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2)
마하나님의하나님
창32:1-12
1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만난지라
2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00:00-10:00)
오늘 32장 첫 머리에 야곱이 드디어 이제 라반과 조약을맺고 자유로이 길을 떠나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귀향 길에 접어 듭니다. 자 그런데 항상 문제는 늘 끝나지않죠. 그게 우리 인생살이와 같습니다. 하나 문제 끝나면또 더 큰 문제가 닥치고, 그 문제가 끝났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엎어져 오고. 이게 인생살이의 일정한 패턴 같아요. 야곱도 마찬가지겠죠. 야곱의 일생은 우리 성도들의 나그네 길과 견주어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참 많습니다. 자, 그런데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났다 이렇게돼있어요. 하나님의 사자. 뭘까요? 이 하나님의 사자를 히브리 말을 보면 따라서 하십시다. 마하네. 이 마하네가 하나님의사자입니다. 자, 그런데 이것을 쌍수 용법을 써서 쌍수라는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봤는데 그 사자가 한 무리가 아니고 사단으로 치면 진영이 두 진이더라 그 말이에요.똑 같은 병력이 둘이 있는 거에요. 그걸 봤다는 거에요.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그래요. 하나님의 군대라는 뜻이죠. 그래서 이 마하나임은 하나님의 사자라고불린 방금 여러분들이 읊어 본 히브리 말인 마하네의 쌍수용법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이군대, 하나님의 사자를 봤는데 그 사자가 몇 무리가 있다는 거에요? 똑같은 무리가 둘, 쌍수가 있더라 그 말이에요. 그 쌍수의발음이 또 다른 말로 마하나임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자 여기서 히브리인들이나 히브리 기자의 언어 플레이를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칠판이 없고 영상을 미처 준비를 못해서 여러분들이 글자를 볼 수가 없는데 마하네라는 글자와 그 밑에 마하나임이라는 글자는 단어가 굉장히 똑같아요. 한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런데 앞의 글자, 뒤의 글자를 빼면 가운데 정확하게 일치하는 단어하나가 남습니다. 헨 이라는단어가 남아요. 히브리 말로 헨은뭡니까? 은혜라는 뜻이에요. 은혜. 자 그러면 야곱이 길을 가다가 처음에 뭘 봤죠? 하나님의 사자를봤어요. 마하네를 봤어요. 그런데 사자를 똑 같은 떼를 둘을본 겁니다. 쌍수를 본겁니다. 그래서 그걸 뭐라 그랬다고요? 마하나임이라 그랬어요. 자, 그러면히브리인들이 이런 용법을 쓸 때는 언제 쓰냐 하면 항상 둘이든지 쌍수는 결합과 연합을 뜻합니다. 그래서항상 짝은 증거의 수이기도 하죠. 그것은 일치하다, 연합하다, 결합하라 라는 개념이 쌍수라는 2 라는 숫자 속에 감춰져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뭘 보여 준겁니까? 너의 무리와, 야곱의 무리들이 있죠? 야곱의 무리들이 계속 어떻게 묘사되는가 하면 오늘 본문에 12절까지만해도 두 떼 라는 말이 두 번나옵니다.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지팡이하나만 짚고 강을 건넜더니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그리고 자기의 재물들이 몇 떼가 있어요? 두 떼가 있어요. 두 무리가 있다 그 말이에요. 그리고 출애굽기를 띄워 주실까요? 12장 한번 찾읍시다. 출애굽기 12장 17절
17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너희가 영원한 규례로 삼아 대대로 이 날을 지킬지니라
거기 하나님께서 히브리 사람들을 뭐라고도 묘사했죠? 군대. 군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또 다른 표현으로 뭐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군대라 할 수 있어요. 여호수아 5장에도 보면 여리고 성을 여호수아가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길을 막고 칼을 빼어 들고 서있죠? 여호수아가 물었어요. 너는우리 편이냐? 우리의 대적을 위함이냐? 그러자 그 하나님의사자가 나는 하나님의 군대 대장으로 이제 왔느니라. 그럼 거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군대는 사실 뭐가 됩니까? 천상적인 존재를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얘기하는 거에요. 다시말해서 나는 너희의 대장 노릇하기 위해서 지금 왔다 그 말이에요. 즉 그 말은 가나안 땅은 광야 생활처럼너희들이 필요할 때만 나 찾고 나한테 간구하고 필요를 채워달라 그러고 내가 너희 시다바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겠냐?쉽게 말하면 그런 뜻이에요. 이제는 가나안은 그런 생활의 질서는 내려놔야 한다 누가 대장노릇하겠다? 하나님이 대장 노릇하겠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이스라엘 백성은 또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의 뭐라고도 불리웠어요? 성경에서? 군대. 그런데 지금 야곱이 길을 가다가 본 것은 이 군대가 똑 같은군대가 몇 무리에요? 두 무리에요. 둘이라는 건 방금 설명드린 대로 연합, 결합, 하나란 뜻이에요. 한 무리의 군대는 누구의 군대일까요? 하나님의 군대에요. 천사들을 동원한 군대에요. 자 그러면 이 마하나임이라는 설명만으로도어마어마한 하나님의 마음과 뜨거운 가슴이 담겨 있는 표현입니다. 창세기 28장을 한번 띄워 주실까요?
12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는데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이 본문은 아시는 대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야곱이 에서의 분노를 피해서 아버지를 속인 죄의 대가로 정처 없이 길을 떠나던 한 밤중 벧엘의 현장입니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사자들이. 이게 마하네입니다. 바로 그 길을 떠났을적에 나타났던 그 하나님의 사자가 뭐라 그러나 잘 보세요. 그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니라 네가 누워있던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네 자손의 땅에 티끌같이 되어 네가서쪽과 남쪽과 동쪽과 남쪽으로 뻗어 나갈 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지라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어떡할지라? 지금 돌아오는 길이죠? 맞죠? 지금20년 만에 이 하나님의 창세기 28장 벧엘의 약속이 그대로지금 진행되고 지켜지고 있죠? 돌아오게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우리 마태복음 28장을 한번 띄워 주실래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여기 주된 약속의 골자가 뭡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자 그러면 돌아오는
(10:01-20:00)
길목의 어느 한 정점에서 야곱에게 똑 같은 군대 두 무리를 보이셨어요. 마하네. 이게 쌍수래서 야곱이 이걸 쌍수 용법으로 뭐라고 불렀다고요? 마하나임이라고 불렀다고요. 이 말은 하나님은 사실상 한번도 야곱의백성들과 가족들과 야곱을 떠난 적이 있다는 얘깁니까? 없다는 얘깁니까?떠난 적이 없다는 얘깁니다. 언제나 나는 너와 결부되어 있었고 연결되어 있었고, 결합되어 있었고 하나가 되어 있었고.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걸 지금 돌아오는 길목에 20년 만에 나타나신 게 아니라 20년 동안 함께 하셨다는 얘기에요. 이게 마하나임의 지명이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야곱은 그냥 마치 이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네요. 무심코 그냥 흘깃 보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보긴 봤어요. 그런데 그러면 지금 자기가 돌아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곡절을 겪어야 하고 위기를 만나야 하고 지금 모든 정황이 불확실하고 아슬아슬할까요? 그러면 자기가 그런하나님의 사자의 두 무리를 봤다면 정상적인 생각과 이성을 가진 신앙인이라면 바짝 달라붙어 매달려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아직도 야곱은 보긴 봤어요. 이게 야곱의 신앙의 머뭇거리는수준이에요. 우리가 신앙이 자라는 과정하고 똑같아요. 모르는것도 아니고 못 들은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늘 신앙을 어떻게 보냐 하면 흘깃 봐요. 안 본건 아니에요. 하나님은 지금 곳곳에서 야곱에게 암시를 하십니다. 야곱아, 너 외롭지? 두렵지? 왜 두려웠을까요? 가진 게 많으니까. 가진 게 없으면 두려울 게 없어요. 뺏길 게 있고, 내려놓을 게 있으니까 두려운 거지. 가진 게 없으면 두려울 것도없어요. 두려움이 가득 마음에 지금 엉켜 있어요. 그래서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안심하라고 그 두 무리의 군대를 보이시면서 너와 나는 언제나 내가 벧엘에서 너를 찾아 온 그날부터 나는 너와 연결되어 있었고결부되어 있었고 하나였고 너와 함께 있었다 이걸 확인시켜 주는 거에요. 그런데도 야곱은 그냥 흘깃 하고지나갑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 대꾸나 반응이나 매달리거나 그런 게 없어요. 여러분들하고 똑같아요. 자 그 다음 절을 봅시다. 이 마하나임이라는 말은 그만큼 야곱의 귀향 길에 하나님의 중요한 사인이었어요.하나님의 군대니까 무조건 야곱 편들어 싸운다는 단순한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나는 네가길 떠난 그날부터 네 인생 속에 언제나 너와 연결되어 있었고 하나가 되어있었다.
3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자,앞을 잠깐 보십시다. 지금 야곱이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야곱에게 지금 가장 인생의 고뇌가뭐에요? 야곱의 인생을 한번 우리가 제 3자 입장에서 툭던져 놓고 냉철하게, 우리 남의 인생은 냉철하게 잘 보잖아요? 야곱이20년 동안 거의 노예살이 하다시피 라반 밑에 있다가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조약을 잘 맺고 이제 길을떠나 자유로이 귀향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는데 첫째 야곱의 제일 큰 목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또그것이 창세기 31장에 하나님의 계획이었어요. 31장 앞에3절을 보십시다. 3절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자,분명 이 귀향 길은 누구의 명백한 지시였나요? 하나님의 명백한 지시였고 이 명백한 지시가있었던 이 순간은 야곱이 어쩔 수없이 떠밀려 나갈 수 밖에 없는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이 그 위기를 빌미로 야곱에게 내리신 귀향 명령이에요. 늘 지난 시간에도 그런 말씀을 나눴죠? 우리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의계획이 숨겨 있다는 걸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피하고 싶은 일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있는 걸 놓쳐서는 안돼요. 여호수아 서에 보면 유명한 얘기가 있죠. 신명기율법에 보면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거든, 하나님이 약속했어요. 그가나안 족속을 모두 내몰고 멸절시키고 어떤 혼인도 하지 말고 조약도 하지 말고 싹 진멸하라 그리곤 세월이 흘러 모세도 죽고,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죠? 그런데 이 이스라엘공동체의 무시무시한 소문을 듣고 히위 족속 중에 기브온 사람들이 변장을 하고 곰팡이 난 음식 만들어가지고 다 헤진 신발 신고, 헤진 옷 입고 먼지 구덩이 속에 완전히 분장을 끝내고 아주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화친을 맺으러 온 것처럼이스라엘 사람들을 속여요. 행색을 보니까 맞아요 말이. 조금도의심 없이 덜커덕 화친 조약을 맺었어요. 속았죠. 나중에알게 됐어요. 화친 조약이라는 것은 혈맹을 맺는 겁니다. 네가목수의 위기를 만날 때 우리가 같이 싸워주고 우리가 위기를 만날 땐 네가 형제의 마음으로 같이 싸워야 된다. 이정도의 혈맹을 말하는 거에요. 나중에 속은 걸 알고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겠죠? 어떡하지? 우리가 속은 거니까 없던 걸로 하지 뭐. 그래도 우리가 누군가? 하나님의 백성인데 속아서 한 약속도 분명약속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 끌어 안자. 해서 끌어안고 그공동체에서 나무 하고 물 긷는 직분을 맡깁니다. 그런데 사실은 불구덩이를 끌어 안은 거에요. 이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화친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나안 다섯 왕이 연합군을 결성해서 이 기브온 족속을치려고 음보를 꾸밉니다. 기브온 족속이 난리가 났어요. 큰일났다. 우리 배반한 걸 주변 국가에서 알았다. 이제 우리는사면초과로 죽게 생겼으니 결국 기댈 건 화친 조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 밖에 없다 해서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전갈을 보내 옵니다. 우리 화친 맺었으니 살려 주십시오. 이제 우리 다 전멸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입 가진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하는 거죠. 나 이럴 줄 알았다. 속은 거 알았을 때 그냥 쳐 냈어야 하는데..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만큼지키자. 총, 칼 무기 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갔어요.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갑자기 막 우박이 내리더니 우박이막 갖다가 찍어요. 성경에 보면 칼로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그래요.
(20:01-30:00)
누가 하신 싸움이에요? 하나님이 하신 싸움이겠죠? 그런데 우리가 큰 그림을 봐야 해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저 한구석에 자리 차지하고 살도록 명령 받은 족속이 아니고 그땅을 어떡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전부 몰아내고 전쟁을 해서 쫓아내도록 되어 있어요. 만약에 기브온족속이 그런 화친 조약을 맺는 속임수를 쓰지 않고 또 속은 걸 알고 그들을 쫓아 냈다면 아마도가나안 전쟁과 점령은 요원했을 겁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 때문에 가나안 모든 족속을 몰아내는데 중요한빌미가 되고 동기가 되었던 거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체 그림이 놀랍게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나중에서야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여호수아에게 들어갈 때 뭐라고 명령하셨죠? 내가 이 땅을 너희에게 주었노니, 주긴 주었는데 너희가 다 일일이 전쟁을 해서 쫓아 내야 한다. 하나님일하는 방식이 참 맘에 안 들어요. 이왕 준거면 손 안대로 코 풀게 해야지 이게 뭐에요? 마치 이런 것 같지 않아요? 아버지가 아들 생일날 내가 너 선물로차 한대 뽑았다 그런데 할부는 네가 갚아라 마치 이런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 은혜가 있어요. 거기.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인생에 피하고 싶은 일 속에 하나님의계획을 감추고 섭리를 감춘다는 것을 놓쳐선 안됩니다. 야곱의 인생이 똑같아요. 이제 그는 제일 궁극적인 목적은 가나안 입국이에요. 아버지 집으로돌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 누구 때문에 그 전체적인 계획이 엉키게 생겼습니까? 에서의 분노를 푸는 일입니다. 그 계획에 비하면 이 에서의 분노를푸는 일은 상대적으로 작은 일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 이 작은 일이 작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거 무시하고 아버지 집에 온전한 귀환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어떤 분이 글을 썼는데 악마는 detail함 속에 발톱을 감추고 있다. 맞아요. 항상 사단은 뻔한 싸움을 해오지 않아요. 뻔한 싸움을 걸어오는 게아니라 눈치 채지 못하게 항상 작은 일에 발톱을 감추고 거기서 무너뜨려요. 지금 야곱은 제일 힘든 게에서의 분노를 푸는 일입니다. 그 형을 겪어 봐서 알아요. 얼마나성질이 랄 같은지. 어린 시절 함께 지내봐서 알거든요. 한번폭발했다 하면 이건, 옛날에 지랄탄이라고 있었어요. 아시죠? 지랄탄이 있어요. 그 폭탄 같아요.그래서 에서의 또 다른 별명이 폭탄이에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래서 에서를 향해서 야곱이 사자를 보냅니다. 자 성경을 좀 보십시다. 4절
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말도 예쁘게 하죠.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자,이게 첫 번째 내용이에요. 이 말 속의 의미는 뭔지 아십니까? 내가 형이 화가 나가지고 도망간 게 아니고 그냥 외삼촌 집에 가서 오랫동안 경영수업도 받을 겸, 또 돈도 벌 겸 있다 보니까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라고 얘기해라. 형때문에 도망갔다고 하면 형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격이 되죠? 안 그래도 세월이 지나 지금 긴가민가하고있는 상태인데, 20년 전에 뭐 그런 일이 있었나? 이럴수도 있는데 일부러 건드릴 필요 없잖아요. 그런데 에서가 그걸 잊을 리가 없죠. 두 번째 5절을 잘 보세요.
5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자,이게 무슨 얘기에요? 야곱이 뺏어 챙겨 도망갔던 게 뭐죠?장자권 아니에요? 그렇죠? 장자권에는 영적인권리만 쫓아 옵니까? 그렇지 않죠. 고대 시대라도 장자권을갖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유산이 돌아가게 돼있습니다. 자 그런데 소식에 들으니까 도망갔던 동생 녀석이돌아온다는 소문이 들려요. 그러면 지근거리에 살고 있던 에서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에서는 세상 이치에, 세상 사는 삶의 원리에 밝은 사람인데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이놈이 이제 아버지 돌아가셨나 돌아가실 때가 됐나 그쯤에 이제 자기 몫을 챙기러돌아오는 구나, 이런 생각을 당연히 했겠죠. 그래서 야곱이혹 형님이 그런 걸로 자기를 오해할까 봐 5절에서 뭐라 하죠? 다시보세요.
5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무슨 얘깁니까? 나도 먹고 살만큼은 벌어서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얘기 아니에요? 어쨌든 형의 분노를 내려놓도록 해야 하니까. 그리고마지막 세 번째 어떤 메시지를 전하냐 하면 5절 하반절에 보세요.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자 앞을 보십시다. 세 가지의 메시지를 전했어요. 에서에게 야곱이 첫째 메시지는 뭐에요? 내가 형 때문에 형 건드려서 도망간 게 아니고 외삼촌 집에서 경영 수업도 받고 돈도 벌 겸 머물다 보니까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무심한 척 메시지를 전했어요. 두 번째는 나에게도 그래서 두 떼나 이루도록 먹고 살 만큼 재물이 있습니다.그러니 형님, 아버지 유산 같은 문제에 신경 끌이지 마십시오. 나는 거기에 관심 없습니다. 세 번째, 그런데 형님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사실은 이 마지막 메시지가야곱의 속내에요. 자 그러면 야곱이 사실 이 얘기를 누구에게 했어야 옳았습니까? 마하나임, 하나님이 사자를 봤을 때 했어야 옳지 않아요? 그런데 그 때는 보고도 무심히 지나가요. 보고도. 여러분들은 그런 실수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렇게무심히 지나가면서 커요. 무심결에 지나가면서 그냥 보기만 해요. 어? 저건 또 뭐야? 하나님이 존재하긴 하시네. 날 잊진 않으셨네. 아직 거기까지밖에 안 온 거에요. 신앙의 이치가. 그리곤 사자를 통해서 야곱은 에서에게 세 가지의메시지를 전달해요. 전달하러 간 사다가 돌아왔어요. 어떤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왔나 보십시다. 6절 다같이 시작
6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자,여러분 여러분들의 상상력으로 한번 상상을 좀 합시다. 뭐냐 하면 사자가 돌아왔는데 야곱이귀를 의심했어요. 몇 명을 데리고 지금 오고 있다고요? 동생이온다는 소식을 듣고 400명을
(30:01-40:00)
데리고, 가신이겠죠? 군대를 끌고 오는 거에요. 1. 한번 택해 보세요. 여러분.1.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서 400명을 거느리고 온다. 그가많은 양 떼, 소 떼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혹 노정에 위험한 일을 당할까 봐 야곱을 보호하기위해서 400명을 데리고 온다. 2. 복수를 하기 위해서온다. 3. 과시하려고 400명을 데리고 온다. 나도 이 정도 자리 잡았다. 뭐,남자들만 갖는 허세. 1번 2번, 3번 중에 몇 번일 것 같습니까? 1번? 보호. 2번이 뭐였죠? 복수. 3번은 허세. 몇 번일 것 같아요?여러분? 딱하게도 성경은 정확히 말하지 않아요. 정확히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그 뒤에 가서 한번 전체적인 맥락을 볼 필요가 있어요. 자, 성경을 또 보십시다. 7절
7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양과 소와 낙타를
여기 몇 떼로 나누죠? 두 떼로 나누고 두 떼로 나눈다는말은 주식 하는 분들의 유행어가 있죠? 계란은 한 바구니 담지 마라.위험 분산이죠. 혹 선발대가 깨지면 후발대는 남겨 두어서 피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런 속셈을 가지고 두 떼로 나눕니다. 그리고 8절을 보십시다.
8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절 다같이 시작
11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네,야곱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주 애절하고 참 처절한 본문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야곱의 이 두려움 속에는 손에 가진 게 있었기 때문에 두려웠고 근본적인 두려움의 정체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기 인생을 아직 맞기지 않았기 까닭에들어오는 두려움이었어요. 여러분 누구나 그런 얘기를 했더군요. 진정한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두려움 앞에 직면하는 것이다. 더 큰 두려움은 뭘까요? 하나님의 엄위 하심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클까요? 에서가 클까요? 질문 자체가 틀렸죠. 비교 불가죠.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이미 이 고향 길목에 들어설 때 하나님은 쌍수의 군대를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너와 얼마나 결합되어 있고 하나가되었는가를 보여주셨어요.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인생의 추가 그 쪽으로 넘어와 있지 않아요. 아직도 모든 걸 자기가 붙들고 있고 자기가 지켜내야 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을보호해야 해요. 그러니 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파요? 고달픈거에요. 그래서 항상 우리가 기도할 때 놓치지 말아야 될 원칙이 있죠.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문제를 해결 받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을 늘 드립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늘 문제를 내가 주도해서 해결하려는 그런 본성이 우리 속에 웅크리고 있어요. 그러면 이제 세상 말로 팔자가 세지는 겁니다. 영적으로. 그런데 늘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 받는 인생이 있어요. 툭툭툭.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을 가만히 조명해 보면 항상 지혜로워요. 그지혜는 어떤 걸 지혜롭다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냥 하나님께 던져 놔요.여러분 너희 염려를 맡겨 버리라는 말이 던지라는 말이에요. 언어상. 하나님께 던져 놓는 거에요. 그걸 내가 붙들고 있으면 내 문제가되죠. 하나님께 던져 놓으면 누구 문제가 될까요? 네, 하나님이 인상 쓰고 짜증 내시면서도 그거 자기 일로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아직 그 인생의 추가 자기에게 빼곡히 박혀 있어요. 아직인생의 추가 하나님께로 넘어가지 않은 겁니다. 드디어 그는 이러다가 결전의 밤을 만납니다. 오늘 거기까지만 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는데요. 13절을 보십시다.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제가 이걸 조사해 봤더니 이것은 일반국가 대 국가로 조공을 바치는 수치보다 어마어마한 분량이에요. 지금 야곱은 에서가 마음 속에 자리 잡고있는 그 두려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이 물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겁니다. 에서의 분노는 야곱에게이만큼 두려운 존재였어요. 자, 그런데 16절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여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의 주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말하고
자,이게 무슨 얄팍한 수법인가 하면 이 짐승 떼를 크게는 네 덩어리고 잘게는 다섯 덩어리로 나눈 겁니다.그래서 목동들을 하나씩 붙여 가지고 계속 에서 선물로 에서 쪽으로 보내는 거에요. 그러면에서가 사백 명 데리고 쫓아 오다가 첫 그룹을 만나겠죠? 이거 왠 거냐? 누구 것이냐? 하면 거기서 거래가 이뤄지고 설명이 이뤄집니다. 그럼 거기서 시간이 흘러가요. 그래서 그것이 넙죽 받아 들여지면되지만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다음에 또 그 다음 그룹을 만납니다. 그러면서 야 어떻게 머리를 이렇게 써요? 이거 완전 injury time에 막 드러눕는 거에요. 우리 교역자 중에도 축구하다 보면 막 드러눕는 사람이 있어요. 시간 끄느라고. 시간끄는 거에요. 질질. 이걸 보통 우리가 세상 용어로 진상이라고합니다. 진상. 세상에 이런 진상이 어디 있어요? 이걸 막 네 떼, 다섯 떼 나눠가지고 보내긴 보내는데 전부 검문소에걸리게끔. 그래서 누구랑 대화가 이뤄지죠? 똑 같은 패턴이에요. 에서랑 대화가 이뤄지게 하는 거에요. 철저한 잔꾀를 부리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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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합니다. 잔꾀는 오래 가지 못한다. 잔꾀는 오래 가지 못해요. 금방 애들 말로 뽀록이 납니다. 얼마나 유치한 잔꾀에요? 자, 그리고 나서 이제 주욱 넘어갑니다. 21절을 보세요.
21 그 예물은 그의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 밤을 지내다가 잠이 안 와. 그래서 그냥 일어났어요. 잠이 안 오죠? 잠이 와요? 가슴이쿵쾅 쿵쾅 하겠죠. 그래서 자다가 일어났어요. 밤에 일어나
22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게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어떻게 남아요? 홀로 남았더니
결국 지금 처자식까지 다 건넜습니다. 그렇죠? 이게 중요해요. 그리고야곱은 어떻게 남았어요? 홀로 남았어요. 여러분 정말 인생은마지막에 홀로 남는 겁니다. 자, 요즘 뉴스에 간혹 고독사가뉴스 거리로 나와요. 혼자 죽어가는 대도 석 달씩 몰라요. 그만큼요즘 혼술, 혼밥 이것도 유행이잖아요. 또 자기가 몸이 아프면이 몸 아픈 건 누구도 대신 아파 줄 수 없잖아요. 다른 건 대신 시킬 수 있어요. 돈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자기 문제는 결국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홀로 밤에 남습니다. 이 말은 뒤집어 얘기하면 그 어떤 것도 야곱의이 문제를 푸는데 해결이 안 된다는 거에요. 그게 현실입니다. 그래서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스스로 sentimental할 필요도 고독해 할 필요도 없어요. 그게 현실이고 인생이에요. 야곱도 결국은 이 들판에서 별 show를 다 해요. 밤에 잠을 자려고 청했는데 잠이 안 와요. 어떤 것도 지금 자기 문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강을 건네 버려요.히브리 사람들의 세계관 속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항상 강을 건넌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거에요. 지금 이 강을 건너면 도망 올 수도 없고, 되돌아 올 수도 없어요. 이제 그걸로 끝나는 거에요. 야곱이 지금 어느 정도까지 코너에 몰린정도가 아니라 모든 걸 내려 놨는지 여기서 봐야 해요. 결국 밤에 홀로 남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자 성경을 보십시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여기 이제 씨름이란 표현을 썼어요. 우린 씨름하면 우리 식 개념으로 샅바 매고 그렇게 한 것처럼 이해를 하는데 영어 성경에는 레슬링이라고 되어있어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사실많은 주석이나 해석이 이 부분을 야곱의 얍복 강가의 기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기도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께 다가가 간구하는 게 기도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문법 자체가 문장 자체가 이 씨름을 야곱이 먼저 건 게 아니라.그렇게 고독이 물에 젖은 솜처럼 쳐져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싸움을 걸어 와요. 이 어떤사람이 24절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28절을 볼까요?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또 다른 현현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싸움을 걸어 온 거에요? 예, 이 말은 여기서 드디어 야곱은 신앙으로 말하면 어떤 절정에 지금 봉착한 거에요.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야곱의 인생을 곁에서만 살살 눈치 보면서 따라가시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친구를 이대로두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 끝에 드디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로 결심하시고 싸움을 걸어 들어오신 거에요 .그런데야곱이 져요? 안 져요? 야곱이 안 집니다. 25절을 보십시다. 24절부터 읽겠습니다.
24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밤새 씨름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시고보고 그랬어요. 여기 이기다 라는 말을 승패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이기다 지다라는 개념이 아니고 야곱의 뜻과 의지를 막을 수 없음을 보시고 그 뜻이에요 .뭔가 지금 이 마지막 홀로 남은 밤에 떠밀려 있는대도 야곱은 그 마지막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내려 놓지 못하고있어요. 그러니까 드디어 여러분 하나님이라면 야곱에게 질 수가 없죠.하나님께서 25절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이때부터 야곱의 한쪽 다리고 절게 됩니다. 절뚝 절뚝 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데 그 절뚝거리는 한 쪽 다리의 흔적은 야곱 평생에 은혜의 가시가돼요. 그가 그 다리로나마 남은 인생을 절뚝거리며 걸어가면서 그 절뚝거릴 때마다 그는 그 얍복 강가에서밤새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지고 씨름하던 자기의 질긴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거에요. 그래서하나님이 야콜 하고 선언해 버리십니다.이기지 못함을 보시고, 이 말은 그의 뜻과 고집을 막을 수 없음을 보시고. 그러자 하나님께서 허벅지 관절을 치는데 정확한 의미로는 생식기 근처를 얘기해요. 그것은 이런 뜻이에요. 너는 이제 육체적으로 죽었다 그 뜻이에요. 이건 어떤 이런 몸의 육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야곱의 내면의 아직도 곤고히 웅크리고 자리잡고 있던 육체적인모든 것들을 심판해 버리시는 거에요. 그런데 이때 야곱이 알아챕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붙들고 늘어집니다. 이 사람이 하여간 붙들고 늘어지는 데는 선수에요. 그는 출생서부터발 뒤꿈치를 붙들고 나왔어요. 평생 이 삶의 속성을 놓치지 않고 있었어요. 평생 움켜쥐고 붙들고. 그런데 자기에게 심판 같은 고통을 선언하고떠나려는 이 분이 그제서야 아침이 밝아오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려 주세요! 여기서 최초로 그는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이 고백을 하게 되는 거에요. 그러자 여기 이상한 대화가 결론 겸 이어집니다. 그 사람이 27절.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뭐냐 그가 이르되 야곱입니다.
자 이 대화 어떻게 보세요? 이름 몰라서 물었을까요? 하나님이?모를 수 없죠. 모르는데 이렇게
(50:01-53:53)
야곱의 인생을 질기에 쫓아 다니시고편애적 사랑을 멈추지 않으시고 했을까요? 야곱의 체질까지 아시는 분이세요. 시편 기자의 시어에 보면. 그러면 하나님이 붙들고 늘어지는 야곱에게네 이름이 뭐냐고 물으셨을 때는 무슨 뜻일까요? 야곱은 뭐라고 대답했죠? 야곱입니다. 야코프. 저는움켜쥐고 발 뒤꿈치를 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뜻이에요. 이것은자기의 실체를 직면하게 하는 하나님의 질문이었어요. 너는 지금까지 네 인생을 어떻게 살았냐? 예, 제가 야곱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으로살았습니다. 홀로 밤을 맞는 인생에게 찾아오는 은총이에요. 아무도이 세상의 어떤 것도 자기의 위기 앞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홀로 남겨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실체를 만나게 되는 은혜입니다. 네 이름이 뭐냐? 오늘 이 밤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 질문을똑같이 하실 수 있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기서 이름을 바꾸세요.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여기서 이스라엘이라는 footnote를 보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좀 번역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어떤 뜻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ruler이제네 인생을 통치하기 시작하신다는 말이에요.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이내 인생을 통치하기 시작하신다. 믿습니까? 이름이 바뀝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다음부터 성경 어디에도 야곱을 가리켜서 야곱아 야곱아 그러니 이스라엘아 이렇게 말하는 데가없어요. 당연하죠. 이스라엘은 선언적 설명입니다. 앞으로 너를 내가 뭐 만들겠다는 뜻입니까? 이스라엘 만들겠다. 너는 이스라엘이라. 그런데 아직은 내 안에 뭐가 많아요? 야곱이 너무 많아요. 가시나무 노래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것이 점점점 이스라엘이 되어가는 거죠. 그리고 저 창세기 끝날 무렵 야곱은 이스라엘로 인생을 마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가 되죠. 믿습니까?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 7월 뜨거운 여름 밤에 만난 이 금요일 밤은 여러분 인생에 야곱의 얍복 강가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강 이름을 뭐라 그랬죠?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 믿습니까?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찬양 하나하십시다. 이 땅에 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