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용서를 넘어서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602
성경구절
요 8:1-9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22)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로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남았더라
(00:00-05:00)
오늘은 꼭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일반 세상 사람도 잘 아는 익숙한 이야기가 본문에 담아져 있어요. 죄 많은 여인이 붙들려 옵니다. 그 얘기를 좀 하겠는데. 늘 세상이 그래요. 잘 알고 있고 익숙하다는 것만큼 또 더 많은오해와 곡해가 덧씌워진 것도 없어요.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이 과연 우리에게 뭘 말하고 싶은가 거기에초점을 맞추어서 오해도 곡해도 벗겨내고 성경이 정말 말하는 원칙만 좇아서 이 시간 누구가 아니라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청종하는 시간이 될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을 좀 열어봅시다. 8장 1절이죠.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는 어디로 가셨나요? 예, 감람 산으로가셨어요. 앞을 잠깐 보십시다. 예수님에게 감람 산은 어떤곳일까요? 제게도 가끔 이런 감람 산의 시간이 좀 있었으면 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아주 분주한 스케줄과 일상의 쫓겨 다니다 보면 제가 스케줄을 핸들링이 안되더라고요. 스케줄이 나를 막 몰고 가요. 잠도 못 자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그래요. 오늘 새벽에는 축구 볼라고 일어났다가그냥 깜박 잤어요.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에게 항상 이 감람 산이 참 중요한 시간이었고 공간이었어요. 예수님의 삶의 패턴을 보면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데 해가저물면 늘 가시는 곳이 감람 산입니다. 그곳에서 두 가지를 하셨어요.첫째 쉬세요. 하루 종일 식사할 겨를도 없이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예수님도 육신을 가진 존재인지라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쉽니다. 그런데그 쉼의 방식이 하늘 아버지와 고요히 파고 들어가는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이 감람 산에서는 기도와 쉼의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충분히 밤새 그곳에 머무시다가 날이 밝으면 예루살렘 성전 쪽으로 내려오셔서 수많은사람들을 앉혀놓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또 인생이란, 인간이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지 이걸 백성들에게 쭉 설명하시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와중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요. 서기관이라는 사람들과바리새인들이라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서. 이 두 종류는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최고 선생들입니다. 게다가 어떤 전문가들인가 하면 성경을 정통스럽게 아는, 아주 성경에달관된 익숙한 선생들이에요. 이 무리들이 한 여자를 붙잡아 옵니다. 그런데이 여인에 대해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이렇게 밝히고 있어요. 3절을 봅시다. 3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로 와서 가운데 세우고
이 여자는 뭐 추정해서 잡혀온 여자도 아니고 혐의를 가지고 잡혀온 여자도 아니에요. 완전히여지가 없는 현행범이에요. 정확히 뭐라고 돼 있죠? 음행중에 잡힌 여자에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내몰린 참 딱하게 생긴 여자에요. 그런데 여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여러분 성경을 읽다가 이 본문잘 아실 텐데. 뭐가 이상한 거 같습니까? 뭐 별로 이상한거 없는데? 그렇게 보여지시나요? 이상한 게 있어야 해요. 음행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짓 아니죠?
(5:00-10:00)
상대방이 있었을 꺼 아니에요? 그러면 남자는 어디 가고?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아마 도망갔을 것이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성경이 말하지 않으니까. 도망갔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이 현장에 끌려온 여자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도 별로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숫자에도 넣어지지 않는 그런 여자만 붙잡혀 왔어요. 현행범이에요. 여지가 없는 죄인이에요. 그리곤 이제 이 여인을 가운데 세워놓고 심문을 합니다. 그런데 우선이런 경우에는 이스라엘 율법상 어떻게 다루는지를 우리가 한번 좀 봅시다. 신명기 22장을 좀 띄워주세요.
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여자 만입니까? 남자와 여자입니까?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그러니까이 율법대로라면 여기에 누구도 있었어야 해요? 남자도 붙잡혀 왔어야 해요. 그런데 방금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남자는 어디 가고 없어요. 그저약한 여자만 붙들려 와서 지금 초주검이 되어있어요. 이건 뭐 변명의 여지가 없이 지금 꼼짝 못하게 되어있는데 이 사람은 석형이라고 그러는데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하는 법대로의 절차만 남겨놓은 겁니다. 어떻게하면 좋죠?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읽다가 시선의 혼란의 가지고 와요. 두 가지 입니다. 두 가지 혼란이 있는데 그래도 용서해야 된다. 용서해야 된다. 또 하나는 비난이죠. 이런 건 죽여야 된다. 그게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놓고 멀찍이 제 3자의 자리에 섭니다. 비판을 해야 될까 말아야 될까? 뭐 이런 논란에 빠져있어요. 자기는 이 죄 많은 여인과 상관 없이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돌을 들어야 되느냐?용서를 해야 되느냐? 멀찍이 떨어져서 제 3자의자리에 자기는 서있어요. 속는 거죠. 여러분 이 얘기는 그쪽에전혀 초점이 있지를 않습니다. 본문을 좀 봅시다. 4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여인을 끌어다가 묻습니다. 누구에게 묻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자 여러분 저를 보세요. 이제 이 5절을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제가 방금 읽었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더 읽을 필요가 있어요. 한번 더 읽어볼까요? 5절 다같이 시작.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자 여러분 예수님에게 한 질문입니다. 누가? 율법선생님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면 이럴 때는 어떤 율법이 여기에 적용이되는 겁니까? 를 물은 겁니까? 이럴 때 돌로 치라 했는데당신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라고 물은 겁니까? 율법이 뭐냐를물은 거에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를 물은 거에요? 해석입니까? 율법입니까? 해석이에요. 선생님은율법 잘 아시는 대. 율법은 자기들도 잘 알아요. 그래서이 사람들이 죄 많은 여인을 중앙에 세워놓고 물은 거에요.
(10:00-15:00)
이럴 때는 어떤 율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 겁니까 가 아니라 이럴 때는 돌로 치라는 율법이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해석을 물었어요. 이게 중요해요.왜 해석을 물었을까요? 요한이 다행이도 아주 명확하게 그렇게 물은 이유를 성경에 기록을했어요. 6절 제가 읽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뭐 함이러라? 예수님을 시험하는것이 목적이었어요. 자 저를 보세요. 그러니까 서기관들과바리새인들은 현장범인 여자를 붙잡아 와서 이 여자가 저지른 죄에 분기탱천해가지고 어떻게 이런 죄를! 우린묵과 못합니다 라든지, 이 여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여인에 대한 영혼에 대한 어떤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이 죄지은 여인을 빙자해서 사실 초점이 여인보다는누구에게 몰려 있는 거죠? 예수님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에요. 그러면 이 질문에 왜 예수님이 넘어져야 할까요? 사실 예수님은 지금올무에 걸린 겁니다. 보세요. 율법은 질문한 이 사람들도잘 알고 예수님도 잘 알아요. 자 두 가지 대답밖에는 없어요. 예수님입장에서. 두 가지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평소 행동과언어대로라면 이런 대답이 나와야 마땅치 않겠어요? 그래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 한번 기회를 줘서 용서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답변을 했다면 예수님이. 그러면어디에 위배가 됩니까? 율법에 위배가 되요. 율법을 누구보다도잘 알고 잇는 예수님이실 텐데 율법대로 처치를 안하고 율법하고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자비와 용서를 핑계로 그냥 덮어줍시다 그러면 이들의 입장에서는어디에 위배가 되요? 율법에 위배가 되요. 이렇게 대답해도걸리는 거에요. 예수님은. 걸리게 돼 있어요. 반대로. 반대로. 율법에돌로 치라고 했으니까 이건 마땅히 돌로 치는 게 맞습니다. 죽여야 되는 게 맞습니다. 라고 또 반대로 대답을 했다면 어디에 걸리죠? 이것은 당시 생사여탈권에관한 권한은 유대인들에게 없어요.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정권에 그 집행권이 옮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거는 누구의 질서를 위반하는 겁니까? 그렇죠. 로마의 질서를 위반하는 거에요. 로마의 권위를 도전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지금 어떤 의미에서는 함정에 걸린 거에요. 이렇게대답을 해도 율법에 걸리고 또 이렇게 대답을 하지니 로마법에 걸리고 진퇴양난에 빠진 거에요. 이때 예수님께서뜻밖에 퍼포먼스를 하세요. 자 성경을 더 보십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이때 갑자기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세요. 몸을구부리셔서 앉아가지고 땅에 뭔가를 쓰세요. 그래서 이제 많은 신학자들이 여기에 전부 집중이 되어 있어요. 뭘 쓰셨을까? 집중도를 흐트려뜨리기 위한 고도의 심리작전일까? 어떤 분은 또 이렇게 썼더라고요. 글에 보니까 아마도 이 주변에둘러싸여서 지금 씩씩거리고 있는 그 사람들의 죄목을 예수님이 땅바닥에다가 하나하나 쓰셨을 것이다. 이건조금 너무 나간 거 같아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건 성경에근거도 없고.
(15:00-20:00)
자 그런데 참 애석한 것은 성경에도 무얼 썼는지를 명시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행동을 통해서 뭘 썼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가 성경에 있다는 거를 놓쳐서는 안 되요. 자 우리 출애굽기31장을 띄워주실까요?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땡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놀랍게도 성경에는 하나님이 글씨를 쓰신 경우가 구약에 또 한번 있더라고요. 뭘 쓰실때? 돌에다 십계명을 써서 모세에게 주실 때. 여기 보니까하나님이 친히 어떻게 하신 것이더라? 쓰신 것이더라. 여기이제 여러분 가지고 계신 성경을 집에 가서 펼쳐보시면 그 밑에 풋노트가 하나 달려있어요. 이런 풋노트가. 손가락으로. 손가락으로. 친히쓰신 것 할 때 그 풋노트에 손가락으로. 자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예수님이 뭘로 쓰세요? 땅에?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이렇게돼있어요. 자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한번 쓰신 게 아니에요. 두 번 쓰셨어요. 8절을 한번 볼까요? 여러분들이 읽습니다. 시작.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자 저를 보세요. 몇 번 쓰셨어요? 두 번쓰셨어요. 오늘 본문에. 어 그런데? 더듬어 보니까 여러분 혹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몇 번 써주셨죠? 두번 쓰셨습니다. 첫 번 껀 어디 갔나요? 우상숭배에 빠진이스라엘을 벌하기 위해서 모세가 깨뜨려버리죠. 그래서 모세가 중보기도 끝에 다시 돌판을 받아 들고 내려옵니다. 그러면 정확하게 몇 번 쓰신 거에요? 두 번 쓰신 겁니다. 정확하게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이 땅바닥에다가 손가락으로 글을 몇 번 쓰세요?두 번 쓰세요. 그래서 추정컨데 많은 보수주의적인 개혁주의적인 학자들이 이 땅바닥에 쓴글은 십계명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을 합니다. 그게 거의정설이에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여기서 조금 더 진전해서 풀어내야 될 해석학적인 과제가 있어요. 그 과제가 뭐냐 하면 어렵지 않아요. 우선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할게요. 6절과 8절 사이에는 뭐가 있나요?7절이 있죠. 어렵지 않죠? 7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첫 번째 글을 쓰시고 나서 7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자, 이제 핵심에 들어왔어요. 앞을 보십시다. 예수님이 처음엔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십계명을 쓰시고 나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주목해서 봤을까요? 안 봤을까요? 그런데 뭘 쓰시더라고요? 십계명을 쓰시더라고요. 그러면 이 십계명은 이 율법선생들에게는 너무도익숙하게 잘 아는 내용이에요. 저거 뭐야? 십계명 쓰시잖아? 그러곤 슬며시 일어나셔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중에 먼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러니까 이 말은 용서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더 중요한 더 높은 얘기입니다. 잘 들으셔야 해요. 지금까지 잘 듣고 계시지만.
(20:00-25:00)
좋다, 율법대로 집행하자. 그 뜻입니다. 이 여자의 죄악은 율법대로 돌로 내침을 당해서 죽는 것이 맞다. 그러면율법대로 집행하자 그런데 조건이 있어. 누가 이 집행관, 심판관이될래? 너희 중에 일단 심판관이 되려면, 심판관을 내가 지정할 텐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나와라. 그러면 이것은 그냥 무조건 용서해주자는 말이 아니에요. 하자 그 말이에요. 심판하자. 그런데먼저 죄 없는 자가 나와라. 이렇게 됐어요. 아무도 안 나왔죠? 뭘 드러내는 겁니까? 여기 서 있는 여인이나 분기탱천해서 돌멩이들고 씩씩거리는 너희들이나 같다는 얘기에요. 누구도 돌을 들어서 이 심판을 집행할 의로운 존재가 아무도없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누구만 남죠? 성경에 9절 보십시요. 9절 보니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남았더라
다시 손가락으로 십계명으로 쓰시니까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 원문에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말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들이 반성하고회개하고 돌아갔다는 말이 아니에요. 들통이 나서 부끄러워 도망간 거에요. 반성하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돌아간 게 아니에요. 원문에는 이 양심의가책이라는 말이 없어요. 그리고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요. 그리고 마지막에 누구와 누구만 남아요? 예. 마지막에 예수님과 여인만 남아요. 자 그러면 이게 무슨 그림이죠? 이 여인을 유일하게 심판할 사람은 누구밖에 안 남았다는 얘기입니까? 예수님밖에안 남는다는 얘기에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세요. 마지막에이 여인을 정말 심판할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얘기에요. 그러자 아주 감격스러운 대화가 마저 이루어집니다. 성경을 더 보십시다.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여기서여자여 라는 말은 귀나이 라는 말인데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썼던 표현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이 여인을 이미 용서하고 들어가시는 거에요. 그리고 보세요. 고발하던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드디어 여인의목소리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여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요.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여러분 지금 이 말을 그렇게 덤덤히 들어서는 안 되요. 여인이 뭐라 그랬다고요? 주여 없나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유일하게 이 여인을 죄 없이 심판주로써심판할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이 여인을 안아주고 용서해버립니다. 왜? 여러분 예수님은 바로 이 여인의 허물 많은 죄를 끌어안고 대신십자가에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라고요. 아 참, 아까남자는 사라졌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여인은 참 불행한 여인이에요.죄인이긴 한데 참 외롭고 불행한 여인이에요.
(25:00-30:00)
그런데 마지막에 예수님은 유일하게 심판하실 분으로 남았지만 예수님은 또한 이 여인의 죄를 끌어안고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면서 이여인의 뭐가 되어주시는 거에요? 영원한 참된 신랑이 되어주시는 거에요.그러니까 맞아. 용서해야 해. 비판하지 말아야돼 그런 제 3의 자리에 서있어서는 안되고 바로 우리가 이 여인의 자리에 서있어야 되요. 내가 바로 이 여인 같은 존재였어요. 마땅히 돌팔매질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불행한 여인을, 죄 많은 여인을 우리의 영원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죄를끌어안으시고. 그래서 요한복음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모습을 보고 첫 번째 한말이 뭡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렇게이 예수님은 참 사연 많은 여인에게 다가오셔서 마땅히 여인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대상이지만 그 심판을 누가 대신 받으시는 거에요? 자신이 대신 받으시고 여인을 품어주시는 거죠. 여러분들은 이 여인에게용서를 해야 되느냐? 비난을 해야 되느냐? 제 3의 자리에 서있어서는 안 되요. 그 여인이 서있는 자리는 또 다른누구의 자리가 아니라 바로 송태근이 있어야 될 자리고 우리가 있어야 될 자리입니다. 그렇게 영원한 신랑이신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슬픈 운명을 끌어안으시고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참된 신랑이 되어주시고 얼룩 많은 우리 인생을다 주의 보혈로 깨끗이 덮으시고 나의 신부 나의 사랑으로 불러주시는 겁니다. 믿습니까? 제가 즐겨 부르고 좋아하는 찬양가운데 천 번을 불러도 라는 찬양이 있어요. 아시죠여러분? 그 가사를 제가 좀 읽어드릴게요. 저는 이 가사가처음엔 되게 싫었어요. 무슨 신파도 아니고 무슨 천 번을 불러도. 표현이이렇게 진부하냐? 그러다가 어느 날 섬광처럼 들어오는데 천 번이 뭐야?수천 번을 불러도 주님의 이름은 마름이 없어요. 늘 목이 마른 이름이에요. 천 번을 불러봐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십자가의 그 사랑 나를 살리려 지신 그 십자가 모든 물과피 나의 더러운 죄 씻으셨네 나를 향한 그 사랑 천 번을 불러봐도. 사랑하는 우리 삼일의 젊은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 여인의 자리에 서서 내가 받아야 될 그 심판을 대신 끌어안으시고 십자가에달리신 그 예수님을 향해서 새롭게 이 고백과 이 찬양으로 가슴을 여는 은혜가 있기를 고백이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