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인생과 믿음의 관계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70106
성경구절
창 12:1-4
시리즈 순서
창세기(20)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20)
아브라함의 인생과 믿음의 관계
창12:1-4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00:00-10:00)
우리 어제 그제 수요일 제직 세미나 때 서론에 그런 말씀을 드렸죠. 우리의 미래는 저 앞에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래는 위에서 옵니다. 오늘사실 이 가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창세기 12장에 담겨 있어요. 창세기12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히 익숙한 본문이면서 동시에 이 본문만큼 또 오해를 서로 갖게 하는본문도 없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 역사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인간의꿈을 어떻게 내려 놓게 만들고 부수어 뜨려 가면서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꿈이 이뤄져 가는가. 사실그게 우리 평생에 싸워 나가는 고단한 여정이고 나그네 길입니다. 오늘 한 해를 또 시작하지만 2017년 앞에 놓여진 365일도 과거 겪어 왔던 시간만큼이나 만만치않은 수치들이나 예측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어요.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없고. 또 우리의 운명을가름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압니다. 자, 그럼 오늘이 본문은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별명 지어진 한 인물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꿈을 한 평범한 인생을통해서 위대한 사명으로 바꿔 만들어 가시는가를 우리가 만나게 될 겁니다. 자, 오늘은 2017년을 시작하는 첫 번째 금요일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사를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사도행전 7장을좀 먼저 폅시다. 1절을 볼까요? 이 대목은 스데반 집사의유명한 명설교문이죠. 제가 좀 읽겠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이런 스데반 버금가는 좋은 메신저들이 역사 속에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어디에 있을 때? 예, 여기 메소보다미아가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죠. 여기 구약에소개 된 지명으로는 갈대아 우르라는 잘 알려진 지명이 바로 이 곳을 가리킵니다. 무슨 하나님이 그에게보였어요?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보여
앞을 잠깐 보실까요? 한 가지 아브라함의이력이 밝혀집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에서는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등장을 해요. 그런데 신약과 구약을 조합해서 읽어 보니까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 이미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거기에서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그를 하란으로 이끌어 와요. 그런데 목적지는 가나안입니다. 그런데성경을 보시면 우리 창세기 11장으로 한번 넘어가 볼까요? 창세기11장. 오늘 본문 바로 윗장입니다. 11장 31절 시작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 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여러분 성경을뭐 아주 꼼꼼히 안 읽어도 조금만 세밀이 읽어보면 사도행전 7장과 창세기 11장 기록에 조금 의문이 드는 표현이 하나 상이하게 등장합니다. 분명스데반 설교 속에 소개된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어요. 그 때는 이름이 바뀌기 전이니 아브람이겠죠. 아브람이라는 말은 아버지께서 높이시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아브라함은열국의 아버지 란 뜻이죠. 나중에 이름이 이렇게 개명이 됩니다만 어쨌든 스데반의 사도행전 7장의 설교 속에서는 하란에 있기 전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어요. 그런데 방금 여러분들이 읽은 창세기 11장 31절을 보시면 이렇게 돼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아들인 이 하란은 여기서 사람을 얘기합니다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어디로 가고자 하더니? 네, 자 창세기 11장에서는이들의 이동의 주도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까? 데라에게 있었습니까?맞죠? 네, 데라가 주도권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라고 밝히고 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에서는 그 영광의 하나님이 누구에게 나타나셨다고요? 자, 이 함수 관계를 우리가 풀어야 하겠죠. 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는데이주의 주도권을 아버지 데라가 붙들고 있었을까? 이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당시 사회 구성 시스템은 족장시대라 그랬어요. 족장시대는 아버지가대통령이고 제사장이고 그냥 왕입니다. 그런데 자녀 가운데 아브라함이라는 자녀 가운데 어떤 영적으로 상당한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는 이 사람들이 잘 몰라요.왜? 이 사람들은 이 갈대아 우르에 살 때부터 신앙이 돈독하고 신앙심이 투철했던 가족사를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한 군데만 더 읽어볼까요? 여호수아서24장을 열어 볼까요?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설교가 세겜땅에서 선포되죠. 24장 1절
여호수아가 이제 죽기 전에 죽음이 임박했어요. 세겜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기 아주 부끄러운그들이 누구보다 추앙하고 존경하는 국부와 가은 존재인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가족사가 슬쩍 설교 속에 여과 없이 드러나요. 여기 보면 2절에 이렇게 여호수아가 설교를 합니다. 옛적에 너희의 조상입니까? 조상들입니까? 네, 복수로 사용을 했어요. 여기에는아브라함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또그 형제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그러니까 이 기록을 종합해보면 갈대아 우르에서 살던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최소한 신앙인이었습니까? 우상을 섬기던 집안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집안이었어요. 하나님에 대해서 눈이 떠있기는커녕 감각과 인식 자체가 없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스데반의 설교 속에 밝혀진 바로는 어느 날 영광의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의 인생 속에 임하신 겁니다. 자, 이 문제를 결국 아브라함은 누구랑 의논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당시사회 구조의 문화 개념상,
(10:01-20:00)
종교 배경상,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아들에게 일어난 영적인 문제가 그냥간과할만한 예사롭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아버지가 직감했던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밝혀져요. 아버지는 결국 그 의미가 뭔지는 몰랐어요. 끝까지. 그래서 어쨌든 온 식구들이 꾸려서 짐을 싸가지고 그 어떤신이 아들에게 명령한 그 곳을 향해서 아버지 주도하에 길을 떠나게 된 거죠. 떠나다가 어디서 주저앉습니까? 하란이란 데서 주저 앉아요. 하란은 지정학적인 위치 상 어느 정도위치쯤 그림인가 하면 강을 건너기 전, 직전의 지역입니다. 히브리, 히브류 라는 말은 강을 건너 온 사람들이란 뜻이거든요. 강 건너편의사람들이란 뜻이에요. 이 당시 고대 사람들의 종교 개념상에는 강이나 바다를 건너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믿었습니다. 쉽게 그 강을 못 건너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스데반의 설교 속에 나타난 분명한 증언은 데라가 죽자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데라 라는 육신의 아버지의 이름 뜻이 뭐냐 하면 지연시키는 자, 지체하는 자 라는 뜻이에요. 마치 성경의 배열의 순서를 보면 이랬던 것 같아요. 하나님의 주권적시각에서는 하나님의 이 믿음의 스토리와 아브라함을 통한 인류의 꿈을, 인류를 향한 꿈을 하나님이 펼쳐나가시기 위해서 데라를 하란에서 거둬 가신 것 같아요. 전혀 무리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이 등장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구약의 기록상으로는사실 아브라함이라는 실질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측면에서의 기록이 12장에서 처음 등장을 해요. 그러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만남은 여기가 첫 만남은 아니었죠. 이미어디 있을 때? 갈대아 우르에 살 때. 그런데 그 때는 아브라함이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없었다? 없었다 그 말이에요. 어느 날 어떤 신이 너무나 항거할 수 없는 명료하고 뚜렷한 메시지를 주고 가셨는데 도무지 이게 뭔지 모르겠더라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생 속에 뭐로 찾아오신 겁니까? 하나님의 꿈으로 찾아오신 거에요. 하나님의 계시로 영광의 하나님이찾아오신 겁니다. 장차 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자연인을 통해서 펼치시고 일어날 그 하나님의 꿈을 그 아브라함의인생 속에 찾아오심으로 시작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나님이 어떻게 끌고 가시는가를 잘 봐야해요. 그렇게 성도의 미래는 앞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1절을 한번 보십시다. 창세기 12장 1절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이것은 실질적으로 성경에서 몇 번째 하나님이 찾아오신 사건입니까? 두 번째입니다. 스데반의 설교 속에서 우리는 이미 메소포타미아에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았던 기록을 봤어요. 표면적으로는 오늘 구약의 12장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인생 속에 다시 찾아오십니다. 다시찾아 오셔서 두 가지를 약속해요. 결국. 아브라함의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심으신 꿈은 결국 두 가지 입니다. 자손에 대한 약속과나라에 대한 약속이에요. 자손과 나라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통해 꿈꾸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꿈이었어요. 아, 그런데 이꿈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데 참 길고 먼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아브라함이그 때 그 때 막 알아듣는 명석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아둔하고 답답하고 뭐라고요? 이런 스타일이었어요. 늘 교실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애들같은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어쩜 그것도 안 되는. 그런 진상같은 기록들을 우리가 곧 이어 만납니다. 하나님이 이런 과거 전력이 있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그걸 우리는 보통 뭐라 그러죠? 소명 내지는 부르심이라고 얘기합니다. 소명에도 결정적 소명이 있어요. 확정된 소명이 있는데 그 소명이내 안에서 확 열어지기까지 참 많은 곡절이 지나가야 되고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항상하나님은 인생을 통해서, 시간을 통해서 역사라는 공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게 돼있어요. 요셉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고 아브라함도 비껴가지 못했어요. 그게하나님의 방식이에요. 자, 여기에서 1절을 다시 보십시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뭐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그랬어요. 여기 세 단어가 등장하죠. 첫째, 고향. 이 단어는원문에는 hometown이란 뜻이 아니고 예레쯔. 땅이라는뜻이에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지금 어느 땅을 떠나야 될까요? 물리적으로. 이 시대에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의 위치에 서서 아브라함은 어느 땅을 떠날 것을 명령 받고 있습니까? 지금 그가 밟고 있는 땅 하란입니다. 그렇죠? 하란이에요. 하란은 아브라함의 목적지가 아니에요. 그 하란은 아시는 것처럼 강을 건너기 전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주검이 끝난 장소에요. 거기에 무슨 까닭인지는 성경기자가 설명하지 않았지만 질척거리고 머물러 있었어요. 여기 고향이라는 말은 물론 넓게 의미를 확대해서 잡자면 갈대아 우르라는 말도 됩니다. 어쨌든 통합하면 이 고향이라는 말은 예레쯔. 땅이라는 단어를 써요. 땅. 고향은흙 내음이죠. 우리의 모든 과거의 메커니즘이 얽혀있는 땅이죠. 고향. 익숙하고 편안하고 만만한 곳이죠. 그게 고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위해서 늘 떠나고 보냅니다. 참 이상해요. 야곱도 하나님의 꿈을 심고 야곱의 꿈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 벧엘에서 떠나서 돌아오도록 했어요. 안 떠나게 하신 게 아니라. 떠나서 돌아오도록. 둥지를 항상 하나님은 흔들어 버립니다. 우리 삶의 둥지, 익숙한 둥지, 편안한 둥지. 모든게 준비되고. 그런데 모든 게 준비되고 모든 게 익숙하고 모든 게 편안한 둥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꿈을보는데 늘 장애가 되고 방해만 됩니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의꿈을 못 보게 만들어요. 그래서 늘 머물렀던 둥지를 독수리도 보금자리를 흩어버리잖아요. 새끼들의 비상을 위해서. 그런데 신명기서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그렇게 키우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걸 가장 혹독하게 훈련 받았던 지역이 광야 아닙니까? 광야는 머무는 데가 아니에요. 늘 돌아 다녀야 해요. 이게 글로 문장으로
(20:01-30:00)
기록돼있으니까 그러려니 그냥 듣고 있지만 40년내내 야~ 구름 움직인다 빨리 쌓아! 짐 꾸리고 그게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삶이. 광야라는 데는 땅 한 평도 내가 머물 공간이 주어지지않는 공간입니다. 거기는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걸 훈련할 수밖에 없는 게 광야에요. 우리가 머물 공간이 아니에요. 인생 길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나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가리켜 통칭하여 ‘나그네와같은’, 나그네와 같은. 우린 나그네에요. 그리고 여기 친인척 이라는 몰레데트라는 말을 썼는데 친척이란 말은 혈연 관계, 생의 근본을 얘기하는 거죠. 피붙이는 참 끈끈한 관계 형성을 합니다. 사건 사고 등장에 늘 등장하는스토리가 뭡니까? 피붙이 스토리에요. 결국은. 잠깐 이민 생활을 경험해 봤지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 사돈의 팔촌까지 다 불러 들여요. 그래서 cash대를 맡기고 그래서 한국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가지고어디 가지도 못하고 LA 나성구를 만들어서 거기서 또 다른 한국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있어요. 그 분들은 70년 대에 이민을 갔으면 모든 패션과 사고 방식이 70년대에서 딱 정지가 되어 있어요. 그 동안에 한국 사회가 얼마나눈부시게 발달하고 발전했는가를 본 시간이 없기 때문에 거기서 딱 멈춰 버립니다. 그리고는 더 곤고해지죠. 피붙이가 갖는 끈끈함. 안정이 되고 안심이 되니까 그런데 하나님은그러한 것들을 여지없이 매일 부서뜨리고 떠나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고향과 친척과 마지막에는 뭡니까? 벧 아브. 아비 집을 떠나라. 자, 그런데 캥거루 족이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 나라죠. 막 40살 될 때까지 품고 앉아가지고. 그런데 사실 동남아 국가에도 보면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인데도 고등학교 딱 졸업하면 다 나가요. 다 독립 시켜 버립니다. 많이 틀리죠. 물론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어쨌든 여기에 보면 1절끝에 보니까 이렇게 돼있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무슨 땅으로 가라고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우선 가라 라는 말을 좀 바르게 해석하십시다. 가라라는 말은 영어 성경의 번역대로 해석을 하면 조금 더 쉬울 것 같아요. 가라 라는 말은 걸으라 그 뜻이에요. 걸으라. 하나님의 꿈을 향해서 걸어 가라. 자, 그런데 여기서 걸어가라 는 명령보다 더 소중한 의미가 뭐냐하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걸어가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보여 줄 이무슨 뜻일까요?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히브리 말로  라는 말을 쓰는데, 내가 네게보여 줄,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전달 된 하나님의 말씀을이해하고 믿고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 태도를 가지고 매일 뚜벅뚜벅 걸어가는 신앙의행위를 얘기합니다. 수용하고 이해하고 듣고 믿고. 그래서로마서 10장 17절 말씀에 믿음은 어디서 나며? 들음에서 나며. 기생 라합이 어떻게 상천 하지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가질 수 있었을까요? 너희에 관한 소문을 듣고. 들었어요. 그 가나안 우상 지역의 땅에 그 천한 직업을 가지고 슬픈 운명을 부대끼며 살아갔던 그 여인에게 생성된 믿음의출처, 정체는 들음에서 난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잊어버리더라도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쌓고 믿고 수용하고 되던 안되던 부딪혀 보고 이게 뭐예요?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것은 크게 자손과 땅입니다. 왜? 그래야 무엇이 이뤄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선택해서 꿈 꾸셨던 하나님의 꿈이에요. 오늘 낮에 갑자기 외국에서 손님이 오셨어요. 네덜란드 분인데 네덜란드 라브리 공동 대표입니다. 우리 나라 또라브리 대표인 서인경 목사님하고 갑자기 제 방을 찾으셨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가운데 우리 나라에여러분 라브리 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시죠. 라브리 라는 공동체는 저희가 대학생 시절에 시골에서 올라 온 countryboy들이 있었어요. 몇 명. 내수동 대학부에지낼 때죠. 그 중에 오갈 데 없는 형제 몇이서 요 한강 변에 연탄 때는 한강 아파트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용산 전자상가 구석 쪽으로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어요. 진짜형편없는 아파트죠. 거기에 방 한 칸을 빌려 가지고 먹을 것도 없고 돈 버는 사람도 없고 백수 대여섯명이 그 조그마한 방을 하나 빌려가지고 들어 앉아서 명칭을 라브리 라고 칭했습니다. 피난처라는 말 아니에요. 피난처. 정말 피난처였어요. 제담당은 까마귀 담당이었어요. 물어다 주는 거. 먹을 거. 그게 제 담당이었어요. 그러고 지내던 공간인데 세상에 그것이 세월이가면서 거기에서 철학이 만들어지고 뜻이 모아지고 일관되게 힘을 모으다 보니까 지금의, 지금은 대표가서인경 목사입니다. 저하고 대학 동기인데 그 친구가 라브리 공동 대표가 되어있죠. 그 공동체가 강원도 평창인가 양평 무슨 평 자 들어가는 덴데 제가 지금 지명을 잘 모르겠네요. 강원도 쪽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뭐든지 시작이 아무것도아닌 것 같아요. 항상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참 오묘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겨자씨처럼 시작을 해요.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의 꿈이 묻어지면 하나님의 꿈이 심어지면 그것이 큰 그늘을 드리우는 느티나무 가은 나무가됩니다. 아브라함. 무슨 신앙이 좋았던 가문도 아니고
(30:01-40:00)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는, 오히려 하나님을거역하는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에요. 우리 교회도 보면 청년들 가운데 믿음의창시자들이 많아요. 그 가문의 처음 믿는 청년들이 많아요. 제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좀 있어요. 대게 이제 목회자들의 꿈이 뭐냐 하면 처갓집이 사돈의 팔촌까지 다목회를 해가지고 무슨 물질적인 덕을 보겠다는 말이 아니고 기도의 덕을, 그게 참 크거든요. 목회를 하다 보면 이 기도의 부대가 뒤에 든든히 받치고 있는 것만큼 큰 힘이 없어요. 그런 꿈을 가지고 그런 쪽의 사모감을 찾는 목회자들이 꽤 돼요. 그런데가끔 가다가 정말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양가 사돈의 팔촌까지 믿는 사람 하나 없고 정말 외로운 전도사와 자매가 만나서 또 믿음의 가문을 일궈가는경우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뭐냐 하면 많은 눈물의 기도를 뿌리게 해요. 엄청난 눈물의 기도를 뿌리게 해요. 굉장히 힘들죠. 외롭죠. 그런데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 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가시는 법은 없습니다. 누군가 뿌리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우리삼일 교회도 지금 우리 당대들이 잘해서 이렇게 젊은 생명의 열매들이 꽃피워진 게 절대 아닙니다. 누군가 60몇 년 과거의 역사 속에 우리 선배들 가운데 찬 마루바닥에 앉아서 눈물로 씨를 뿌렸던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 분들은 기도만 하고 지나가는 거에요. 그것이 그분들의 시대적역할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죠. 항상 성도님들은신앙의 1세대가 되셔야 합니다. 늘 개척자의 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돼요. 이 뜨거운 불금의 시간도 1년 바짝 한다고되는 게 아니에요. 한 10년 해야, 제가 어제도 우리 전체 교육부서 교역자들한테 그런 강조를 했습니다. 좋은팀이 만들어지는 것이 몇 년 걸릴 것 같니? 3~4년? 아니다짧게 잡아야 10년 걸린다. 좋은 팀이 만들어지는 데는 10년 걸려요. 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거쳐 나가는 교역자들 가운데는 천하도 감당치 못할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귀한 동지들도 있고 그런데 그들이 다 무의미하게 시간을보내고 지나간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 귀하게 나름대로 자기 몫을 하고 지나가는 거에요. 그러면서 건강한 공동체와 건강한 팀이 만들어지는 거죠. 아브라함의가문도 조사를 해보세요. 이후로 등장하는 이삭, 야곱, 요셉. 뭐 하나 하나 열거해 보면 별 별 듣도 보도 못한 사연들로이야기가 꾸려져 나가죠.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을 인간의 부침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도 되고잘되고 했던 법이 없었다 그 말이에요. 그 이유를 성경 기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2절을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될지라
제일 중요한 말이 뭘까요? 너로 큰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이 말만 해도 막 숨이 탁 막히죠. 이렇게만 되면. 그래도 여기 여러분들이 잃어버려서는, 놓쳐서는 안 되는 시선이 하나 있죠. 내가 하겠다 그 말. 하나님이 하시겠다고요.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 작업이지나의 어떤 conviction 또는 확신이 아니에요. 의지적결단도 아니고 빤질거려 보세요 일부러라도. 하나님이 아휴, 쟤는안되겠다 그러고 포기하시는 법이 있는가? 저 바다를 건너, 태평양을건너 지구 끝까지라도 음부에 자리를 틀지라도 욥기서의 기록 아닙니까? 네가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내가너를 놓지 않겠다 이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사실은 아브라함을 놓고 천명하는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에요. 믿음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이 아니에요. 개역개정에 드디어 원문에 가깝게번역을 해놨어요. 과거에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랬죠. 사실은복이 되리라 가 맞습니다. 복이 될지라.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복이에요. 신랑들이 뭣도 모르고 당신 남편 잘 만나서 잘 사는 줄 알아 그러면 뒤집으세요. 당신이야 말로 날 만나서 잘 되는 거야. 물론 피차 겸손해야 되겠지만예를 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한 그런 어떤 건강한 긍지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건강한긍지. 왜?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내게 있지 않고 내가 이미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여기 제일 은혜가 되는 구절은 내가, 내가 하겠다는 거에요. 하나님이.그 이후로 아브라함이 참 웬만한 남자로서는 할 수 없는 못난 행동들을 하지만 하나님이 계속해서 아브라함을 만지시고 설득하시고 믿음의사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우리가 보지 않아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의 정의는 다시 강조하지만믿음이 좋아서 믿음의 조상이 아니고 믿음이 얼마나 은혜인가를 아브라함만큼 좋은 샘플이 없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인 겁니다. 얘를 봐라. 얘. 이러시는거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성경 전체게 걸어 놓고. 얘를봐라 얘. 아, 소망이 있구나.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감격인 거에요. 아브라함도 그진흙탕에서 하나님이 맨날 살려 내시고 건져 내시고 은혜로 덮어 주셨는데 내가 거기서 제외되겠나? 그러니까항상 믿음은 대상에 대한 관계요, 앎입니다. 하나님이 이런천둥 벌거숭이 같은 아브라함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가, 그게 나란 말이에요. 아브라함이 나에요. 나. 우리마지막으로 3절을 한번 볼까요?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한번 보십니다.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네, 이 말이 어디서 실현됩니까? 아시는 대로 창세기 12장 하반부에 보면 가나안 땅에 기근이 와버려요. 참 그렇잖아요. 가나안 땅은 어떻게 들어 온 땅입니까? 뭐 아브라함이 원해서 들어왔던 땅도 아니고 하나님이 등 떠밀어 마침내 들인 땅이에요. 그런데 그 약속의 땅이라는 곳에 갑자기 기근이 오죠. 그래서 아브라함이서슴없이 갈등 없이 주저 없이 애굽으로 내려 갑니다. 내려 간다는 표현을 써요. 사실은. 신앙이 내려가는 거에요.신앙은 일정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 사람은. 항상부침이 있습니다.
(40:01-48:43)
교만해졌다가 또 고통스러우면 겸손해 졌다가 또 방긋 했다가 또 죽을 쒔다가 신앙이늘 그래요. 개천에 빠졌다가 강물에 빠졌다가 바다에 빠졌다가 그 차이지 별 차이가 없어요. 바로 기근을 피해서 약속의 땅을 떠나 버립니다. 그리고 그 애굽으로들어갈 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죠. 그래서 아내를 홀랑 뺏길뻔해요. 큰일 날 뻔 하죠. 아브라함의 아내는 왜 중요합니까? 그 몸을 통해서 약속의 자녀가 태어날 귀한 왕비 같은 몸입니다. 사라의몸은. 그런데 영적으로 아직 감각이 없으니까 아브라함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성경을 읽다 보면, 데려가라 그래요. 그리고 막 물질을 많이 챙겨요. 그것 때문에. 히죽거리고. 성경을 읽다 보면 희한해요. 10절을 볼까요?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어떻게 됐다고 돼있죠? 내려갔어요. 내려가요. 이는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나는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나귀와 낙타를 완전 대박이에요. 얻었더라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여러분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뭘 내려요? 지금 재앙 받을 인간은 누구에요? 아브람이지. 그런데 왜 바로가 재앙을 받아요? 바로는 속은 죄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브람이 속였잖아요. 누이라고. 누이니까, 얼굴이예쁘니까 그냥 왕비 하나 더 삼으려고 데려 간 거에요. 많은 물질을 주고. 그런데 하나님이 누굴 손대요? 아브라함을 손대는 게 아니라 바로를손대요. 애굽과 바로. 이거는 이런 뜻입니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영적인 수준이 매 들어서 이해시킬 수준이 안돼요. 애들을키울 때도 연령에 따라서 훈육 방법이 달라지죠. 대학생쯤 되면 잘못이 있을 경우에 앉혀 놓고 점잖게타일러서 다시는 그런 행동 하지 마라 이렇게 일러야지, 대학생쯤 됐는데 막 거꾸로 메달아 가지고 고문하고그러면 부자 지간에 온전하지 못하죠. 그런데 말귀 못 알아 듣고 아주 너무너무 어릴 때는 또 어떻게됩니까? 사탕 줘가면서 다시는 그러지 마. 막 요강인 줄알고 깼는데 5천만원짜리 도자기 깨고 막 그런 거에요. 그런데애가 이게 요강인지 도자기인지 알게 뭐예요. 관리 못한 부모가 잘못이지. 나이에 따라서 신앙의 영적인 수준에 따라서 하나님이 다루시는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이 때는 아브람이 이제 믿음의 눈이 강아지 눈 뜨듯이 열어져 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건 혼낼 건덕지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그냥 바로 몇 대 때리고 마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너 걔 손 대면 안되 임마. 먼 먼 훗날. 이런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니 그제서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다운 눈에서 이해를 갖는 겁니다. 항상 신앙이라는 것은 그렇게 이해가 커가는 거죠. 하나님에 대한이해가. 그래서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도권과 그분의 설득함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올 한해도 그럴 거에요.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만남을 통해서. 아픔과 상처를 통해서 그렇게 만들어 갈 겁니다. 4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것은 여러분들이 조심해서 정확하게 읽어야 될 문장이 뭐냐 하면 이에 아브람이여호와의 말씀을 어떻게 했어요? 따라갔고 라는 말은 정확히 다시 번역하면 말씀에 이끌려 가고 이 뜻이에요. 순종적 차원에서 따라 갔다는 말 보다는 말씀의 능력에 아브라함이 계속 지금 어떻게 되는 거죠? 이끌려 가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그 말씀이 아브람의 인생을 핸들링하기 시작한 겁니다. 말하자면 코가 꿴 거죠. 말씀의 굴레에 아브람의 코가 드디어 꿴 겁니다. 꿸 때에는 하나님의시각에서 이제는 네 인생의 네 행보를 네 마음대로 가게 내가 두지 않겠다 이 선언이 이미 아브람 생애 속에 시작이 된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 가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완성된 수준에서는 전부 그 공로를 누구에게 돌려 줍니까? 아브라함에게. 아이고 잘 했다. 아버지가 사실 다 해주고 나서. 아휴~ 잘 했다. 착하다. 안 아픈 것도 예뻐. 그런데 사실은 아버지가 모든 환경을 만들어주고 아버지가 이끌어 주시는 거거든요. 그런데 믿음의 장에 가서는 믿음으로 모세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만 해도 막 의기 양양하고 자기 잘나서그런 줄 알고 그러다가 요한 계시록 4장에 가보니까 24장로들이면류관 쓰고 있던 거 슬그머니 벗어가지고 보좌에 계신 어린 양께 돌려 드리죠? 아 이게 내가 한 게아니었구나. 저 분이 다 하셨구나. 그리고 이 면류관을 벗어서어린 양께 돌려 드린단 말이에요. 성경 전체의 이야기에요. 사랑하는삼일의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2017년 한 해를 선물로허락하신 하나님께 이 한해도 묵묵히 붙들려서 지금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조금씩 조금씩 붙잡고, 붙들고발견하는 순종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하겠습니다. 무엇이 변치 않아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