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영광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728
성경구절
요 12:37-43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30)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이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00:00-05:00)
이제 요한복음이 딱 절반이 지나갑니다. 첫 번째 서론 시간을 할 때 요한복음의 구조에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서부터 12장까지가 한 덩어리이고 13장서부터 20장까지가 두 번째 파트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21장은 하나의 에필로그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첫 번째 파트의 1장서부터 12장까지의 책 제목을 기억하시나요? 표적의 책이다. 이제사 기억이 나는 분들의 계실 겁니다. 표적의 책이다. 그래서 지난 주 까지는 우리가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마지막으로 쭉 표적만 다루어 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이 본문은 거기에 대한 결말이에요. 그리고 이제다음주부터는 두 번째 파트로 넘어갈 텐데 두 번째 파트의 책 제목은 영광의 책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향해서 걸어가시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일관성 있게 소개할 텐데 그 십자가로 가는 여정을 성경은 영광이라고 얘기합니다. 크게 이렇게 두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좋을 꺼 같아요.지난 주까지는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마지막으로 표적을 쭉 살펴봤습니다. 혹시 첫 번째 표적이무슨 표적이었는지는 기억하시죠?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든 사건으로 표적이 시작이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표적을 목도한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오늘 37절을 볼까요? 같이한번 읽어봅시다. 37절 시작.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 행하셨으나 믿었다 안 믿었다? 안 믿었다. 오늘 내용은 그래서 이 표적을 기초로 세가지 반응에 대해서 소개를 좀 할까 해요. 첫째는 믿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을 했고, 두 번째는 42절을 한번 볼까요?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이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예 믿는 자가 많다라고 돼 있어요. 많다. 자 그런데 이 많다라는 말 여기서 끝나면 참 좋았을 텐데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이건 어떤 사람들이죠? 경계선에 서서명분을 놓자니 좀 그렇고 또 자기들이 평생 쌓아왔던 자기들의 영광 자기들의 왕국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자니 아깝고 그래서 어정쩡하게 양다리 걸치지식으로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경계인들, 회색분자들, 종류의신앙의 스타일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세 번째는 또 한 종류의 신앙인을 만나게 될텐데. 첫 번째, 첫 번째,예수님의 표적을 그렇게 목도하고도 대적하고 반대했던 자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왜 그랬나? 자, 38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여기서부터 선지자의 글입니다.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이것은 이사야 53장의 글인데 우리가 조금 원본을 보십시다. 이사야 53장을 띄워주세요.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방금 읽었던 인용한 본문이죠? 여기서 인용을 한 겁니다. 그런데 2절을 같이 읽읍시다. 시작.
(5:00-10:00)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끊고 좀 지나갑시다. 2절에 소개된 메시아의 그림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모습이에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업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누가? 오실 메시아가. 이런 모습으로 올 것을 이사야의 글을 통해서 이미 예고했어요. 사람들은주님이 왔지만 그를 주목하지 않았어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또 심지어는 예수님이 30 초반이었을 텐데 니가 아직 50도 안된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러면 최소한 예수님의 겉모습이동안이었다는 얘기입니까? 나이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는 얘기입니까? 훨씬많이 보였다는 얘기에요. 동안은 성경적인 얼굴이 아니에요. 저같은 얼굴, 성경적인 얼굴이 아니에요. 뭔 소리를 하는지모르겠어요. 저도. 실제 예수님의 겉모습은 굉장히 초췌하고오죽했으면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았다 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3절 한번 볼까요?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네, 어느 구석 하나 흠모할만한 것이 없고 귀히 여길 만한 외적인 모습이 보이질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그를 고개를 돌렸고 주목하지 않았고 배척했고 외면해버렸습니다.이런 모습으로 주님은, 메시아는 고난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예고했어요. 왜? 오늘 본문으로 다시 눈을 돌려서 자 40절을 볼까요?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여러분 이것은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이 아니고 그들이 예수님을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무지입니다. 우리가 12장에걸쳐오면서 계속해서 반복된 표현의 문장 하나가 있어요. 깨닫지 못하더라, 알지 못하더라. 무지를 얘기합니다.그런데 이것도 표면적 이유에 불과합니다. 무지라는 이유도 이유가 되지만 그 무지 속에 덮어진진짜 이유는 뭐냐 하면 그들의 왕국 그들의 영광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을오늘 요한은 43절에서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우리에게는 결국 두 개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영광이에요. 자기 영광과 자기 왕국과 자기의 기득권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우리 눈이 가리워져요. 무지가 발생하고 주님을 주님으로 보지 못하는 불행에 빠지게 되는 거죠. 결국 우리는 이 양자 사이에 걸려있어요. 자기의 왕국을 추구하는삶을 살 것이냐? 그리스도의 왕국을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이냐? 이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고,눈먼 자를 고쳐내고, 38년된 환자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표적을 보고도 그들은 그 자기들의왕국, 자기들의 기득권, 자기들의 영광을 놓을 수 없기에눈이 가리워져서 결국
(10:00-15:00)
메시아를 십자가로 십자가로 내모는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기꺼이 13장서부터 이제 그 영광의 고난을 감당하는 주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광의 길로 뚜벅뚜벅 십자가를 향해서 걸어가실겁니다. 주님은 그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 말이에요. 이제두 번째, 두 번째, 42절을 다시 꼼꼼히 보십시다.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이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자 앞을 잠깐 보실까요? 관리가 누굽니까? 기득권 세력이에요. 이들이 그 공동체 안에서 유대교의 본산지에서 관리의 직책에 올라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고 노력을했을까요? 율법에 매달렸을까요? 그래서 이제 관리가 되어거기서 생성되는 기득권, 영광은 매우 세상을 살아가기에 편리한 것이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이거 글에 있으니까 그거 하나 못 놔?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어떤 생리인가 하면 쪼끄만 완장하나만 채워줘도 그것 가지고 대단한 권세를 부리는 세상이에요. 그게 어쩌면 이 세상의 생리고 속성입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관리 정도 되면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사람은 올라가기는 자연스럽게 올라가지만 자기 위치에서 내려가는 것은 죽음만큼이나 힘든 일이에요.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믿었어요. 믿었는데성경 기자는 이렇게 고발합니다.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여러분 출교가 뭐에요? 이건 공동체에서 아웃 되고 배제되는 거에요. 이건 물리적인 죽음만큼이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 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1996년쯤으로 기억이 되는데 중국에 어느 선교사님을 중요한 일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일정을 막 소화하고 잇는데 이 선교사님이 주저주저하더니 목사님 일정이 좀 바뿌시지만 꼭 좀 만나주시고 가야될 분이 있습니다. 누군데요? 그 자리에서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좀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묵묵히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저녁시간이었는데컴컴한 골목으로 한참 가더니 허름한 아파트를,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인데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탁 들어서니까 빼짝 마른 젊은 두 부부가 앉아 있어요. 이분들이누구십니까? 그랬더니 중국에서 아주 유명한 명문대학의 법학을 가르치던 교수님들이었는데, 이 부부가 다 교수였어요. 어느 경로를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된 겁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에 어느 날 번개가 치듯 찾아온 그 예수님의 사랑, 복음의뜨거움 앞에 생이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그리고는 내 마음에 찾아온 이 예수님에 대해서 나누고 소개하지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붙는 마음이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위험을 무릎 쓰고 그때만해도 중국이 지금처럼또 잘 살던 때도 아니고 자유로울 때도 아닙니다. 은밀하게 사랑하는 제자 몇을 모아가지고 자기가 만난예수를 간절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자 중 하나가 낌새를 알아채고 밀고를한 거에요, 공안 당국에. 급습을 받고 두 부부는 당연히체포가 됐죠. 3개월동안. 두 가지 제안을 놓고 무시무시한고초를 겪게 됩니다. 지금부터라도 공안당국의 질서를 따르겠느냐?
(15:00-20:00)
두 번째는 네가 만난 그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고백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면 너를 풀어줄 용의가 있다. 이 교수들을 만나보니까 그렇게 뭐 드센 인상도 아니고 그저 초라한 정말 힘없는 선비 같은 모습이에요. 그런데도 3개월 동안 무시무시한 고초를 겪어내면서도 일언지하에 거절을합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흔들리지 않고 그 고초를 겪은 끝에 결국 그 교수직을 박탈을 당해요. 그리고 그때 제가 만났을 즈음이 집안에 연금상태에 있었습니다. 밖에출입은 안 되는 거에요. 사람들은 그 집을 드나들 수 있어도 출입은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세월이 꽤 지났는데도 그 매우 단호한 가녀린 듯 보이는 그 젊은 두 교수 부부의 그 사건이 계속 기억이 나요. 여러분 우리는 가끔 삶을 살다 보면 이렇게 물리적인 박해는 당장 내 앞에 없을지라도 세상의 실리와 명예와 이익을손에 붙들고 내가 조금만 눈감고 조금만 비겁하면 이게 내 몫이 될 텐데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각오하면 이걸 놔야 되는 기로에서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이 관리들은 기득권 층이에요.그런데도 예수님의 표적과 복음선포를 통해서 그분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는 관리들이많아졌다고 되어있어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들은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해서 자기의 고백을 드러내지 못한삶을 살고 있었는데 성경기자인 요한은 이것을 어떻게 평가했나? 43절 다같이 한번 볼까요? 시작.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네.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늘 우리는 이 두 개의 영광 사이에 끼어있어요. 어느 쪽의 영광을 붙들 것인가? 여러분 세 번째 경우로 들어가겠습니다. 세 번째는 44절에서 소개되는데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앞을 잠깐 보십시다. 여기외쳐 이르시되 라는 이 동사는 예수님에게 관련 되서 정확히 요한복음에서 4번 등장하는데 공통점이 있어요. 네 번 등장된 외쳐 이르시되 라는 말이 전부 신적인 기초와 근거와 기원을 말할 때 이 표현이 등장을 해요. 외쳐 이르시되. 그러면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 출처와기원의 그 근거가 하나님께로부터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 무슨 내용이 담아져 있는가를 보실까요? 제가 읽습니다.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어 앞을 보세요. 예수님이 여기에서 자신의, 예수님자신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첫 번째 어떻게 설정하셨는가 하면 나는 보냄을 받은 자다 라는 설정을 가지고시작합니다. 다시요, 예수님은 어떤 자로 시작을 해요? 보냄을 받는 자. 이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삶의질서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냐 라고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뭐라고 대답이 나와야될까요? 나는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이라는말이 아니고 이 말을 누가 하셨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어떻하노라? 보내노라. 여러분들을 보내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정말 일상 속에서 내가 내가보냄을 받은 자구나.
(20:00-25:00)
이 감각을 갖고 사나요? 요셉이 하나님의 전체 섭리 그림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팔자가기구에서 운명이 기구해서 끌려오고 팔려온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전체 그림에 눈이 떠지자 그가첫 번째 밷었던 고백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아 내가 이곳에 끌려오고 팔려온 게 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였구나, 이걸누구한테 처음에 얘기합니까? 형들한테. 당신들보다 앞서 보냄을받았나이다. 당신들보다 앞서 보냄을 받았나이다. 우린 누구로살아야 되요? 보냄 받은 자로 살아야 되요. 믿으십니까? 내가 그 일터에 그 가정에 그 공동체에 보냄을 받은 자로 자리매김 되어 질 때 그곳에서 내 삶의 의미는 달라질수 밖에 없어요. 아 내가 스펙이 짧아서 이런 회사 들어왔구나, 학교다닐 때 공부 좀 더 할걸, 그 정도 후회를 하는 건 좋은데 그게 근본적인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되요. 내가 그곳에 뭐한 자에요? 보냄을 받은 자에요. 그러면 보냄을 받은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가? 자 49절을 보세요.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앞을 보실까요? 예수님은 첫째, 보냄을 받은자로서 그의 발자국을 쫓아가보면 어느 곳 어느 경우에도 자의적인 감정이나 자의로 걸어간 행적이 한군데도 없어요.전부 찬송의 후렴처럼 그의 인생의 후렴구에는 무슨 수식어가 쫓아다닙니까?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라, 성경대로 살아나사. 기억나세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라. 어느 한 발자국도 흐트러짐 없이그는 첫째, 보냄 받은 자로서, 두 번째 그분의 말씀의 원리를따라 걸어갔어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예수님을 보냄 받은자로 살게 한 연결고리, 유일한 끈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5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나는 말하고 삶을 살아낼 뿐이다. 믿습니까? 이것이 세 번째 신앙의 종류에요. 첫째는 배척하는 자가 있었어요. 이 배척하는 인생들을 위해서 주님은이제 13장서부터 십자가를 향하여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의 길을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가실 겁니다. 두 번째는 믿는 자들이 있는데 이 믿는 자들은 회색지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경계인들 경계인들. 왜? 출교를당할까 봐. 예수님 시대에 로마제국 하에 있었습니다. 로마황제는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인사를 가르쳤죠? 인사 속에 가이사는 주님이십니다. 그 당시에 목숨 걸고 이 인사를 거절했던 부류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어떤 죽음을 당했습니까? 원형경기장에 들여보내서 며칠씩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놓고 찢어 죽이는 광경을바라보면서 로마의 귀족들, 정치인들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낄낄거리던 그 쿼바디스의 장면들을 여러분들은기억할겁니다. 그건 가상 스토리가 아닙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실제 짐승의 탈을 씌우며, 톱으로 켬을 당하며, 옥중에서, 이것은 그 시대에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던 사람들의 실제의 현실이었습니다.
(25:00-30:00)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어느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어요. 그 영상을 여러분들과 같이이 시간 공유하면서 자연스러운 결론을 도출할까 합니다. 영상을 좀 띄워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찬양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났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의 한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믿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매우 화가 난 채로 그 가족들을 광장으로끌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을의 리더가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만약당신과 당신 가족이 믿음을 부인하지 않으면 너희는 오늘 모두 죽을 것이다.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한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노래는 그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처음 결심했을 때 작곡 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는 노래를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끔찍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따라 살기로 했네. 예수님 따라 살기로 했네. 예수님 따라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아내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는계속해서 노래했습니다.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아도 나는 따르리 뒤돌아서지 않겠네.”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을 지라도, 나는 따르리.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을 지라도, 나는 따르리.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을 지라도, 나는 따르리. 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녀가 끔찍하게 죽은 이후에,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을 살릴 수 있었지만그는 여전히 노래했습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않겠네.” 그 남자와 가족들은 그날 목숨을 잃었지만 그곳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마을 리더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심겨졌고 그 씨앗은 자라나서 마침내 리더는 마을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아놓고 이제 자신은 우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했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확산되어서온 마을을 덮고 전 지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희생된 한 크리스챤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었고 진정한 믿음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중동 어느 나라에서 중동 두 소녀에게 세례를 줄 기회가 있었습니다.
(30:00-35:00)
그들은 제가 오기 전 3개월 전서부터 그 세례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막상 물통을 준비해놓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하는데 그 두 소녀의 몸이 너무 너무 얼어붙는 거에요. 그들의 나라에서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평생 죽음 같은 고초를 각오해야 하는 결단 없이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제안을 했어요. 정 두려우면 다음에 해도 좋다 했더니그들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어요. 너무 무섭지만 너무 두렵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주시는 그 구원의 은혜를, 흔적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러분, 왜 두렵지 않겠어요? 왜 무섭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공포와 그 두려움을 뛰어넘는 주님께 붙들린 구원의 은혜, 하나님이나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우리는 그저 오래된 CCM 고전 복음송으로만 알고 있던 이 오래된 찬양 속에 한 가정의 죽음이 감추어져 있었다는 사실 앞에 옷깃을여미게 됩니다. 오늘 이 영상과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에게 세가지 기도제목을 주님이 함께 했으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첫째는 지구촌에 생사의 기로 앞에 박해를 받는,그저 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 앞에 내 몰려져서 벼랑 끝에서 박해를 받고 잇는 17만명의박해 받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오늘은 특별히 좀 기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하십시다. 우리는 명분도 놓고 싶지않고 이 땅의 영광도 포기할 수 없는 경계선에 서서 머뭇거리는 자는 아닌가? 그리스도의 나라의 영광보다자기의 영광을 포기하지 못한 채 늘 경계선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정직하게 놓고 기도를 하십시다. 그리고마지막 세 번째는 오늘 주신 말씀처럼 세상 끝날까지 우리 교회와 우리 삼일교회 성도들에게 명령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이 대 명령 앞에 우리의 헌신과 우리의 시간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우리 NO turning back. 다같이 일어나셔서 이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