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70421
성경구절
창 25:19-34
시리즈 순서
창세기(34)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34)
명분과실리
창25:19-34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사십 세에 리브가를맞이하여 아내를삼았으니 리브가밧단 아람의 아람족속 중 브두엘이요 아람족속 중 라반의누이였더라
21 이삭이그의 아내가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해산 기한이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같아서 이름을에서라 하였고
26 후에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육십 세였더라
27 그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들사람이 되고 야곱은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거주하니
28 이삭은에서가 사냥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리브가는 야곱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에서가 맹세하고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판지라
34 야곱이떡과 죽을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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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눈길을 끄는 뉴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찾아보니까아마 보신 분도 꽤 있을 텐데 이런 뉴스였습니다. 미국의 스텐포드 대학에 방글라데시 출신 한 소년이에세이를 쳤는데 딱 한 문장을 써서 그 한 문장으로 합격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무슬림 출신이고 흑인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지아드 아메드입니다. 지아드아메드. 출제 문제가 뭐였냐 하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유입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왜? 이것이 그 에세이를 써야 하는 학생들에게 출제 된 문제였어요. 그런데이 소년은 딱 한 문장을 썼어요. 그 한 문장이 뭐냐 하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이거를 백 번을 썼어요. 같은문장을. 100문장을 쓴 게 아니고 같은 문장을 백 번을 쓴 겁니다.이 주제는 이 소년에게 현실의 문제이고 가장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에 전혀 망설임 없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이 문장으로 모든 출제원들에게감동을 주어서 그 명문대에 입학을 하는 경이로운 일이 생긴 겁니다. 저는 이 소년이 명문대에 입학했다는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사람은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사는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누군가 똑같은질문을 했을 때 나는 과연 한 문장으로 내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인생의 주제를 뭐라고 쓸 수 있을까? 동일한도전이라고 저는 봅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문제는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오늘 우리는 이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서우선 이 문제에 좀 접근을 하면 좋겠어요. 지금 아브라함은 175세로25장에 들어와서 그의 수명을 다합니다. 그가 고향 땅을떠났던 나이가 75세에요. 그리고 그가 향수를 다하고 숨을거두는 나이가 175세 라면 적어도 나그네 생활을 얼마나 했다는 얘기죠? 100년. 100년 동안 그는 나그네 생활을 했어요. 자, 그런데 성경 기자가 이 아브라함의 일생을 아주 독특한 단어로정확하게 이렇게 정리를 해놨습니다. 우선 1절을 한번 볼까요?
아브라함이후처를 맞이하였으니우리가 아시는 대로 2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죽어서 3년된 이후에 아들이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장면이 24장에 연출되고 있어요.그리고 그 앞에 아브라함의 아내는 가나안 땅에서 죽죠. 그리고 그 밭을 이제 값을 지불하고넉넉히 지불하고 소유를 삼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내를 매장합니다. 아브라함은이제 싱글이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결혼을 한 겁니다. 그런데그 결혼한 아내의 이름이 그두라에요. 그두라. 이 그두라라는 말은 향기 나는 여자, 좋은 이름이죠? 향기로운 여자그런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면 맞을 것 같아요. 자, 그리고이제 5절을 볼까요?
아브라함이이삭에게로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하였더라.
자, 뭔가 아브라함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생의 체득을 통해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정리를 하기 시작하죠.다 재산을 분배하는데 여기 서자들에게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재산을 주어 그랬어요. 이 재산을 주어 라는 말은 이삭에게 소유를 주었다는 의미와 좀 다릅니다. 이삭에게소유를 주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이삭의 몫을 정당하게 물려 주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서자들에게사용된 재산을 주어 라는 이 표현은 히브리 문법 체계를 그대로 해서 다시 번역을 하면 혜택을 주었다 그 뜻이에요.안 줘도 그만이에요. 그런데 재산을 나누어서 그 서자들에게도 아브라함이 넉넉하게 혜택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진짜 이유가 그들을 이삭의 곁으로부터 떠나 보냅니다. 정리를 하는 거에요. 혹 있을지 모를 사후의 갈등을 미리 차단하는거에요 .정리를 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제 볼까요? 7절서부터 읽겠습니다.
아브라함의향년이 백칠십 오세라방금 말씀 드렸죠? 75세에 고향을 떠났으니까 나그네 생활이 100년. 나그네 생활 100년 만에 타향에서, 실제 가나안은 아브라함의 원래 고향은 아닙니다. 그런데 고향이죠. 가나안에 오래 살았으니까.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도 태어난 곳은한 3,4년 밖에 안 되고 거의 서울에서 산 분들, 진짜고향은 어딥니까? 그런 분들은 고향이 두 개라고 ,말하죠. 보통. 저 북녘에서 피난 오신 분들도 태어나기는 북녘에서 태어났지만피난 와 산 세월이 벌써 60년 넘다 보니까 남쪽이 제 2의고향이 되듯이 아브라함도 두 개의 고향이 있는 셈이죠. 가나안 땅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물려주신 땅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에게 제 2의 고향인데성경을 좀 보십시다. 8절
그의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여러분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가지고 그냥 아등바등 다 늙어가지고 힘들게죽었다 그런 부정적인 뉘앙스가 아니라 이 표현은 원문에 충실히 번역을 하자면 그의 허락한 인생을 충분히 풍성히 누리고 다 그의 갈 길을 마쳤다그 말이에요. 굉장히 복된 죽음을 묘사하는 거죠. 우리 주변에도어르신을 보면 그게 이제 속내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저빨리 평안히 하나님 앞에 가는 게 소원이라고 그렇게들 얘기하세요. 진짜겠죠. 신앙인이시니까. 그런데 우린 한 가지 좀 더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앓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는 게 다는 아니에요.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허락한 수명속에, 달려갈 길 속에 하나님께서 설정한 모든 계획을 다 이루었는가?아브라함에게 사용된 표현은 바로 후자 쪽을 얘기하는 거에요. 얼마나 복된 죽음인지 몰라요.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한 모든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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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다 드러내고 죽었다 그 말이에요. 달려갈 길을다 마치고.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생사 관을 다시 한번 엿볼 필요가 있는데, 아시는 것처럼 사도바울은 많은 신약 서신을 기록한 중요 유작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서신이 디모데후서입니다. 그 안에 명문장 하나가 우리 귀에 익숙히 잘 알려져 있어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 앞에 어떤 구절이 있습니까? 전제와 같이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디모데 후서 4장 6절말씀이에요.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바울이 사용한 죽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앞에 놓고 바울이 사용한그 죽음에 대한 묘사는 죽음을 암시하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요. 떠나다는 뜻 밖에도 죽음에 대한 단어가아니에요. 죽음에 대한 묘사는 여러 가지 묘사가 있을 수 있죠. 종말, 끝장, 소멸, 사망. 이런 다양한 표현과 수식어가 가능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일체 소위 우리가 생물학적인 죽음을 암시하는 그런 단어나표현은 쓰지 않아요. 아날로세우스. 이 단어는 떠나다 라는단어인데 여러분 이 단어는 로마 군인들이 병영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군대 작전용 용어입니다. 아날로세우스. 아시는 것처럼 로마 군인들은 1년에 6개월 정도를 항상 영내 밖에서 임시 천막을 치고 거기에서 피비린내 나는 생사를 넘는 전쟁을 치러 내요. 물론 고향도 가족도 떠난 채. 피가 뒤엉키는, 팔 다리가 끊어지는, 눈알이 뽑히는 이런 처절함을 동료들과 한 막사안에서, 한 장막 안에서 부대끼면서 살아요. 같이 잠들었던출전한 동료가 어느 날에는 돌아오지 않아요. 때로는 다리 하나가 끊어져서 돌아오고 팔 하나가 잘려서돌아오는 이런 생활이 로마 군인들의 일상입니다. 얼마나 하루 하루가 핏발이 서고 긴박한 나날이겠어요. 그들은 무슨 소풍을 간 게 아니에요. 그러다가 그 전쟁이 종료되었다는나팔 소리와 함께 승리의 선언이 지휘관에 의해서 던져집니다. 제군들 지난 3년간 이 청파동 평야에서 대단히 수고 많았다. 오늘 아침 07시 35분 부로 저 여의도 전투에서 아군의 승리로 이 전쟁은 종료되었다. 전쟁 승리와 종료 선언이 이뤄지는 순간 아군의 상황은 어떻게 변할까? 처절한울부짖음이 섞인 환호성과 함께 칼이 하늘로 날아가고, 철모가 하늘로 날아가고. 야! 살았다. 그리고엉켜 부둥켜 안고 울겠죠. 사나이의 눈에 흘러 내리는 뜨거운 눈물. 그것은생사를 함께 한 동료들 외에는 느낄 수 없는 진한 감격이죠. 그러면서 함께 이 전투에서 삶을 살다가이미 주검이 되어 떠난 동료들이 머리 속에서 스쳐 지나가고 그리고 그들이 제일 먼저 임시로 묵었던 텐트로 달려갑니다. 왜? 짐을 쌓기 위해서. 그런데짐을 싸기 위해서 반듯이 먼저 하는 게 뭐냐 하면 텐트를 걷어야 해요. 근데 군대 다녀와 보셔서 알겠지만텐트 칠 때와 걷을 때는 정확히 순서가 역순입니다. 그렇죠? 칠때 순서의 그대로 역순으로 텐트를 걷어야 해요. 그러면 이 텐트를 허물기 위해서는 폴대라는 막대기 끝에달린 줄이 있습니다. 이 줄은 양쪽 땅에다가 역방향으로 망치로 탕탕 쳐서 박아놓습니다. 고정을 시켜놔요. 양쪽에서 당기도록. 그래야 텐트의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그런데 병사들이 이제 전쟁이끝났어요. 짐을 싸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이 텐트의 줄을풉니다. 줄을 딱 풀 때, 이 텐트가 폭삭 무너집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 육신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새것이 덧입히운다는 말이 모든텐트는 사실상 육신을 가리키는 거에요. 이건 무너지게 돼있어요. 이텐트를 짐을 쌓기 위해 무너뜨려야 하는데, 전쟁 끝났다고 발로 차고 무너뜨리는 게 아니에요. 줄을 풀어요. 줄이 풀리면 텐트는 폭삭 무너집니다. 아시는 것처럼 병사들이 이 줄을 풀 때, 줄이 풀릴 때 그 상황을떠난다, 아날로 세우스라는 단어를 써요. 그러면 병사들이이제 고향 집에 어머니를 향해서 기다리는 아내를 향해서 달려갈 마음에 이 줄을 풀 때 무슨 심정으로 풀까요?1, 억지로 푼다. 2, 마지못해 푼다. 3, 죽지못해 푼다. 4, 소풍을 앞둔 소년의 설레임처럼 푼다. 몇번일 것 같아요? 묻는 게 등신이지 4번이죠? 자, 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냐 하면 사도바울은 지금 앞에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았어요. 뭐로 봤다는 얘깁니까? 나는 이제 이 고단한 육신의 삶을 끝내고 아버지 집으로 간다. 이걸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버지 집에 대한 설레임이 있는 거에요. 이게신자의 현 주소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표현 중의 하나가 살면 살아서 할 일이 있고, 죽으면 죽어서 갈 곳을 가진 자가 누굽니까? 우리 신자들입니다. 믿습니까? 이치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 군 생활할 때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구에요? 네? 작대기 네 개 달고 전역 신고하는 사람 제일 부럽잖아요. 어느 누가그런 전역 앞둔 병장에게 “아휴 너 어떡하냐? 전역해서 안됐다” 그럴 사람 있어요? 제 경험에는 없어요. 옛날에 위병소 전역 신고하고 나가다가 간첩 넘어오는 바람에 붙들려서 며칠 더 근무했던 친구 하나 있어요. 운 되게 없는 친구죠. 그런 친구가 가끔 있었어요. 시대가 험할 때. 우리에게 적어도 죽음은 풍성한 겁니다. 믿습니까? 이 세계관이 극복된 사람은 사실 어떤 일 앞에서나 사람앞에서 무섭거나 두려울 게 없어요. 뭐가 두려워요. 뭐가무서워요. 그래 봐야 죽는 것 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죽음은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거든요. 죽음이라는 관문은 우리가 그냥 통과하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하단 말이에요. 거기에 겁 먹지 마세요. 바울은 그리고 아브라함은 공통점이 뭐냐하면 적어도 오늘 주께서 오라 소명하는 그 순간에도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는 고백을 갖고 있었다는 거죠. 오늘8절에 그의 나이가 높고 라는 말은 그 인생에 허락한 모든 것을 다 감당했다라는 뜻이에요. 사랑하는 우리 청년 여러분, 이것은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셔서 죽음이얼마 안 남은 그런 노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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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구절이 절대 아니에요. 아시는 것처럼 오는 건순서대로 오죠. 그런데 가는 건, 내가 먼저 갈지 여러분들이먼저 갈지 모르는 거에요. 객관적으로 얘기해서. 그래서 사도바울이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할 때 그 가까웠다는 말은 의미적으로 이런 뜻이에요. 나는 늘 그 순간을항상 옆에 두고 살았다 그 말이에요. 옆에 두고 살았다. 그말은 무슨 뜻이죠? 에녹의 삶처럼 나는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처럼 살았다는 뜻입니다. 높고 나이가 많아 죽었다 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자, 그런데 성경을 좀 더 보십시다. 9절
그의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알의 아들 에브라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 이것은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 아브라함이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 헤오리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자, 여기 분명 이삭에게는 하나님이 뭘 주셨다고 돼있죠? 뭘 주셨어요? 복을 주셨다고 돼있어요. 왜? 복 싫어요? 이삭에게뭘 주셨죠? 하나님이? 네,복을 주셨어요. 그런데 성경 전 후 문맥을 잘 보시면 복을 주신 것 같지 않거든요. 이게 문제에요. 그러면 여기서 언급하신 복의 정체는 우리가 기대하거나이해하는 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야 해요. 왜냐 하면 아브라함은 그두라 라는 후처를들이고 나서도 이어서 계속 자식을 생산합니다. 자식을 또 계속 낳아요.게다가 이복 형님이긴 하지만 이스마엘은 더 많은 자손을 계속 낳습니다. 그 당시 부의 가장중요한 가치는 자손이에요. 그리고 땅입니다. 그런데 지금이삭은 복을 주셨다는데 아기가 없어요. 무려 마흔 살에 장가를 갔는데도 60세까지 없었어요. 그럼 결혼한지 몇 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는 거에요? 20년 동안. 그 사이에 아브라함은 새 장가를 들어서 계속 자녀를생산했고, 그두라의 후손들이 태어나죠? 그리고 이스마엘도자녀들을 계속 번성시켜 나갑니다. 그 사이에 낀 이삭은 복을 주셨다는데 복 그림자도 지금 못 찾고 있어요. 이것이 신자의 운명이에요. 하나님은 우리 신자를 하나님의 자녀들을다루시는 하나님의 경영 방식이 굉장히 언제나 독특하세요. 한번에 옜다 하고 주시는 법이 절대 없어요. 애를 끓이고 바짝 바짝 속을 태워서 내게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처절하게 확인시킨 다음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매달리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우리를 몰고 가신다는 데 우리의 속상함이 있는 거에요. 그렇죠? 이게 너무 느끼는 분위기에요. 지금. 너무 공감하는 분위기. 어쩌면 좋아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여러분 이삭을 통해서 누가 나야 합니까?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씨가 나와야 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경영속에 이루어지려면 인간의 가능한 여지나 조건 속에 만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누가 홀로하는 역사임을 드러내야 할까요?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역사임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가능한 환경으로우리 성도들의 인생을 끌고 가시는 거에요. 제가 주변에도 이렇게 참 건강한 신앙인들 보면 제 마음에도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저렇게 선하게 깨끗하게 착하게 사는 성도는 좀 한번 질끈 눈감아 주시지.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왜 저렇게 오래도록 혹독하게 두실까하는 마음이 저절로, 제가 다 탄식이 나올 정도로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하나님은 늘 바닥을 보이세요. 항상 바닥을 보이셔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분의 온전한 은혜를 드러내는데집중케 하십니다.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이걸 보통 우리는신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호리라도 다른 것에돌리지 못하도록 몰고 가시는 대는 하나님만한 전문가가 없으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손길을 피해 다닐수 있겠어요? 못 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외상이없으시더라고요. 외상이 없이 반듯이 값을 받아내시고 지불케 하셔서 하나님께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가능성이냐 여지를 촉발시키고자 하는 그런 스토리가 전혀 없습니다. 전부 우리 지난 시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그들이 왜 갑자기 헷가닥 했을까요? 소심하고 조심하던 사람들이. 이게십자가의 능력이에요. 다 무너진, 다 절망되어진 그 십자가현장 앞에서 오히려 두 사람은 달라집니다. 그걸 그 사람들의 무슨 믿음과 용기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어요? 아니에요. 그게 십자가의 신비고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자, 우리 오늘 이제 본론인 몇 절을 가시냐 하면 27절을 한번 보십시다. 그 아이들이 이제 태어났어요. 장성하게 되었죠.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 들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성격상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장막에 거주합니다. 28절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28 이삭은에서가 사냥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리브가는 야곱사랑하였더라
예, 28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던 동기가 뭡니까? 여기 잘 보세요.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저도 고기를 참 좋아하는데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여러분 나중에 에서가 큰 실수를 하죠. 아들을 바꿔 축복을 합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이 뭐였습니까? 눈을 점점 못 봤어요. 시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성경에서 반듯이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와 직결되어있는 상태를 그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주일에 엠마오 동상으로 향하여 가던 두 제자의 눈이 어떻게 됐습니까? 보지못했어요. 옆에 주님이 계시는 대도 보지 못했다 그랬어요. 또역설적인 현장을 한번 볼까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으로 보게 된 진짜 상황은 눈이 가리웠을때 보게 됐어요. 그렇죠? 눈이 가리워졌을 때 보게 됐습니다. 이 역설이죠. 에서는 육신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사실은 이것은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졌다는 생물학적인 과정을 묘사한 대목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육신의 별미를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수를 하죠. 그런데여기에 참 놀라운 신비가 감춰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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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요, 이삭하면 사실 신앙인으로 괜찮거든요. 살아온 전 생애의 과정도 그렇고, 큰 대가 없이, 성품도 온화하고 착하고 싸움 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가 노년에 실수를 크게 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고집스러운 일관된 사랑의 태도입니다. 인간의 실수, 엄마도실수를 하고 아버지도 실수를 해요. 두 아들을 향해서. 그렇죠? 그런데도 그 인간의 실수를 하나님이 계속 뚫어 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꾸려 가신다는 거에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택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을 한번도 꺾어 보신적이 없어요. 자 여기에서 이제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로 결론을 좀 맺을까 합니다. 29절부터읽겠습니다.
29 야곱이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풋노트에 에돔의 뜻이 뭐에요? 붉다라는 뜻이죠. 31절 다같이시작
31 야곱이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참, 놀라운 인간이에요. 어떻게 그 형의 허기진 기회를 포착해서 딴 것도아니고 장자의 명분을 거래할 생각을 했을까? 기가 막힌 인간입니다. 신인류라고우리가 볼 수 있죠. 신인류. 그래서 오늘 제목이 사실은명분과 실리입니다. 그런데요 그리스도인들은 명분론자입니다. 명분때문에 사는 거에요. 자, 그런데 이때 우리는 에서의 반응을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32 에서가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죽게 되었다는 말은 허기져서 거의 아사 직전에 있다 그 말이겠죠?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니까명분을 눈 앞의 실리와 서슴없이 바꿔버립니다. 명분 그 따위 것이 뭐 중요하냐? 내가 지금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러자 33절
33 야곱이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에서가 맹세하고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판지라
34 야곱이떡과 죽을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자, 우리는 이 에서의 망할 행동에 대해서 성경 신약 기자는 어떻게 해석하는 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어요 히브리서11장 띄워 주세요. 같이 시작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장자의명분을 판 에서를 히브리 기자가 뭐라고 소개하냐 하면 망령된 자, 영혼을 망하는 자리에 둔 자와 같다그 말이에요.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거에요. 야곱은어쨌든 발 뒤꿈치를 잡을 정도의 캐릭터를 가지고 태어날 때부터 장난 아니게 태어났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에게는 한 가지가 있었어요. 여기서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겠다는 그 의도를 아셔야 해요. 오늘신약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런 고백이에요 나는 어쨌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이 고백이에요. 나는 어쨌든 주님의 구원하심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허물, 능력, 못남, 잘남 이게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예수로 구주 삼겠습니다. 그런데 실리앞에 에서는 그게 대수냐 팔아 먹은 거에요. 영혼을 망하는 자리에 둔 거죠. 서두에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정말 내가 뭘 중요하게 여기는가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야 해요. 항상 생명 쪽에 내가 운명을 거는가? 누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한다고요? 천만에요. 우리마지막으로 로마서 9장을 한번 넘어가 보십시다. 이 구약의이야기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다가 기가 막히게 이런 설명을 하나 남겨 놨습니다. 로마서 9장 개혁주의 기독론에 굉장히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9절부터 교독을좀 하죠.
약속의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노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음이라 하시니라
10 그뿐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본문 읽으면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어요. 야곱은 사랑한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에서는 아무 행위도하기 전에 왜 미워하였나? 여기 사랑했다 미워했다는 말은 조금 수사적 이해를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택했다, 유기했다 로 이해를 해야지, 우리 식 개념으로 사랑했다, 미워했다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요. 하나님이 택했다, 안 택했다의 개념을 여기서는 뭐라 그랬다고요? 사랑했다, 미워했다 로 표현을 한 겁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야곱이 장자의명분을 끝까지 어떤 상황 속에서 붙들었어요. 그 다음에 잘 보세요. 누가더 잘 살았어요? 누가 더 떵떵거리고 잘 살았나요? 에서가. 에서가 훨씬 잘 나갔어요. 야곱 만나러 올 때도 군대 장난 아니게데리고 과시하면서 그런데 장자의 명분을 이렇게 처절하게 사놓고도 야곱은 평생 어떻게 살았나요? 그냥남의 밥 얻어 가면서, 다른 나라의 식객으로 흘러 들어가서, 형만날 때에도 항상 조마조마 해가지고 주를 뵈옵는 것 같사오니 별 아첨을 다 하죠. 야곱의 생애를 추적하다보면 아휴 치사해서 못 읽겠어요. 치사해요. 왜 하나님의자녀가 그렇게 살까요? 그런데 보세요. 야곱은 이 장자의명분을 챙기는 대가를 처절하게 받습니다. 그는 20년간을고향을 떠나게 되죠. 그리고 저 외삼촌 댁에 도망 가서 그의 고백대로라면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돼요. 눈 부칠 겨를 없이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자기 고백이에요 정말험악한 세월을 보냈어요. 자기 위에 사람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기를 뜯어먹고 속여먹는 인간이있더라고요. 라반에게서 정말 인간 훈련을 너무너무 잘 받은 거에요. 야곱보다한 술 더 뜨는 사람이었어요. 사람 길들이는 방법은 더 센 사람 붙이는 게 제일 좋아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야곱은 어떻게 바뀌죠? 금은 보화가 귀중하지 않은 걸 알게 돼요. 그럼 마지막 창세기 49장에 그가 요셉을 손 얹어 축복할 때 기가 막힌 얘기를 하나 합니다. 멋진얘기를 하나 합니다. 야곱이 자길 가리켜서 그런 얘길 해요. 내 축복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부여조 라는 말은 조상들의 복수에요. 그리곤 요셉에게 안수를 하고 복을 빌어요. 그러면 야곱의 부여조는일단 바로 윗대가 누굽니까? 이삭이에요. 그리고 그 윗대는더 엄청난 아브라함이에요. 그러면 이삭이 야곱이 물려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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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은사실상 누구로부터 물려 받은 겁니까?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 받은 거에요. 그런데 어떻게 야곱의 자기 복이 아브라함하고 이삭 합친 복보다 더 낫다는 거에요. 말이 되는 소리에요? 물질적 개념으론 말이 안 되요. 게임도 안 되요. 그런데 어떻게 말이 됩니까? 그가 거기서 복의 개념이 달라지죠. 내가 그토록 확장시키려 했던이 땅의 것들이 복이 아니로구나. 그러면서 그의 복의 개념은 하나님을 경험한 경험 치로 놓자면 나 따라올사람 있으면 나와 봐, 이 뜻입니다. 야곱이 뭐에 눈을 열었는가하면 하나님을 얼마나 혹독하게 경험했는가가 복이라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됐어요. 그 얘길 하는 거에요. 나보다 하나님 겪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 그때서야 복의 개념이달라지는 거에요. 창세기 49장에서는 내 축복이 우리 조상들의복을 합친 것보다 낫다는 말도 안 되는 얼토당토 한 얘길 해요. 그런데 그 의미를 가만히 짚어 보면그게 세상적인 복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 자녀들 여럿 키우는 중에도 아주 범생이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서라면 서는 그런 말 잘 듣는 애들은 부모와 깊은 정이 없어요. 그런데 늘 도망가고 지갑 열어서 지 돈마냥 빼가고, 또 전화하면경찰서 가있고, 그냥 늘 엄마의 가슴 한복판에 비를 내리게 한 그런 자녀들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런 자녀들이 정말 부모를 알아요. 그리고 부모와히스토리가 있잖아요. 아들과 엄마만이 아는 히스토리가 있잖아요. 우리가하나님하고 그걸 만들어 가는 거거든요. 야곱이 그게 복인 줄 나중에 알아요. 여러분, 그래서 여러분 중 삶이 좀 우격다짐처럼 보여지고 그냥 흔들거리고뭐 삐거덕 거리고,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들과 뭘 만들어 가시는 거죠?그렇죠. 히스토리를 만들어 가시는 거에요. 왜? 여러분들의 영혼을 보석처럼 정하게 하시려고. 그래서 야곱의 인생의모든 불순물들을 다 뽑아내요.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단련한정금처럼 되어서 복의 개념이 달라집니다. 그의 고백 속에. 여러분들이매주 금요일 만나는 밤에는 그런 어둠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적의 밤, 홍해가 갈라지는 밤이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찬양 하나 하십시다. 우리 보좌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