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은 사랑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70512
성경구절
창 27:1-10
시리즈 순서
창세기(36)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36)
전쟁같은 사랑
창세기 27:1-10
1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사냥하여
4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00:00~10:00)
성경에서 종종 눈이 흐리다 또는 눈이 어두워 라는 표현이 등장을하죠. 그러나 이것은 그냥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들어서 눈이 어두웠다는 표현도 되겠지만 여기에는 상당한영적인 암시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서는 모세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죠.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도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기억나시죠?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런데 죽었어요. 그말은 모세는 철저하게 알뜰하게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고 그의 사명을 온전히 이룬 다음에 하나님께서 직접 데려가셨다는 뜻입니다. 자연사적인 죽음의 의미보다는 그의 사명을 다 마쳤다는 뜻이 되죠. 바울은그것을 달려갈 길을 마치고. 라는표현으로도 소개를 했어요. 근데 이삭은 눈이 흐려집니다. 눈이흐려지면서 사실 눈만 흐려진 것이 아니라 모든 오감이 다 무너집니다. 미각도 무너지고 촉각도 무너지고잘 듣지도 못해서 분별을 잃어버리게 되죠. 27장 안에 이삭이라는 한 자연인이 모든 감각이 다 무너지는것을 볼 수가 있어요. 여러분 이사야가 성전에 앉아 하나님 앞에 시대적 소명의 눈이 떠질 때 이런 표현이있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한군데만 좀 읽어드릴 테니까 들으십시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대 내가 누구를 보내며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고 하시니 그때 내가 이르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듣기는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이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 말은 원문에 가깝게 다시 제 번역을 하자면 간단히 요약해서이런 뜻 입니다. 볼 것만 보아라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깨닫지 마라 들을 것만 들어라 그리고 세상을향해서 깨닫지 마라 그런 뜻 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이 그림을 보여줬는가 하면 당시는 웃시야라는절대권력이 52년 동안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때 입니다 .경제면경제, 농업이면 농업, 국방이면 국방, 당시에는 심지어 이웃나라로부터 조세를 받아서 살림을 할 정도로 나라가 솔로몬 이후로 절정기를 달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융숭한 국가에 부강함 때문에 모든 백성들의 멘탈과 시각과 가치가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보통 종교개혁은 중세시대 590년서부터 1517년까지를 중세시대라고 하는데 중세시대 종교타락 끝에 돌출된 사건입니다.비텐베르크 교회당 문 앞에 루터가 95개 조항의 질의서를 걺으로써 영혼의 불길처럼 종교개혁이촉발되었죠. 루터도 그 정도까지 시대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리라고는 전혀 꿈꾸지도 않았고 계획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때는 교황권이 나라에 국왕을 임명하던때입니다. 이것 교황권의 권세라는 것은 가히 절대적이에요. 뿐만아니라 국왕은 교회의 재정을 책임져주었습니다. 교회의 돈을 책임져줬어요. 그러니까 나라와 교회가 공생관계에 있었습니다. 그 절정기를 이루어냈던교황이 이노센트3세에요. 역사에 보면 이 인물 등장을 합니다.
한날은 이노센트 3세가예배당 창문으로 교회정문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 옆에는 토마스아퀴나스라는 신학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노센트 3세가 토마스아퀴나스에게 이런 애기를 합니다. 이 보시오 이제 교회는 내게 은과 금은 없다는 시대는 지나갔소. 동시에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시대도 지나갔소. 이 말이 갖는 암시가 무엇인지 여러분 알 겁니다. 그 교회의 정문에는 바리바리 성도들이 선물과 은, 금을 실은 수레로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었어요. 교회 안으로 그걸 바라보고 이노센트3세가토마스아퀴나스 신학자라는 분에게 한 얘깁니다. 이제 교회는 은과 금에,은과 금이 내게 없거니와 라는 말은 이제 지나간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오직 나사렛예수의이름으로 걸으라는 시대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세 시대에 부패와 타락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그림이에요. 역사책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국교회는 인적자원이 넘쳐나고재정이 풍부해지기 시작하면서 타락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든지 아니면 아니라고 부정해보십시오, 아닙니까? 아무도 부정할 리가 없을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 속에 어느새 가치는, 크기의 가치, 물량의 가치에 깊숙이 물들어서 이제는 그렇게 믿음을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게 예측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이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가치보다 더 심각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위기예요.지금 이삭이 눈이 어두웠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이삭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어두워졌을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이 서서히 마비가 되기 시작합니다. 모세의 죽음과는 판이하게 틀려요, 제가 오늘 어느 분이 보내준 자료를 찾아보다가 참 기가 막힌 할머니 한 분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분 존함은 ‘김옥나’라는할머니예요. 1918년생이니까 올해 몇입니까? 네? 100살이예요. 근데 이 할머니 지금도 출근을 해요. 에이 설마~ 진짜입니다. 자료찾아보세요. 이분은 각 당 복지재단에 명예이사장으로 있는데 본인이 만든 재단입니다. 순전히 봉사를 하는 재단이에요. 지금도 젊은이의 맞먹는 속도로 자판을두들기면서 워드작업을 다하고 업무를 봅니다. 그리고 강연을 하고 또 특강을 다녀요. 올해 한국나이로 100세입니다. 우리나라에걸스카우트 소녀단을 처음 만드신 분입니다.
(10:01~20:00)
이분은 짬짬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쓰고 공부하시는 분이에요. 독실한 신자입니다. 이분의 평생은 well-dying을 위해서 남들을 위해 섬기고 나누고 봉사하는 일생을 지금까지도 살고 있어요. 아직도 건강합니다. 백세, 사실백세시대 백세시대 하지만 100세까지 사신 분들을 만나기는 그렇게 쉽지 않아요. 줄잡아 우리나라에 한3천명쯤 계시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큰, 많은 숫자가 아니죠.근데 생물학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모든 감각이 무뎌지거나 또는 서서히 둔해지게 되어있어요. 이삭이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영적으로 어디서부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에서에게 별미를 부탁하면서 축복을 해주겠다고 사실상 조건부거래를 합니다. 이 시도부터가 사실은 잘못된 거죠. 자 그래서 운명적으로 이 이야기를 어머니 리브가가 들어요.그리고 어머니가 무조건 집착하고 사랑했던 야곱에게 정보를 건네주고 사고가 나죠. 근데 보면여기에는 가해자 피해자가 없어요. 다 가해잡니다. 에서도실수를 하고 야곱도 실수를 하고 엄마도 실수를 하고 아버지도 실수를 해요. 근데 인간은 실수를 하는데놀랍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꿋꿋하게 밀고 나가십니다. 그렇죠?여러분? 어제 그 모 방송국에서 항상 뉴스가 끝나면 나머지 자투리 시간에 뉴스 룸이라는짤방을 하는 방송이 있어요. 어느 방송이라고 소개를 안 하겠는데 그 방송에 그 사장 겸 앵커라는 분이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세월호 얘기가 현 정부에 부상을 얘기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자꾸가 하나 있었어요. 인과관계는없어도, 인과관계는 없어도 한 정권이 무너지던 날, 3년만에배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한 정권이 탄생하던 날 처음으로 미수습자로 보이는 시신의 일부가 건져 올려지고 하면서 인과관계는 없어도 되어질 일은 되어진다. 얼핏 창세기27장과 오버랩이 됐어요. 여기에는 전혀 인간의 인과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복 받을 사람은복을 받아요.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은혜, 자 그 은혜가 이제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를 한 3단계에 걸쳐서 좀 만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첫 번째, 혹시 그 임재범씨가 불렀던 노래 중에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전쟁같은 사랑 불안한 눈빛과 로 시작되는 가사가 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전쟁의 선포는그런 사랑의 싸움을 걸어 들어오신 겁니다. 이제 네 인생은 네가 마음대로 가도록 내가 구경이나 하고팔짱이나 끼고 두고 보진 않겠다. 해서 야곱의 인생 속에 본격적으로 개입에 들어가십니다. 전쟁 같은 사랑을 선포하신 거에요. 그 증거가 뭔지 아세요 여러분결국 야곱은 의욕과 욕망대로 축복권을 빼앗습니까? 못 빼앗습니까? 쟁취를하죠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는 결국 장자권을 자기 것으로 확보합니다. 결국 에서를 두 번 속이죠.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고 나중에 그 확진적 사건으로 축복권까지 받아 챙깁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야곱의 인생 스토리를 보시면 야곱의 총 인생 결말이 딱 한 문장으로 어떻게 나왔습니까?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그게 장자가 받은 복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복이에요? 네성경은 그걸 복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게 복일까요 이제 야곱은 정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그는 그 인생 속에 자기가 주인 되어서 아등바등 열심히 욕망에 붙들려서 살았던 그 모든 삶에 기준과 가치를 뿌리뽑아 내는데 몇 년 걸렸어요? 20년이요? 아니에요. 한평생이걸립니다. 20년은 기본 기초군사훈련이죠. 군대에서 4주 훈련 받는 거 6주 훈련 받는 거 그 정도 분량밖에는 안 되는거에요. 야곱은 축복권을 빼앗아 가졌는데도 한번도 세상적으로 볼 때 축복받은 사람답게 살지를 못해요. 얼마나 험하게 뒹굴고 부대끼는지 몰라요. 정말 사람이 내려가지 않을자리까지 뒹굴면서 바닥을 칩니다. 여기가 바닥인가 싶었는데 아직도 더 내려가야 돼 이러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거긴 지하1층밖에 안돼 아직 지하8층까지 남았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얼마나 더 바닥을 쳐야 되는지 우리 그럴 때가 있죠 이게 바닥인가보다 싶은데더 있어 바닥이 더 있어요 그래서 아주 재도 안 남는 지경까지 우리를 하나님께서 땅에다 아주 파묻어버릴 때 있어요. 나는 간 곳이 없고 정말 마지막 신음 같은 고백처럼 십자가만 남도록 까지 그게 인생의 개혁입니다. 히브리9장 10절 말씀에개혁의 정의를 예수만 드러나는 게 개혁의 정의라 그랬어요. 믿으십니까? 예수만 마지막에 남는 게 개혁의 정의에요. 야곱은 놀랍게도 장자권도 확보 받고 축복권도 빼앗았지만 전부 하나님의 손길을 방법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는 예정가운데장자가 되도록 되어 있었어요, 맞죠? 하나님의 언약의 뿌리를따라서 그런 복중에 있을 때부터 로마서 9장의 말씀처럼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그는 사랑함을입었던 자예요. 장자권과 축복은 야곱에게로 흘러가도록 작정되었었어요.근데 그걸 자기 힘으로 빼앗아요. 이게 참 인간의 못된 버릇이에요. 자기가 챙기는 거에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수동적으로 있는 거를가장 못 견뎌 합니다. 수동적으로 있는 거를 그러면 바보같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고 신앙이 없는 것처럼취급을 당해요. 왜 그렇게 살아 이런 조롱을 듣게 됩니다. 과연그럴까요 그렇지 않거든요. 야곱은 그거를 지금 훈련 받는데 정작 축복권을 한번도 쓰지를 못해요 이름을바꾸어서도 계속 뭐라고 불려지죠?
(20:01~30:03)
야곱이라고 불리고 삽니다. 그는얍복강가에서 이스라엘이라고 명예스럽고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개명이 되요. 하나님에 의해서 그런데도 그이후에 어디에도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부른 데가 없어요. 야곱이 야곱이 자 이게 우리의 이중적 상태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요 성도인데 우리 속에 아직도 여전히 뭐가 있죠 야곱이 있단 말이에요. 빚어지고 깎여질 것들이 있단 말이죠. 그렇게 살아요 이 과정에서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전쟁 같은 사랑을 이루어 나가시는 겁니다. 근데 그 사랑은 굉장히 집요하고 열심있는 사랑이 있어요 우리의 어떤 상태 여부에 따라서 놓기도 하고 건지기도 하시는 그런 사랑이 아니에요. 하나님의사랑을 그림으로 스케치를 해보면 이런 거 같아요 우격다짐의 사랑, 우격다짐이라는 개념 아시죠 우격다짐의사랑이에요. 하나님이 우기심에는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나뒹굴어져도 저 아무도 모르는 음부에 가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려다보고 계세요. 기껏 도망 온 데가 여기냐 이러고 우리를 내려다 보고 계세요. 아주진저리가 나죠 어떤 때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집요하고 끈질길 사랑의 추적자였기에 우리가 겨우 여기에 지금 붙들려와 앉아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사랑에 매여서 성경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자, 몇절을 보시냐 하면 28절을 한번 볼까요 28절 보기 전에 19절부터 먼저 보십시다 19절 한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9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제 에서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왔나 보죠 20절
20 이삭이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과 여호와께로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 이니이다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이거 사실은 이삭입니까 에서입니까 야곱입니까? 속았어요 야곱이 시리아산 염소 털을 손에다 입히고 아버지를 속인 거예요. 유대문헌에보면 이 시리아산 염소 털이 사람의 털과 촉감이 거의 비슷하대요 저도 직접 만져 본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문헌에 그렇게 나와있어요. 가장 사람의 털과 촉감이 비슷한 게 시리아산 염소 털이랍니다. 그걸슬쩍 손에다 입히고 아버지의 촉각을 속이죠 눈이 어두워지니까 연쇄작용으로 모든 감각기관이 다 무너진 겁니다. 나중에이 사실이 밝혀집니다. 에서에게도 밝혀지고 야곱도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자 33절을 한번 볼까요 이렇게 되어있어요
33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 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 우리가 한가지 의문이 생겨요 어떤 의문인가 하면 이거는속여서 속은 거기 때문에 이 축복은 무효화할 수 없느냐? 없어요 한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은무효가 안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여호수아서 9장에서 볼 수 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진입해서점령을 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누가 화친을 맺으러 나옵니까 기브온 족속입니다 아주 멀리서 온 사람들처럼 곰팡이 난 떡과 낡은 신발과 다 헐은 망대를매고 와서 우리는 멀리서 온 족속인데 당신들과 화친하고 싶습니다 긍휼한 마음이 들어서 그들과 화친을 합니다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율법상 근데 여호수아가속죠. 나중에서야 발각이 됩니다 그래서 취소시켰나요 아니에요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역 안에 편입을시킵니다 그리고 영원히 물 긷는 자, 나무 패는 자가 되죠 한번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되어진 축복은변개시킬 수가 없어요 그리고 성경에 보면 여러분 꼭 혈통적으로 장자에게만 장자권을 물려주는 건 아니에요. 예를들어볼까요 다윗은 첫아들에게 왕권을 물려주지 않았어요. 누구에게 물려줍니까? 솔로몬, 솔로몬은 첫아들이 아니죠.또 이삭도 마찬가집니다. 아브라함도 가장 가까운 혈족은 롯이에요 그런데도 자기집에 길리운엘리에셀이라는 종에게 상속을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이런 걸로 보아서 유대인들 속에서도 율법은 장자에게 물려주도록 되어 있지만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꼭 장자에게만 물려주는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운명적으로 두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한번도축복을 행사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해요 그래서 그 축복이 의미가 없어졌나 사실은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야곱이 누려야 될 복은 우리가 생각한그런 세속적인 복이 아니었어요. 마지막 창세기 49장에 가서, 우리 49장을 한번 넘겨볼까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쭉 넘기세요. 이제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제 축복을 하죠. 잠깐 이 본문을 읽기 전에 이스라엘 유다인들의축복의 시기에 대해서 그 유다인들은 보통 언제쯤 축복을 하나? 이런 관습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120세에 돌아가셨으면 자기 수명을 120을 기준해서 보통 10년전후로 봅니다. 이게 유대인들이 갖는 관습이에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아버지가 한 100세에 돌아가셨으면 나는 90이나 또는 110세 요 사이에 나도 죽을 가능성이 많다라는 예측을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축복을 그 전후로 해요 근데 이삭이 두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가 137세에요 근데 사실 이삭은 눈이 흐려서 판단이 흐려졌던 것처럼 그 예측마저도 잘못 예측을 했죠 몇 살까지살았나요 성경에 보면 180살까지 살아요 예측이 굉장히 빗나갔죠 뭐 인간수명이야 사전출구조사도 할 수없는 거고 137세에 축복을 다 빌어놨으니까 그러고 나서도 한 사십 몇 년을 더 살았다는 결과가 됩니다. 어쨌든 지금 야곱도 그 시기가 임박했는걸 직감했던 것 같아요 이제 성경을 보십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러 아들들을 축복해 내려가다가 22절 요셉의 순서에 이르렀습니다.
22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이것은 요셉이 평생 시대 앞에 맞섰던 험난한 인생을 시적으로그려낸 표현이에요.
(30:04~40:00)
22절에 보시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어디 곁에 무성한 가지죠? 네 얼마나 무성한지 담을 넘어요 가지가자 그런데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23절을 보시면
23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잠깐 앞을 보실까요 항상 우리 요한계시록 공부할 때도 말씀을드렸지만 활이라는 무기는 적그리스도의 대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박하고 무너뜨리고 공격할 때 주로 쓰는 무기가 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백마를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검을 가지고있었습니까? 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요한계시록 6장에 백마 탄 자는 활을 가지고 있었어요? 검을가지고 있었어요? 활을 가지고 있었어요. 활은 항상 하나님의자녀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무기로 등장을 합니다. 요셉은 평생 그렇게 인생을 험악하게 이방 땅에서일찍 노예로 끌려가 감옥살이도 하고 세월을 보냈어요. 그런데 24절볼까요 다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24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절을 잘 눈으로 보세요 제가 읽겠습니다.
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자 이게 말이 좀 어법이 이상하죠 여러분 25절에서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그러면 지금은 이 기도를 누가하고 있는 거에요. 야곱이 하고 있죠 누구를 향해서 요셉을 향해서그럼 네 아버지는 사실 누구를 가리키는 겁니까? 자기를 가리키는 거예요. 자기를 야곱이 야곱의 하나님이 그 뜻이에요
25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태의 복이리로다
26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26절을 잘 보세요 네 선조 하면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선조는 자기를 제외한 이 축복을 받는 대상을 제외한 야곱과 누구를 가리키는 겁니까 이삭과 누구까지 올라가야되죠?
아브라함 그러니까 야곱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하면 내 축복이내 조상 선조들의 복보다 더 세다 그 말이에요 이런 말이 쉬운 말 일까요 어렵죠 자 이게 무슨 뜻 인가하면 이런 뜻 입니다 간단한 공식으로 아브라함하고이삭하고 합친 복보다 내 복이 더 세다 그 말이에요. 야~이런말 쉽게 할 수 없죠 그렇다면 정말 그런가 한번 복을 비교해 보십시다. 이삭이 누리고 야곱이 누렸던그 모든 복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물려졌어요. 그러니까 이삭까지도 내려갈 것도 없이 아브라함 한 사람만비교해도 야곱은 물질적인 개념의 비교상 상대가 안돼요. 그런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삭과 아브라함이합한 복 보다도 자기 복이 세대요. 그래서 그 복을 지금 요셉에게 빌어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사람이 자기 가장 가슴에 담고 사랑했던 요셉에게 비는 이 복의 정체가 뭐냐를 아셔야 되요. 자, 이 복은 24절에이렇게 힌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4절 보시면
24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니라
목자의 손 누굽니까? 하나님의손을 얘기하는 거죠. 자, 그러면 야곱이 여기서 말하는 복의정체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이해하는 복하고는 정체가 틀려요 우리는 보통 복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그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유다 사람들이 복을 세상적으로 이해를 했어요. 그게복 받은 건 줄 알았어요. 근데 그 부강한 복 때문에 웃시야 왕에서부터 교만하여 져서 나병에 걸려 죽을때까지 궁궐에 입궐도 못하고 별궁에서 고독하게 처참하게 죽어갑니다. 말하자면 야곱이 여기서 정의하는복은 하나님을 경험한 복을 얘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에 관한 한 나보다 잘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 그거는 어떻게 해야 경험할 수 있는 복이죠 하나님한테많이 부대껴봐야 경험할 수 있는 복이에요. 부대낀다는 표현을 써서 죄송한데 부대끼면 고달파요? 고달프지 않아요? 고달파요 그런데 고달픈 게 복이었더라구요. 지나보니까 왜 그게 복일까요 그래서 딴 길로 갈수 없었고 딴딴하게 묶여가지고 질질 끌려서래도 하나님 앞에 앉아있을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더라고요 뭐가 고복이에요? 그게 돌아보니까 복이었더라구요 성경을 우리가 얼마나세속적 가치로 계속 적용하고 보아오는지를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됩니다. 야곱이 여기서 진짜 보석이되어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되는 거에요. 야곱이정의한 복은 하나님의 손길을 얘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뭔가를 얻어다가 먹여준 뭔가 건네준 세상의 것들을보장한 것을 복이라고 설명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 복이 아브라함 복과 이삭 합친 복보다 더 낫다그 말이죠 이게 천국이 기준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잠깐 말미에 그런 얘기를 드렸죠 여러 자녀가 있으면누가 부모를 잘 알아요 범생이들이 부모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맨날 아버지한테 끌려가서 야단맞고 매맞고꾸지람 듣고 이런 애들이 마지막에 그 부모를 먹여 살리고 지켜요 희한하죠 그리고 그런 자식들이 부모를 잘 알아요 너무 잘 알아요 아버지 눈빛만봐도 아버지 심정을 가슴저리게 알게 되죠. 왜 서로 전쟁 같은 사랑을 통해서 스토리가 쌓여졌잖아요 그래서제가 알아요 여러분들이 지금 왜 그러는가 하나님하고 사연 만드느라고 그러는 거 알아요 근데 이제 사연을 그만 만드세요 그것도 적당한 게 좋아요말로 할 때 하는 게 좋아요. 근데 요셉은 참 질긴 사람이었어요 그가 나중에 진짜 웃기는 장면을 하나연출합니다 그 얼마나 달라졌는가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까 세상적으로 먹고 살게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70명의식구들을 데리고 어디로 들어갑니까? 애굽으로 흘러 들어가요 애굽으로 식객으로 흘러 들어가요.  그니까 요셉이 우리 부모님 왔다고 바로앞에 요셉을 야곱을 세웁니다 그때 기절할 일이 벌어지죠 근데 성경 기자는 그걸 놓치지 않아요 들어가자 마자 야곱의 이마에다가 바로의 이마에다가그냥 하나님의 이름으로 안수를 해버려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러니까 바로가 누굽니까 기가 막혀가지고 묻죠 네 나이가 얼마냐 물어요 그래서 묻는 거예요.
(40:01~42:08)
그러자 야곱이 그때 명문 하나를 남깁니다 우리 조상의 길에는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이에요? 내가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아래있었다 그 말이에요 그때야 야곱은 먹고 사는 게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그 영광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실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진정한 현실임을 깨닫고 누구 앞에서도 왕 중의 왕인 바로 앞에서도 맨 먼저 남의 나라에 밥얻어 먹으러 들어가서 이마에다 딱 안수를 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될 지어다 그러니 갑자기 뜬금없이 안수 받은 바로는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여러분 그렇게 살아요 그렇게 삽니까 하나님이 정말 그런 소소하고 세세한 일상 속에 능력이 되고 영광이 되고 실력이 되어서 하나님이 현실이 되어사냐 말이에요 야곱이 그렇게 달라집니다 그게 야곱이 복이라는걸 알았어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손길이 나와 함께 하는 게 복이라는걸 알았어요 내가 얼마나누리고 가졌느냐가 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삼일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걸으라는 이 고백이 다시 한번 유일하게 발의 되고 선포되는 여러분들의 삶과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 찬양 하나 하고 우리 기도를 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