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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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요한복음 오늘 세 번째 시간인데요 본문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6절을 보시면 6절.
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자, 여기 두 가지 명제가 건져집니다. 첫째는 요한을 소개하는데 두 가지로 소개했어요. 첫째는 보냄을 받은자다. 이것은 역시 우리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첫 번째 정체성이어야 합니다. 우린 누굽니까?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별로 실감을 안 하시는 표정이신데, 우린 누굽니까? 보냄을 받은 자에요. 누구에게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여러분, 이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구약에 요셉 같은 경우에도 이 정체성에 눈 열어지기 전까지는 운명이 기구해서팔려온 줄 알았고, 재수가 없어서 끌려온 줄 알았어요. 애굽으로. 그런데 형들의 조아림을 보고서야 그는 이런 고백을 토해냅니다. 하나님께서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보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 그래서 보냄을 받았다는 인식에 눈이 열어졌어요.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냥 여느 청년처럼 늘 절망이요, 답답함이요. 깜깜함이요. 나는 가방 끈도 짧고,스펙도 모자라고. 이런 운명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그 모든 인생의 곡절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전체 섭리에 눈이 열어지니까 한 단어가 바뀌어요. 팔려온 게아니라 보냄을 받은 자였구나. 여러분들은 누굽니까? 이 땅에그냥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이 속에는 한 명도 없어요. 나는 누구이냐?보냄을 받은 자에요. 자,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누구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그러니까 ‘보냄을 받은 자’가강조점이 아니에요. 여기서 진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나를 누가 보냈느냐? 누가 보냈습니까? 전능자이시오, 창조주이신,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가운데는어느 한 생명도 그냥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는 인생도 없고 어쩌다 태어난 인생도 없습니다. 믿습니까? 이 두 가지 명제는 요한의 자기 소개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이면 새롭게 가져야 될 자기 정체성이에요. 첫째, 나는 누구인가? 그럼여러분들 이렇게 대답을 하세요. 보냄을받은 자입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여러분들은 누굽니까? 여러분들을 보내신 분은 누구십니까? 그 사실은 진짜 고백으로 살아내기를바랍니다. 믿습니까?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자기 고백이어야하고 정체성의 확인이어야 합니다. 오늘 이 두 가지만 놓고도 여러분 깊이 하나님의 섭리 안으로 들어갈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땅에 보냄을받은 자다. 누가 나를 보내셨는가? 하나님이 보내셨다. 자, 그렇다면 그 보내신 뭐가 있을까요? 목적이 있을 것 아니에요. 목적이 뭘까요? 자, 7절을 보십시다. 이렇게돼있어요.
7그가 뭐 하러 왔으니? 자, 그러면 이보다 더 선명한 설명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세례요한을이 땅에 뭐 하러 보냈어요? 증언하도록 하기 위해서 보내셨어요. 무엇에대한 증인입니까? 빛에 대해서. 그 빛은 곧 누구시죠?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 빛에 대해서 증언을 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증언이라는 것은 협의적인 의미에서, 좁은 의미에서그저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에만 국한시킨 게 아니에요. 우리 길고 먼 인생의 노정을 다 가리키는 거에요. 우리 길고 먼 인생의 순례 길에서 누구를 증언해내야 합니까? 그리스도를증언해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에요.자, 그렇다면 여기에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어요. 어떤이에게는 물질도 주시고 은사도 주시고 탤런트도 주시고 지위와 명예도 주셔서 인생을 살게 하실 수 있어요. 또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안 줘요. 돈도 없고 그렇다고 뭐 별 다른 재주도 없고 그럴 수 있잖아요. 편차가. 그러면 하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위해서는 없는 쪽이 나을까요? 있는 쪽이 나을까요? 네? 있는 쪽이 나아요? 네, 글쎄요. 일단 그렇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렇게 은사와 특권과 명예와 물질을주셨는데, 그 성공적이듯 보이는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건 인생의 장식품에 불과해요. 그런 인생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없죠. 인생은 뭐가 성공인가 하면, 있던 없던 그 기준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인생길에서 그리스도가 빛으로 증언되어야 되는 삶이 진짜 성공적인삶입니다. 그러면 없는 쪽은 그런 영광과 증언도 못하겠네요? 아니죠. 없는 쪽은 이렇게 증언할 수 있어요. 없지만, 약하지만, 없고 약함을 통해서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증언하고드러낼 수 있어요? 없어요? 그 사람이 없고 약한 대도 무너지지않더라고요. 그것 땜에 전전 긍긍하는 삶을 살지 않더라고요. 그없고 약함 속에서도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고백되고 드러날 수 있다면 그런 인생을 통해서도 어떡할까요? 하나님이증언을 받으세요. 자, 그러면 여기서 비교를 해보십시다. 어느 쪽이 더 쉬울 것 같아요. 없이 증언자로 사는 삶이 쉬울 것같아요? 있고 가지고서 증언자로 사는 삶이 쉬울 것 같아요? 그건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없고 약한 인생의 툴을 가지고 증언자로 사는 게 훨씬 힘들죠. 하나님은실력 있는 자에게 힘든 역할을 맡길까요? 실력 없는 자에게 힘든 역할을 맡길까요? 솔직히 대답해 보세요. 실력 있는 자에게 힘든 역할을 맡깁니다. 가만히 보면 집집마다 애들도 그래요. 어떤 엄마는 철딱서니 없이와서 막 애들을 자랑을 해요. 우리 애들은 말도 잘 듣고, 그냥신앙생활도 잘하고 그만한 애들이 없다 그래요. 봐도 진짜 그래요. 그런데듣는데 조금 거북스럽죠. 그럼 그렇게 얘길 합니다. 꼭. 어머니, 그런 자랑은 어디 가서 하지 마시고 나한테만 하세요. 원래 실력이 없는 엄마한테 괜찮은 애들을 맡기는 법이에요. 실력이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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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한테는 험한 애들을 맡기는 법입니다. 이것은이 쪽을 위로하려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인생도그렇더라고요. 항상 저 외진 강원도 산골에 83세 평균, 할머니 여덟 분 모시고 2~30년을 목숨 걸 듯 목회하는 친구들이있어요. 그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송태근 같으면어림 반 푼어치도 없어요. 실력 없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어렵고 험한 사역을 안 맡깁니다. 실력이 되는 친구들한테 맡기는 거에요. 우리는 자랑할 게 없어요. 은혜라는 단어 외에는 답이 없어요. 신앙이라는 게 원래. 그러니까 여기 요한을 보낸 것은 증언을 위해서 보냈어요. 그런데증언의 방식은 다양하다고요. 전부 가지고 있어야만 증언자가 되는 건 아니에요. 없이 살아도, 누추하게 살아도, 약해도그 약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드러낼 수가 있는 겁니다. 자,그런데 성경을 좀 보십시다. 7절.
7 그가 증언하러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여기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러면그 빛이 온 세상에 비치면 그 빛에 조명된 사람들은 다 구원을 얻는다는 얘길까요? 이렇게 돼있어요.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함이라. 이게 목적이에요. 믿게 하려는 게 목적이에요. 그런데 이 말은 그러면 모든 사람이구원을 얻는다는 얘기가 아니고. 목적은 그건데, 그 조명된, 드러난 계시에, 빛에 두 종류가 나뉘어진다고요. 어떤 이는 그 빛을 거부해요. 어떤 이는 그 빛을 받아 들여요. 예수를 수십 년 믿어도 이 결론 앞에서는 경이로운 감격을 늘 가질 수 밖에 없어요. 내가 어쩌다 예수를 믿게 됐나? 내가 어쩌다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고백할 수 있었고, 그 분을 창조주로 내 아버지로 내가 인지하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믿어는 지는데, 이해는 안 되요.솔직히 말해서. 경이로운 감격밖에는 없어요. 우린여기서 칼빈이 말하는 선택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선택의 교리 앞에 성경의 증언 앞에 입을 다물게 되는 거죠. 에베소서 2장 8,9,10절은이렇게 증언합니다. 띄워 주세요.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러니까 믿음은 뭐란 얘깁니까? 은혜란얘기에요. 내가 믿은 게 아니에요. 내가 결단하고 의지적으로믿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죽어있는 우리 영적인 데다가 선물을 주신 거에요. 선물을.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은혜에 의하여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뭐라? 선물이라. 여러분 선물은 사랑해서 기뻐서 거저 주는 게 선물이에요. 그런데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건 뭐예요? 뇌물이에요. 하나님이우리에게 뇌물을 주실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렇잖아요. 모자람이없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분이. 행위에서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뭐하지 못하게 함이라?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나는 믿었고 그래서 구원을 얻었고, 너는 안 믿었고 그래서 지옥에 갔다? 이 논리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냥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셔서 구원이라는선물을 허락해 주신 거에요. 다음 절 다같이 시작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이렇듯 빛이 이 세상에 와서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계시가 드러났어요. 계시의 주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드러났어요. 그런데 빛은 골고루 비추입니까? 여기만 비취고 여기는 안 비춥니까? 빛은 그런 법은 없어요. 제가 수십 년 살았지만 여태 태양이 그렇게비추인 적은 못 봤어요. 언제나 온 세상에 태양이 뜨면 모든 세상에 다 빛이 비추어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로 온 세상에 드러났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빛을 빛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 빛을 빛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이야기를 8절에서 이렇게 소개하죠.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뭐하지 못하였고? 알지 못하였고
자,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점을 인식하고 고백해야 됩니다. 첫째, 8절입니다. 그는 누굴 가르치죠? 세례 요한을 가르쳐요. 그는 이 빛이 아니오 뭐예요?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에요. 자, 이것은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태도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자, 가끔 가다가 자기가 빛의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좋은부모 만나서, 좋은 머리 받고 태어나서 내가 밤잠 안 자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만한 결과가 나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벌어서 내가 쓰고 내가 누리는 거 누가 뭐라 그래? 이것은가히 일반적인 율법주의적 사고에요. 자기가 심어서 자기가 거둔다는 논리에요. 우리는 모든 사고의 기초를 십자가와 은혜의 논리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둬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세요. 머리가 좋습니까? 하나님이 좋게 하셨겠죠. 당연히. 그러니까 은혜 아닌 것이 한 군데도 없어요. 그런데 자기가 빛인 줄 알아요. 하나님이 좋은 머리를 주셨고 좋은것을 주셨으면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라고 주신 거에요. 하나님이 약함을 주셨고 가난함을 주셨다면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라고 그 역할을 맡긴 거에요. 믿습니까?자, 그런데 9절을 잘 보시면
9 참 빛, 자 예수님을 가끔은 이렇게 표현을 성경에서 합니다. 참 떡, 참 포도나무 여긴 참 빛.이제 요한복음에는 이 개념이 굉장히 자주 등장을 합니다. 자, 여러분 참의 반대 개념이 뭘까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거짓? 아닙니다. 여기서말하는 참의 의미는 거짓의 반대 개념으로써 참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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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참의 개념은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것을 얘기합니다. 다시요 여기서 말하는 참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만나야 될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것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런 개념으로서의 참이지, 거짓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참이 아니에요. 자, 그런데 문제는 그 참된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빛이 있었는데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뭐하였다? 알지못하였다. 알다 라는 개념이 등장을 해요. 우리 앞서 시간에로고스라는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드릴 때 헬라적 배경만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실질적인 내용은 어느 배경에서 왔다고요? 구약의 배경에서 왔다고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언약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것을구원하셨어요. 자,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이렇게 돼있어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 여기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은 그래서 정보의개념이 아닙니다. 자, 문재인 대통령 다 알죠 우리 대한민국사람들이면, 세계인들도 다 알고. 뭐 인터넷 검색해 보면그 분의 출생서부터 좋아하는 음식까지 다 나와요. 아주 미주알 고주알 다 나와요. 그래서 우리가 그 분을 아는 겁니까? 여기서 말하는 앎이라는 것은지식적인 정보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관계적 개념을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또는 저를 알려면 저하고 어떡해야 됩니까? 살아야 돼요. 한 집에서 먹고 자고, 평소에 저 사람이 언제 신경질적이고 그리고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교제하고 이거 관계적인 걸 얘기하는 거에요. 마리아가 천사의 수태고지 앞에 유명한 고백을 하죠. 내가 사내를알지 못하니.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단 얘깁니까? 그얘기 아니잖아요. 거기서 말하는 알지 못한다는 것은 관계적 개념을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너희가 때가 오래므로 마땅히 선생이 되야할 터인데 아직도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다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자가 되었으니 이는 의의 말씀을 뭐하지 못한 자요? 경험하지 못한 자요. 바로 그 단어입니다. 경험하지 못한 자. 부부가 살림을 살 듯.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빛이 세상에오셨는데 그 주인이 오셨는데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즉, 거절했다 그 말이에요. 자, 다음 절을 한번 보실까요?11절 다같이 시작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자, 알지 못했다는 말이 어디로 동의어로확대됩니까? 영접하지 않았다. 환영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말이에요. 거절했다 그 말이에요. 제가 요즘 여러분들에게 자주 여쭙는 질문하나가 있어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겁니까? 무지한겁니까?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무지해서 무시하는 겁니다. 이 알지 못했다는 말은 무지한 거에요. 그러니까 이 무지함이 얼마나무서운 죄인지 몰라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게 죄에요.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모르니까. 그 분이 전능하신 분인지, 나를 위해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왜 내어 놓으셨는지 모르니까, 모르니까무시하는 거에요. 에이, 하나님이 어디 있어? 이 광명 천지에. 무지하니까 그 결과가 어떤 태도로 나오게 되는거죠? 무시하는 거에요. 그래서 호세아가 뭐라 그랬어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에 대해서 조사하란 얘깁니까? 그 얘기 아니잖아요. 뭐 하란 얘기에요? 그 분 안으로 들어가라 그 말이에요. 그 분과의 관계로 들어가라그 말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믿음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많이 나올 겁니다. 앞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도 믿음인데 그걸로 믿음이다 완성이 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제 그 믿음의 문을 넘어서서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야돼요. 대문 지나면 내실로 들어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우리는 대문만 겨우 통과해 놓고 뭐라고 하고 있는 겁니까? 할렐루야!너 대문 통과했어? 통과했지? 아, 우린 동지야. 그걸로 끝나는 거에요. 홍해 건넜어? 건넜지. 계속홍해 해변가에서 우리는 모닥불 피워놓고 홍해를 건넌 놀라운 감격에 젖어 있는 거에요. 조개 껍질 묶어~ 뭐 그러면서. 해변가에서 비치 파라솔 밑에서, 선탠 해가면서. 그리곤 계속 홍해 건넌 감격만 우려먹는 거죠. 야, 건너올 때 장난 아니었어. 물은하나님이 다 갈라놨는데, 그 감격에 젖어 있으면 어떡하자는 거에요. 이제는광야를 지나서 더 부요한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야 되는데, 아직도 해변가에서 해변의추억을 읊조리고 있다면 안 되는 거죠. 우리 신앙은 요한복음 강해를 통해서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말씀을 아는 세계로 들어가야 돼요. 믿습니까? 자, 성경을 보세요. 그러나, 자 위대한 반전이 벌어지는데 12절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기서도 믿는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 여기되는. 자 앞을 보세요. 된다 라는 말을 쓰는데 이 기노마이 라는 말이 창조 때 쓰는 표현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뭐 하는 겁니까? 창조하시는거에요. 새 창조. 첫 아담은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으로 마지막아담이자,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로 빚고 창조하시는 그 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라는 이 되는 단어에 걸려 있는 거에요. 그 다음에 성경을 보십시다. 12절에 되는 뭘 주셨습니까? 권세. 자 여러분 권세라는 말은 능력,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특권이란 뜻입니다. 정확한 개념은. 특권. 우리가세상에 조그만 특권이 있어도 그거 행세하고 싶어서 얼마나 속에서 분출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까? 조그마한권력만 있어도. 자루 속에 송곳이 삐쳐 나오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잖아요. 정확하게 특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누구의 특권이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이에요. 여러분, 이 특권을 이 세상에서 얼마나 누리고 알고 사용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런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는 세상 아무리 어마어마한 분 앞에, 어마어마한 어떤 것에 위축되거나졸아들 아무 이유가 없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어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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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특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졌어요. 여러분 그 특권을 가진 자답게 이 세상에서 살아내고 있나요? 우리는계속 그 특권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닌 이 땅의 거품처럼 사라지거나, 제한되거나 없어질 것에 거의 평생에운명을 건 삶의 태도가 있잖아요. 그 생각만 한번 해보십시오. 하나님의자녀가 되는 특권. 그런데 이것을 세 가지 부정문과 한 가지 긍정문으로 13절에서 이렇게 요약합니다. 첫째 이는 혈통으로나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엄마 아버지가 사랑을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혈통으로 육정으로나. 어떤 성적인 욕구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서는 부정적인 성적인 욕구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싸락스 라는 말은 그냥 인간에게있는 내추럴한 어떤 본능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 아버지의 뜻 남자의뜻을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오직 어디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이 인식을 우리가 근본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해야 돼요. 우리가 위로 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 오셔서 우리에게자녀 되는 특권의 도구가 되어주신 것처럼, 방법이 되어주신 것처럼. 그러기에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오 오직 어디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믿습니까? 이제요한복음이 마쳐질 즈음에는 여러분들의 신앙의 단계가 저 깊은 하나님의내면의 저 안방으로까지 들어가서 그리스도가 신랑 되시고 여러분들은 그 분의 신부가 되셔서 그 분과 먹고 마시는 놀라운 영적인 부요를 경험하는 은혜가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다 일어나십시다. 오직예수 뿐이네.
(찬양)
우리 한번 서신 채로 눈을 감고 기도합시다. 성경은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파와 오메가로 설명했을까요? 그 분으로부터 세상은 시작이 되었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안에 놓여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예수 외에는 참 빛 외에는, 은혜 외에는 우리 인생을 분석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한번 이 요한복음의 말씀을 듣는 과정에 우리 믿음의 세계가 더 그 분 안으로 깊이 부요해지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 붙들고 나는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요한을보내듯 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왜요 증언토록 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 오늘 주신 말씀을 붙들고 계속되는 선교의 일정을 위해서. 또 여러분들이 고단한 한 주간의 삶을 마치고 한 주를 시작하는 첫 날, 가지고나온 모든 소소한 기도 제목에서부터 혼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까지도 나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그 십자가 밑에 그 기도에고단한 짐을 풀어내고 주여 한번 부른 다음에 통성으로 다같이 기도 합니다.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