 들림 받고 쓰임 받는 우리 삼일의 청년들 또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