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제사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60918
성경구절
창 4:1-8
시리즈 순서
창세기(9)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9)
아벨의제사
창 4:1-8
아담이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00:00-10:00)
오늘 다시 창세기 강해를 좀 하겠는데요. 오늘은여러분들이 아주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뻔한얘기니까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이야기의 얼개는 다 알고 계실 거에요.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나에게주시는 말씀이 다를 수 있으니까 처음 듣는 마음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성령께 의지해서 말씀으로 인도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1절을 좀 보시겠습니다. 1절.
아담이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우리 말 번역이 참 잘 된 것 같아요. 히브리 말에는 야다 라는 표현을 썼는데 야다 라는 말은 알다 라는 뜻이에요.우리 말에는 조금 더 리얼하게 자세하게 실질적으로 번역이 잘 된 것 같습니다. 동침해서그 다음에 하와가 임신하여 누굴 낳습니까? 가인을 낳고
이렇게돼있어요. 자, 이제 우리가 인류의 원 역사인 창세기를 읽을때 한 가지 유념해서 읽어야 될 게 뭐냐 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의 순서대로 기술한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하나님의 구속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선택된 인물이 등장하는 거지 아담서부터 시간 별로 다 순서대로 역사 순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에요. 이 이후에도 우리가 살펴 보다 보면 가인이 그런 걱정을 하죠. 누가나를 죽이려 하면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이 사이에는 생략된 역사가 많다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좀 이해를 하시면 좋겠구요. 어쨌든 성경에서 아담과하와는 서로 관계를 가지고 가인을 낳게 돼요. 자, 그런데가인이라는 뜻이 뭐냐 하면 소유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제 이 가인을 낳으면서 하와가 마음에 이런 생각을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볼까요?
이르되 하와의 생각이에요. 가인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러분 이 득남이라는 말은 카나라는말을 쓰는데 굉장히 독특한 말이에요. 이것은 창조할 때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창조할 때만 쓰여지는 단어에요. 이것은 사실상 하와의 혼란이었어요. 여기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는 말은 하와는 이 가인이 하나님이 3장에서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걸로 오해를 했어요. 그래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이런 표현을 씁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가인을 득남하였다. 해서 가인이 여인의 후손인줄 알았어요. 그리고 이제 가인은 성장하면서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겠죠.그리고 이제 두 번째 아들이 등장을 합니다. 성경상 자 아우가 등장을 하는데
그가또 가인의 아우 누굴 낳았죠? 아벨을 낳았는데 여러분 이 아벨이라는말이 재미있어요. 이 말은 티끌, 먼지 직역하면 공허하다, 허무하다 이런 의미가 됩니다. 왠 부모가 아들을 이름하여 그렇게짓습니까? 아들을 낳아놓고 허무하다, 공허하다. 그러면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사연이 있었을 거에요. 이 가인의 아우라고명칭 했죠? 낳았는데 그 아들을 보고 허무하다, 공허하다이렇게 이름 할 때에는 부모의 입장에서 뭔가 곡절이 있었을 거에요. 그러면 그 곡절은 과연 무슨 곡절이며누구와 연결 지어 생각할 수 밖에 없을까요? 가인입니다. 가인이이 땅에 태어나서 부모의 슬하에서 점점점 자라고 성장을 하는데 하와의 이해처럼 그렇게 자라지지를 않은 거에요. 자꾸성장할수록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겁니다. 이게 아닌데 쟤가 왜 저러지?한참 시간이 지납니다. 그리고 그 가인에게서 깊은 절망을 느끼는 거에요. 부모는 부모와 자식의 입장을 떠나서 한 인간과 인간의 차원에서도 깊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아우를 덜커덕 낳았어요. 그 아우를 가르켜서 뭐라 그랬다고요? 인간은 별 수 없어. 먼지 같은 거야. 티끌 같은 존재야. 인생은 허무한 거야. 낳은 가인의 아우를 향하여 그렇게 이름을 명명합니다. 자,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가 마지막 결론에 어떻게 맺어지는가는 조금 유보해 두고.이제 두 사람이 은사와 취향에 따라서 직업을 갖게 돼요. 한 사람은 농사꾼입니다. 한 사람은 양을 치는 자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볼까요? 2절
그가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여기까지는별 문제가 없어요. 물론 일부 무리한 해석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인은 피를 흘려서 양을 잡아 제사를드렸기 때문에 그 제사는 받아들여졌고 가인은 피 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곡물만 드렸기 때문에 거절되었다? 자, 그러면 피 있는 제사를 드렸다는 것까지는 억지로 이해를 한다고 합시다. 일단곡물을 드린 제사에 대해서 우리가 좀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려 보자고요. 곡물을 드린 게 죄입니까? 여러분,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제정한 제사 법에도 보면 곡물만드리는 제사가 있어요. 대표적인 제사가 소제라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제사는 곡물만 드리는 제사에요. 이런 걸로 봐서 제물 자체에 논란의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더더군다나 하나님이 직업을 차별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일단우리는 오늘 성경의 팩트를 그대로 이해 하더라도 여기에 미세한 차이를 성경 기자가 밝히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자, 몇 절을 보시냐 하면 3절을볼까요?
세월이지난 후에
사실이 문장이 많은 해석자들에 의해서 그냥 간과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우리 말 성경에도 보면 세월이 지난후에 하니까 이게 도대체 어느 세월이 지난걸 얘기하는 거냐? 1년이나 30년을 얘기하는 거냐? 이 문장만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문장이 정확하게 해석이 되어야 이 제사의 전체 의미가 확연하게 들어옵니다. 우선 이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을 세 토막으로 끊어서 설명을 드릴 테니까 잘 들으셔야 해요. 세월이란 말은  이라는 단어를썼어요. . 날입니다. 날. 날이에요. 그 어떤 날이 지났느냐, 여기 이제 사용된 케츠라는 지난 이라는 이 단어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 단어는 특별히 성경 전체에 걸쳐서 심판과 종말에 연결될 때 사용하는 단어에요. 케츠, 지난. 자 그러면 아주 엄중한 진리 하나가 우리 속에 새롭게 들어와야됩니다. 뭐냐 하면 이게 지금 예배를 설명하기 위해서 표현된 수식어에요. 세월이 지난 후에. 세월은 날. 어떤날이 종말을 향해 심판을 향해, 끝을 향해 맞대어 있다고요. 사실상농사의 한 절기가 지난 후 라는 뜻입니다.
(10:01-20:00)
양을치던 농사를 하던, 그 한 절기가 지난. 그리고 후에 라는말은 열매가 나온다 그 뜻이에요. 결과가 나온다 그 뜻이에요. 양치는한 절기가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죠? 농사를 짓는 한 절기가 지나면 결과가 나오겠죠. 자, 여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될 새롭게 눈 떠야 될 엄중한 진리가뭐냐 하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identity가 예배자입니다. 너는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신자입니다. 성도입니다 보다 더본질적 정체성이 우리는 예배자 입니다. 왜요? 사도 바울도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 자기 길고 멀고 험했던 인생을 하나의 제사로 봤어요. 그래서 그의유언 같은 글인 디모데 후서 4장에 보면 전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라는 표현을 해요. 자기 일생을 뭐로 이해한 겁니까? 길고 멀었던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로이해를 한 겁니다. 이제 그게 부음이 됐다 그 말이에요. 이부음이라는 말은 누구 죽었소 라는 그 부음이 아니고 이 부음은 이 전제라는 제사가 끝나는 것을 알리는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헌주의 행위를 얘기합니다. 이게 부음이에요. 말 그대로 붓다.그러면 이 제사는 끝이 나요. 바울이 이 얘길 왜 했냐 하면 멀고 길고 험했던 자기 일생을하나의 예배, 하나의 제사로 봤을 때 이제 그 예배가 그 제사가 끝이 난다 그 말이에요. 끝나는 시간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는 겁니다. 바짝 바짝 숨통이조여 오는 것을 감옥 안에서 직감하는 거에요. 그렇듯이 우리는 예배자로서 마치 가인과 아벨처럼 우리의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예배자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예배키 위해서 창조하신 겁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유형의 예배이던 무형의 예배이던 길고멀고 험한 예배자의 삶을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이 예배가 이 땅에서 끝나는 시간이 반듯이 옵니다. 개인적인 종말도 오고 역사적인 종말도 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뭐라 그러죠? 추수할 때가 온다 그래요. 예배는 마쳐지는시간이 있어요. 그 심판, 그리스도의 레마 앞에 세워지는시간이 있다고요. 심판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의 심판이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맞이해요. 세월이 지난 후에. 그 결과를 가지고 열매를 가지고 우리는 그 시간을 그리스도 앞에서 맞닥뜨리게 된다고요. 지금 그 얘길 하는 겁니다. 오늘 이 표현 속에는 이 가인과 아벨의예배가 단순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해요. 우리 모든 성도 들에게 전부 연결된 하나의 모형을 설명하는겁니다. 우리는 예배자입니다. 예배자로서 우리는 그 세월이지난 후에 어떤 드러난 걸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각각 심판 앞에 서게 될 겁니다. 그 얘길 하는거에요. 세월이 지난 후에 볼까요? 두 사람이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여기까지볼 때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아벨의 행위 속에 슬쩍 비교가 드러납니다.
아벨은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앞을보실까요? 자, 두 사람이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드렸는데 곁으로 볼 때는 별 차이가 안 나요. 그런데 아벨의 예배의 행위 속에 두 가지 수식어가 눈에띄죠. 하나는 첫. 첫 뭐죠? 첫 새끼. 그리고 두 번째는 그 기름진 것으로. 그 기름진 것으로. 영어 번역을 다 조사해 봐도 여기 기름진 것이라는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가장 좋은 부분으로 그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벨의 행동 속에서 우린 뭘 발견할수 있어요? 가인이 얼마나 동기 없이 무심하게 그냥 형식적인, 하나님과는전혀 관계가 없는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가 있어요. 가인은 어떻게 드렸습니까? 자기의 수확 된 농작물 중에 그냥 드렸어요. 그냥 드렸어요. 그런데 아벨은 어떻게 드렸습니까? 아벨은 첫 새끼와 함께 그 기름진것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오해를할 수가 있겠죠. 아, 그래 맞아. 예배는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이야? 뭐 그 말도 썩 틀린 말은 아닌데오늘 이 본문이 의도하고자 하는 말은 더더욱 아니에요. 예배가 치성 싸움이고 정성 싸움이라면 심각해지죠. 어디 성경에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면 구원을 받는다는 설명과 교훈이 있을까요?그런 설명은 없어요. 과연 그러면 이 말이 뭘까요? 뭘얘기하는 걸까요? 우리는 그래서 성경을 한군데 좀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띄워 주세요. 한번같이 읽읍시다. 다같이 시작
믿음으로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러분본문을 잘 보세요. 결론은 아벨은 그 제사가 받아들여졌고 가인은 거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를 보면 후대에 히브리 기자가 이런 얘길 합니다. 믿음으로아벨은. 아 아벨은 뭐로 예배 드렸어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대요. 믿음으로. 그러면 이 믿음의 정체가 뭡니까? 이렇게 돼있습니다.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뭘 얻게 됩니까?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시니라. 예물은 하나의 결과물이에요. 그 결과물은 하나의 증거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아벨과 가인의 심령속에 그 예배의 동기를 얘기하는 거에요.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어요. 그러면우리는 쉽게 와 아벨 믿음 짱이네. 믿음이 좋았나 봐. 여기서말하는 믿음의 실체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장 잘 정의한 성경이 에베소서 2장 8,9절인데 보도록 하십시다. 띄워주세요.
너희는그 은혜에 의하여 뭐로 말미암아? 알고 보니까 믿음은 은혜에 의하여 주어지는 거에요. 구원을 받았으니. 그래서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선물이라. 우리 속에 믿음은 내가 생성시키거나 촉발시킨의지적 발로가 아니란 뜻이에요. 이 믿음은 외부로부터 들어 온 거에요.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라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선물 또는 은혜라고 설명합니다. 왜? 9절을 볼까요?
행위에서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네결국 아벨은 이 믿음이 있었던 거에요. 즉, 그는 하나님에게이런 붙들리는 은혜가 있었어요. 그것을 조금 직설적으로 묘사한 성경이 있는데 요한 1서 3장 12절을 띄워주세요.
12 가인같이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아멘, 자 여러분 속지 말 것은 가인은
(20:01-30:00)
사람을죽였기 때문에 살인자가 아니에요. 그가 악한 자에 속했기 때문에 그 열매가 살인으로 드러난 겁니다 .이해가 돼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에요. 그래서 여기 요한 1서 3장12절에 보면 그는 악한 자에게 뭐하여? 속하여. 속하여. 신앙은 가장 중요한 기초가 치성을 드리는 싸움이 아니라내가 어디에 속했는가의 싸움이에요. 나는 어디에 속했는가? 여러분, 과거에 우리는 다 가인에 속해 있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아벨과같은, 이 아벨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모형을 얘기하죠? 아벨과같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긴 거라고요. 아벨에게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에게 접 붙여 놓은 거에요. 그 죽음이 전제됐기 때문에. 결국 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그 방향이 어디로 틀어지냐 하면 이 얘길 하는 겁니다. 3장에서 뭐가 들어오죠? 죄가 들어와요. 그 죄의 결과가 어디에서 드러납니까? 4장에서 드러납니다. 여러분, 죄는 두 가지 강력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돼요. 죄는 첫째 영향력이 있습니다. 33장에서 인류 속에들어왔던 죄가 잉태되고 열매를 맺어서 4장에서 살인을 낳습니다. 사망을낳아요. 그리고 4장, 5장6장, 7장 노아의 홍수 때까지 인류는 멸망 당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죄가 확대됩니다. 그 이야기를 가인의 제사 속에서 하는 거에요. 우리가오늘 본문을 조금 더 유심히 살펴 보도록 하십시다. 4절을 먼저 볼까요?
아벨은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여기아벨의 제물을 받았습니까? 아벨을 먼저 받았습니까? 아벨의전인격적인 존재를 먼저 받았어요. 제물은 그것의 증거물에 불과합니다.그리고 또 볼까요? 5절.
가인과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의제물에 문제가 있었다면 가인의 제물을 먼저 받지 않으셨겠지요. 그런데 여기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가인을거절하십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가 드린 제물도 함께 거절이 되는 것이죠. 가인의 존재가 거절이 된 겁니다. 제물이 거절 된 게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동기를 파헤치십니다. 보실까요?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말은 가인의 고개가 떨어졌다는 말이에요. 누구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죄에 빠진 인생은 하나님의 파닌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하나님께로부터 얼굴을 떨어뜨립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뭡니까?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 이 인류가, 죄에 빠진 사람들이 드러내는 당연한 귀로에요. 안색이 변합니다. 얼굴을 떨어뜨립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이그 동기를 무섭게 추적하시죠?
여호와께서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여러분,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우리 인생의문에 죄가 웅크리고, 먹이감을 우리를 삼키기 위해서 웅크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베드로 사도가 멋지게 설명을 했죠. 우는 사자와 같이. 사자가 왜 울어요. 허기가 져서 울어요. 삼킬 자를 찾기 위해서 그르렁거립니다. 그 동작과 표현을 딱 한문장으로 창세기 4장에서 표현했어요.
죄가 너를 원하나 이 desire 욕망한다 그 말이에요. 죄는 여러분의 인생에 항상 여러 가지 모양의 덫을 놓아서 삼키려고 웅크리고 있어요. 거기에 다 넘어져요. 그런데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이렇게부탁하십니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그런데 인류는 죄를 다스렸어요? 못 다스렸어요? 지배당하고못 다스립니다. 인류에겐 그럴 능력이 없는 거에요 .그리고그 결과로 4장부터 인류는 노아의 홍수 때까지 완전히 패역한 세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죄가 갖는 두 가지 영향력 때문에 그래요. 첫째는 죄의 영향력 두번째는 죄의 확대. 이 출발점이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설명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8절에 무서운 얘기를 담고 있어요. 8절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가인이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네, 여기 보시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이렇게 돼있어요. 말하고. 그런데 거기 1 이라는 숫자가 있죠? 좋은 성경은 있을 거에요. Foot note를 보세요. 고대 역본들에 의하면 우리가 들로 나가자 가 있음. 그런데 한글성경은 생략해 버렸네요. 고대 역본이 뭔 성경을 얘기하냐 하면 사마리아 역 내지는 70인 역을 얘기합니다. 70인 역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헬라 말로번역을 한 거죠. 72명의 학자들이. 그런데 거기에 보면메튜 헨리라는 학자가 이런 설명을 합니다. 70인 역이나 사마리아 역에 보면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이기위해서 그를 유인하여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들로 데리고 나갔다 라고 주석을 해놔요. 정화갑니다. 자, 그러면 이게 무슨 문제가 되냐 하면 가인의 살인은 과실입니까? 고의입니까? 고의입니다. 가인의살인은 과실이 아닙니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고의 입니다.그리고 더 무서운 얘기가 감춰져 있어요. 마지막에 아벨은 어떻게 죽였는가를 잔인할 정도로묘사했어요. 쳐 죽이니라. 맞죠? 쳐 죽이니라. 8절 끝에 보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문장이에요. 쳐 죽이니라. 누구를? 아벨을. 그런데 이 문법이 놀랍게도 미완료 형으로 되어있어요. 미완료 형이라는것은 항상 무슨 시제를 내포하고 있는 겁니까? 현재의 시제를 내포하고 있는 거에요. 미완료 형의 개념은 그러면 이 살인은 지금도 뭐 라는 얘깁니까?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에요. 살인은 추억이 아니에요. 살인은 지금도사망의 냄새를 뿜어내면서 진행 중이에요. 쳐 죽이니라. 미래완료형으로 되어 있어요. 미래형.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붙잡아야 될까요? 결국우리는 어떻게 아벨의 자리에, 아벨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의중보적 죽음을 통해서. 그 속에 우리를 주님께서 속하게 했기 때문에.원래 우리는 어느 자리에 있었어요? 가인의 자리에 있었어요. 사망의 냄새를 풍겨내는 의도와 본성을 가진 가인의 자리에 우리가 있었어요. 어느분을 만났는데 연세가 지긋한 분이에요. 이 분이 오랜 동안 신앙 생활을 하셨어요. 명절이 돼서 뵐 일이 있었습니다.
(30:01-34:10)
잘계셨습니까? 교회 잘 나가시죠? 잘 다닌대요. 그런데 말 끝에 교회를 옮겼대요. 아니, 얼마나 되셨어요? 1년 됐대요. 지금다니시는 교회는 만족하세요? 만족 한대요. 잘 됐네요. 그런데 혹시 감이 좀 이상해서 어느 교회 다니세요? 그러니까 무슨무슨 교회 다닌대요. 조사를 해보니까 이단성이 있는 시비가 걸린 교회에요. 그래서 깜짝 놀라가지고 아니 왜 이런 데를 다니시냐고 했더니 그 교회 가면 너무 분위기가 좋대요. 그리고 그 교회 가면 밥을 맛있게 해준대요. 아하, 이 어른이 그렇게 오랜 세월 예배당 뜨락을 밟았지만 십자가 앞에서 가인으로 자기의 존재가 들통난 적이 없구나. 말하자면 십자가에 제대로 못 박힌 적이 없구나. 여러분, 연세가 들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건 노인들에 대한 모독이에요. 연세 들었다고 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것은 소속의 문제요 생명의 문제입니다. 한번도 십자가 앞에서 내가주님과 함께 못 박혀 죽어야 될 죄인이라는 사실 앞에 뼈저리게 들통이 난 적이 없어요. 기독교는 액세서리가아니에요. 교양 과목이 아니에요.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의 생명에 관한 싸움이고 소속에 관한 싸움이에요. 그게가인의 역사와 셋의 역사로 갈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아벨을 대신해서 셋을 주십니다. 후에 나올 얘기에요. 가인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라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렇죠 여러분? 우리가 그 자리에있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예표인 이벨의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바가 되었다고요. 그렇다면 참된예배라는 게 뭡니까? 와서 치성을 드리고 정성을 다해야 되겠지만 예배의 본질이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예배의 본질은 예배 시간마다 주님 앞에 나와서 내가 다시 한번 십자가에 쾅쾅쾅 못 박힘을 당하는자리여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새 날을 열어 주시고 살게 하시는 감격. 자다가 누워 생각해도 어쩌다 내가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되었는가? 택함을입었다는 것.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예배자가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의대답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 사실을가인의 걸음으로 들어왔다가 아벨로 일어서는 복된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다 일어나십시다. 주를 위한 이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