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다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505
성경구절
요 6:16-21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18)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00:00-05:00)
이제 어린아이 한 명분의 도시락이 주님의 손에 들려지고 주님은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그런 상태에서 수만 명의 허기진 백성들을먹이셨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나죠. 많은 인파들이더 주님을 향해 열광적으로 박수하고 환호하고 모여들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깃발을 들 때입니다. 어서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의 허기와 이 무시무시한 어둠의 철권통치의 신음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시옵소서 해방시켜주시옵소서하고 열광적으로 주님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주님은 세가지 조치를 취하셨어요. 첫째 군중들을 흩어버립니다. 흩어버리고 두 번째는 제자들을 먼저배에 태워서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그런데그 건너편이 어딘가 봤더니 가버나움이라고 되어 있어요. 가버나움은 두 가지 특징이 있죠. 예수님이 가장 많은 역사와 사역을 이루어낸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장 회개하지 않은 고을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열광하는 무리를 뒤로하고 제자들을 그리로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세 번째 조치가 자신은 홀로 산으로 아버지와 하던 대로 습관을 좇아서 독대하러 오르시죠. 자 이제 오늘내용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에요. 우리는 오늘 주목할 현장이 바다 위에 배 한 척입니다. 그 당시 호숫가에 있었던 배의 크기래야 얼마나 컸겠어요? 그리고무슨 동력이 따로 있던 배도 아니고 노나 돛대 외에는 움직이는 동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배는 이제저녁 무렵에 출발을 해서 쭉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오늘 내용을 보니까 뭘 만나죠? 폭풍을 만납니다. 폭풍. 위험에처해지게 된 거에요. 근데 만약에 예수님도 이 배에 탔더라면 폭풍은 없었을까? 그렇지 않죠. 폭풍이 있었습니다.자 그런데 문제는 이거에요. 이 뱃길은 제자들이 계획했거나 의도해서 간 뱃길이 아니라는거죠. 누가 가라고 명령하신 뱃길입니까? 예수님이 가라 해서명한 길 순종하여 지금 가고 있는 겁니다. 자 그런데 폭풍우가 일어요.그렇죠 여러분? 예. 그게 정상이에요. 주님이 시키는 일 순종한다고 해서 비바람이 불지 않고 폭풍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려움 고난 눈물 두려움 초조 전전긍긍 불안 이런 게 계속 몰려와요. 주님이 시키는 일을 해도 그렇고 명하신 길을 가도 이런 건 빗겨가지 않습니다.자 우리는 오늘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 질문. 어느 것이 더 위험할까? 두 가지 예시를 드릴게요. 떡을 먹고 배가 불러진 백성들이 만족감을 얻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했습니다. 자, 이것이 더 위험할까요? 아니면 바다를 지나다가 폭풍우를 만난 게더 위험할까요? 여러분 생각에는 어느 것이 더 위험할 꺼 같습니까? 왕삼으려는 그 인간의 욕망의 시도가 더 위험할 꺼 같죠? 예 맞습니다
(5:00-10:00)
. 늘 대답은 정답을 하세요. 우리가. 그걸잘 알죠. 늘 우리 속에는 더 고질적인 병이나 문제는 항상 정답은 알고 있다는 거에요. 인간의 욕망이 기초된 물질적인 것이 기초된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하는 모든 의도나 시도가 우리 속에 사실은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늘 폭풍우 속에서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죠. 그런데 그 폭풍우를 향해서 누가 다가오고 있어요? 예수님이 다가오고계셔요. 자 여기서 예수님이 다가오는 것은 좀 뒤로 하고 이제 그 폭풍우를 맞는 제자들에게 초점을 좀모아봅시다. 이 배에 탄 제자들은 지금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바닷가에서 자라고 바다의 생리를, 배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 맞죠? 예. 그래서 이런 폭풍우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닐 테고 평생 여기서생업을 한 사람들일 텐데 이 폭풍우 앞에 폭풍우를 면할 수 있는 딱 한가지 방법이 있어요. 뭘까요? 폭풍우를 면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을 이 뱃사람들은 알고 있어요. 뭘꺼 같습니까? 여러분? 지금 역풍을 만났단 말이에요. 가버나움으로 향해서 건너가다가 이 배는 파도가 뒤집어 엎어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역풍을 만났어요. 이때 바닷가에서 자란 이 베테랑들은 이 상황에서 뭘 해야 될지를 알고 어떻게 하면 안전한지를 알까요? 모를까요? 알아요. 어떻게해야 될까요? 아 기도하자고요? 아~ 감격스럽습니다. 우리 삼일교회에 이런 성도가 계신다는 건 복이에요. 복.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야 어떻게 또 그런 대답이. 위대한 5월이 될 꺼 같아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뱃머리를 돌리면 되요. 야야야 이거 안되겠다. 하고 뱃머리를 돌려서 출발했던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면역풍이 뭐가 되죠? 뒷 바람을 맞아 순풍이 되겠죠. 그런데이 제자들이 그걸 몰랐을까요? 왜 몰라요? 알고 있었죠. 자 그런데 그런데. 이 폭풍우 사건은 굉장히 기묘한 사건이면서 신학적으로도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어요. 이 모든 사연이 끝난 다음에 다른 복음서의 기자의 글을 빌려보면 이렇게돼 있어요. 마태가 쓴 이 똑 같은 사건의 기록을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지금 누구입니까? 제자들이에요. 그러면 이 제자들일지라도 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백 프로 온전한 믿음이 되든지 이해가 있었나요? 없었나요? 없었어요. 없었어요. 여기 당연히 베드로도 타고 있었을 텐데 베드로가 뭐라 그러죠? 만일주님이시어든 나를 명해서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바로 그 사건이에요. 그래서 걸어가다가 물속으로 꼬르륵 빠져들어가죠. 그러니까 제자들이이 바다를 가로질러 배를 타고 건너갈 때는 사실 예수님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 완전한 이해가 없었어요. 그저이제 강아지 눈뜬 거처럼 마음속에는 아주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밖에는 없었어요.
(10:00-15:00)
그마저도 하나님이 심어주시고 넣어주신 은혜요 선물이었겠죠. 자 이제 배에 태워서 건너편으로갑니다. 배 안에 풍경을 한번 상상해보라고요. 제자들이 무슨대화를 하면서 노를 저었을까요? 아 저분 참 이상하네. 지금같은 이런 절호의 기회가 두 번 올까? 이거 얼마나 좋은 찬스야? 지금딱 깃발을 들면 상황 끝날 텐데. 수만 명이 지금 떡을 먹고 열두 광주리 남는 기적을 봤어요. 그리고 열화와 같은 박수와 환호와 지지 속에 임금 삼으려는 시도가 충만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 흩어버리고 자기들은 배에 태워서 건너편에 건너가 있으라 그러고. 그 명령에 따라 제자들은 지금 배를 탄 거요. 무슨 대화가 오고갔겠어요? 저분 참 이상하시네. 목적이 뭐야? 이보다 더 좋은 찬스가 어디 있어? 지금이야말로 깃발을 들고 우리가기대하는 그 왕이 되어서 로마를 뒤집어 엎고 백성들의 이 굶주린 허기의 시대를 충만케 할 절호의 찬스인데. 뭘로알 수 있냐 하면 그 안에 베드로가 타고 있었잖아요. 베드로. 얼마나이 베드로가 나서기 좋아하고 궁시렁 거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입니까? 그런데 중간에 폭풍우를 만나요. 여러분 이 폭풍우 사건은 사실상 오병이어 안에 감추인 또 다른 표적이에요. 그러니까이중적인 표적이에요. 학자들마다 이것이 뭐 일곱 표적 안에 들어가야 되느냐? 빼야 되느냐? 이런 논란이 있는데 큰 의미가 없어요. 오병이어 표적 안에 또 표적이에요. 이것이 제자들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제자들은 알고 있었을 텐데 뱃머리를 안 돌렸을까요? 왜안 돌렸을까요? 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앞에서. 그연약한 믿음이 중요한 거에요. 그러면 이 제자들은 지금 자기네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의 의미나 예수님의이해에 대해서 완전하지도 않았고 희미했어요. 잘 몰랐어요 사실은. 그런데신앙이 원래 그런 거에요. 잘 모르고 가는 거에요. 다 완전히클리어 하게 알고 깨닫고 보고 걷고 가는 사람은 없어요. 어어어 이건 뭐지? 하고 떠밀려 가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까 되어 있고, 그걸 다 겪고경험하면서 걸어가는 거에요. 그래서 신앙의 걸음은 예수님께 늘 붙잡히는 싸움이지 내가 그분을 붙잡는싸움이 아니에요. 신앙을 우리는 처음에는 내가 그분을 붙잡는 싸움인 줄 알아요. 아니에요. 진짜 신앙은 그분께 내가 붙들리는 싸움, 제자들은 이 위기를 알고 가는 게 아니에요. 모르고 가는 거에요. 그냥. 죽게 생겼을 때 저기서 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바다 위에서. 뭐가 희뿌연 게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천천히. 그러자 제자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죠? 귀신이다 그랬어요. 귀신이다. 유령이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그랬어요. 여러분 이게 무서워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되죠.그런데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 할 때는 그게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어요.
(15:00-20:00)
그런데 주님이심을 깨닫게 되자 그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으로 바뀌었죠. 자 그러면 예수님은이 사건을 통해서 도대체 제자들에게 뭘 말하고 싶었을까요? 자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좀 천천히 다뤄보도록하십시다. 우선 오늘 본문 22절을 보십시다. 22절. 이제 날이 바뀌었어요.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자 앞을 잠깐 보십시다. 장면은 바뀌어서 폭풍우의 밤이 지나고 제자들과 예수님이 건너편에도착을 했어요. 날이 밝았겠죠. 이튿날. 이 출발지였던 건너편에서 건너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하면 일단의 무리들이 여러 배를 동원해서 그 바닷가에 도착을 했어요. 예수님 찾으려고. 사라지셨으니까. 사람들은 뭘 알고 있었느냐 하면 어제 어제 오병이어의기적을 일으킬 때 이 바닷가에는 배가 딱 한 척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배는 그배는 제자들이 저녁 무렵에 이미 타고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서 건너편 가버나움 쪽으로 출발한 것을 또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 바닷가에는 당연히 배가 있어야 됩니까? 없어야 됩니까? 배가 없어야 되죠. 그런데 예수님도 없어요. 사라지셨단 말이에요. 이 양반 어디 갔지? 그리고 여러 배를 동원해서 건너편으로 건너온 거에요. 자 그러자23절 제가 읽습니다.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이제 소문을 듣고 여러 배들이 올망졸망 무리를 지어서 떡 먹던 그 바닷가로 찾아온 겁니다. 그러니배도 없고. 배는 몇 척 밖에 없었죠? 원래? 한 척. 배가 한 척 밖에 없었어요. 그 배도 없는 건 당연하죠? 예수님도 안 계셔요. 그런데 제자들이 없는 건, 배타고 갔으니까 없는 건 당연한데 예수님은그 배에 타지 않았거든요. 그것도 사람들이 지금 알고 있어요. 배안탔다는 걸. 자 24절을 보세요.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자 이 말 속에는 이중적인 질문이 감추어져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가버나움으로 쫓아왔어요. 그리고 물었어요. 질문이 뭐에요?선생님 언제 여기 오셨어요? 이 말속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라는 말도 내포되어 있는 거에요. 어떻게 오셨어요? 왜? 바닷가에는원래 배가 몇 척 있었어요? 한 척. 그 배는 누가 먼저타고 간걸 알았죠? 제자들. 예수님은 여기 언제 오셨냐 그말이에요. 그 말속에는 사실상 무슨 질문도 포함되어 있죠? 어떻게오신 거에요 여기? 이 질문도 포함되어 있는 거에요. 그러자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핵심입니다. 몇 절을 보시냐 하면 26절을 보십시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까닭이로다
끊어서 설명을 좀 들으십시다. 앞을 잠깐 봐주실까요?우선 확실한 거 하나는 뭔가 하면 이들이 예수님을 이 바다 건너까지 배들을 동원해서 찾으러 나선 것은 왜? 왜? 찾으러 나선 거에요? 왕삼으려고. 왜 왕 삼으려고 했죠? 떡을 먹고 배가 불렀기때문에. 이 사람이야 말로 우리 이 허기진 시대를 충만하게 채워줄 바로 그 메시아다.
(20:00-25:00)
로마의 철군통치를 종식시킬 바로 그 메시아다. 그래서 임금 삼으려고 쫓아온 거에요. 예수님이 그걸 지적한 거에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배부른 까닭이다. 그러니깐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찾음의 기초는 뭡니까?물질적인 것에 기초한 욕망이 기초가 된 거에요. 그들이 예수를 향하고 예수를 찾는 가장근본적인 동기는 물질적인 거에요. 저분 만나면 떡이 나온다고 했으니까,저분 만나면 병이 고쳐진다고 했으니까, 저분 만나면 잘 산다고 했으니까. 오늘날 우리 속에 슬며시 감추어진 욕망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요. 그리고무슨 까닭이 아니라고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고요. 그표적이 뭐에요? 예수님이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드러냈던 그 기적은 표적이었어요. 이러한 떡은 또 허기가 지는 떡이지만 내가 참 떡이다. 나는 어디에서왔다? 하늘에서 왔다. 그런데 이 어디서 라는 말이 지난주 얼마나 중요한 말인지 이해하셨죠? 이것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더라. 어디서 부는지 알지 못하더라. 어디서라는 말은 인간의 영적인 까막눈과무지를 설명하는 겁니다. 그들은 그 떡을 먹고 배부르면서도 이 떡의 참된 물질적 이상의 그 가치를 몰랐어요. 그것이 예수님을 예표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표적인 거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뭐죠?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나 군중들의 영적인 상태나 사실똑 같은 거에요. 자 그러면 이 표적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이 표적은 제자들만 경험했다는 겁니다. 어떤 표적이요? 폭풍우 치는 표적. 이것은 사실상 구약의 홍해 사건의 재판이에요.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은 새로운 출애굽을 설명하는 거에요. 즉, 청중이나 제자들은 아직 어디에 갇혀있죠? 시선이? 기준이? 기초가? 물질적인것에 기초해서 주님을 왕 삼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맞죠? 그러니까이 폭풍우 치는 가운데 바다를 건너는 사건은 새로운 영적인 출애굽을 선포하고 선언하고 계신 거에요. 우리는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끊임없이 우리 내면 한 구석에는 이 땅의 잘못된 욕망이 기초가 되어서 그분을 왕 삼으려고 하고 그분을 주삼으려고 하는 애굽의 인식이나 시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까 홍해를 건너 당장 광야에 물물떨어질 때, 음식이 떨어질 때 그 백성들의 입에서 내밷었던 원망의 주된 내용이 뭡니까? 애굽에 있었더라면 . 물질적 삶의 기억과 추억을 계속 반추하고 있어요. 이것이 아직 우리 속에 있다고요. 사실은 남아있어요. 예수님을 바다건너까지 쫓아온 청중도, 그리고 이 제자들도 폭풍우사건을 겪고서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이 고백을 그제서야 엎드려 해요.
(25:00-30:00)
자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다른 복음서의 기자의 시각을 빌려 예수님이 이것을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가를 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한군데만읽어드릴게요. 마가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마가복음 6:50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도리어 둔하여졌다는 말은 어마어마한 군중을 예수님이 먹이는 장면을 보고 눈에 보이는 기적을 통해서 더 잘못된 확신을 갖게 되었다그 말이에요. 너희는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더 복되도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태의 입을 빌려서 이렇게 이 상황을 지적합니다.
마태복음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믿음이 없는 자여? 작은 자여? 어느 쪽입니까? 작은 자여. 제자들은 강아지가 눈 뜨듯 믿음의 눈은 떠졌는데 이제뭔가 뭔가 이분이 범상치 않은 어떤 분이라는 거는 그 정도는 알고 있는데 이분이 그저 단순히 우리의 육의 허기를 때워주고 정치적인 위기를 모면케해주는 그런 메시아 정도로 이해를 가졌더라 그 말이에요. 그 이상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우리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대속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 위해 오셨다는 사건을 그 떡을 통해서 주님은설명했는데 그 떡의 진의, 영적인 표적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그냥 왕 삼으려고만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의 위기를 만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폭풍우를 다스리시고 천지만물을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고 계시는 거에요. 여기 내니 라는 말은 그 유명한 요한의 애고에이미용법이에요. 나는 무엇 무엇이다. 그러니까 메시아의 자기계시를 드러내실 때 사용하는 어법이에요. 에고에이미. 나는무엇 무엇이다. 나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요, 그것을 통치하는만물의 주권자이다. 이 이야기를 여기서 하는 거에요. 우리가그 경지를 넘어서야 되요. 육신의 허기와 결핍을 통해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인 되심을 우리는경험하고 그거를 붙잡고 그거를 배워야 되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왜 의심하였느냐? 여러분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어요. 배에 함께 오르자 그제서야 바람이 그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몇 가지 기도제목 겸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을 육신의 물질적인 기초를 근거로왕 삼으려는 그 안목을 뛰어넘어서, 뛰어넘어서 새로운 출애굽. 물질적인삶의 상징이었던 애굽의 삶을 이제는 다시 벗어나서 새로운 출애굽. 영적인 가나안을 향해 안내하려는 예수님의의도가 이 속에 담아져 있는 거에요. 이 일은 사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일상에 오늘도 일어나야 되고매일 탈 애굽, 출 애굽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30:00-35:00)
우리는 육신을 가진 몸이기에 이 땅에 머물러 살다 보면 늘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그 염려에 벗어나질 못해요. 육신을 가진 존재인지라. 그런데 그 염려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거를 뛰어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먹이시고 우리를 입히시고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요 전능한 주가 되시는 그 예수님이심을 뛰어넘어 그거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위기가 닥치면 당연히 두렵고 걱정이 되고 눈물이 나고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인간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문제는 거기에 함몰되는 게 문제에요. 그거를 우리가 없이 살 순없어요. 주님도 그 염려의 실체를 인정하셨어요. 걱정의 실체를인정하셨어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아뢰라. 우리는 그 염려를 통해서 그 걱정을 통해서 그 전전긍긍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시선의목적지는 계속 어디로 향해야 됩니까? 우리를 책임지시는 예수님 하나님 성령님 그 삼위의 하나님께로 우리의인생의 결론이 계속 줄기차게 모아지는 씨름이 있어야 되요. 믿습니까?5월 한 달도 그 폭풍우를 지나는 와중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 폭풍우 한가운데 계실 때 거기가 가장 안전한 자리임을믿으시기 바랍니다. 다 일어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