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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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한복음 19장을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는 십자가의 설명은 참 다양하고 또 엄숙하고 깊고 높은 의미들이 많이담아져 있지만 오늘은 한 군데만 초점을 맞춰 말씀을 나눌까 해요. 30절을 보세요.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라는말을 못 알아들을 한국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이 말을 조금 거칠게 직역을 한다면 이런 뜻입니다. 다 해냈다. 누구의 시각에서 하신 말씀이죠? 예수님의 시각에서 다 해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요한복음 17장에서 그토록 기도하셨던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 영화로움은 아버지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신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일이 아버지께 영화를 돌리는 일입니다. 그 일을 다 해냈다 그런 의미가 되겠어요. 자 그러면 예수님의 일생을 잠깐이라도 스케치를 해보면 예수님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그 험난하고 고단한 일상을달려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첫 표적 사건에서우리는 혼인 잔치에 초대되어있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 잔치는 결혼 잔치입니다. 일생일대 가장 영광스럽고 환희스럽고 기쁜 날이 결혼식이죠. 그런데기쁨의 상징인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 영적인 의미는 기쁨이 중단되었다 그 뜻이에요. 그것은 곧 전체 인류가 맞이한 슬픔을 암시하고 있는 모형적 그림이죠. 거기에예수님이 초대되어있습니다. 먼 친척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와계셨던 걸로 봐서. 어머니가 예수님이 들어오시자 포도주가 떨어졌다 부탁을 하는 거에요. 그럼 어떻게 좀 해결을 하라 그 말 아니에요? 그런 걸로 봐서 예수님의어머니는 예수님을 아들 이상의 어떤 존재로 탄생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요. 어떻게 좀 해봐라이런 암시적 부탁 아니겠어요? 이때 예수님이 꺼내 놓은 대답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리고 그 다음 한 말, 내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호라 라는 단어를 썼어요. 이때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굉장히 중요한 언어입니다. 예수님은 모두 이 같은 개념의 때, 호라를 일곱 번 사용하셨어요. 그런데 그 모두가 전부 바로 오늘 요한복음 19장에서 만나는 십자가의죽음의 시간을 암시했던 겁니다. 이제 그 때가 이르렀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마지막 말인 다이루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다음 단계에 들어서서 무얼 이루었다는 것일까? 많은 이야기를 담았을 텐데 오늘은 핵심적인 것 몇 개만 걸러서, 도대체예수님은 뭘 이루셨다는 걸까 보도록 하겠는데요 첫째, 요한복음 1장29절을 좀 띄워 주실까요? 같이 읽습니다.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복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세상 죄를지고 가는 하나님의 뭐라 그랬죠?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이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가리켜 정의하신 신학적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바로 이 세상의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오신 거에요. 그런데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몇 차례에 걸쳐 설명을 드렸지만 또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인간은 잊음의 존재인지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겁니다. 위해서 와 대신의 개념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어요. 우리는보통 습관적으로 예수님이 우릴 위해 죽었다 이렇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엄격한 의미에서 옳은 표현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면 기독교는 도덕이 되고 윤리가 됩니다.그러나 그것은 대신해서 죽었다는 표현으로 바뀌자면 그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어요. 무오하시고 죄 없으신,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스스로 자신을 연약함으로 제한하셨지만 주님만이 죄 없으신어린 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겁니다. 이것은 이미 출애굽기 12장서부터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마지막 날 밤 열 번째 재앙이 애굽에 첫 것에 대한장자의 죽음이에요. 장자의 죽음이라는 것은 애굽 전체를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만 구원의 기회를 열어놓으셨는가 하면 그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고센 지역에 모여 살던 히브리인들에게만구원의 기회를 열어놓으셨어요. 그래서 그 어린 양의 죽음이 상징하는 피가 문설주에 발라진 가정만 심판의죽음이 지나가요. 그래서 그 절기를 Passover 라 합니다. 죽음이 지나갔다. 누구의 피로? 어린양의 피로. 그런데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로다.그 구약의 멀고 먼 언약이 역사의 산등성이를 넘어 기어코 성취되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겁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었나요? 허물 많지만 진노 아래영원한 심판 아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 어린 양의 정결하게 되었어요. 이 뜨거운감격이 그 십자가에서 지금 예수님의 마지막 마디를 통해서 다 이루었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이야기에요. 다이루었다. 나를 대속하시고 그의 피로 덮어 정결케 하기 위해서 주님은 그 고단한 여정을 마다 않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태근아 다 이루었다 이 뜨거운 감격이 가슴 속에 주체할 수 없는 거에요. 아무개야내가 너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 여러분 이 엄연한 구속의 실체를 믿으십니까? 이 고백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정결케 된 존재에요. 그 다음 순서는 뭘까요? 이 정결함이 기초가 되어서 어디로 가야합니까? 거룩으로 나가야 해요. 거룩이라는 건 뭐에요? 이건 수십 번도 더 말씀을 드렸어요. 물론 또 잊으셨을 테니까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내가 덕을 쌓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넓은 범주에서는 그 의미도 전혀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의 실체는 온전히 하나됨을 말하는 거에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온전히 거룩해진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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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개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뭐 하라? 거기서 하나님이내가 거룩하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뭐 더 이상 어떻게 거룩하세요? 그런데 그 말은 관계 개념으로 설명하시는거에요. 나 너밖에 모른다. 너를 위해서라면 태평양도 건널수 있고 바다도 건널 수 있고 산도 넘을 수 있다 나 너밖에 모른다. 그런데 표정을 그렇게 하고 계시는거에요? 그러니 너도 나밖에 몰라야 된다. 그 얘길 하는겁니다. 나 너밖에 몰라. 그러니까 성경은 뜨거운 용광로같은 사랑의 이야기에요. 거룩은 너무너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열렬하신 가를 뜨거운 가슴으로 풀어내는이야기에요. 레위기 보세요. 레위기 읽다 보면 정말 여기서한계를 느끼죠. 미주알 고주알 잔소리 많은 할아버지처럼. 그런데레위기를 더 깊게 들어가보면 막 울컥 울컥하는 게 아휴, 나 까짓 게 뭔데 이렇게 나를 향해서 섬세하게생각을 하실까?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을 하세요. 그게 레위기제사에요. 여러분 영국 속담에 사랑을 하게 되면 눈이 몇 개가 된다고요? 천 개가 된대요. 천 개. 사랑을하게 되며 남들이 못 보는 것까지 다 보여요. 왜 저럴까 나한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지. 눈을 흘겼어요. 별개 다 보인단 말이에요. 주님이 우리에게 그래서 숨과 숨 사이에 틈도 주지 않고 한눈 파는 걸 원치 않으세요. 그게 거룩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거대한 웨딩 스토리에요. 에덴 동산에서 무너진 사랑이 어디서 완성이 됐냐 하면 계시록에 가서 어린 양이신 신랑과 신부인 우리의 혼인잔치로 마무리가 되잖아요. 성경은 거대한 사랑 이야기에요. 그래서예수님은 첫 표적을 어디서 보이셨습니까? 중단되었던 혼인 잔치에서 그 끊어지고 슬픔이 찾아왔던 혼인잔치를기쁨과 회복으로 바꾸시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사실상 규정하신 아주 중요한 첫번째 표적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건은 첫째 우리를 대속하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면 정결을 기초로어디로 나아간다? 우리의 신랑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거룩으로명령하시는 사건이 다 이루었다 속에 설명되어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이제 십자가에서 새 창조를이루셨어요. 두 번째로. 자 그 새 창조가 우리 창세기 2장을 한번 띄워 주세요.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뭐 하시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안식이라는 개념은 휴식의 개념이 아니에요. 안식이라는 개념은 6일동안에 하나님의 천지 만물 창조의 역사가 더 이상 손댈 것 없이 완벽했다 그 뜻이에요. 그래서 안식일을지켰다는 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더 이상 인간이 덧대거나 손댈 것 없이완전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이 무너지잖아요. 인간의 탐욕과불순종으로 안식일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인류의 멀고 먼 역사의 험난한 여정이 전부 뭐에로 찾아가는 여정이었을까요? 이 안식을 찾아가는 여정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그 참된 안식이 찾아오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이 새창조에요. 새 창조. 다 이루었다. 이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8장 1절을 보세요 1절. 앞으로 두 장만 넘기면 18장이 나올 겁니다. 1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함께 기도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아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자 18장이 동산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20장. 넘어갑니다. 20장. 15절. 같이 읽습니다. 15절. 시작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아멘 마리아가무덤에서 부활하신 이를 뭐로 오해를 했어요? 인간의 오해를 빌려서 성경은 예수님을 뭐로 지금 묘사하고있는가 하면 동산지기로 묘사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동산과 동산 사이에 무슨 일이 지금 벌어졌나요? 예수님의 불법적인 체포, 불법적인 심판, 재판, 불법적인 죽음 그리고 그 불법을 이겨내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되시어 지금 살아나신 거에요. 유명한 신학자인 그레고리 빌이라는 분이 18장에서 20장까지를 큰 괄호로 이해를 했습니다. 이 안에 무엇이 인류의 구속을 위한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동산에서동산으로 체포, 재판, 죽음 다 18장과 20장 사이인 동산과 동산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데 이 동산이 여기 보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안치했던 무덤이에요. 그런데그 무덤이 뭐로 지금 표현되는가 하면 동산으로 바뀝니다. 인류의 타락은 어디서 시작이 되었어요? 동산에서 시작이 되었어요. 그리고 인류는 그 동산에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주님이 지금 그 타락으로 버무려졌던 동산을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일으키셔서 회복하세요. 그것이 아가서의 글이 우리에게 그려준 장래 꿈이에요. 동산에서 참된신랑과 신부가 얼마나 뜨거운 하나됨이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준 책이 아가서에요. 이 새 창조입니다. 새 창조. 그 다음 또 보시면 요한복음 20장 22절을 보세요. 22절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이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평강이 있을지어다를 선언합니다. 그리고나서 성경에는 딱 두 번 등장하는 하나님의 숨쉼이 드러나요. 첫째는 첫 아담을 만들 때 그 코에 생기를불어넣으세요. 이때 하나님이 물질인 아담의 흙으로 빚은 아담의 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십니다. 이때 하나님이 숨을 쉬세요. 그런데 그 아담은 반역으로 교만으로실패작이 되죠. 이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 공동체에찾아오셔서 첫 번째 선언하신 것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평강이라는 것은 이제 걱정도 없을거고 괜찮아 염려하지마 이 뜻이 아니에요. 중단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람과 사람끼리의 관계만 깨어져도 지옥이잖아요. 부부끼리 관계만깨져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본질적 고통을 느끼잖아요. 여기 평강을 선언하신 것은 관계 회복을얘기해요. 이걸 어떡하신다는 얘길까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뭘 받으라? 성령을 받으라. 성령님이 하시는 역할이에요. 이제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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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뭐가 됐어요? 물질 덩어리에서 산 영이 되었다고요. 아담의 실패에서 회복이 되었다고요. 이것보다 더 본질적인 새 창조가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즉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 피조물이라. 우리새것이 되었어요. 자, 그런데 또 하나 여기에서 새로운 것이만들어집니다. 19장 몇 절을 보시냐 하면 34절을 보세요.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자, 예수님은 창을 받으시고 못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죽음이 이루어지고그 죽음이 확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실 때에도 하와는 아담의 신부가 되죠. 창조하실 때에도 아담의 옆구리를 열어서 하와를 만드세요. 우리의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이 옆구리에서 뭐가 생성됩니까?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생성이 됩니다. 25절을 보실까요?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제자가 곁에 서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여기 아주 묘한관계 개념이 새로이 형성이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머니를 향해서 뭐라고 호칭하시죠? 여자여. 이것은 그렇게 극존칭의 의미도 아니고 이것은 그렇게 하대하는것도 아니에요. 메시아의 입장에서 official한 호칭이에요. 그런데 이 호칭을 어디서 만났죠? 첫 표적의 현장이었던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 호칭을 한번 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호칭 속에는,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까지 얘기하더라고요. 공식적으로 예수의 어머니를제자로 규정하는 현장이다. 그럴 수도 있어요. 뭐 과히 틀린견해는 아닙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머니를 누구와 묶어 줍니까? 장치 교회의 공동체가 될 제자 공동체와 묶어줍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그때부터 그 제자의 집에 모셔져요. 뭐가 생긴 거죠? 새로운가족 공동체가 생성이 된 겁니다. 즉 십자가의 사건은 놀랍게도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탄생하는 거에요. 오늘날 이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우리에게는 무엇이 되어 와있죠? 교회입니다. 교회를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얘기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읽어 드릴께요.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
그러니까 우리십자가를 기초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혈연적인 가족만 가족으로 이해해서는 그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에요.우리의 가족은 어디까지 여야 하는가 신명기서에 정확하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14장을 띄워주세요.
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이 객이라는말이 구르, 나그네라는 말이여기서 나와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와서 먹고 어떻게 하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자 이 말씀은광야 40년을 지나온 히브리 백성들에게 이제 모세가 가나안 땅, 새로운공동체에 들어가 살 삶의 규범을 새로이 설명하는 내용이에요. 여러분 가나안은 아시는 것처럼 천국의 모형이아니에요. 거기는 그리스도 안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어떻게 순종하여 사는가를 배우는 장소에요. 그런데 레위인과 성중에 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뭐 하게 하라?배부르게 하라. 또 12장에서는 이들과 함께즐기라 그랬어요.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리스도의은혜로 함께 하는 백성들은 여기까지가 우리의 가족으로 들어와야 해요. 여기까지 우리의 가족으로 들어오지않으면 우리는 십자가에 기초한 가족 공동체일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 계속 연말 당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결 위원들과 장로님들이 예산 조정하느라 머리가 아파요. 저는일절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당회 때 굵은 항목들만 보고를 하는데 우리 교회 의료 선교회가 있어요. 그런데 예산이 예를 들어서 예산이 오천만 원이 올라왔는데, 아 지난해 결산 오천만 원이 잡혔고 결산을 해보니까 사천만원 가까이가 틀니 제작용으로 나갔더라고요. 이건 누가봐도 예산 집행에 불균형한 숫자에요. 그걸 제가 의아해서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거기에 이유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까 저는 그래서이거 예산이 불균형하니까 조정을 해야 합니다. 사실 제가 좀 이의를 제기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 한 분이 설명을 하시는 거에요. 거리에서 생활하시는분들이 건강이 안 좋다 보니까 이가 거의 다 없어요. 실제. 심지어는20대 청년들도 이가 없어요. 대부분 밥을 어떻게 드시는가하면 물에 말아 마시듯 드시니까 위도 나빠지죠. 안그래도 건강이 약하고 면연력이 좀 떨어진 그런 상황일수밖에 없는데 식사도 그렇게 하니까 이가 없으니까 그 얘길 듣고 제가 아차 싶었어요. 너무 숫자로만이해를 했구나. 이분들이 한 달에 한 20명씩 우리 교회에오셔서 틀니를 제작을 받아서 해 넣으시는 거에요. 사람이 먹지 못하는 고통이 얼마나 본질적 고통입니까? 이건 내용을 듣고 보니까 집행이 불균형스러워도 해야 될 사용입니다. 오히려예산을 좀 늘려 드렸어요. 우리 주변에 지금 새벽에 오시는 손님이 있어요. 매일 300명에서 400명이식사를 하세요. 이것은 저희 교회가 계획했거나 의도한 일이 아니에요.아름 아름 소식을 듣고 새벽 4시부터 멀리서 그분들이 걸어서 그 밥 한끼를 더운 국을 해서배를 채우러 오시는 거에요.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숫자가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 예상치 않은 재정이 많이 들어가요. 그뿐입니까? 그분들 가운데는 사람들이 거주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저희가고시텔을 방 10개를 빌렸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 의탁을해서 열 다섯 명을 방 하나에 기본적으로 한 분씩 어쨌든 거주의 안정을 위해서 섬기고 있습니다. 현재. 올해 내년에는 아예 긍휼 사역부를 전담 사역자를 배정을 해서 이 사역을 본격적으로 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번 성탄 헌금도 전부 그쪽으로 예산을 돌리려 해요. 이번성탄 헌금은 액수 상관없이 한분도 빠지지 말고 내가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인식과 배려를 갖고 있다면 반듯이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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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담임 목사가헌금을 반듯이 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적 있어요? 없죠. 그런데 이건 우리가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는 나그네들을 외면해서는교회라 할 수 없어요. 우리가 조금 불편해도 함께 누추해져도 이 일은 해야 됩니다. 제가 이 얘기 하나 하고 마칠게요. 저녁 예배 때 오래 전에 한이야기인데 혹 들으셨던 분이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리액션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저는 드라마를못 봐요. 볼 시간도 없고. 가끔 인터넷에 짤방이 돌아다녀요. 그 영상을 우연히 봤는데 어떤 드라마인가 하면 청담동에 살아요 라는 드라마에요. 거기에 김혜자씨가 나옵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가진 분인데 이 분이청담동에 살아요. 그런데 아주 가난한 분이에요. 어쩌다 청담동에서남의 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그런 역할입니다. 그러니 맨날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우아한사람들이에요. 급이 다르죠. 거기에 비해서 거울 앞에 비쳐진자기의 모습은 늘 초라하고 자기만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느낌이 들고. 자괴감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분이 자꾸 살살 거짓말을 해요. 좀 허세를 떠느라고. 그게 또 귀엽게 나옵니다. 그러다가 아 내가 이래선 안되겠다 뭐라도자기 개발을 해야겠다. 갱년기 여성들이 특징이, 현상이 나타난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문화 센터에 등록을 해요. 뭔가를좀 개발을 하고 싶어서. 그런데 문화 센터에 가보니까 급이 더 달라.교수 은퇴하신 분들, 장관 부인들, 재벌 회장님사모님들 뭐 기본이 몇 천만 원짜리 휘두르고 나오고. 그러니 뜨악한거에요. 그런데 그 강사분이 숙제를 하나 냈죠. 자기 인생에 가장 감동적인말을 기억했다가 다음 주 시간에 적어 오는 거에요. 집에 돌아왔죠. 경대앞에 앉았는데 아무리 기억의 창고를 뒤져봐도 자기 인생에 딱히 뭐 감동스러운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너는 뭐 이쁘다, 너는 성격이 좋다 이런 말을 들어봤어도 그건 기분 좋은 말이지 감동스런 말은 아니잖아요. 그러다 저녁시간이 돼서 시장에 가느라 밖에 나갔어요. 그러나 거리에서시골에서부터 아주 친하게 허물없이 지내던 오빠를 만난 거에요. 그런데 오빠는 멀리서 봐도 너무 럭셔리해요. 딱 봐도 잘 됐어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급히 커피숍에들어가서 이런 저런 말을 하는데 오빠는 잘 됐어요. 그런데 오빠의 눈에 비친 이 혜자의 모습은 너무초라해 보여요. 급히 대화를 끝내고 당연히 커피값은 오빠가 지불하려고 카운트에 가는데 가진 돈도 변변치않으니까 먼저 문밖으로 머쓱해서 혜자씨가 돌아서 나갑니다. 그 모습을 이 잘 된 오빠가 물끄러미 보다가불러요. 혜자야, 그리고 오빠가 한 마디 합니다. 돈은 있니? 그래요. 이말에 모든 서러움이 무너지는 거에요. 돈은 있니? 그러곤집에 돌아와 경대 앞에 앉아서 숙제를 해요. 내 인생에 가장 감동적인 말. 돈은 있니? 그리고 그 밑에 부제를 달죠. 가장 감동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정말가슴 아픈 문장 하나를 마저 써요. 이런 글을 써놔요. 나는이 숙제를 발표하지 못할 것 같다. 왜? 청담동 사람들은돈은 있니?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난 그 말이더 마음이 아픈 거에요. 청담동 사람들은 청담동은 상징적인 동네니까.돈은 있니 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여러분, 가장감동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겁니다. 모두가 성탄 헌금하셔서 우리가 새로운 가족을 섬기는데 동참하는성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