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한 종

책이름(시리즈 분류)
빌레몬서
Date
날짜
20131002
성경구절
몬1:4-14
시리즈 순서
빌레몬서(2)
종류(주일, 새벽 등)
새벽
2013.10.02
빌레몬서 강해(2)
유익한 종”
몬 1:4-1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00:00-10:00)
오늘 빌레몬서 4절서부터 14절까지 첫 번째는 오늘 기도를 하죠. 그런데 이 기도는 중보기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 왔는가, 두 가지를 감사했어요. 기도 속에, 네 사랑과 믿음을 내가 참 감사했다. 우리는 보통 기도를 하면 저부터도 급하면 내 기도부터 먼저 할 때가 있죠. 기도의 순서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해서도 그것을 배우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의 첫 번째는 항상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사는 모든 목적이 그 분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도의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두 번째는요, 내 기도 먼저 하는 게 아니고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죠. 혹시 그 기독 선교단체 이름 가운데 JOY 선교 단체 아시죠? 그 joy라는 말이 단어 자체는 기쁨이라는 뜻인데 하나의 조합 언어죠? J가 Jesus, O는 other, Y는 You. 첫 번째가 예수, 두 번째가 이웃, 세 번째가 you 당신, 여러분 그런 뜻입니다. 그 순서처럼 기도도 제일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 번째는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은 나 자신을 위해서. 오늘 바울의 중보 기도를 보면 정확히 그 순서가 매겨져 있죠. 첫 번째가 4절을 볼까요?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기도 할 때, 또 8절에는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표현이 있죠? 그리고 기도 할 때 뭘 위해서 기도합니까? 나를 말함은, 나 입니까? 너지요. 여기서 너는 누구를 말하냐 하면 바로 이 서신을 이제 곧 받게 될 빌레몬을 얘기합니다.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었다. 이걸 기도 속에 감사하는 거에요. 빌레몬은 어제도 잠깐 소개를 했지만 그는 그 집에서 교회가 시작 될 만큼 큰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부자였다는 얘기가 되겠죠? 게다가 또 하나의 증거로 노예들이 있었어요. 노예, 그 중에 도망 나온 노예가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는 오네시모입니다. 게다가 그는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오늘 바울도 여기서 뭐라고 소개하냐 하면 네 사랑과 믿음에 대해서 들었다. 믿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key라면 그 천국을 사는 헌장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죠. 믿음으로 천국을 갑니다. 그런데 천국의 삶은 뭐로 살죠? 사랑으로 살죠. 베드로 후서에도 보면 마지막에 요구되는 덕목이 사랑이죠, 사랑. 특별히 이 오네시모를 중심으로 기록 된 이 개인 서신 격인 빌레몬서는 루터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가장 잘 함축한 아름다운 글이다 라고 묘사할 정도로 사랑이 중요한 결론입니다. 그 빌레몬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그런 표현을 여기 쏟아내고 있습니다. 6절을 한번 보십시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절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시작,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네 우리가 보통, 아 물론 당신 사랑하지요. 또 사랑해서 이런 비판도 하는 겁니다. 이런 표현들 그리스도인끼리 많이 해요. 저도 그런 얘기 하기도 했고 또 수없이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을 쭉 하다 보니까 진짜 사랑은 그 출발점이 기도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분을 정말 사랑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해서 하는 비판이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고, 사랑한다고 말을 한다면 그 영혼을 위해서 정말 기도로 출발을 했는가, 이것이 아주 중요한 시금석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바울의 여러 빌립보서나 또 에베소나 이런 서신을 보면 항상 그 서두에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말해요. 그런데 그 말을 어디서 하냐 하면, 내 기도 속에 너희들을 품었다. 바울의 사랑은 그 출발점이 눈으로 보진 못했어도, 특별히 이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가 본적이 없어요. 여기 갔던 적이 없어요. 아마 여기 살던 사람들이 와서 복음을 듣고 돌아가 교회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항상 바울의 기도 속에 이들을 품고 있어요. 제일 큰 열매는 사실 뭐냐 하면 영혼입니다. 빌립보서에도 보면 우리가 살펴 봤지만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서 얘기할 때 너희에게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원한다 그래요. 풍성한 열매, 거기서 열매라는 말은 조금 더 직설적으로 번역을 하자면 이익 또는 이자란 뜻도 됩니다. 성경은 우리 전체 인생을 큰 바다에서 영업하는 자와 같다고 시편 기자가 소개했죠. 엄밀한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영업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늘도 영업하러 나가야 돼요. 이게 인생이란 말이에요. 영업을 하면 결과가 나와야겠죠. 뭐가 나와야 할까요? 이익이 있어야 될 거에요. 이익, 그렇죠? 이자. 조금 더 솔직히 표현을 하자면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하는 장사는 없어요. 남 퍼주려고 하는 장사는 없어요. 이익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항상 선교의 여정에 교회를 말하고 성도들을 언급할 때는 너희에게 열매가 있기를 원한다 그래요. 이 열매가 뭘까요? 너희에게 이자가 있기를 원한다. 너희에게 이익이 남기를 원한다. 그럼 여러분 인생에 남는 이익, 이자가 뭘까요? 영혼이에요. 그래서 항상 우리 기도를 보면 어떤 다급한 사정 또는 때로는 어떤 일, 감당해야 할 사건들 이런 걸로만 매몰 돼서 기도를 하다가 끝나버릴 수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신앙이 익어가고 신앙이 깊어 질수록 우리 기도 속에 더 많은 영역이 뭐가 되야 하냐 하면 사람에 대한 기도가 되야 해요. 그러면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사건과 일에 대한 해결을 위한 기도가 더 많습니까? 어떤 여러분들이 전도 했는데, 하나님 또 여러분들이 누구를 만났는데 주님 이 분 이런 부분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제가 전도한 분인데 이렇게 좀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사실은 제일 남는 장사거든요. 사람에 대한 기도가, 그래서 차차 만들어지고 이루어 질 일이긴 하지만 우리 삼일 교회 성도님들 기도 많이 해요. 많이 하는데 우리 교회 속에 이 중보 기도팀이 좀
(10:01-20:00)
있어야 되겠다. 아예 365일 상시 교회와 또 기타 여러 가지 수시로 발생하는 일들을 위해서 좀 중보 할 수 있는, 이건 또 뭐 예수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그래서 총회에서는 중보라는 말을 못 쓰게 해요. 그래서 도고의 기도라는 말을 하라고 지침이 내려오긴 했는데, 어쨌든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중보기도 팀이 있어서 수시로 이러한 기도가 꾸준히 우리 교회 속에 큰 하나의 맥락이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울은 항상 중보로 기도를 했어요. 그 기도의 대부분이 사람에 대한 기도였어요. 영혼에 대한 기도였어요. 바울이 그 생명들을 생각하면 큰 기쁨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메갈로스라는 표현을 썼어요. 메갈로스가 무슨 뜻인가 하면, 빌립보서에 딱 한 번 등장을 하는데 폭탄이 한꺼번에 확 터져버리는, 바울은 제일 기뻤던 게 뭐냐 하면 사람의 열매가 나타날 때 이걸 가장 기뻐했어요. 좋은 하나님의 종이 뭐냐 하면 일을 잘 처리하고 행정을 잘 처리하는 게 아니에요. 좋은 하나님의 종은 사람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믿습니까? 일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영혼에 관심이 있어야 해요. 우리 삼일 교회 성도들도 일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혼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일은요 시간이 되면 저절로 되는 것도 많고, 내가 꼭 안 해도 되는 일도 많고 그래요. 그런데 영혼에 관한 문제는 달라요. 우리 삼일 교회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혼에 기쁨을 갖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항상 바울의 기도 속에 이 사람들이 있었어요. 여러분 오늘 일터로 가죠.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거에요. 그들이 여러분 기도 속에 다 들어 와 있나 점검을 해보세요. 내가 정말 부장 때문에 힘들고 과장 때문에 힘든데 욕만 하고 짜증만 냈지, 뭐 여러분들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내가 그 과장님을 두고 기도 했나? 지속적으로 한번 기도를 했는가? 그 기도의 영역이 계속 사람으로 메워지는 풍성해지는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 다음에 또 성경을 보십시다. 8절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무슨 얘기냐 하면 사도 바울이 사도 아니에요 사도. 실질적으로 초대 교회 이 시대에 최고의 영적인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 이렇게 하시오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그 말이에요. 질서상, 그런데 도리어 뭐로써 간구해요? 사랑으로서 간구해요. 여러분 옳은 말 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특별히 교회 안에, 의로운 사람도 많고, 너무 의로워요. 그죠? 옳은 말 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보기 드문 사람이 사랑으로 말하는 사람이 참 찾기가 힘들어요. 특별히 리더 급에 있는 사람은 이 부분 저부터 반성해야 될 때가 많아요. 주장하고 강조하고 소리치고 할 수는 있는데, 정말 저 밑에 사랑을 깔고 명령 할 수 있는 것도 부탁하듯 사랑하듯 할 수 있는가..바울이 그 얘기하는 거에요. 내가 명령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마땅히, 그러나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간구한다. 아주 낮추어서 겸손하게. 어떤 때는 얄미울 정도로 저 사람 쏟아내는 말이 맞아. 그런데 듣기가 싫어요. 듣기 싫어 그냥. 왜 그렇죠? 내용 때문일까요? 태도 때문일까요? 태도 때문이죠.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태도가 그래서 사랑의 태도입니다. 사랑의 태도. 바울이 그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어요. 내가 사랑으로써 간구한다. 게다가 지금 자기가 나이가 많아요.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 나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얼마나 정중합니까? 사람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굉장히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점점 사회 속에 고립이 되어가고, 외톨이가 되어 가고, 배타적인 종교단체로 몰락하는 것은 그것을 우리가 보통 톨레랑스tolerance라 그러죠. 관용의 부족.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 보면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관용이라는 말을 합니다. 관용이 뭡니까? 여러분 혹시 사복음서에 보면 친구 넷이 중풍병 든 환자를 들고 예수님이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는 어느 한 집으로 가죠? 그런데 들어갔어요? 못 들어갔어요? 정문으로 못 들어갔어요. 왜 못 들어갔죠? 왜? 사람들이 꽉 메워서 그 청중들이 메워 있어서 문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어요. 그 본문이 말해주는 아이러니는 뭔 줄 아세요? 예수님에게로 지금 절실하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청중이 가로 막고 있어 못 들어갔어요. 이게 이제 우리 교회 현실과 한국 교회 현실과 굉장히 밀접한 의미적 관계가 있어요.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고 싶어요. 오늘 날 젊은이들이 뭐라고 그래요? Jesus, Yes! Church, No! 왜 이런 소리가 나와야 될 까요? 예수에 대해서 목말라 가고 싶은데, 뭐 꼴 보기 싫어서 안 가요? 목사 보기 싫어서 안가고, 예수 믿는 사람들 꼴 보기 싫어서 안 가요. 지금 누가 가로 막고 있죠 무서운 얘기죠. 그리스도인들이 가로막고 있어요. 그래서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관용을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하라. 관용이라는 말은 고상한 인격에서 나오는 정중한 합리적 태도를 얘기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나이가 많아요. 사도에요. 그리고 빌레몬에게 명령 할 수 있는 위치에, 그러나 명령하지 않아요. 정중하게 사랑으로서 부탁을 해요. 게다가 이 부탁의 내용이 지금 뭡니까? 오네시모를 옛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는 부탁을 하는 거에요. 오네시모가 무슨 뜻이냐 하면 유익한 자라는 뜻이에요. 유익한 자. 그는 그 이름을 붙여 살면서 그렇게 살기를 소망했을 거에요. 아마도 그 부모도 그런 인생을 살기를 소원해서 그런 이름을 지어 줬겠죠. 오네시모. 유익한 인생이 되라. 그런데 인생이 꼬였어요. 엉망진창이 됐어요. 원래 인생은 엉망진창이에요. 그래서 무익하게 살았어요. 게다가 주인 집에서 무슨 짓을 했죠? 재정을 훔쳐서 로마로 왔습니다. 여러분 로마가 골로새에서 어느 정도 거리인가 하면 1,500km에서 1,700km. 서울 부산이 한 4,800km 되나요? 그런데 거기의 네 배 가까운 거리에요. 네 배. 얼마나 먼 거리입니까. 로마의 화려함을 찾아서
(20:01-30:00)
흘러 왔겠죠. 그러다가 연금 상태에 놓여있던 사도 바울을 만나는 거에요. 거기에서 복음 안에 새로워집니다. 자, 이 당시 어제도 잠깐 언급을 하긴 했는데 로마제국 하의 종과 주인과 관계를 여러분들께서 어떻게 이해를 하십니까? 이거는 그냥 물건과 사람이에요. 게다가 이 당시 노예들이 이런 짓을 하고 떠났을 때에는 대가는 하나 밖에 없어요. 심하면 십자가에 처형을 하도록 돼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이 이것을 다 이해하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바울은 누구입니까? 오늘 식으로 말하면 그 시대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가말리엘 문하의 대 석학이에요. 유명한 대학 총장쯤 되는 분이에요. 아주 유명한 그런 분이, 그런 대 학자가 지금 감옥에 찾아 온 노예, 물건 짝에 불과한 노예를 앉혀놓고 뭘 가르쳤다는 소리에요? 사영리 펼쳐놓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복음이 뭔지, 왜 인간은 죄인인지, 왜 거듭나야 되는지, 왜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는지, 우리가 죽으면 다음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이걸 하나하나 가르친 거에요. 연금 상태에서 대학 교수 이상 되는 석학이 지금 물건 짝에 불과한 죄 짓고 도망쳐 나온 죄수를 앉혀 놓고 복음을 가르친 거에요. 그리고 지금 이 종은 어떻게 됐어요? 자기의 심장 같은 존재가 되었고 사랑하는 동역자가 되었고, 갇힌 중에 나은 아들이 돼있어요. 이제는 무익한 종에서 유익한 종을 돼있는 거에요. 그리고 이 종을 이제 옛 주인에게로 돌려보내기로 결심을 한 거에요. 받을지 안 받을지는 그 사람 몫이에요. 그런데 바울에게는 확신이 있었어요. 무엇이 이 관계와 이 내용을 가능케 했을까요? 무엇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 미국도 인종 차별이 무너졌지만 이게 완전히 무너진 지가 몇 십 년 안돼요. 미국에는 두 가지 유명한 재판이 있었어요. 사건이 있었어요. 한 사건이 뭐냐 하면 1954년도 5월 17일날 인종 분리법은 위법이다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유명한 재판입니다. 그 당시에는 흑인이 백인 다니는 학교 못 갔어요. 이게 1954년도의 일이에요. 몇 십년 전 일이에요. 그리고 흑인이 버스를 타면 백인 앉는 자리와 흑인 앉는 자리가 따로 있었어요. 1955년도에 이름이 로자 파크스라는 42살 먹은 흑인 여자가 백인이 버스를 탔는데 자리를 양보를 안 했어요. 끝까지 양보를 안 했어요. 이게 큰 사건이 됐습니다. 감히 검둥이 주제에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 안 해? 이것이 킹 목사의 인권 운동의 민권 운동의 불씨가 됩니다. 그래서 380 몇 일인가를 버스를 흑인들이 거부하게 되죠.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 될 때는 세계사적 종과 주인의 화해다. 이런 제하의 제목들이 신문에 막 쏟아지곤 했습니다. 이 노예 제도의 철폐를 거론할 때 우리가 배제할 수 없는 인물이 하나가 영국의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윌리엄 윌버포스 이 분은 평생을 도덕적 개선과 노예 철폐를 위해서 살았어요. 두 가지를 위해서, 쉽게 읽는 기독교라는 책에서 그는 최초로 독특한 단어 하나를 거론합니다. 예수의 혈통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흰 사람이나 검은 사람이나 백인이나 유색인종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예수의 혈통으로 새로워진 혈통이다. 이게 무엇이 던져 준 힘입니까? 복음의 능력, 바울이 그런 대 석학이 감옥 안에서 그 오네시모를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제 그 죄 짓고 나온 오네시모를 옛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기로 작정을 한 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자 성경을 보고 그 이유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 11절부터 볼까요?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이제 이 심장을 떼서 보내는 거에요. 이 얼마나 대단한 표현이에요. 그리고 13절 한번 볼까요? 시작,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옛 주인 빌레몬에게 글을 쓰면서 한 얘기에요. 네가 나를 도와주고 챙겨주고 동역해 준 것처럼 이 오네시모를 내 옆에 그냥 머물러서 네가 하던 일을 대신 하도록 하고 싶다. 나이도 많고, 그러나 돌려 보낸다. 이상하죠? 왜 돌려보낼까요? 14절을 보세요.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어떻게 되게 하려 함이라?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이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이 종을 옛 주인에게 뭐하고 싶었던 겁니까? 화목케 하고 싶었던 겁니다. 바울은 그 예수의 사랑을 먼저 입은 자에요. 언제 새벽인가 우리 목사님이 부목사님 한 분이 복음에 빚진 자라는 개념을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 설명을 듣고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여러분 모두 복음에 빚진 자죠? 아닌 척 하고 계신데(웃음) 다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게 무슨 개념이에요. 하나님이 내게 엄청난 돈을 줬어요. 이거 누구에게 좀 갔다 줘라 하고 부탁을 하고 준 돈이에요. 그런데 그 돈을 꿍치고 있으면 누구누구에게 빚을 진 거에요? 갖다 줘야 될 사람에게도 빚진 거에요. 그리고 맡긴 사람에게도 뭐한 거에요? 빚을 진 거에요 이 설명을 우리 안영민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예를 든 거에요. 맞죠? 네 맞다 그러네요. 맞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사랑의 복음의 빚을 진 자에요. 그거 빨리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다. 나눠 줘야 되요. 왜 갖고 있어요? 자기만, 나쁜 사람들이죠. 그러면 빚진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부채 감을 가지고 바울은 살았어요. 복음의 능력이 그 사랑을 깨닫게 한 거에요. 그래서 종일지라도 앉아라. 내가 빚 갚아야 된다, 너한테. 여러분들은 이 복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한테 전부 뭐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빚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실을 생생하게 인식을 하고 살아야 해요. 복음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부 빚지고 있는 거에요. 지금. 빚 갚아야 될 것 아니에요. 이 마음이 불이 붓는 다면 전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어요? 특별히 깔끔 떠는 성격들은 더 생각을 해보세요. 빚지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성격으로? 저도 빚지고 못 사는 성격이거든요. 반듯이 같아야지 여러분들 갚아야 해요. 여러분 오늘 빚 갚으러 가는 거에요. 일터로 가정으로 삶의 현장으로, 아멘. 사도 바울이 이 종을
(30:01-35:17)
옛 주인에게로 돌려보내는 첫 번째 이유가 그거에요. 왜? 그리스도인들은 전부 화목의 직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목의 재물의 열매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제단에 화목의 제물이 되어서 내가 그 은혜를 입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마태복음에 보면 뭐라고 했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와 불화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배 드리고 나서 사과하라? 아니죠. 먼저 가서 사화하고 그 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이 순서가 왜 중요할까요? 여기 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의 개념과 정의와 의미는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거거든요. 그분이 왜 죽으셨어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시려고 죽으신 결과물이 제물이에요. 상징물이 제물이에요. 그런데 그 제물을 드리면서 형제와 불화하고 그걸 그냥 유보한 채 와서 예물을 드린 다는 것은 삶의 모순이죠. 그래서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나에게 와서 예물을 드려라 이게 순서란 말이에요. 바울이 이 종을 옛 주인에게 돌려 보내는 첫 번째 이유에요. 두 번째 이유는 뭐죠? 자의적으로 하도록. 모든 신앙 생활은 그래서 흥겨움과 즐거움과 자발적으로 하는 거에요. 왜 그래야 되며 그 원리가 뭘까요? 이런 거죠. 어느 집에 주인 집 부잣집 아들 밑에 몸종 하나가 있었어요. 시녀. 꾀죄죄한 초라한 몸 종 하나가 물 떠다 드리고 발 닦아 드리고 시중 들고 밥해다 드리고 그런데 어느 날 이 주인 집 아들의 눈에 너무 측은지심이 생겨서 이 몸종을 딱하게 여기고 그냥 이유도 원인도 없이 어느 날 사랑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신부로 맞아들이고 아내로 삼았어요. 그런데 이 종이었다가 몸 종이었다가 시녀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 집 아들의 아내가 된, 신부가 된 이 여자는 하는 일은 달라진 게 없어요. 똑같아요. 시중 들어야 되고 밥 해야 되고 발 닦아 줘야 하고 물 떠다 줘야 하고 그런데 종일 때와 아내로써의 일의 가치는, 일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신부가 되고 나서 섬기는 모든 행위는 콧노래와 즐거움과 애정과 감사와 사람으로 그 수고를 수고처럼 하지 않고 기쁨으로 하게 됐어요. 옛날에는 아침에 태양이 뜨는 게 싫었어요. 또 일어나서 저 도련님 발을 닦아야 하고 물을 떠다 줘야 하고, 또 시중을 들어야 하고 오늘 하루 해가 언제 질까? 맨날 이런 생각만 했는데 사랑이 쏟아지고 사랑의 관계가 이어지면서 그 똑 같은 일이 반복되는데도 그게 흥겨움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고 희열이 되는 거에요. 딱 하나 차이가 뭐죠? 어느 날 사랑이 발생한 거에요. 교회 안에도 두 종류가 있어요. 율법적으로 억지로, 이거 꼭 해야 되나? 이러다가 어느 날 예수를 가슴 한 복판에 전 인격적으로 쩌렁하고 경험되는 날 사랑에 눈이 뜨게 되요. 그 때부터는 더 드리고 싶고, 더 자주 만나고 싶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누가 시키지 않아요. 그래서 교회 모든 헌신의 행위는 자발적으로 하는 거에요. 바울이 그 개념을 아는 거에요. 자기가 그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아멘? 오늘도 그렇게 보람찬 신나는 사랑으로 수고하는 한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다같이 한번 기도합시다. 오늘 주신 말씀과 오늘 수요 예배가 있죠? 1부 2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기름 부어 주시고 오늘도 우리 기도 속에 이웃을 위한 기도가 있게 하시고 내 일터에 제자로서의 선교적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다같이 소리 내서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일어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