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01
빌레몬서 강해(1)
“무익한 종”
몬 1:1-3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00:00-10:00)
빌레몬은 딱 1장이지요. 그래서 하루에 다 살펴 볼 수 있지만 루터 같은 경우는 이 빌레몬서를 기독교 사랑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할 정도로 빌레몬서는 어느 책보다도 집약돼서 녹아져 있는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그리고 이 빌레몬서는 개인 서신이에요. 교회에 보낸 서신이 아니라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지극히 개인적인 서신입니다. 개인적인 서신이었으면서도 불구하고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 짧은 개인 서신을 성경책에 편입시킬 정도로 소중한 가치를 역대 학자들이 인정을 했고 또 성령께서 이 기록에 하나님의 영감과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우선 빌레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소개를 하겠습니다. 오늘은 빌레몬서 서론 격이 되겠습니다. 빌레몬이란 사람은 일단 성경 전체에서 신실한 성도로 소개됩니다. 신실한 성도, 아주 신앙이 좋았어요. 게다가 이 집에서 교회가 시작이 될 정도로, 빌레몬 집에서 교회가 시작이 됐어요. 집이 컸다는 얘깁니까? 작았다는 얘깁니까? 집이 컸다는 얘기죠.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의 집에서 시작이 되었죠? 마가의 집에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되지 않습니까? 한 백이십 명 정도가 들어 갈 수 있는 다락을 소유한 집이라면 마가는 굉장히 부잣집 아들이었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빌레몬도 사실은 큰 저택을 소유 할 정도로 굉장히 부자였어요. 또 하나 증거는 그에게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어요. 유명한 노예죠. 사실 오네시모 때문에 이 빌레몬서가 쓰여졌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 부자요 또 신실한 성도입니다. 대게 신앙이 좋으면 삶이 힘들던가 할 텐데 이 사람은 세상적으로 또 영적으로 아쉬울 것 없이 다 갖추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데리고 있던 오네시모라는 종이 도망을 갑니다. 재정적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가요. 학자들이 추정을 하기를 오네시모는 로마가 이 지역을 정벌할 때 붙잡아 놓은 노예 중에 하나가 아니었겠나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추정에 불과한 거니까 자세히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는 거고 어쨌든 이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 노예로 있다가 주인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가는데 어디로 갔냐 하면 로마의 도시를 향해서 나름 꿈을 가지고 떠났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로마의 편재에 있던 국가의 인구가 1억 2천 정도 됐어요. 엄청난 제국이었죠. 게다가 로마에 모여 사는 인구만 백오십만 명 정도 됐어요. 여러분 백오십만 명은 오늘 날에도 큰 도시에요. 혹시 목포가 몇만인지 아십니까? 목포? 한 삼십만 된다 그래요. 백오십만이면 대구시보다 조금 작은 그 정도의 규모인데 이 당시에 백오십만 명이면 어마어마한 도시입니다. 그러니 그 화려함 그 북적거림 그런 동경과 젊었으니까 어떤 나름대로의 자유를 위해서 꿈을 가지고 주인의 재정을 일부 훔쳐서 대도시로 떠나왔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얼마나 좋았을까요?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가지고 온 돈으로 맘껏 쓰고 도시의 흘러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보면서 참 좋았을 것 같아요. 노예가 갖고 있는 돈 한계가 있겠죠? 바닥이 나면서 그에게도 탕자의 모습처럼 어려움과 혹독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있어요. 그 미스터리가 뭐냐 하면 그가 로마에 투옥돼 있던 사도 바울을 만난 겁니다. 이 당시 사도바울은 로마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갇혀 있을 때는 형무소에 갇혀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고 어떤 형태였는가 하면 우리 사도행전 28장을 잠깐 한번 볼까요? 사도행전 마지막 장이죠? 28장 30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30 바울이 온 이레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거기 보시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어디에 머물렀다고 돼있죠? 셋집에 머물렀다. 이 셋집이라는 말은 연금상태의 집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군부 시절에 정치적으로 각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군부가 연금을 해 버렸죠? 상도동, 동교동 해가지고 집 안에서 사람들이 찾아 갈수 있고 또 살 수는 있으되 나오진 못하게 하는 그런 연금 형태의 투옥 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잘 보시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어느 일정 정도의 자유는 보장 된 연금 상태를 얘기합니다. 누구든지 올 수는 있어요. 이때 찾아 온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가 당연히 껴있었겠어요?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어떤 어떤 사연으로 이 연금 상태에 있는 사도바울에게까지 찾아왔던 것 같아요. 자 이렇게 해서 이제 빌레몬서에는 굵은 세 명의 인물이 등장을 합니다. 첫 째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이 등장으로 하고, 두 번째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등장하고 셋 째는 사도 바울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편지를 주고 받았겠죠. 빌레몬은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종이 하나 도망을 해서 로마까지 오게 된 겁니다. 로마까지 왔다가 누구를 만났다고요? 연금 상태에 있는 사도 바울을 만나면서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자 바울이 이제 이 오네시모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도록 하십시다. 우리 한번 10절을 볼까요? 9절부터 먼저 보지요.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바울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이렇게 소개를 하는 걸로 봐서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나은 아들 누굽니까? 오네시모죠. 연금 상태에서 찾아 온 오네시모를 복음을 전하고 뭘 삼았어요? 아들을 삼았어요. 그래서
10 갇힌 중에서 나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여기 네게는 누구를 지칭한 표현이죠? 바로 이 서신을 받고 있는 빌레몬입니다. 그러니까 옛 주인에게 이 편지를 쓰는 거에요.
(10:01-20:00)
누구의 옛 주인입니까? 오네시모의 옛 주인에게 이 편지를 쓰는 거에요. 그리고 11절,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함으로 할렐루야, 꼭 누구의 그림처럼 여겨집니까? 우리들이죠. 우리는 이전엔 하나님 앞에 무익한 존재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묶인 바 되어서 하나님 앞에 유익한 존재로 부름을 받고 있는 거에요. 저 같은 사람, 오네시모 같은 존재들이죠. 제가 얼마 전에 부산에 잠깐 밤에 갔다 올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누가 영접을 나왔는데 한참을 찾아도 목사 같아 보이는 사람이 없어요. 영접을 나왔는데 분명히 전화로 역전에 나와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서로 전화를 하고 헤맸어요. 대게 보면 영접 나온 사람이나 보통 목회자는 틀이 어느 정도 보이잖아요. 아무리 봐도 없어요. 결국은 한참, 20분 헤맸나요? 서로 헤매다가 서로 전화 들고 눈이 마주쳤어요. 전화 속의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서로. 목사님이시냐고 그러니 맞는다고. 그 친구는 저를 알아봤고. 딱 보는 순간 너무 목사 같지 않은 거에요. 그 친구가 너무 목사 같지 않아요. 그래서 이제 장소까지 차로 그 친구가 운전을 하고 저는 실려서 오며 가며 대화를 하는데 자기는 아직도 대중 목욕탕을 못 간데요. 온 몸에 문신이 있어요. 아주 험악한 세월을 보냈던 친구인데 자기 별명이 오네시모래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용서가 없었다면 자기는 지금도 끔찍한 생활을 했을 거라는 얘기를 해요. 아주 험하게 살았다는 거죠. 하나님과 복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는 거에요. 그러다가 하나님께 붙들려서 신학을 하게 되고 지금은 어느 교회 늦은 나이인데 50이 다 된 나이인데 지금 부교역자로 청년들을 맡아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기 같은 청년들이 그렇게 자기를 따른대요. 복음을 잘 듣고, 아주 청년부를 부흥을 시켰어요. 그러면서 자기 별명이 오네시모다. 목사님 저는 오네시모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더라구요. 얼굴도 그렇게 생겼어요. 우락부락하고 정말 아무리 뜯어봐도 목사같이 생긴 구석이 없어요. 그런데 가슴에 불덩어리가 있더라구요. 얼마나 자기가 무익한 종이었는가 오네시모가 그런 존재였어요. 그러다가 로마의 대도시로 흘러 들어와서 갖고 있는 돈 다 탕진하고 꿈을 좇아서 자유를 찾아서, 아마 그게 자유인줄 알았을 거에요. 그러면 꿈이 이루어 질 줄 알았을 거에요. 그런가 연금된 상태의 사도 바울을 만나고 거기서 복음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식은 찾아가지 않아도 택한 백성은 찾아오게 만들던지 놀라워요. 12절을 좀 보십시다. 같이 읽죠 12절. 시작.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 노니 그는 내게 심복이라
여러분 그 심복이라는 밑에 foot note 가 있어요. 뭐라고 돼있습니까? 심장 심장 같은 사람이다. 오래 전에 평양에 가니까 어느 가게에서 판매하는 점원 아가씨가 지금 북한에서 유행하는 유행가 하나 선생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뭐냐 그랬더니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노래가 있어요. 아마 검색하면 나올 겁니다. 그런데 가사가 너무 애절해요. 그게 지금 북한에서 제일 유행하는 노래랍니다. 심장에 남는 사람. 그게 워낙 표현이 강렬해서 지금도 그 문구를 제가 잊지 못하는데 사도바울에게 오네시모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심장 같은 사람이었어요. 자, 첫 째는 뭐라고 표현을 했죠? 아들, 함께 갇힌 자, 그 다음에 심장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사람이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무익한 사람이었어요. 쓸모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항상 얘기하지만 하나님은 여분의 카드도 없고 이유 없이 이 땅에 만들어 놓은 인생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여러분들에게는 또 여러분이 하나님에게는 심장 같은 분들이에요. 성경을 또 한번 봅시다. 13절.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아마도 이 표현으로 봐서 옥중에 연금 상태에 있는 바울을 지극정성으로 섬겼던 사람 같습니다. 게다가 그는 전도인 이죠. 이런 바울에게는 심장 같은 그리고 유익한 존재로 바뀐 이 사람을 이제 바울은 어떤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옛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 종을 다시 도망 나온 그 집 옛 주인 빌레몬에게로 돌려 보내야 되겠다. 그래서 이 편지가 쓰여진 동기를 갖는 겁니다. 자 이제 대충 이것이 빌레몬서가 기록 된 스토리에요.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왜 돌려 보낼라고 했을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왜 돌려보내려고 했을까요? 데리고 있으면 바울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심장 같은 존재로 까지 표현을 했다면 왜 돌려보내려고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흘깃 엿볼 수가 있어요. 바울은 누구를 보내든 부르든 항상 그의 머리 속에는 첫째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봤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내게 있으면 나도 편해요. 나한테 도움이 되고. 옥바라지 해주는 사람이
그 힘든 연금 생활 속에서 매일 찾아와 옥바라지 하는 이 종을 옛 주인 빌레몬에게로 돌려 보낼 것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고 이 편지를 정성껏 지금 옛 주인 빌레몬에게 쓰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성경에는 드러나지 않은 그 당시의 법을 좀 알아야 합니다. 도망갔던 노예가 붙잡히면 그 대가가 어떤지 아시죠? 사형이에요. 무서운 형벌은 십자가에다가 매답니다. 그래서 이 오네시모는 최악의 경우 돌아가서 옛 주인에게 눈에 띄고 붙들리면 사형을 가해도 아무 항변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돌려보내기로 작정을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구속의 원리를 실현하고 싶었던 거에요. 사실은. 우리 골로새서 4장을 한번 찾아봅시다. 골로새서 4장 7절.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너희에게 다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20:01-30:00)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시작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절 같이 읽습니다.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 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놀랍게도 오네시모를 누구와 함께 보내죠, 지금? 두기고. 두기고는 바울의 선교 일정과 인생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중요한 화목자에요. 분쟁이 있는 곳에 누군가 지쳐 있을 때 사도바울은 반듯이 두기고를 보냅니다. 우리 디도서에서도 이 분의 이름을 한 번 들었죠? 디도가 그 섬에서 사역에 지쳐 있을 때 누구를 보냅니까? 두기고를 보내요. 그리고 디도를 잠깐 쉴 겸 소환을 하죠. 그리고 대신 내가 두기고를 보내겠다. 그런데 지금 이 오네시모를 옛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누구를 딸려 보내냐 하면 두기고를 딸려 보내요. 두기고가 가서 오네시모를 어떻게 얘기할까요?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듣게 되었고, 어떻게 변화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설명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오네시모를 옛 주인에게로 돌려보냅니다. 자 우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삶의 실질적인 열매를 좀 생각해야 해요. 진정한 회개라는 것은 내가 고쳤다, 회개했다, 이것이 마무리 되고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네요. 진정한 회개라는 것은 돌아가서 손해를 끼쳤던 주인에게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속의 그림이에요. 나이가 든 바울의 신학과 신앙은 이제 거기까지 무르익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 성도의 실패와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겠죠? 그러나 그가 고침을 받고 회개를 한다는 것은 회개의 완성과 열매는 돌아가서 손해를 끼쳤던 그 주인에게 용서를 빌고 그 주인의 받아들임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과정이고 열매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바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도들이 어떻게 옛날에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이었는데, 그리스도의 중보와 화목의 재물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제는 유익한 종으로 쓰임을 받게 되었는가 이것을 이 서신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겁니다. 다시 우리는 오늘 빌레몬서 1장 1절로 돌아가서 자, 1장 1절만 다시 읽어 볼까요? 시작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네, 이제 지금까지는 우리가 빌레몬서 전체에 담긴 신학적 사상이 뭔가? 쓰여진 동기가 뭔가? 대충적인 스토리가 뭔가를 들었다면 이제 우리는 조금 시야를 좁혀서 이 서신을 받아야 되는 부자요, 성실한 성도인 빌레몬의 시각에서 조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절부터 3절까지는 인사말이에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여기서 우리가 눈에 띄는, 다른 서신과는 뭔가 다른 표현 하나를 예민한 사람들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뭐냐 하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 흔한 고백이나 표현이 이 서신에는 기록 돼있지 않아요. 그냥 간단하게 뭐라고 돼있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이가 무르익어 간 바울의 젊을 때와는 달라진 그의 시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장례식장에 갔더니 그 성도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님이 그냥 교회 직분을 받지 못하고 그냥 성도에요. 근데 그 뭐라 그러죠? 그 푯말에 집사 아무개 라고 쓰여있어요. 그래서 제가 저분 집사님인가? 아니요. 그래요. 그래서 왜 집사라고 써있어? 부교역자에게 물었더니 교회 오래 다녔는데 집사도 못 땄다고 조문객들한테 부끄럽다고 자기들이 집사라고 써놨네요 그래요. 그래서 웃었어요. 본인들이 그렇게 써놓은 걸 지우라 할 수도 없잖아요. 여러분 제일 고귀한 묘비명은 무엇일까요? 성도입니다. 목사 타이틀 아무 소용 없어요. 다윗이 하나님 앞에 왕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젊은 날은 왕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다윗의 스토리를 성경을 통해서 들춰 보면 그의 늘그막은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성공합니다. 제일 좋은 여러분들이 타이틀이 뭘까요? 성도입니다. 그것보다 좋은 직함은 없어요. 성도 여러분, 맞죠? 성도입니다. 오늘도 성도로 사십시오. 바울은 나이가 들어 가면서 그 직함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요. 젊은 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서 자기를 인정하지 않고 공격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도 된 나 바울은’ 서신마다 그 직함을 강조 했겠지마는 이제는 그가 사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은 이렇게 씁니다. 그리스도께 포로 된 자라는 이 직함 자체가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그와 같이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타이틀은 성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혹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이 오거든 유언을 해 놓으십시오. 내 푯말에는 직함 넣지 마라. 하나님의 아들 또는 성도 최고의 직함인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 이런 타이틀은 하나의 이 땅의 기능적 개념이에요. 그것은 계급이 아니에요. 제일 좋은 것은 구별 된 무리라는 의미의 성도입니다. 바울이 그 얘기를 이렇게 웅변적으로 첫머리에 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여기 주목 할 인물이 하나 등장을 하죠. 디모데. 여러분 여기를 보십시오. 바울이 디모데를 항상 뭐라고 불렀던 걸로 기억이 됩니까? 아들 디모데라고 그랬죠. 디모데는 연배로 봐도 아들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영적으로 나은 아들 디모데는 이렇게 여러 서신에 밝힌 바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더군다나 나이가 늙어서 그 아들 같은 디모데를 향해서 세상에 뭐라고 부르고 있죠?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이렇게 돼있어요.
(30:01-37:49)
여기 왜 호칭의 변화가 왜이리 심할까요? 이제 바울은 나이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이지만 분명 아들이에요. 아들이지만 그는 이 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인식합니다. 형제다. 이렇게 세상 바깥 사람들도 믿지 않는 세계에도 나이 차가 많은 데도 친구처럼 친구로 지내는 큰 나이 차의 사람들을 가끔 만납니다. 15년 차이가 나는 대도 친구처럼 지내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하물며 그리스도 안 이겠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는 빌레몬. 빌레몬은 뭐라고 표현하고 있죠? 사랑 받는 동역자, 굉장히 바울에게는 신임을 받고 신실했던 인물 같아요. 게다가 여기 또 생소한 이름 하나가 등장을 하는데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 네 집에 있는 교회, 여러분 이런 사소한 표현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여기 압비아는 누구냐 하면 빌레몬의 아내입니다. 그리고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킵보를 뭐라고 앞에다가 붙이고 있냐 하면 병사, 옛날 성경에는 군사라고 그랬어요. 병사라고 불렀어요. 병사. 왜 병사라고 불렀을까요? 여러분 한군데 보십시다. 골로새서 4장을 보십시다. 왜 병사라고 불렀는가, 거기 이유가 등장을 합니다. 4장 16절. 골로새서 4장 16절 다같이 시작.
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킵보는 여기에서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그러니까 여기서 병사라는 말은 누구의 병사라는 말을 은근히 드러낸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군사. 그러니까 지금 빌레몬의 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다. 첫 째, 빌레몬 사랑 받는 동역자 에요. 그 아내 압비아, 압비아를 뭐라고 불러주고 있죠? 자매 라고 불러주고 있어요. 자매라는 표현으로 봐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 신실한 내조자였던 걸로 넉넉히 짐작이 됩니다. 아들은 그리스도께 부름 받은 병사로 군사로 호칭되고 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입니까? 게다가 이 집에서 지금 골로새 교회가 시작이 되었어요. 여기 보시면 이렇게 돼있습니다. 2절에,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그러니까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탄생이 된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이 골로새에 간 적이 없어요. 어떻게 이 집에서 복음이 시작이 되고 교회가 탄생이 되었을까요? 일찍이 에베소에 바울이 있을 때, 에베소와 골로새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이 빌레몬이 와서 복음을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가슴에 내린 복음의 씨앗이 이 골로새 지역에 교회를 시작하게 하는 놀라운 열매가 되었고 거기에 충성스럽게 헌신되이 쓰임 받았던 가정이 이 빌레몬의 가정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집이라 부르고 있고 이 집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어요. 특별히 그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연금돼있던 그 셋집이라는 단어는 바로 거기가 교회였어요. 그 단어를 분석해 보면 셋집이라는 단어는 겨자씨라는 뜻입니다. 그 겨자씨 같은 연금 상태의 셋 집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오면서 복음을 받아서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겨자씨처럼 비록 미미한 상태였지만 복음의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온 지역에 신실한 사람들의 순종과 충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가 이렇게 번져가는 겁니다. 그 가장 기초적인 단어가 집이었어요. 가정이었어요. 오늘 우리 삼일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그런 셋집이 되고 겨자씨가 되고 교회가 되는 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빌레몬 같은 충성된 가정이, 사랑 받는 그리스도의 동역자 다운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기도합시다. 우리 두 가지 제목을 놓고 한번 기도하죠. 오늘 10월이 시작되는 첫 날입니다. 이 첫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빌레몬서를 읽게 하셨고 보게 하셨고 듣게 하셨습니다. 빌레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랑과 그 회개의 열매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책이에요. 그 주역에 빌레몬이라는 충성스런 가정이 쓰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10월을 시작하는 첫 날, 무엇보다도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의 가정이 빌레몬 같이 복음의 겨자씨 같은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허락하옵소서. 그리고 내 남은 모든 생애가 성도로써 성공하는 새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 한 달 동안 우리 삼일 교회가 감당해야 될 수 많은 사역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역과 일정을 위해서 우리 다같이 한번 통성으로 소리 내어 기도하시다가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우리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