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미워하느니라
24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증언하느니라
(00:00-10:00)
지난 주 설교 내용은 요약을 해드리자면 이런 의미였어요. 15장1절부터 오늘 본문 앞 부분까지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우리는 가지와 같은 존재다. 그러면 그 가지 끝에는 반듯이 뭐가 맺히게 되어 있죠? 열매가 맺히게되어 있어요. 그런데 가끔 가다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나온단 말이죠. 본문에 보면 그런 가지는 잘라서 불에 태워 버린다는 심판의 선언이 이루어집니다. 혹자는 이렇게 오해를 할 수가 있어요. 야,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더라고 우리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하고 여기 표현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 구원은심판으로 바뀌고 취소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겠죠?그런데 15장에서는 그 의미가 아닙니다. 알고봤더니 그 가지는 붙어 있는 척 했던 가짜였더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그 가짜가 밖에 많을까요? 안에 많을까요? 안에 의외로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 본문이 앞 부분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리스도와 나인 관계.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항상 공감되어 있고 생명의 교제가 나누어져 있고 긴밀하게 거하여 있는가? 근본적인문제를 강조하는데 사실상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래서 지난 주 주제는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얘기했어요. 오늘은 조금 패턴을 바꾸어서 세상 속의 제자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또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제자들과 세상의 관계를 설명을 좀 나누겠습니다. 오늘 표현대로라면 이런 거죠.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가? 이 부분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십시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세상이 우리를미워한대요. 요한 1서 3장을띄워 주시겠어요?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세상이 우리를미워한대요.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이상하답니까? 정상이랍니까? 정상이라는 거죠. 세상은 생리적으로 우리와 안 맞도록 되어 있어요. 원리와 체질과 질서가. 그래서 항상 버걱거리니까 우리가 힘들어요. 세상은 항상 우리를 함정을 파고 공격하고 압박하고 핍박해요. 그런데그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거에요. 이 말은 뒤집어 얘기하면 그게 정상이다. 왜? 그 근본적인 이유를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3장 한번 띄워 볼까요?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내가 그 소리는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자, 여기 석 절에 걸쳐서 유독 강조한 것이 ‘난’ 이라는 표현입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육이요. 태어났다 그 말이에요. 또 성령으로, 영으로 난 사람은 영이다. 이거 누구와의 대화의 한 토막이죠? 예수님과 한 밤중 찾아왔던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한 토막이에요. 니고데모가영 못 알아들으니까 말을 깨닫지도 못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6절 입니다. 6절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영이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어느 쪽으로 난 사람들입니까? 이 때 우물쭈물하면 안 되요. 어디로난 사람들이에요? 영으로 난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영으로난 사람들이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순간 우리의 출처는, 신분은달라져요. 왜? 예수님 자체가 어디서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위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한 몸이 되고 한 공동체가 되는순간 우리 모두는 순식간에 위에서 난 자가 되요. 그런데 위에서 났는데 아직 머물기는 이 땅에 머물러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모든 생리적인 DNA가 이제 안 맞는거에요. 가끔 우리 청년들 하고 선교지에서 가깝게 지내다 보면 별의 별 사연을 다 듣게 돼요. 교회에서는 늘 스크린으로만 저를 만나게 되는데 선교지에 가면 청년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돌아도 다니고 운동도같이 하고 땀도 같이 흘리고 복음도 같이 전하고 하니까 너무 좋아요. 청년들도 좋아하고. 진실이겠죠? 좋아요. 그런데이 친구들이 돌아온 얘기를 들어보면 참 신기해요. 어느 날 너무 몸도 마음도 아픈데 옆 집에 사는 장로님한 분이 기도를 해주겠다고 그러더래요. 다른 때 같으면 그런 거 딱 질색이고 원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날은 왠지 기도를 받고 싶더래요. 그냥. 이게 여러분 그냥 되어지는 마음이 아니에요. 또 한 날은 자매한테차이고 쓸쓸하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거리를 걷고 있는데 십자가 그 뾰족한 지붕에 그것이 눈에들어오면서 교회나 가볼까? 이런 마음이 든 거에요. 마음이가난해 지니까. 그렇게 발을 디뎌 시작한 것이 간사 생활 7년뭐 이렇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우연히도 아니고 왠지도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마음 속에 그런 정서적인 또는 환경적인 요인들을 다 설계하셔서 사실은 택한 백성이기에 그를끌어 들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절대 우리 인생 속에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게 영이 안 맞으면 천하 어떤 설득력 있는 조건을 제시해도 싫은 거에요 싫은 데는 더 확실한 조건이없어요. 또 반대로 왠지 끌리는 데는 더 확실한 조건이 없어요. 그걸어떻게 설명을 합니까? 논리적으로. 논문을 쓰겠어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이렇게 설명이 가능하겠습니까? 아니에요. 왜? 이제는 출처가 달라졌기 때문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이미 그안에 생명의 씨앗이 심겨져 있기 때문에 그게 조건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사실은. 그런데 그 조건이 탁 임박하고 맞아 떨어질 때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동기가 되고 계기가 되는 거죠. 그것은 출처가 달라졌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에 의해서접붙여지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는 방면에 또 격렬하게 또 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은왜 끝까지 반대를 하게 되는가? 우리 요한복음 7장을 띄워주실까요?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알고가 나옵니다. 내가 어디서 온 걸을 알거니와 그러니까 안 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과 사실 동의어입니다.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뭐 못하나? 예, 이렇게정확하게 두 부류가 나뉘어집니다. 한 쪽은 그렇게 받아들여져요. 믿게되고. 그냥 믿어져요. 이건 기적이죠, 은혜죠. 그런데 반면에 한 쪽은 알지 못해요. 아무리 설명해도. 그 사람이 배움이 짧아서도 아니에요. 대학교 교수인데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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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을 더 볼까요?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계속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결국 요한복음의 장마다 빠뜨려지지 않는 주제가 무지입니다. 알지 못하였느니라. 깨닫지 못하였더라. 보지 못하였더라. 이걸 뭐라 그러죠? 무지라 그럽니다. 무지. 여러분성경에서 무지는 곧 뭔지 아세요? 죄입니다. 우리 요한복음16장 9절을 띄워 주시겠어요?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자, 이 본문을 잘 보세요. 굉장히 중요한 본문입니다. 우리 여기 청년들도, 성도들도 기독교의 죄의 정의에 대해서 새로정의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가 뭐냐? 죄는 그리스도를알지 못하는 겁니다. 모든 죄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요. 소위우리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윤리 도덕적인 죄는 죄가 아니에요. 그건 죄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증상들이라고얘기하는 거죠. 죄인이기 때문에 결실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열매들이죠.그게 도덕적인 죄로, 윤리적인 죄로 나타나는 거에요. 그럼그 뿌리는 뭐냐? 죄 때문인데 그 죄의 기초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게 죄에요. 즉 무지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영적인 무지. 성경은 그것을 매 장마다 강조를 해요. 그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그들이 나를 뭐 아니 함이요? 믿지 아니함이요. 자, 그러면 이제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제자가 된 우리들에게 삶으로 어떻게 살아내야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불평 부당하고 안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세상의 생리 속에 부득불 던져져있어요. 그래서 안 맞아요. 하지만 우리의 주어진 인생의임무 기간 동안에는 여기에서 어쨌든 버텨내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두 달여 동안 세상의 방방곳곳을많은 성도들이 자비량으로 다니면서 선교를 했고, 국내 곳곳을 다니면서 선교를 했어요. 그리고 감동도 많이 받고 은혜도 많이 받았어요. 어쩌면 그것은 특별한일정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니까, 우리가 이미 각오를 했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건 또 공동체 단위로움직여야 되는 구조이다 보니까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오늘부터는 우리가 일상의 선교로 떠나야 해요. 일상의 선교는 쉬울까요? 오늘 마지막 절 26절을 보실까요?
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보혜사 성령님이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역할과 기능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이에요. 그분을 가르쳐주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걸 성령님이 허공에서 막 소리를 내셔가지고 예수 믿어라, 예수는 어떤 분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지막 절을 한번 같이 보십시다. 시작
27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증언하느니라
자 그 증언의역할을 누구에게 부탁하신다는 얘기에요? 예수님의 제자들, 오늘날 여러분들에게 그 증거와 증언의 역할을 부탁한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선교 끝났다고 선교가진짜 끝난 게 아니고, 증언의 순종과 역사가 진짜 끝난 게 아니고, 이제는일상이라는 더 만만치 않은 선교지로 출발을 해서 거기에서 살아내는 거에요. 우리 찬양대들이 불렀던 오늘찬송가인데 좋은 가사죠? 우리 한국 교회는 돌아 온 간증은 많아요. 내가어떻게 돌아왔고, 이렇게 해서 회개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교회로 돌아오게 되었고, 돌아 온 간증은 많은데 정말 드문 간증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낸 간증. 이게 많이 약해요. 그러면 오늘 이 본문이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말씀은 보혜사 성령님이 오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할 텐데 그것을 누굴 통해 하시겠다는 결론입니까? 저와여러분들을 통해서. 일상의 현장에서. 그런데 일상은 선교지만큼 쉽지 않아요. 일상이 어떤 의미에서 더 어려워요. 제가기억나는 인터뷰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나라 체육 하는 운동 선수 가운데, 다 훌륭하지만. 운동 선수들은 다 훌륭해요. 피겨 선수인 김연아 선수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그분이 훌륭한 것은 한국인이 가질 수 없는 예술성, 단순히 피겨 선수로서의 기능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성이 정말 창의적이고 탁월해요. 그러니까 모든 관중들이 거기에서 매료가 되는 거죠. 벤쿠버 동계올림픽 때였나요? 금메달을 땄죠. 돌아와서 얼마 안 있었는데이 김연아 선수가 아이스링크장에서 연습하고 있는 현장에 기자가 찾아가요. 그래서 막 얼음판을 돌고 있는,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김연아 선수를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숨이가쁘겠죠. 그런데 기자가 왔으니 인터뷰에 응해야 할 것 아니에요? 이렇게질문 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링크를 돌고 연습을 할 때는 우리 김연아 선수는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니까 김연아 선수가 뜬금없다는 얼굴로 잠시 텀을 두더니, 생각은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도는 거지. 그런데 그 말이 참많은 걸 내포한 말입니다.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도는 거지. 그냥 연습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좀 머쓱했죠. 기자가. 그래서 이어 또 묻습니다.그러면 선수 생활 하는 과정에서 제일 힘들었던 기억은 뭡니까? 글쎄요. 뭐 딱히 힘들었던 기억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기자가 흠칫 하니까매일 힘들었으니까. 그게 어려운 거에요. 매일 말도 안 되는일상에서 그 똑 같은 일을 반복해 내고 거기서 떠밀리지 않도록 버텨내고 있다는 게 사실은 힘든 거에요. 그게쉬운 줄 아십니까? 제가 구약의 한 인물을 소개할 텐데 우선 창세기 37장을좀 띄워 주세요. 이 대목은 요셉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양 치러 떠난 형들을 찾으러 가는 장면이에요. 요셉은 대표적인 이미지가 꿈꾸는 자인 거죠. 그래서 형들이 꿈 꾸는자가 오는 도다 그랬어요. 그런데 보세요. 요즘 청년들에게꿈은 참 눈물 나는 단어가 되고 말았어요. 내가 꿈 같은 걸 꾸어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그저오늘 하루 버텨 내기에 힘든 현장에 우리 청년들이 내몰려 있어요. 요셉은 어느 날 꿈을 꾸죠. 자기 볏단을 중심으로 형님 볏단이 자꾸 절을 하는 거에요. 그런데얘가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꿈 의미를 몰랐던 것 같아요. 알았다면 형들에게 그렇게 잘난척 하고 얘기할 수가 없죠 형 형 들어 봐. 내가 꿈을 꿨는데 내 볏단이 중앙에 있고 형님 볏단들이주변에 둘러 서있는데
(20:01-30:00)
형들 볏단이 내볏단을 향해 막 절을 하는 거야. 그런데 이 집안 구조가 복잡하거든요.엄마가 몇 이에요? 넷. 사람 사는 세상은 지금이나그때나 똑같았을 거 아니에요. 어머니 네 배에서 나온 네 그룹의 형제들이 엉켜 사는 집안인데 여기 기름을부은 게 아버지 야곱이죠. 누구만 유독 예뻐했나요? 요셉만유독 예뻐했어요. 그래서 형들은 만사에 언행이 불편스러웠어요. 그런데거기다 대고 요셉이 그런 꿈을 얘기하니까 형들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죠. 저 자식이 아빠가 예뻐 하니까꿈까지 이상한 걸 꾸는구나 그렇게 됐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 야곱은 인생을 산 만큼 이 꿈이 심상치않은 것을 알고 입 단속 시키죠. 그런데 그 다음에 또 꿈을 꿔요. 해, 달, 별이 자기를 향해 절하는 거에요. 또 형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요. 그것도 형들에게 그때 형들이 결심을해요. 저거 언제 날 잡아서 손 좀 보자. 그러다가 아버지심부름으로 들판을 헤매는 요셉을 신기하게 형들이 먼저 발견을 해요. 그래서 오늘 19절에 보니까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오는 도다. 비아냥 이거든요. 그 다음 절 시작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이 문장을 잘보세요.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 이 말을 이미 살의를품고 한 얘기라고요. 그러니까 이 말은 네 꿈? 제대로 되냐보자. 우리가 박살을 내버리마. 이 얘기에요. 사실은. 그래서 요셉을 세상으로 상징되는 형들이 군박하고 공격합니다. 죽이려고 수많은 음모에 던져 넣습니다. 이제 그 이후로 제일 먼저그를 옷을 벗깁니다. 그 꼴 보기 싫은 채색 옷을 제일 먼저 벗겨요.죽이려 했는데 르우벤이 말리죠. 이보게 동생들, 이럴것까지 있나? 이 아이의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아이인데 죽으면 큰 일 나네. 그런데 마침 저 끄트머리에 사람 행렬 하나가 보여요. 불러 보니애굽으로 가는 장사꾼들이에요. 뭐 하러 가오? 하니 장사하러갑니다. 혹시 젊고 싱싱한 종놈 하나 있는데 안 살라우? 그래서싼 값에 넘겨요. 요셉을. 자 이제 역사의 카메라는 애굽으로바뀝니다. 39장을 띄워 주세요.
요셉이 이끌려 애굽으로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그를 애굽으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샀어요. 이제 졸지에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이 형들의 핍박과 세상의 공격에 의해서 그의 꿈을 깨뜨리기 위해서 그를 노예로 팔아버린 거에요. 얼마나 환장 할 일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 본문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집에 있으니
자, 보세요. 여기서 두 문장이 눈에 걸려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이건 함께 하시는 게 아니죠. 함께 한다면 적어도 고향 집으로 이래야 함께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는데 여기 함께 한다는 표현이 있고 더더군다나표현이 형통한 자가 되었대요. 이게 무슨 형통한 자에요. 그런데3절을 다같이 보십시다. 시작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 대한민국백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통하다는 단어가 또 나와요.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그리고 4절을 볼까요?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어떻게 했어요? 위탁 했어요.자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요셉이 그 불평 부당하고 억울한 노예로 팔려간 자리에서도일상이라는 삶을 성실하게 또 열심히 살아내지 않았다면 이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그의 손에 위탁하는 일이 생길까요? 안 생길까요?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또 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는 바람에 누명을 씌워서 어디로 갑니까? 감옥으로 들어갑니다. 여러분 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무시무시한유혹이었어요. 본문에 보면 날마다요구하니 한참 피가 뜨거운 나이인 20대 초반의 약관의 나이에 요셉도 사람인데 그 유혹을 어떻게떨쳐 냈을까요? 피해서 이겼어요. 음욕과 정욕의 죄는 맞서서이기는 죄가 아니에요. 절대 맞서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인간이 그렇게 세지 않아요. 속지 마세요. 나는 그래도 아니야,웃기지 마세요. 이 죄는 피해서 이기는 죄입니다. 그런환경과 조건을 만들지 말아야 해요. 믿습니까? 자 그런데그럼에도 요셉에게 덧씌워진 죄명은 겁탈죄. 강간 미수죄에요. 말이안되죠. 감옥에 들어갑니다. 자, 그 장면을 또 볼까요? 39장. 이39장은 요셉의 인생의 흑역사, 가장 힘겨웠던 두 순간을기록하고 있어요. 간수장이 두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김으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이상하죠? 여기서도 요셉이 그 간수장의 신임을 받아서 그 감옥의일들을 다 맞습니다. 여기서도 어떻게 했다는 얘기에요? 성실하게살아냈다는 얘기에요 .저 같으면 밥 그릇 집어 던지고 벽에 머리 찧고 뭐 진짜 댕댕거릴 수 있는 모든행동은 다 했을 것 같아요. 왜 하필 나입니까? 이게 뭡니까? 나 깨끗이 살려고 발버둥 친 거 하나님이 아시는데 막장까지 나를 집어 넣으시깁니까? 별별 악을 다 썼을 것 같아요. 23절 시작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여기도 말이 안되는 내용이 등장을 하죠. 함께 하심이라 형통케 하심이라. 우리는여기 이 두 사건을 가만히 공통점을 찾아 보십시다. 공통점은 세 가지에요. 첫째 형통케 하셨대요. 두 번째 하나님이 함께 하셨대요. 그리고 세 번째 결과는 그 모든 업무를 요셉에게 다 맡겼어요. 저는여기서 한 가지 한 주 내내 묵상하는 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 였을까요? 도대체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오늘본문을 읽다가 깊이 깨우침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특별한 이벤트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것이 아니라 그 자질구레하고 반복되는 정말 징그러운 그 일상에서 잘 버티고 감당하도록 도와주신다는 의미구나. 그러니까일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가끔가다 이런 경우가 발생합니다. 선교지갔다 오면 우리 교역자들 중에도 그렇고 청년 중에도 그렇고 자기 선교사 되야 하겠다는 거에요. 그럼일단 제가 말려요. 그러니까 은혜를 너무 자주 받지 마세요. 그말을 새겨 들으십시오.
(30:01-31:46)
자주 받더라도바로 받아야지요. 여러분 은혜라는 것은 일상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일상을 내려 놓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당장 이제 새 날이밝아서 직장에 일상으로 복귀하면 거기도 정글입니다. 선교 현장 못지않은 일상의 선교의 현장이 거기 있어요. 정말 또라이들로 부글거리고 매일 반복되는 압박과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고 마음 같아서는 훌쩍 피하고 싶어요. 도망 가고 싶어요. 그런데 그거 못하면 선교도 갈 수가 없는 거에요. 일상에서의 선교.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너희가 나와 함께 있는순간부터 증인이다. 그런데 그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누굴 함께 주신다는 겁니까? 보혜사 성령님. 고아와 같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그 보혜사성령님이 너희와 함께 해주실 것이다. 믿습니까? 9월, 10월, 11월 기도하기 좋은 계절에 다시 한번 기도로서의 일상, 말씀 공부로서의 일상, 예배로서의 일상에 복귀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잘 살아내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일어나십시다.주의 길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