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00:00-05:00)
이제 상반기를 마름하면서 오늘 10장을 마치겠는데요.원래 전체 스토리는 22절서부터입니다. 시간관계상31절서부터 끊었지만 문맥적 고려가 좀 필요해서 우리 잠깐 22절을보고 오늘 이야기를 좀 건너 뛰도록 하겠습니다.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루살렘에. 사실 예루살렘 성전을 얘기하는 거죠. 뭐가이르렀어요? 수전절. 예루살렘 성전, 첫 번째 키워드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절기가 수전절이에요. 수전절. 때는 언제 입니까? 겨울입니다. 여러분 이 세가지 키워드를 시공간적인 무대장치 배경으로 이해를 하고 오늘 말씀을 듣는 것이 필요하고 결론쯤가서 특별히 수전절에 대해서 설명을 재차 드릴 겁니다. 원래 수전절은 모세의 율법에 명한 절기가 아닙니다. 이 수전절은 정확하게 유대인들이 B.C.167년경서부터 진행되었던어떤 역사의 끔찍한 참사를 기억하는 차원에서 만든 유대인들의 전통이고 절기지 모세 율법에 명한 절기는 아닙니다.자 그 설명은 좀 후에 결론 부분쯤 언급을 하기로 하고 오늘 본문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31절.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제가 좀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했다. 다시 라는 말로 봐서 한번 처음에 발생한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우리 요한복음 8장을 자막으로 한번 볼까요? 언제 그런 일이또 있었나? 한번 같이 읽읍시다. 시작.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네 8장은 아시는 것처럼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들린 여인이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을뻔 했던 것을 예수님이 물리치시고 용서해주시고 새 삶을 걷게 했던 유명한 현장이죠. 자 그리고 나서유대인들과 벌어진 격론 속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돌을 들어서 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다시, 31절에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이 본문만이렇게 연거푸 보면 여러분들 독자입장에서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야 유대인들 성질 대단하다. 아무리 열불이 났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을 돌멩이를 들어서 때려죽이려고 하나 이렇게 감성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있는데 이 행위는 그런 간단한 정서적 행위가 아니고 우리 레위기 24장을 좀 볼까요?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16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그를 죽일지니라
여기 보니까 레위기 율법에 돌로 칠 것을 명령했어요. 근데 어떤 죄목에 대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뭐하면? 모독하면.또 후반절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자 유대인들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여기는 게 신성 모독을 하는걸 견디질 못해요. 이걸 우리는 보통 신성 모독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지금 유대인들의 손에 들려진 이 돌멩이에 대한 분노가 뭐에 대한 죄목을 예수님에게 걸고 넘어진 겁니까? 신성모독이에요. 신성모독. 이걸단순히 성질 대단하다 이렇게 이해할 문제가 아니고 나름 유대인들은 지금 뭘 시행하고자 하는 거죠? 율법. 율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거룩한 의분이에요. 정서적 반응이 아니고. 자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32절.
(5:00-10:00)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이게 무슨 얘기죠? 내가 지금까지 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내가선한 일 밖에 한 게 없다. 근데 이 선한 일 중에 도대체 너희들이 나를 돌을 들어서까지 치려고 하는그 죄목이 뭐냐? 이렇게 질문을 한 겁니다. 예수님이. 죽이려고 하니까. 그러자 그들 대답을 좀 들어보세요. 33절.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함이로라
네. 자 여러분 사실상 이 대답은 이런 뜻입니다. 니가선한 일을 한 건 우린 상관없고, 관심 없고. 자 그러면예수님이 쭉 말씀하셨던 선한 행위와 선한 일은 뭐에요? 예를 들어서 38년된평생을 누워지내던 병자를 일으키신 일이에요. 그걸 주일날 하셨어요. 그러니까그 당시로는 안식일에 하셨어요. 게다가 요한복음 9장쯤 와서는평생 보지 못하는 사람을 눈을 떠서 보게 했어요. 자 그런대도 이들이 맹공을 가하는 이유는 뭔가 하면왜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종교라는것은 더 심화될수록 세속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거에요. 종교의 차가운 껍데기만 붙들고 그 안에 바로예수님이 하신 선함의 본질인 생명이 회복되고 어둠에서 빛을 찾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들은 안중에도 없고 관심도 없어요. 이게 종교의 무서운 점이에요. 종교가 심화되고 강화되면 더 인간다워지는게 정상인데 그냥 차갑고 창백한 종교껍질만 붙들고 종교인이 된다는 게 가장 무서운 거에요. 이게 소위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다는 신앙의 가문이나 그런 공동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리잡는 무서운 현상이에요. 이거를 우리가 피차 경계하고 조심해야 되는데 한국교회가 뿐만 아니라 우리 삼일교회도 점점점 그런 현상이 나타날수 있다는 거죠. 유대인의 대답은 정확히 이겁니다. 니가선한 일? 그건 우리가 상관없고 니가 신성을 모독했다. 그래서예수님이 어떤 신성을 모독했나? 제가 한군데만 읽어드릴 테니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 38년된 병자를 일으키고 나서 반응입니다.
요한복음 5: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더라
이 죄목이 계속 재차 삼차 반복되니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너무 격렬하게 분노가 일어나는 거에요.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을 자기와 동등하다 하질 않나 우리 아버지라고 하질 않나 이런 해괴한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자꾸 하니까 이제 율법대로 다스려야 되겠다 하고 저마다 돌을 들고 오늘 내리치려고 율법을 시행하려고 서있는 거에요. 자 그러자 34절 이제 본론에 들어왔어요.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셨거든
자 앞을 잠깐 보실까요? 이제 이들에게 예수님은 사실상 논쟁에 불을 지릅니다. 이건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논쟁을 지핀 거에요. 사실 예수님은 논쟁을늘 피해왔어요.
(10:00-15:00)
그런데 여기서는 웬일인지 예수님이 논쟁에 본격적인 불을 지펴요. 근데 논쟁에 불을 붙인재료가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조금 더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34절을 다시 보세요.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이거는 구약성경을 얘기하는 거겠죠?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여기서부터 구약성경의 인용구입니다. 내가 너희를 뭐라고 하였노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기 내가는 하나님이겠죠? 하나님이 우리를 뭐라고 했대요? 신이라고 했대요. 그런 성경이 있나 나중에 확인해봅시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뭐라 하였거든? 이것도 누구의 해석입니까? 예수님의해석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을 누구라 한다고요? 신이라고한대요. 자 이쯤에서 오늘 설교 제목이 뭡니까? 신의 아들이에요. 송목사가 설교제목을 신의 아들이라고 붙인 이유가 있을 텐데, 근데이 표현이 세상에서도 씁니까? 안 씁니까? 군대 갔다 온분들? 써요 안 써요? 쓰죠, 쓰죠. 쟤는 신의 아들이야. 우리여성분들은 잘 모르실 텐데 군대 갔다 온 분들은 알아요. 꽃보직을 받았거나 아예 면제가 됐거나 그러면사람의 아들은 군대를 가고 신의 아들은 면제를 받아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어 질때는 이게 긍정적인 뉘앙스에요? 부정적인 뉘앙스에요? 이건아주 부정적인 뉘앙스입니다. 그러면 오늘 주보에 설교제목은 같은 표현인데 신의 아들이에요. 그러면 이 표현은 송목사가 부정적인 의도로 썼을 꺼 같습니까? 긍정적인의도로 썼을 꺼 같습니까? 긍정적인 의도로? 믿음이 좋으세요. 결론은 조금 유보합시다. 그리고 사실 그 신의 아들의 참 진의를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오늘 설교의 결론이에요 그래서 맨 끝 부분쯤 가서 우리가 확인을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이제 본문을 계속 진행해봅시다. 이 본문이 시편 82편을인용한 겁니다. 자 우리 원본을 보고 얘기합시다. 원본을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누구의 시입니까? 아삽의 시에요.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시며 그랬어요. 앞의 하나님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얘기하지만뒤에 신들은 같은 엘로힘인데 사실은 재판관들을 얘기합니다. 그 당시에는 재판관들을 엘로힘이라는 같은단어를 썼어요. 그래서 그들을 신들이라고도 했습니다. 왜냐하면이쯤 해서 유대인들의 신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르 받는 사람들을 신들이라고해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이해를 갖는 겁니다. 그래서그 신들은, 아니 재판관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을 공의롭게 통치하고 재판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본문을 잘 보세요. 시편.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뭐하세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재판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직접 재판한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방금 뭘 주셨죠? 말씀을 주셔요. 그러면 그 재판관들은, 신들이라고 이해된 그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뭘 해야 됩니까? 백성들을 공의롭게 이쪽저쪽 형편에 따라 기울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이 시대가 그렇질 못했다 그 말이에요. 재판관들이 아니 신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2절.
(15:00-20:00)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셀라)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불의한자들 얼굴만쳐다보고 있다 그 말이에요. 어렵고 곤고한 사람들은 이게(돈) 없으니까 그냥 불의한 재판결과로 불이익만 겪는 부당한 일들이 이 땅에 어둠을 가져오고 이 땅의 근본적인 뿌리를흔들기 시작했다 그 말이죠. 3절.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지금 그러지 못하니까 이런 명령을 하나님께서 하고 있는 거에요. 5절 다같이.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자 여러분 재판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하나님을 대리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정한 재판을 해야 세상이 밝아지고 하나님의 정의가실현이 될 텐데 하나님의 말씀이 깡그리 무시되고 시행되지 않아요. 결과가 뭡니까?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뒤죽박죽이 되는 거에요. 흔들리는 거에요. 6절. 다같이.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바로 예수님이 오늘 요한복음 8장에서 인용한 본문이 이 6절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다 무엇들이며? 신들이며. 또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자, 이쯤에서 우리가 설명을 듣고 또 나머지 구절을 보도록 하죠. 이 본문을 그대로 띄워두십시오. 원래 원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 누구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나요? 네. 그것은 겉모습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빗었어요. 그리고 거기에다가 돕는 베필까지를 허락하셔서 부부를 만드신 다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쁘고 좋으셨던지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돼있어요. 아름다웠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의토부가 이루어진 거에요. 선. 그런데 그만 자존코자 하는교만이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면서 인류를 넘어져요. 그리고 가장 먼저 찾아온 게 뭐죠? 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다 뭐가 되죠? 육체가 되요. 피지컬 한 측면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잃어버린 껍질만 남은 존재가 되었다 그 말이에요. 이게 인류가 빠져있는 가장 심각한 죽음의 문제였어요. 사망이 들어오고 썩은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니까 인류의길고 먼 여정은 뭘 찾아가는 길인가 하면 그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잃어버린 원형의 기억을 회복해가는 여정입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처음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뭐며?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새로 가질 필요가 있는데. 제목을 먼저 띄워주세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첫째 다같이 읽습니다. 존재론적으로 신이 된다는 의미가 아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여기서 표현한 시편의 기자나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처럼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는 결국 피조물이니까 존재론적인 신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두 번째로.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시작. 하나님의말씀과 사명을 가진 진정한 인간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 여러분, 결국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시편에서는 신들이라고도했다고요. 맞죠 여러분?
(20:00-25:00)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가진 진정한 신으로 돌아가는 자리입니까? 인간으로 돌아가는자리입니까?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요. 이 인간은 어떤의미죠? 하나님께서 원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 만드실 때 그 원형의 모습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 되요. 진짜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참된 인간으로의 복귀를 얘기합니다. 참된인간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종교가 심화될수록 세속화의 중심에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늘 잊어버려요. 사랑하라고 준 율법을 우리는 시퍼런 칼을 만들어서 서로 상대를 찌르고 정죄하고 상처주고 할퀴는데 그 율법이라는 말씀을 잘못 오용하고 있더라고요. 이게 어떤 상태에서 많이 등장하는 현상들입니까? 종교가 심화될수록 우리는 탈 인간화 작업을 해 들어 가요. 인간이아닌 게 거룩한 거라고 착각을 해요. 참된 경건은 참된 인간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믿습니까? 근데우리는 참된 경건은 탈인간화 작업을 한다니까요. 갑자기 눈빛이 막 형광빛이 되고 목소리가 변해지고 걸음걸이도달라져요. 그래야 이게 무슨 경건인줄 착각을 한다고요. 아니요.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써 그 사명을 가지고 참된 인간이 되는 거라고요. 믿습니까? 3일 굶은 형제가 나 3일굶었습니다. 밥 한 그릇 좀 사주십시오. 그러면 손붙들고기도는 나중에 하고 형제여 이럴 때 일수록 우리 기도해야 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나중에 하고, 나중에! 지금 배가 고픈데 왜 낙심이 안 되요? 뱃가죽이 창자에 등에 들러붙게 생겼는데. 기도는 나중에 하고 빨리데리고 가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주는 게 이게 경건이라고요. 손 붙들고 기도하는 건 그러고나서 해도 되요. 그러고 나서. 이런 아이러니가 우리 실질적인신앙생활에 얼마나 많이 자행되고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자 여러분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돌멩이를 들어서 신성 모독 죄라고 지금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누굽니까? 그 분은 말씀을 받은 자가 아니라 말씀의 본체세요. 본체. 그런데 그들은 눈이 가리우고 듣질 못해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의 음성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내게속하지 아니한 까닭이라. 이게 근본적인 문제에요. 자 그러면우리가 아까 시공간적인 무대장치의 세가지 키워드를 염두 해 두라 그랬어요. 이 때가 언제에요? 이때가 겨울이요, 겨울이 갖는 성경적 의미는 구원의 때를 놓쳐버린, 추수도 끝나고. 이제 구원의 때가 지난 놓쳐버린 상태를 성경에서는예레미야 선지자가 겨울을 만났다 그런 겁니다. 이때 겨울이에요. 그리고때는 절기상 언제입니까? 수전절인데 이 절기는 하나님이 명령한 절기가 아니고 인간의 승리를 기념해서만든 절기인데 배경이 좀 있습니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집약해서 고대역사를 조금 설명을 드릴 테니까 아주재미있게 설명을 드릴테니까 졸지 마시고. 지금 2시 18분이니까 굉장히 위험한 시간이에요. 제가 알아요.
(25:00-30:00)
늘 경험상 4부 설교 때는 항상 영적인 텐션이 저한텐 있어요. 이 졸음과 피곤을 가득 안고 온 성도들과 어떻게 싸워야되는가. B.C.167년경, 예수님 오시기 2세기 전 쯤이 되겠죠? 이스라엘은 헬라제국에 점령당해 있었어요. 그때 헬라의 지도자가 누구냐하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였어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는 굉장히 폭정의 대가에요. 이 사람이 히브리인들을 딱 제압을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유대 제사장을, 특별히 제사장의 총수인 대제사장을 파직을 시켜버립니다. 그리고는 그 동생 야손이라는 사람한테 대제사장직을 줘요. 왜냐하면그 형은 헬라 정부의 정책에 호락호락하질 않았어요. 그런데 동생은 언제나 콤플렉스에 붙들려가지고 그대제사장직 한번 하고 싶었던 사람이에요. 뇌물을 주고 그 자리를 사실상 산 겁니다. 그래서 그 동생 야손이 대제사장으로 헬라에 의해서 임명이 되요. 원래대제사장이 남의 나라 지도자가 임명하는 직책이 아니란 말이에요. 어쨌든 세상이 엉망진창이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하다가 누가 그 자리를 강제적으로 물리력을 동원해서 빼앗는가 하면 메넬 라오스라는 사람이 유대인인데대제사장을 뺏어버려요. 무력으로. 야손은 얼마 못하다가 죽어요. 근데 실질적으로 이 야손이 죽기 전에 무슨 짓을 하는가 하면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느라고 얼마나 별 짓을 다해서얻은 자리인데 해서 자기 군대를 동원해서 공격을 합니다. 새로 대제사장 된 메넬 라오스를 공격을 해요. 근데 야손이 제사장의 직속군대를 끌고 공격하는 그 장면을 헬라제국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볼 때 이건 헬라 제국에 대한 반역으로 이해를 했어요. 그래서이 때 무자비한 공격을 안식일 날 감행을 합니다. 안색일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을 공격을 해버려요. 그래서 성벽이 무너지고 성전은 다 빼앗겨서 그 안에 그들이그때 제우스 신전을 설치합니다. 성전 안에다가. 그리고 더참혹한 것은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돼지인데 돼지 피를 재단에다 다 쏟아요. 그러니까 이건정말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 참혹한 사건 중의 사건이에요. 그리곤 율법 금지, 토라 공부 금지, 게다가 모든 예배 금지, 할례 금지. 다 금지시켜요. 이런상황 속에서 얼마를 지나다가 맛디디야라는 대제사장의 가문, 하스몬가라고도 하는데 이 가문의 아들이 마카비입니다. 들어보셨죠? 그 마카비 형제들이 반기를 들어요. 죽을지언정 이 모독을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마카비 형제들이 군대를끌고 대헬라 제국을 향해서 전쟁을 벌입니다. 이게 소위 마카비혁명이에요. 엄청난 살육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결국 얼마나 독하게 대들었던지성전을 재탈환합니다. 재탈환해서 들어가 보니까 제우스 신전이 차려져 있고 돼지 피가 쏟아져있고.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참상이 성전 안에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자 이걸 다 걷어내야 하는데 거기는 창문이 없단 말이에요. 다 껌껌한데이걸 다 청소하려면 불이 있어야 하는데 불을 켜려고 올리브기름을 찾으니까 이 올리브기름은 성전에서만 사용하는 기름이 따로 구별돼 있었어요. 아무 기름이나 쓰질 못해요. 보니까 딱 하루 분량밖에 없는 거에요. 며칠 걸려야해요. 이걸 다 걷어내려면. 그래도 하자. 그래서 하루 분량의 촛불을 켜놓고 이제 성전 청소를시작하는 겁니다.
(30:00-35:00)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하루 분량의 촛불이 8일을 타요.이게 메노라의 기적이에요. 그래서 이 촛대를 사실상 유대인들은 메노라의 촛대라고 합니다. 8일간을 타요, 하루 분량의 기름밖에 없었는데. 이걸 기적이라고 그들은 이해 한 거죠. 8일만에 그들이 이 성전을다시 하나님 앞에 재봉헌 합니다. 이 재봉헌 한다는 말이 하누카에요 하누카. 그래서 이 절기를 지금도 유대인들은 가면 성탄절보다 더 성대하게 그들은 아예 성탄절을 기억도 안 하지만 지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는 수전절이라는 우리말로 바꿔서 기록을 한 거에요. 그러니까이 수전절의 절기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성전을 참되게 다시 봉헌한다는 의미와 어두웠던 성전을 밝힌다라는, 어둠을 밝힌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그 당시 그 전례 때문에지금도 유대인들은 가면, 촛대를 한번 볼까요? 이렇게 돼있어요. 이 촛대. 이게 바로 메노라의 촛불입니다. 가운데 조금 심지가 큰 촛대는 종자촛대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이 촛대는 여덟 개의 양쪽의 촛대의 불을 켜는 종자촛대에요. 그런데학파마다, 유대에는 크게 두 가지 학파가 있죠? 샴마이 학파가있고 실렐 학파가 있어요. 그런데 이 학파마다 촛불 켜는 순서가 틀려요. 샴마니 학파는 모든 촛불을 먼저 켜놨다가 하루가 지날수록 하나씩 끕니다. 그래서안 외워지면 그냥 시마이 한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요. 그게 샴마이 학파에요. 그런데 나머지 학파는 처음엔 아무것도 켜놓지 않고 있다가 하루씩 하나씩 켜가요. 이게 이제 학파마다 견해가 틀려요. 그건 뭐 이렇게 중요한 게 아닌데. 이 수전절의 두 가지 의미는 참 성전을 봉헌한다는 의미가 있고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이 절기는 그들이 그 승리를 기억하고 기념해서 만든 절기에요. 사람이만든 절기에요. 그런데 그 수전절에 이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어요?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허물려고 돌멩이를 들고 있어요. 그리고 요한복음1장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뭘로 오셨죠? 빛으로 오셨어요. 빛으로 오셨는데 어둠이 깨닫지를 못했다라고 되어 있어요. 이 행위자체가지금 얼마나 아이러니한 행위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사도행전 17장을 한번 띄워주세요.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자 우리를 뭐라고 소개하냐 하면 하나님의 뭐에요? 소생. 하나님의 소생.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그 말이에요. 또 베드로후서 1장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이런 기록을 남겼죠? 다같이 시작.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양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놀랍게도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이 신성한 뭐에 참여하는 자? 성품에 참여하는 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참된 목적은 우리를 잃어버린 인간성의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에 목적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신의 아들들이라는 것은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신이 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뭘 맡은 자라는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는 하나님의 사명과 그 인생이 결부되어서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되요.
(35:00-40:00)
내가 살아가는 이 길 끝에 내 순종과 내 손대어지고 닿아지는 걸음 끝에 생명이 회복이 되고 하나님의 스토리가 공유되어서 죽었던땅에 생명이 돌아오고 그들의 스토리가 새로워지는 현장은 날마다 가지고 잇는가? 이것이 없다면 하나님이우리를 구원하신 참 목적대로 살지 않고 여전히 자기 한 생애 편안함과 일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여러분아무리 화려하게 살아도 하나님 없는 삶은 무의미한 거에요. 믿으십니까?아무리 세상의 기준으로 누추하게 사는 것 같지만 그 누추한 생애가, 아니 그렇게 보이는그 삶이 하나님의 사명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과 직결돼 있다면 가장 영광스럽고 화려한 삶인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름마다 겨울마다 떠나야 되는 선교의 또 하나의 사명이에요. 우리가되어지는 그 걸음 끝에, 땅 끝에 어둠이 거두어지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빛이 그 삶을 밝혀내고그들의 죽었던 삶의 자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으로 회복되는 자리, 거기에 그들의 스토리가새로워지지만 선교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연습을 하는 거에요. 그 함께 걷는 노정을 통해서 또한 누가새로워져요? 우리가 새로워진다는 거에요. 믿습니까? 이것이 오늘 차가운 종교의 껍질을 버리지 못한 채 선한 행위와 생명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들이 목숨처럼 붙들고있는 차가운 종교의 껍데기에 묶여서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너뜨리고꺼버리려는 돌멩이를, 종교적 의분에 차서, 자기 의에 가득차서 지금 들고 있다고요 돌멩이를. 어느새 나도 모르게 높이 들려진 그 손의 돌멩이를 우리는 예배가마쳐지기 전 고요히 내려놓고 다시 한번 주님이 그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그 목적지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본성이 회복되어 기울어지는순종과 떠남의 걸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