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26)
아브라함과나그네 대접
창18:1-18
1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00:00-10:00)
자, 우리는 창세기를 이어서 쭉 이시간마다 들어왔어요. 우선 창세기 13장은 무슨 이야기가있었나 기억해 볼까요? 아브라함과 롯이 재물 문제 때문에 목자들끼리 다툼이 일어나고 아브라함이 먼저제안 끝에 두 가정은 분립이 되고 독립이 되면서 제 갈길을 가게 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그냥 약속의땅 팔레스타인에 남아있었고 롯은 아시는 대로 눈을 들어 자기가 확인한 물 좋고 정자 좋은 땅, 소돔과고모라를 택해서 떠났습니다. 이렇게 13장은 두 혈육이 헤어지는장면으로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14장은 십일조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정의 문제나 헌금에 초점이 있지 않고 천지의 주재라는 단어에 초점이 있었어요.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이 만물의 주인은 누구이신가? 그것을 확인하는데 14장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할애했습니다. 그래서 14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15장은 무슨 이야기가 등장하죠? 씨에 대한 약속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서 날 자라야 네 씨라. 앞의 14장에서는 주권이 소개되었고 15장에서는 그 백성의 원인자가 되는씨에 대해서 소개가 됩니다. 그리고 16장은 드디어 땅에대한 약속을 하지요. 그러면 주권, 백성, 땅 이 세 가지는 뭘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필수 조건입니까? 나라입니다. 점점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쫓아 읽다보면 서서히 그 실체를 만지게 됩니다. 아 그래서 이 맥락이, 이흐름이 이렇게 발전되어 왔구나. 주권, 씨, 땅. 그리고 이제 그 나라를 이룰 샘플인 모델인 아브라함에게 개인사적인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이야기도 어떻게 그 나라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되는가? 인간은 어떻게행복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아브라함의 수많은 허물, 실패, 불순종을 통해서 성경 기자는 말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17장에 가서는 무엇이 드러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기다리지못한 아브라함의 불순종이 드러나죠 불순종.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순종의 실패를 딛고 뚫고 넘어서 오늘18장에서 뭘 말하고 싶은가를 잘 주목해야 됩니다. 18장은들어가기 앞서 이런 흐름을 전제로 하고 봐야 하나님의 나라가 과연 무엇을 넘어서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이 그 하나님의 목적지를 따라갈 수있다는 거죠. 우선 오늘 8절까지 내용을 보면 세 사람이등장을 합니다. 이것은 신인 동형론이라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실제 현현한 세 사람이 등장하는유일한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찾아오시는 사건이에요. 자, 그런데 여기 보니까 1절을잘 보세요.
1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어떡할 때에? 뜨거울 때에 이 말은 정오쯤 될 것 같습니다. 태양이 이글거릴 때죠. 사람이 행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팔레스타인땅은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살인적입니다. 그 즈음에 현현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장막 문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장막 문에 앉아 있었다는 말은 그냥 한가롭게 쉬려고 앉아있었다는 말이 아니고 이 공동체의 실질적인 대표가 아브라함이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2절을 잘 보세요.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3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네, 아브라함이 세 사람을 보자 마자달려가 몸을 굽히고 뭐라고 불렀죠? 내 주여. 질문, 하나님인지를 알았을까? 몰랐을까?이 표현만으로 봐서는 알고 불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항상 편파적으로 읽어서는안되겠죠. 입체적이고 전체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는데 그냥 제가 한 군데만 소개해 드릴께요. 히브리서에 보면 우리가 지금 히브리서 공부하고 있죠. 히브리서에보면 저 뒷장 즈음에 13장에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고 이로써 부지 중에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누굴 가리키는 겁니까? 아브라함을가리키는 거에요. 그런데 어떠한 가운데 영접했다? 부지 중에. 부지 중이라는 말은 알고 했다? 모르고 했다. 어느 쪽입니까? 모르고 했다. 사실은모르고 한 겁니다. 그럼 구약에 내 주여 라는 말은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자 이때는 고대 관습에서부터 전통적으로 히브리인들에게는 손님 환대법이 있습니다. 나그네 대접법이죠? 이것은 히브리 공동체의 명예가 걸리고 굉장히중요한 마을 전통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 마을의 누군가가 굶는 자가 생기거나 또 나그네가 들어왔는데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공동체의 수치로 여겼어요. 이것이 잘 아시는 대로 성결법과함께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나그네 환대법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도 보면 밤중에 찾아 온 친구를대접하기 위해서 옆의 집에 가서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진기한 장면이 소개 되죠? 다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주로 낮은 너무 더우니까 밤에 여행 다니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밤에 친구나 손님이 찾아오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히브리인들은 공동체 단위의 명예가 바로 이 나그네 환대법에 다 걸려 있어요. 그리고 오늘 여기에서 내주여 라고 할 때는 꼭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호칭 상. 왜냐하면 율법이 레위기서 라든지 여러 곳에서 이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환대법이 율법으로규정 되어서 아주 상세하게 지켜 내려왔기 때문에 이것은 전혀 어색한 표현들이 아닙니다. 자, 그러나 우리가 뭐로 더 확증적으로 알 수 있는가 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기를 계속하고 손님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 기자는 우리가 지난시간에 공부 했지만 천사와 하나님을 이렇게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예수님도 마태복음에 보면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언제 주님을 대접했습니까? 우리가언제 주님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했습니까? 소자에게, 곤고한자에게 한 일이 다 누구에게 한 일이다?
(10:01-20:00)
나에게 한 일이다. 이렇게 동질성을가지고 규정해 주셨어요. 자, 그러면 오늘 이 얘기가 과연그러니까 우리가 이웃 사랑을 하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자. 우리 공동체 안에 이런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도록잘 돌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이런 단순한 얘기일까? 그렇지않아요. 이들이 잘 대접을 받고 약속을 합니다. 무슨 약속인가하면 10절을 보십시다. 형제들만 크게 읽어 보십시다. 시작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듯이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의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네, 여러분 잘 대접받은 이 세 천사가실질적으로 하나님이 뭘 약속 합니까?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쯤 아들이 있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여기 알 듯 모를 듯한 암시 하나를 감춰 놓죠. 내년 이맘때쯤내가 어떡하리라? 돌아오리라. 어떤 방식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일까? 이것은 사실상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는 겁니다. 일년 후에 이삭을 태어나죠. 결국 그 후손을 통해서 예수님이 몸을입고 이 땅에 오시는 겁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연결점이나 연관성을 한번 생각을 해야 해요. 나그네 대접과 도대체 이 아들의 약속은 또 어떤 관계가있는 것일까? 여러분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아요. 성경을물론 일상 속에서 읽으시겠지만 읽다가 이런 앞뒤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오면 여러분들이 반듯이 질문을 해야 해요. 이게 무슨 연관성이 있지? 라고 기도 가운데도, 말씀을 읽다가도 멈춰 호흡을 가다듬고 질문을 해야 해요. 자 여러분, 우리가 누굽니까? 나그네에요. 나그네와과부와 고아는 레위기서 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에 규정되어서 이 땅에 근거가 없고 기반이 없는 돌아봐야 될 돌봄의 대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몇 번씩 강조를 했지만 나그네, 고아, 과부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옛 삶의 자리에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나그네처럼고아처럼 남편 없는 과부의 신분처럼. 그렇게 버림 받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이 땅에 아무 기반도 없는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물 같았어요. 그런데예수님이 우리의 이웃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입고 오신 겁니다. 그러려면 이런 나그네들이 은혜를입고 살려면 인류는 누구만이 소망일 수 밖에 없나 하면 이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 태어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그 구원을 완성해 줄 분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앞에 나그네 대접과 그 뒤에붙어서 나오는 아들에 대한 약속은 필연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제 소극적인 이유라면 여기또 적극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 적극적인 이유가 뭐냐 하면 13장서부터우리가 백 그라운드를 살펴 봤어요. 이제 곧 18장에서 우리는하나님의 진짜 의도를 만날 겁니다. 그 나머지 두 천사는 어디로 걸음을 걸어 가냐 하면 바로 죄를 먹고마시는 소돔으로 걸음을 옮겨 갑니다. 그리고 그 소돔의 운명은 마지막이 어떻게 되죠? 멸망을 당해요. 뭐가 없어서? 의인열 명이 없어서. 여러분 의인 열 명이 없다는 말은 문학적인 이유도 되지만 유대인들의 사회 속에 최소공동체의 단위가 열 명이에요. 그렇죠? 열 명이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deal을 하시면서 50명부터 시작했어요. 45명, 40명, 30명, 20명. 마지막deal의 조건이 10명이었어요. 이 10명은 최소 공동체였어요. 그래서사도행전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선교를 하러 다니다가 회당이 없는 곳에 가끔 가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기도처 라는 데를 찾죠. 회당이 없으면 유대인들은 반듯이 기도처 라는 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회당이없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유대 남자 10명이 그 지역에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열 명만 있으면회당을 만들어요. 이것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입니다. 그러면소돔과 고모라는 공동체로써 끝장이 난 겁니다. 망한 거에요. 그소돔과 고모라는 우리와 또 다른 어떤 장소나 어떤 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장이고 자아상이에요. 우리가다 만들어 낸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처럼 우리는 사실 그렇게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누가 중재자로 나섭니까? 아브라함이 중재자로 나서요. 자, 여러분 몇 절을 보시냐 하면 우선 17절을 한번 볼까요? 자매들만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예,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이중재에 나섭니다. 결국 나머지 두 천사는 그 도성을 향해 가죠. 그리고그 도성은 그들의 눈에 확인된 바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도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아시는 대로 불과 유황의 심판이 다음 주쯤 나올 거에요. 굉장히 중요한 구속의 원리가 이 소돔과 고모라 속에 역설적으로 감춰져 있어요.이것이 세상이 흘러가고 있는 패턴이고 경향이고 결론이에요. 그런데 한 켠에 하나님은 앞서지금 아브라함을 통해서 사라의 불가능한 생물학적인 신체 조건을 통해서 뭘 준비하시나요? 그리스도를 준비하시는거에요. 왜 그리스도를 준비하십니까? 이 멸망 당한 세상에택한 하나님의 백성들, 여기서는 의인이라고 표현되어 있죠? 그속에 아직도 구원 받아야 될 의인이 있습니다. 의인이라는 것은 행위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이렇게 17장서부터아니 13장서부터 이미 창세기는 집요하게 두 줄기가 이렇게 꼬여서 계속 확대되어 가고 있어요. 하나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실체로 드러나고 하나는 인간의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구정물의 역사가 점점점 확인되는거에요.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구원의 열심이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확인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18장 안에는 아들에 대한약속과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엉켜 있는 거에요. 패역한 멸망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백성임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의 열심이 쉬지 않으시는
(20:01-30:00)
이 구원의 사랑, 그런데 그 정점에누가 있는 거에요? 지금. 아브라함이 있는 거에요. 아브라함은 또 누굽니까? 그 소돔과 고모라가 우리의 옛 삶의 원래하나님이 공의에 의해서 심판 당해야 될 그림이었다면 또 한 켠에 우린 어느 입장에 지금 세워져 있는 겁니까? 아브라함의입장에.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아요? 그 아브라함은 뭐 우리보다 조건이 나았나요? 믿음이 좋았나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하나님이 샘플로 채취해서 구원이 뭔지, 은혜가 뭔지,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뭔지를 이 불순종 덩어리인아브라함을 통해서 온 인류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설득해 나가는 거에요. 자, 우리 그 현장을 한번 보자고요. 몇 절을 보시냐 하면 18장 11절을 보세요. 10절부터제가 읽겠습니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이 천사와 아니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대화를 들었어요. 누가? 그의 아내. 그리고사라가 어떻게 했어요? 웃었어요. 이건 정확하게 불신앙의웃음입니다. 웃었어요 자, 11절을 한번 같이 읽을까요?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여자의 경수가 끊어졌다는 얘기에요. 그럼더 이상 생산이 됩니까? 안 됩니까? 생산이 안 되죠. 왜냐하면 생명이 잉태되는 조건이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일단은 불가능한 몸의 상태가 된 겁니다. 생리가 끊어진 거에요. 그러니까 사라의 웃음은 사실 비웃음이라고말하기는 조금 가혹한 표현이고 그냥 조금 허탈한 웃음이었지 않을까요? 그냥 웃었어요. 아이고 참, 뭐 이 정도 될까요?그래서 이 의미가 참 묘해요. 그런데 여러분 같으면 안 웃었을까요? 저 같아도 웃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음 볼까요? 12절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더군다나 자기 남편도 이미 늙었어요. 생리적으로. 그 다음 절 볼까요?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웃음의 진의, 속 마음까지 압니까? 모릅니까? 압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세요.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심해야해요. 하나님은 다 아세요. 이 때 하나님이 사라의 속내를아시고 아주 중요한 얘길 하십니다. 우리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아들이 있으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여호와께서 능치못할 일이 있겠느냐?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이스마엘을낳는 기다리지 못한 불순종을 하고 나서 13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뭐예요?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전능하다는 말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죠? 충만케 하시고, 기르시고, 완성하신다는 말이에요.구원이 시작과 끝이 그분의 손에 있듯이. 이렇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해서 이삭이 태어나죠. 이삭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웃음이라는 뜻이에요. 그럼 무슨 뜻입니까? 전체적으로.사라는 믿음으로 웃었어요? 믿지 못해 웃었어요? 믿지못해 웃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웃음을 뭐로 바꾸십니까? 진짜즐거움으로 바꾸세요. 몇 절을 보시냐 하면 21장을 보실까요? 21장 5절 6절을 보십시다.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어떡하리로다? 웃으리로다. 이걸 뭐라 그래요? 복음이라 그래요. 복음은 듣는 자가 다 함께 웃게 되는 인류의 최고의 즐거운 소식입니다. 우리는그것을 순종하느라 여름, 겨울 선교를 떠나죠? 처음에 이복음을 듣는 자들의 반응과 태도는 다 비웃어요. 믿지 못해요. 그런데성경의 역사를 뒤집어 봐도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에 다 조롱거리였어요. 대표적인 게 십자가. 가장 커다란 조롱의 현장이었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내려와봐라. 그때 막 뭇을 부러뜨리고 주님이 내려오셔서 백부장 뺨을 한 대 때렸다면 속은 시원했겠지만 구원은이뤄지지 않았겠죠. 하나님의 구원은 이뤄지지 않았겠죠. 하나님의구원은 그렇게 완성되지 않죠. 요셉. 얼마나 온 시대가 그를조롱했습니까? 그런데 조롱했던 그들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살죠? 요셉때문에 먹고 살아요. 최고의 복수입니다. 사랑의 승리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승리에요. 누가지금 여러분들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비웃습니까? 그것 때문에 열 내고 뿔 내지 마세요. 속만 아파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일어나셔야 됩니다. 그를 안고 사랑하는. 이 얘길 하나 하고 마칠게요. 19세 소녀가 고속도로를 가는데 개가 튀어나옵니다. 그런 일 많죠. 고속 도로 가다 보면 동물들 주검을 가끔 불쾌하게 보게 되죠. 그러니이 어린 소녀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끼이익! 그래도 너무갑작스런 일이라 개도 치이고 차가 여러 바퀴를 돌았어요. 그리고 시동이 꺼지면서 멈춰 섰는데 지금 이리로가는 방향인데 차가 거꾸로 선 거에요. 그것도 안쪽 1차선쪽으로. 이건 뭐 막 질주하는 차량 행렬 속에서 이중으로 사고가 나게 생겼어요. 이것도 지금 사고인데. 그런데 그 때 한 남자가 4차선으로 가다가 차를 길가에 세우고 이게 4차선 고속도로였는데 얼마나위험해요. 4차선을 건너서 넘어서서 와가지고 이 소녀를 꺼진 시동을 다시 키게 하고 건져내고 차를 출발시키고 자기는 또 목숨을 걸고 4차선으로 가서 전화도 연락처도 이름도 안 남긴 채 사라졌어요. 이 사건이 충격적인 소녀의 개인사로 끝난 게 아니라 이 소녀가 이 어린 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동기가 되어서사람의 이런 극도의 이타심에 대해서 고민과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자기가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그 험한 상황인데 뭐 때문에그랬을까?
(30:01-40:00)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요. 여러분 혹시가교라는 영화 보셨나요? 아마 올해 완성되었을 겁니다. 일본에서재작한 거죠. 일본 전철역에서 우리 한국 유학생이었던 이수현씨가 술을 먹고 선로에 떨어진 일본 사람을구하다가 이 청년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이게 아주 한일 사회의 큰 이슈였습니다. 평소 이 청년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하면서 골이 깊은 한일간의 관계를 나름 젊은 마음으로 해소해 보고자 굉장히평소에도 애썼던 청년이죠. 그 청년을 일본 어느 감독이 기리고자 만든 영화에요. 가교. 일본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 경우죠.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극한 이타적 마음이 가능했을까요? 그래서이 소녀가 자라서 그 쪽으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런 극도의 이타심을 연구하기 위해서 발상의 전환으로접근을 했어요. 극도의 이타심의 가장 반대되는 유형은 뭐냐? 사이코패스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사이코 패스적 집단을 연구하면 과연 이 극도의 이타심이 어떻게 발생하는가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역 발상으로 접근을 한 거에요. 그런데사이코 패스 집단을 연구하다 보니까 사이코 패스 집단은 남의 위험과 남의 공포에 대해서 일단 반응이 무감각하다는 겁니다. 반응이. 그래서 이게 과연 선천적인 걸까? 아니면 뇌 질환일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사이코 패스 집단의 인물들을샘플링, 표준치를 구했죠. 먼저 의학적으로 접근했답니다. 사람이 어떤 위기나 공포에 붙들려 있을 때 그걸 타인이 감지하는 센서가 뇌에 있는데 편도체라고 한답니다. 뇌의 안 쪽에 있는데 사이코 패스 집단은 세 가지 유형이 발견되더라는 거에요.첫째는 편도체가 일반인보다 평균 8% 작거나 또는 아예 없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있어도 그것이 작동이 안되거나. 그랬을 때 전혀남의 불행이나 남의 공포에 대해서 감정 변화가 없다는 거에요 .그게 어디에서 가장 잘 나타나냐 하면얼굴에서 나타난다는 거죠. 무표정. 그래서 내가 표정이 없으면그 쪽 계통이 아닐까 고민을 좀 해봐야 되지 않을까. 저도 무표정일 때가 굉장히 많거든요. 누구나 그런 요인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그렇게 이제의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접근을 해봤던 것 같아요. 했는데 사이코 패스 집단을 연구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이 극도의 이타심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어떤 사람이 도대체 이렇게 극도의 이타심을 갖게 되는가 그 쪽을연구하다가 접근한 하나의 방식이었어요. 문제는 극도의 이타심을 갖는 사람들의 공통성이 우선 생물학적으로는편도체의 반응이 유난히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의 불행이나 남의 공포 남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서그래서 그들이 갖는 정서적 공통점이 뭐냐 하면 긍휼함. 동정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동정은 어떻게 나오냐 하면 삶의 중심에 자기가 중앙에 있으면 안 나오는 정서랍니다. 탈 자아적이 될 때. 그런데 사실은 이게 예수님의 가르침이에요. 여러분 누가복음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오죠. 거기 율법사들이와서 질문을 합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물어요. 이게 질문이에요. 이웃의 정의를 누구로부터 시작하죠? 나로부터 시작해요. 나, 자아.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기가 막혀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웃의 정의는 근본이 달라요. 중심이 누구에요? 강도 만난 자. 그리고 이웃이 누굽니까? 내가 되라는 거에요. 내가. 그래서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동정심인데 이 동정심이 또 다른 말로 겸손이라고 정의를 해요. 겸손. 탈 자아적인 심령 상태. 이런 사람들에게는 너, 나의 boundary 개념이 저절로 없어진답니다. 왜? 자기가 이미 밖에 나가있으니까. 자아가. 그런데 자아가 중앙에 있는 사람이 boundary가 생긴다는 거죠. 2순위 친구. 제가 언젠가 얘기했죠?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나는 너한테 몇 번째 쯤 되는 친구냐? 나는 그런 질문이 딱 질색이에요. 친구면 친구지 무슨 몇 번째 친구가 있어?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이게 자아가 자기가 중심이 돼있을 때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런데제가 이 질문을 왜 할까요? 오늘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린여기서 아브라함의 시선에서 이 본문을 봐야 해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 하시기로 하시려고하실 때 아브라함이 중간에 중보자로 나섭니다. 거기에는 구원 받아야 될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제가 오늘 그 마지막 여러분들과 endingsong을 뭘 부를까 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시선이라는 찬양 아시죠? 그 가사를잘 생각해 보시면서 이 찬양을 불러 보세요. 1절을 보시면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때 우리는 기도 제목서부터삶의 모든 결정들이 다 자아 중심이에요.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 대도 자아 중심이에요. 그런데 오늘 이 가사를 잘 보시면 내게로부터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결국 여러분 아브라함이 여기에서 시선입니다. 눈을들어 뭘 봤죠? 천사를 봐요. 그런데 부지 중에 봐요. 저는 이게 은혜라고 봅니다. 창세기 13장에 가면 롯과 아브라함이 헤어지던 장면에서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가 어디에서 갈라집니까? 롯은 롯이 눈을 들어.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눈을 들라. 롯은 자기가 주체였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중심이었어요. 결국 이나그네로부터 시작된 오늘 이 이야기가 소돔과 고모라는 나그네와 맞물리는 개념이에요. 돌봐야 되고 구원받아야 될 대상. 그 한복판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성도의 자리 매김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뭔가? 그리고 그 구원의 완성이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의 몸을 통해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래서 저는 한국 교회가 금년에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500주년이라고기념비적인 해로 지금 준비를 하고 있지만 굉장히 좀 조심스런 얘기이긴 하지만 개 교회 중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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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탈피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한국 교회만 잘 돼서도 안 되고 우리 삼일 교회만 잘 되어서도 안돼요. 그리고 교회의 담을 넘어가야됩니다. 믿습니까? 교회의 담을 넘어가야 해요. 여러분 열아홉 살 먹었던 사고 났던 소녀의 기억 속에 이런 얘길 해요. 자기가까운 첫 번째 집단인 가족을 그런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특별하지 않다. 그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구촌 저 넘어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그 어떤 현장에 아픔을 겪고 있는사람들에게 그 boundary까지 넘어가려면 수많은 철책과 경계선들이 거두어 져야 합니다. 이것이 탈 교회적 사고방식이에요. 이것은 교회가 필요 없다는 무교회주의를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를 넘어선 교회를 넘어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에 청년들이 현 혼란스런 시국 속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여러분정치라는 것은 우리 민생과 내 삶과 굉장히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론적으로 정교 분리가가능합니까? 불가능해요. 우리는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고, 투표가 가장 적극적인 정치 행위 아니에요.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고그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지도자가 잘못할 때는 피켓이라도 들고 우리의 메시지를 드러내야 되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교회가 하나의 dogma에 갇히고 자기 껍질에갇히는 것을 방지하는 거에요. 교회가 수많은 경계선을 계속 거둬내야 합니다. 제도의 경계선 규율의 경계선, 자기 아집의 경계선 그 넘어 정말주께서 우리를 바라보게 하시는 그 고통의 현장, 그 시선은 어디까지인가?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는 이 유황불의 심판 아래 11시 59분 1분 전에 삶의 현장, 땅의현장들이 있는 거에요. 저는 기독교인들이 너무 나라를 사랑해야 하지만 너무 국가주의에 빠지는 것도 위험하다고봐요. 자칫하면 그 국가주의가 신앙을 대체하는 경우가 있어요. 신앙과동질성을 갖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니에요. 그래서성경에는 모든 민족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국가가 아니에요. 민족. 모든 민족. 오늘 우리 삼일 교회 귀한 젊은이들이 그런 소아병적신앙에서 이 경계선을 거둬내고 그 넘어 아브라함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서 어디를 향하고 계시는 가를 함께 눈을 들어 주목할 수 있는 이 기도의밤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시선 찬양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