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이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00:00-05:00)
오늘은 18장에 들어서서 두 번째 시간인데 제가 기억이 안나서 여쭤볼게요. 지난 주 4부 했나요? 4부안 했죠? 문맥이 좀 끊어져서. 오늘 본문이 10절부터입니다. 그래서 8절부터설명을 앞서 드리고 들어가도록 하죠. 8절 보시면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가 되기 직전입니다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무슨 얘기냐 하면 “너희들이 찾는 사람이 나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면 나만 잡아가고여기 함께 있는 제자들은 돌아가도록 허락을 해라.” 이 뜻입니다. 그러니까예수님은 물리력에 의해서 억지로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그 죽음에 내어놓으시는 거죠. 그래야만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9절 보시면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자 앞을 잠깐 보실까요? 무슨 애기냐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힘이 없어 잡혀가는 것이아니고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을 너희 손에 내어주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을하기 위해서다 그 뜻이에요.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왔고 나는 그 이유 때문에 스스로 나 자신을 너희손에 넘겨주는 것이다. 목적은 하나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자들에게 한 사람도 손상 입히지 않고 다 구원해 내기 위해서. 그 뜻이에요.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을 보세요.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이에. 이에 라는 말은 대등접속사입니다. 무슨경우 때 이 접속사를 쓰냐 하면 앞에 한 설명을 보충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래서 지금부터 소개되는 몇가지 이야기 토막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앞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개되는 흐름과 스토리라는것을 염두 해 두실 필요가 있다 그 말이에요.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누굽니까? 말고. 앞을 보십시오. 다른복음서에는 누가 칼을 빼어 들었는지도 소개가 없고 그냥 제자 중 하나에요. 또, 누구의 귀를 베었는지도 이름이 소개되어 있질 않아요. 그런데 유독요한만 이 두 가지를 다 밝힙니다. 베드로가 빼어 들었고 말고라는 종이 귀 베임을 당했다 이걸 밝혀요. 그렇다면 요한은 이 사건을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는 강조점이 됩니다. 우선말고 입장에서 설명을 먼저 할 것이고, 베드로 입장에서 설명을 뒤에 할겁니다. 순서대로 이 설명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말고라는 말은 영어성경에보면 말쿠스라고 되어 있어요. 말쿠스. 이 이름이 놀랍게도셈어적 문법을 쫓자면 왕이라는 뜻이에요. 왕. 그러니까 이런뜻이 됩니다. 왕이, 왕으로 살아야 될 사람이 누구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대제사장의 종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아니 뭐 대제사장의 종 노릇하는 게 뭐 나쁜가? 이 대제사장은 불법한자들입니다. 그러니까 뭐에 종 노릇하고 있다는 거죠? 불법한자들의 종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거에요. 누가? 말고가. 말고란 이름이 뭐라고요? 왕으로 살아야 될 사람이 여기에 해학적그림이 있어요. 이 말고는 누구에요? 우리를 얘기하는 거에요.
(5:00-10:00)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에덴이라는 동산에, 하나님의 왕국에 창조될 때부터 우리는 그지역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 받아서 다스리는 뭘로 지음 받은 겁니까? 왕으로 지음 받았어요. 에덴 동산에 왕이에요. 첫 번째 아담은 왕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스리라 다스리라 그런거요. 그런데 그 왕이 지금 불법한대제사장의 무슨 노릇을 하고 있어요? 종 노릇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범죄해서 타락에 빠진 인생의 전형적인 그림을 설명하는 거에요. 결국 예수님은 이걸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거죠. 그래서 말고의 귀를 만지셔서 다시 붙여주시죠? 그래서다시 붙여주시는 거에요. 회복케 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를가리켜 사도베드로는 뭐라 그랬죠? 너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누구에은혜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회복이 됐죠?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러니까말고는 그런 해학적 그림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존재입니다. 믿습니까?이것은 우리의 모습이면서 우리의 회복이 어떠할 것임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그러면베드로의 입장에서 이제 시선을 돌려보자고요. 자 베드로는 칼을 빼들었어요. 저는 저라도 그랬을 꺼 같아요. 신의상. 의리상. 어떻게 이때 가만히 있어요. 지금 주변의 제자들은 우물쭈물하거나 일부는 도망 갔거나 지금 몇 사람 안 남아있어요. 그런데 지금 스승님은 불법한자의 야심한 밤에 횃불을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쩌나 어쩌나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이러고 있어요? 뭐라도해야될 거 아니에요? 그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에요? 베드로에요. 상당히 의리 있어 보이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 행위가 예수님에게준엄한 꾸중을 받습니다. 도로 꽂아라. 도로 꽂아라.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세요. 11절에 보니까.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앞을 보실까요?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제자들을 앉혀놓고 한 명 한 명씩 발을 닦아 나가세요. 그 광경을 지금 베드로가 보고 있어요. ‘아 이건 아닌데, 쟤들이 어쩌자고 그대로 발을 내밀고 있나? 이래선 안 되는데.’ 그러다 드디어 자기 순서가 왔어요. “선생님 아무리 그렇더라고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절대 제 발은못 씻깁니다.” 저라도 그랬을 꺼 같아요. 저라도. 어떻게 척하니 발을 내밀고 어우 시원하다 그러고 있어요? 베드로가사실 상식적으로 오히려 더 납득이 가죠. 그런데 예수님이 뜻 모를 얘기를 하십니다.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너무 냉정한얘기를 하세요. 그러니까 이번엔 베드로가, 하여간 베드로는끝과 끝을 왔다 갔다 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요. 아 그러면 목욕도 씻겨주십시오. 이렇게 된 거에요. 여러분 이 세족식은 그때 13장쯤 설교를 할 때 뭐라 그랬죠? 물론 다 잊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겸손을 드러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고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 새로운 가족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발을 닦아준다는것은 이제 새로운 가족공동체, 너희가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인걸 확정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베드로는 이 영적인 고도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얘기입니까? 못했다는얘기입니까? 못했다는 얘기에요. 이해 못했어요.
(10:00-15:00)
그리고 예수님은 거기서 죽음을 암시하고 있죠. 내가 죽어야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 거의 그 끄트머리에 이르렀어요. 이번엔 칼을 빼 들어요. 어딜 감히? 상당히 의리 있어 보이는데 신의나 의리가 기독교적 가치보다앞설 수는 없어요. 복음의 가치보다 신의나 의리가 우선할 순 없는 거에요. 의리! 하는 것은 김보성씨나 하는 얘기지. 그것이 살아가는데 필요는 하겠지만 우리는 더 우선적 가치가 뭐죠? 복음적가치에요. 성경적 가치란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이베드로에게 나무라면서, 깨닫지 못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아버지께서내게 주시는 잔을 마시지 않겠느냐”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인간은 어쨌든 이 축배의 잔을 들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시편 23편을보면 순례 길을 다 한 순례자에게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고백을 듣게 되요. 그 잔 안에는 아버지께서부어주신 축복의 생명의 잔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생에게는 또다른 잔이 들려져 있어요. 그들이 드는 축배의 잔은 뭐죠? 세상의성공과 욕망과 탐욕이 채워진 잔일 거에요. 그 잔을 시편기자는 이렇게 얘기에요. 11편 띄워주세요.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네. 그들의 손에도 축배의 잔이 들려져 있는데 그 잔 안에는 사실상 그들이 꿈꾸는 모든것들이 채워지겠지만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재앙에 불과하다 그 말이겠죠. 돼지가 도살할 날을위해 살찌움을 받는 것처럼 똑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두 잔 중에 하나를 들게 되요. 그러면 우리는 원래 어느 쪽에 있었어요? 이쪽에 있었어요. 세상의 가치관에 묶여서 세상의 성공과 야망을 쫓아 불나방처럼 불구덩이인줄 모르고 거침없이 달려들던 인생을 살았을지도몰라요. 하나님의 은혜 없었으면. 근데 대신 이 잔을 누구에게마시우게 했다는 말입니까? 이거 우리가 당연히 들고 마셔야 될 잔인데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들을 통해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잔을 아들로 하여금 들게 했다 그 말이에요. 아들로 하여금마시게 했다 그 말이에요. 아들은 이 잔 마시움이 너무 괴롭고 아프고 힘들어서 이 체포되기 직전 날밤 제자들을 데리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겟세마네 동산이죠. 거기서뭐하셨습니까? 제자들과 함께 밤을 맞도록 혹독한 기도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하늘 아버지와 무릎을 맞대고 이렇게 기도 하세요. “아버지 지금이라도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왜? 가다올 고통이 싫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떨어질 아버지와의 결별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그게 너무 혹독해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런데 그 기도는 아버지의 계획에 순복하는 것으로 결정이 됩니다. 기도란뭐냐 하면 내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가 아니고 하늘 뜻에 순복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원대로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기도를 끝맺죠.그때 불법한 무리들이 저기서 밤을 더듬어가면서 횃불을 들고 참 빛이신 예수님을 작은 불빛에 의지해서 체포하러 오는 광경을 만나게 되는거에요. 근데 그 밤에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뭐했어요? 뭐했어요?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어요.
(15:00-20:00)
여러분 따라서 합니다. 기도의 실패는 사명의 실패다.기도의 실패는 사역의 실패요 사명의 실패입니다. 제자들은 똑 같은 장소에 똑같은 시간을예수님과 가졌지만 예수님은 그 기도에 승리를 하셨어요. 그 승리는 아버지께서 주는 잔을 내가 마시지않겠느냐? 순종으로 끝났어요. 그런데 제자들은 육신의 곤함을이기지 못하고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어요. 예수님이 얼마나 그 광경이 안쓰럽고 아팠던지 “너희가 한시라도 나와 깨어있을 수 없었더냐.” 이렇게 꾸지람을 합니다. 그 실패의 자리는 예수님을 쫓는 실패의 자리로 귀결이 되고 마는 거에요. 다시한번 할까요? 기도의 실패는 사명의 실패다. 그래서 여러분공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자리면 절대 빠지지 마세요. 가장 최고의 준비는 기도고 가장 최고의 일은 기도이어야합니다. 거기서 승패가 나는 거에요. 믿습니까? 자, 그 다음 성경을 볼까요?12절.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온 레벨의 권력자들이 다 들러붙었어요. 드디어 예수님의 결박당합니다. 13절 시작.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여러분 앞으로 이 안나스에 대해서, 가야바에 대해서 설명을 할 텐데. 안나스도 이때 대제사장이에요. 이 사람은 사실상 종교 권력의 실세입니다. 그리고 그 장인이 안나스고 그 사위가 가야바에요. 가야바. 가야바는 현재, 현직 대제사장이에요. 자 14절.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앞에 어떤 얘기를 했었어요,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서. 요한복음 11장을좀 띄워주세요. 제가 읽습니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무슨 얘기냐 하면 예수님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무리들을 자꾸 데리고 다니고 사람들이 쫓고 그러다 보니까 사회의 기존질서가 흔들려요. 기득권의 기존질서가 자꾸 시끄러워져요. 이때대제사장 가야바가 걱정을 한 거에요. 이러다가 이거 로마가 다시 우리를 침략해서 성전을 무너뜨리고 백성들을몰살시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저 한 사람 때문에? 차라리이게 낫겠다. 저 사람을 죽여서 이 백성을 살리는 게 낫겠다. 아주상식 선에서 생각을 한 거에요. 근데 그 말이 가야바가 한 말인데 성경은 이렇게 소개를 해요. 다음 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가야바는 이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한 말이에요. 근데 이 말은 또 아이러니하게도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지금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 한 사람이 체포되어 지금 죽음 직전에 있어요. 그것도 누구의손에? 가야바의 손에. 심문을 받기 위해 서 있단 말이에요. 어떠세요?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악인은 정말 악해요. 야 어떻게 저렇게 까지 악할 수가 있나 인간이? 그런데 그것도 지 맘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도 일정부분 악의불쏘시개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을, 그 시각을 놓쳐서는 안 되요.
(20:00-25:00)
너무 그 사람을 욕하지 마세요. 긍휼이 여기세요. 열심히쓰임 받는구나. 그러면 별로 미움도 안 들어요. 직장에도보면 그런 류가 한두 명씩은 꼭 있잖아요. 저 사람은 사고구조가 저래~열심히 쓰임받는 거에요. 가야바도 자기가 민족을 위해서 한 사람이 죽어야 돼. 그런데 정말 예수님은 그 민족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긴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지금 죽으셔야 했다고요. 그 말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52절이 그 말이에요. 다같이 다시 한번.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누구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가야바의 입을 통해서. 가야바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을 좀 보십시다. 15절.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자 여러분 여기 베드로 이름은 나와 있는데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누굽니까? 이왕이면베드로 이름 밝혔으면 이 제자 이름도 밝히는 게 상식일 텐데 이 제자 이름은 안 써놔요 성경기자가. 이건이 글을 쓴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뭐 학자들마다 조금씩 견해 차이는 있어요. 어떤 학자는 니고데모를 얘기하는 거다, 아리마대 요셉을 얘기하는 거다 설이 많은데 오늘 5부에 설교해주실디 카세이라는 세계적인 신학자는 그의 책에서 사도 요한이라고 정확히 설명을 해놓습니다. 근데 개연성으로봐서 사도 요한이 사실은 정설입니다. 어쨌든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아요. 이 제자는 자기에요. 자기. 대제사장과아는 사람이라. 안면이 있었던 모양이죠.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집 뜰에 들어가고. 예수를 끌고 들어가니까 이 사람도 따라 들어간 거에요. 왜? 대제사장과 안면이 있었으니까.들어가고 이때 16절.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베드로는 문 밖에 서있게 되요. 못 들어갔어요, 베드로는. 그러니까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을 해가지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이 다른 제자가, 요한이 베드로를 데리고 뜰 안으로 데리고들어오는 거에요. 이때 그 문 지키는 여자가, 여종이 베드로에게말합니다.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이걸헬라어 문법에 맞게 뉘앙스를 그대로 살리자면 이렇게 물은 겁니다. “너도 그 사람 제자인 거 같은데?” 이렇게 물은 거에요. 문 지키는 여종이. 그러면 이 뉘앙스로 봐서 얘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라는걸 모르고 물은 겁니까? 알고 물은 겁니까? 알고 물은 거에요. 보니까 저 사람 제자 맞는데 아니야? 이렇게 물은 거에요. 이때 당황한 베드로가 딱 잡아뗍니다. 첫 번째 부인이에요. 아니다. 자 볼까요?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절 다같이.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여러분, 불을 지폈고 불을 피웠다는 것은 이 시간이 야심한 밤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재판과 심문은 이 시간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불법의 시간이에요. 시간이정해져 있어요. 공회도 소집되질 않았어요. 모든 게 지금불법으로 진행이 됩니다. 게다가 스승을 앞에 놓고 이 제자는 어린 여자아이 앞에서 첫 번째 부인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서있는 장소가 그 무리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피워놓은 숯불 가에 서서 그들의 곁 불을 쪼이면서스승을 배반해요.
(25:00-30:00)
근데 이 불이 안트라키아라는 말을 써요. 안트라키아.이 안트라키아라는 말은 정확하게 요한복음 21장 9절에이렇게 소개됩니다. 띄워주세요.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자, 예수님이 좌절해서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 그물질을 하고 있는 뿌연 새벽에 해변가에다뭘 피워놔요? 숯불을 피워놔요. 이 단어가 안트라키아입니다. 이것은 영화기법상 기화 같은 암시장치에요. 베드로가 새벽녘에 아직동이 트기도 전 새벽녘에 이 숯불을 봤을 때 베드로의 뇌리에 뭐가 쑤시게 아파왔을까요? 이 뜰에 그날밤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곁 불을 쬐며 스승을 부인하던 자기 모습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떠올랐을까요? 예수님은아무 말 없이 그 숯불을 피워놓고 밥 먹자. 오늘 식으로 얘기하면 밥은 먹고 다니니 그렇게 얘기한 거에요. 밥은 먹고 다니니? 밥 먹자. 여러분근데 이 배반의 장면을 또 한군데 보십시다 .25절 보세요.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안트라키아입니다. 역시이 불도 불법한 무리들이 불법한 시간에 피워놓은 추위를 피하기 위한 그 곁 불을 베드로가 쪼이면서 사람들이 물었죠.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아니라 하니. 아니라 하니. 여러분 그리고 27절을 같이 볼까요? 시작.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그 유명한 닭 얘기가 나옵니다. 닭 얘기. 닭은우리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의 심볼이죠. 근데 이 닭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러니까 바로 이 닭 소리를 듣고 닭 소리 때문에 회개를 한 게 아닙니다. 그때닭이 울었을 뿐이에요.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서. 자 그러면 지금 우리는 요한복음 오늘 18장에서 두 군데서 세 차례에걸쳐 부인하는 가장 사랑했던 제자의 배반에 너무 뼈아픈 모습을 봤어요. 근데 그 기록, 양쪽 기록 사이에 가운데 가운데 토막에 어떤 이야기가 설치되어 있느냐를 봐야 되요. 마치 샌드위치처럼. 자, 19절을보세요. 바로 그 샌드위치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기록들이죠. 19절.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그리고 24절로 가서 다같이 시작.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여기만해도 이 본문만 해도 벌써 대제사장이 몇 명 등장합니까? 2명 등장해요. 19절에 말한 대제사장은 안나스, 장인을 얘기하는 거에요. 근데 그 장인을 둘러선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대제사장이라고부르고 있어요. 근데 그 대제사장이 사위 대제사장에게 예수를 넘겨요.안나스에게서 가야바로 넘어가는데 둘 다 이 시대의 대제사장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 말이에요. 근데실제 대제사장은 가야바에요. 자 그러면 여러분 상식선에서 한번 물어볼게요. 대제사장은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한 시대에 두 명입니까? 세 명입니까? 한 명입니까? 한 명이어야 맞아요.그리고 레위 지파의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이 제사장직을 하도록 율법이 명하고 있어요. 그런데여기만해도 벌써 대제사장이 두 명이 등장을 해요.
(30:00-35:00)
그리고 또 하나 구약을 율법대로라면 대제사장은 종신직이에요. 즉 그 제사장이 죽어야다음 대제사장이 새로 계승할 수 있습니다. 근데 죽지도 않았는데 사위가 지금 대제사장이 되어 이어요.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하고 이 대제사장 임명의 변형의 역사를 쭉 추적해봤어요. 그랬더니 몇 가지 매우 가슴 아픈 힌트가 기록으로 남아 있더라고요. 자이들이 B.C600년경에 이스라엘과 유다가 다 포로로 붙들려 갔어요.그리고 나서 해방 후에 느헤미야를 통해, 에스라를 통해,스룹바벨을 통해, 이들이 고터로 돌아와야 되는데 백성들은 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무너진황폐한 고향 땅을 돌아와요. 그런데 너무너무 가슴 아프게도 대제사장 혈통들이 돌아오질 않아요. 왜요? 이미 그들은 그 바벨론이라는 문명의 세계에서 물질의 호화로운매력에 빠져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거에요. 그때부터 이 대제사장직은 돈으로 거래가 되어서 임명이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금품수수가 일어나요. 성직매매가이 제사장직을 통해서 벌어져요. 무슨 얘기가 됩니까? 그들의타락은 이스라엘의 종교의 타락을 가져왔고 많은 스캔들이 벌어져요. 특별히 안나스는 로마 총독에 의해서임명된 제사장이에요. 가장 끔직한 사례죠. 대제사장직을 주군에해당하는 로마 권력이 임명을 해요. 근데 안나스는 워낙 줄을 잘 타는 사람이에요. 사바사바 해가지고 자기가 나쁜 스캔들로 파직이 되니까 다섯 아들들에게 이 제사장직을 조금 조금씩 하도록 일년이년 하도록 물려주다가 그 아들마저도 실패를 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누구에게까지 제사장자리를 계승한겁니까? 사위에까지 제사장직을 대물림한 거에요. 이정도 되면이 집안이 몇 십 년 제사장직만 해먹습니다. 이 집안이. 이미이때는 대제사장직의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얘기에요. 정치권력의 자리가 되었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로마 총독이 이 직을 임명을 하고 서로 기브앤테이크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이들은 지금 대제사장으로서 누구를 심문하고 있어요? 진정한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하고있어요. 누가? 가짜들이.이게 세상의 아이러니에요. 가짜들이. 가짜들이조그만 횃불을 들고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러 오질 않나, 불법한 시간에 불법한 장소에서, 불법한 대제사장들이 참된 대제사장을 지금 수치를 주고 모욕을 주고 심문을 하고 있어요.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성경을 좀 보십시다. 20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절 시작.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었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 여기 이 사람들도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부르고 있죠? 근데 이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했어요? 때려요. 예수님을 때립니다. 그리고 19장3절을 보세요.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35:00-40:00)
빌라도의 심문 앞에 벌어졌던 일이에요. 계속 예수님은 매를 맞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아프라고 때리는 의미보다는 수치와 모욕을 주는 거에요. 이스라엘사람들은 가장 생명 같은 문화가 체면문화에요.근데 이렇게수치와 모욕을 거짓 대제사장 앞에 심문당하며 기꺼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기 위해서 걸어가신 예수님 중앙에 놓고 이 샌드위치 구조처럼 양쪽에서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이 스승을 어떻게 하죠? 배반합니다. 모릅니다. 난 아닙니다. 여러분 이거는 시간적 배열이 아니라 의도적 배열이에요. 즉, 베드로는 평소에도 예수님 앞에, 제자들 앞에 뭐라고 호언장담했죠? 이 사람들은 다 선생님을 버릴지라도저는 죽을지언정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이 신실하지 못한 제자를 향해서 여전히 신실하신 예수님의 사랑은자기를 기꺼이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는 거에요. 이 대조를 드러내고 싶었던 겁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결론으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뭘 건져내야 될까요? 우리는배반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 정도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이그런 결심으로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깊은 낙심, 자기 절망, 자기 한계 앞에 서서 내가 그렇지 뭐. 여러분 신앙생활을 가장 방해하는 게 교만이 아니라 낙심이에요. 좌절이에요. 좌절만큼 무서운 교만이 없어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그쪽의시선보다는 오히려 아 나는 좌절할 수 없는 근거에 서있구나. 이 제자를 끝까지 부활하신 주님이 추적하여서그 디베랴 바닷가에서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물었던 질문은 딱 한가지에요. 너 나 사랑하니? 너 지금도 나 사랑하니? 이 모든 것들보다 나 사랑하니? 이렇게 물으셨어요. 체면불구하고 베드로는 세 번에 걸쳐 같은 대답을합니다. “아가파스메, 아가파스메, 아가파스메.”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내가 무너질 수 없고 실패할 수 없고 좌절할 수 없는 그 기초와 근거가 내 수준에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해야 되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끝까지 내 생명을 위해서 책임지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실함에 내가 서있구나. 내가 좌절할 이유도 없고 실패할지라도 나를 다시 일으키시고 건지시는 그리스도의 성실한 사랑 앞에 내가 묶여있구나. 다시 눈물을 머금고 일어설 수 있는 진짜 용기가 여기에서 시작되는 거에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아침마다 새로운 은혜로내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성실 앞에 그분이 나를 위하여 얼마나 성실하신 분이며 그 성실하심이 얼마나 나를 위하여 진득하신 분인가를 우리가 붙들고나를 바라보면 좌절투성이고 절망투성이일지라도 그것이 내가 이 땅에 서있을 이유도 안되고 근거도 안 된다는 겁니다.우리의 기초와 우리의 근거는 새로운 출발은 십자가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내 삶의 이유를새롭게 발견하는, 그분이 나를 여기까지 사랑하셨구나. 믿습니까? 그 사랑에 매임 받는 새로운 11월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