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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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제가 4부했죠? 여러분 기억도 안 나죠? 지난주 제가 4부 했어요. 그죠? 네~ 그래서 내용이 혹시 끊어질까 봐, 이제 드디어 예수님은 체포가 되어서빌라도 관정으로 들어가시죠. 대신 끌고 온 유대인들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제 유월절을 앞에 둔 이제 정결 예식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참 아이러니죠. 그러고 이제 빌라도의 관정 안에 들어간 예수님은 이제 심판을 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그 내용인데 19장 1절을좀 보십시다.
1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뭐하더라? 채찍질하더라. 여러분 아직 형이 확정 됐습니까? 안됐습니까? 아직 안됐어요. 그런데도 매질을 한다는 것은 완전한 불법입니다. 모인 무리의 구성원들도 불법이고, 두 번째는 이 시간은 재판이 진행될수 없는 시간입니다. 시간도 불법이고 또 방법도 불법입니다. 때문에이 모든 과정은 불법에 의해서 불법한 방식으로 진행이 되죠. 형이 확정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 채찍질을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관을 만들었어요. 그 관을 예수님의 머리 위에 이렇게 씌웁니다. 이것은 사실 조롱의뜻이 더 깊습니다. 뭐 네가 왕이라고? 그럼 한번 이 관써봐라 그리고 관을 가시로 엮어서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요. 그럼 그 삐죽 삐죽한 관이 예수님의머리와 이마를 계속 찔러대겠죠?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무슨옷을 입혔어요? 자색 옷. 이 자색 옷은 자색이라는 색깔의염료를 추출하기도 힘들고 이 자색이라는 염료를 추출하려면 바닷가의 어마어마한 양의 조개를 잡아다가 그 조개에서 나오는 아주 오묘한 자색빛깔이 있습니다. 그거를 추출해서 염료를 만들어 옷감에 물을 들여야 되요. 그래서이 자색 옷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고 황제 가이사만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빛깔의 옷입니다. 근데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는데 아마 똑같은 건 아니었을 테고 자색색깔의 옷을 조롱의 의미에서 입혀요. 뭐네가 왕이라고? 근데 이 해학적 태도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증명하고 드러내는데 쓰임 받고 있다는 거죠. 그러고 이제 그뿐만이 아니에요.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이거도 조롱이죠. 손으로 때리더라. 어떤 공관복음에는 뺨을 쳤다고 되어있어요. 뺨. 여러분 뺨은 아프라고 때리는 장소가 아니고 모독의 장소입니다. 가끔 부모들 중에 아이를 훈육한다는 핑계로 뺨을 막 때리는 경우를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봐요. 아주 아이 가슴에 평생 비수를 꽂는 장면이에요. 차라리 정 불가피하면매를 들지언정 손으로 뺨을 때리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이 뺨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어요. 친구끼리 뺨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전 원래 말 수가 적어서 수업시간에절대 떠드는 일도 없고 쉬는 시간에도 안 떠들어요. 근데 한자 시간이었는데 중학교 때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그러니까 어리죠.옆에 친구가 자꾸 말을 거는 거에요. 그래서 그 말대꾸를 하다가 선생님의 눈에 걸렸습니다. 나와~ 지금부터 한 쪽 다 귀를 잡는다. 그러니까 이제 한 쪽 귀를 다 잡았어요. 상대방 귀를.. 그리고 아프도록 때린다. 참 몹쓸 벌이죠. 친구 뺨을 어떻게 때려요. 그래서 장난 삼아 살짝 쓰다듬어 줬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말고 하면서 일로와 봐 제 귀를 잡더니 천둥이 한번 지나가더라고요. 철썩 하고. 뺨을 맞았어요. 그친구도 똑같이 맞고. 다시 한다. 양쪽 서로 귀를 잡고 서로울면서 뺨을 때렸던 기억이 있어요. 들어가라 그러더라고요. 수업이끝나고 서로 못 쳐다봤죠.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그 후로 저는 한자 공부를 안 했습니다. 그래선 전 지금도 한자를 몰라요. 잘. 물론 제 책임이지만 그 벌이 참 나이가 들었는데도 안 지워져요. 이뺨이라는 데는 수치와 모독으로 때리는 데지 아프라고 때리는 데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뺨을 맞아요. 게다가 4절을 보시면 4절한번 같이 읽읍시다. 시작
4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어..여기서 질문하나합시다. 지금 빌라도의 말과, 안에서 행동이 앞 뒤가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안맞아요? 안 맞죠. 실컷 예수님 모독하고 조롱하고 때리고나서는 밖에 나가서 예수님을 끌고 온 유대인들에게는 봐라 이 사람 죄 없다. 자 풀어줘야 되겠다. 그 풀어줘야 되겠다. 죄 없다. 할말한 정도의 분을 왜 그렇게 침 뱉고 모독하고 때렸죠? 왜 이렇게 뒤가 앞 뒤가 안 맞아요. 빌라도는? 여기에는 여러분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이 사실 모순이란 말이에요. 빌라도는 사실 예수님을 놔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에게 모독을 가하고 매질을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유대인들에게뭘 증명해 보고 싶었던 거죠? 너희들의 이 사람이 왕이라고 왕 노릇 한다고 끌고 왔는데 야 무슨 왕이이러냐 무기력하잖냐 말 한마디로 제대로 반항 한번 못하잖냐 아 이런 무능한 사람이 왕이라고 끌고 왔냐 이사람 그런 깜이 안 된다. 풀어주자. 사실은 그런 의도가 한 켠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문 밖에서 보는 이 과정에서 예수님에게 조금 가혹하게 했던 겁니다. 여기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 사실하나는 예수님이 죄 없다는 사실만 드러났어요. 누구에 의해서? 빌라도의의해서.. 그러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 없음을 알았던 겁니까? 몰랐던겁니까? 알았던 겁니다. 몰랐던 게 아니에요. 풀어주자. 4절이 그 말이에요. 자그러자 5절
5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또 두 번째 뭐라 그러죠? 보라이 사람이로다 하매 이건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있어요. 별거 아닌 말 같은데 이 말은 빌라도의입에 의해서 증명된 중요한 신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온전히 사람의 몸을입으시고 왕 중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사실상 공표 하는 겁니다. 근데 이 사실을 빌라도는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악한사람도 악한대로 쓰임 받아요. 열심히 악한 짓을 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사람으로 육신의 몸을 입고 인성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누가 드러냅니까? 빌라도가 증명을 하는 거에요. 근데 여기에 성경신학적인 관점이 또하나 감춰져 있는데 우리 성경 한 구절을 보십시다. 띄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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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다스리리라 하시니라(삼상9:17)
이 장면은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던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가 친히 왕이세요. 맞습니까? 그런데 백성들은 보이는 왕을 구했어요.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하다. 왕을 세워야 되겠다. 해서 하나님이 허락을 한 게 아니라 허용을했어요. 할 수 없이. 그래서 처음으로 택한 왕이 그들이옹립한 왕이 다른 사람들 보다 어깨 하나가 더 있는 중후장대하고 얼굴이 수려하게 생긴 사울이 뽑힌 겁니다. 그래서사무엘이 당시 선지자였죠.
사울을 볼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자,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세워질 때 보라 이 사람이다 라는 말이 여기서 나와요. 맞죠? 근데이 왕은 어떻게 됐나요? 실패했어요.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이미 설치된 왕의 제도를 통해서 왕을 세웁니다. 계속 들이댑니다. 실패하고또 세우고 실패하고 또 세우고. 이렇게 역사에 어두운 밤은 깊어가고 백성들의 가슴 한 켠에는 우리에게진정한 배부름과 평안과 샬롬을 가져다 줄 왕은 어디 있을까? 그 왕은 누구일까? 진정한 왕에 대한 열망이 깊어졌습니다. 바로 그 왕이 지금 빌라도앞에 서 있는데 빌라도가 놀랍게도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역사의 무슨 역할을 한 거에요. 화살표시 역할을 한 거에요. 보라 이 사람이로다. 어떠세요. 하나님 하시는 일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고도 남죠. 빌라도는 아니 빌라도를 중심으로 해서 인생들은 그 참된 샬롬의 왕으로 오신 왕을 몰라봐요. 빌라도는 그 분인데도 몰라봐요. 근데 자기 입술로는 보라 이 사람이로다. 자 그런데 성경을 보세요. 6절
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15절 건너뜁니다. 다같이 시작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아멘. 거기 까지요. 무리들은 계속 그 샬롬의 왕으로 오신 참된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계속 세 번에 걸쳐서 오늘 본문 안에만해도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근데 여러분 이 말이 원문으로 보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그를 높이 달으소서 나무에 그를 높이 달으소서 나무에 그 뜻이에요. 십자가에못 박으라는 말은. 자 그런데 우리 성경을 한 구절 볼까요? 띄워주세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어떡하여야하리니?
자 이 사건의 배경은 아시는 것처럼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모세를 하나님의 권위를 반하여 거역합니다. 그러자 광야에 뱀들이 불 뱀들이 나와서 백성들을 물어다 죽였어요. 심판이 이루어진 거죠. 뱀에 의해서 다 죽게 생겼어요. 이 때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외면하지않으시고 구원의 길을 하나 제시하십니다. 빨리 장대 끝에 장대는 나무죠. 장대 끝에 놋으로 뱀을 만들어서 높이 달아라. 그 장대를 높이 들라. 그리고 그 장대 끝에 놋뱀을 보는 자마다 치료와 구원을 얻으리다. 약속하셨어요. 그래서 죽을 뻔 했던 전멸당할 뻔 했던 히브리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래도 끝까지 죽은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단 말이에요. 아니그거 보는 거 어려워요? 그런데도 죽어요. 이거 어쩔 수없어요. 이거는. 근데 보세요. 놋이라는 것은 심판이라는 뜻이에요. “놋” 심판이에요. 근데 거기에 무슨 형상을 만들어? 뱀의 형상을 만들어. 뱀은 심판의 대상이에요. 인류를 최초로 넘어뜨린 간교한 짐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3장에 보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어떡하여야 하리니? 들려야하리니 그러면 예수님은 장대에 달린 것처럼 십자가 나무에 달리셔서 높이 달리셔서 저주 받은 모습으로 뱀처럼 저주 받은 모습으로 예수님은 우리의치료와 구원을 위해서 죽으신 자리가 십자가의 자리에요. 한 번 상상을 해보시라고요. 구리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쫙~장대 끝에 올렸을 때 그 이글거리는팔레스타인 광야의 태양 아래서 그 놋뱀은 무슨 뱀처럼 보였을까요? 불뱀. 불뱀처럼 보이지 않았겠어요? 근데 예수님이 수천 년 후 그렇게 저주받은 모습으로 지금 이 빌라도 관정에 세워져서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있어요. 심판의 대상처럼 죄없으신 분이. 그게 오늘 이 사건이에요. 자, 그러고 성경을 또 보십시다. 6절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6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여러분, 너희가 친히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은 사실상 이사람 죄 없다. 풀어주자.자, 십자가 처형 방법은 유대 법입니까? 로마법입니까? 로마법이에요. 유대인들이 십자가의 처형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어요. 빌라도가 이 말을 적어도 한 것은 이런 뜻입니다. 빌라도는 계속놔주고 싶었어요. 왜? 전날 밤에 그 아내가 꿈인지 환상을봤는지 모르겠는데 그만 불길한 꿈을 빌라도에게 얘기합니다. 이 사람 손 대면 안됩니다. 당신. 그 말도 마음에 걸렸어요.빌라도는 항상 절대적인 기반이 없기 때문에 늘 마음이 두렵고 불안해요. 난 모르겠다. 정 죽이려면 너희가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던지 그 말은 풀어줘라 그 말이에요. 그럴 때 유대인이 제사장들과 함께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알듯 모를듯 한 얘기를 하는데
7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이 법은당연히 율법이겠죠. 그 법대로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자, 여러분 이 본문을좀 풀고 지나갑시다. 18장에 보면 이들이 예수님을 관정에 끌고 왔을 때 우리에게는 이 죄수를 죽일생사여탈권에 관한 권한이 없으니 이 죄수를 로마법대로 좀 처리해주십시오. 왜 이스라엘은 속국이니까.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한이 없어요. 근데 지금 유대인들이 하는 얘기는우리 법대로 하면 우리도 이사람 죽일 수 있다 그 말이에요. 무슨 죄목으로, 신성모독죄로. 그러니까 신성모독죄 관한 한은 이게 유대 법에 속하기때문에 율법에 따라 죽일 수 있어요. 사실은, 그런 실예도있습니까? 없습니까? 성경에. 예를 들어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이 끌려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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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변에 둘러싼 사람들이 전부 애 머리만한 돌을 들고 곧 던지면죽게 생긴 현장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신성모독에 관한 법은 유대인들도 죽일 수가 있었어요. 또 하나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큰 사건이 있었죠. 스데반의 죽음이에요. 로마가 죽였나요? 유대인들이 죽였어요. 그것도 돌로 쳐서. 그 스데반을 우스갯소리로 최초의 석사 라고도 합니다. 돌에 맞아죽었다고 해서 그건 사도행전에, 이거 잊어버리세요. 이상하게쓸데없는데 자꾸 은혜 받으면 안돼요. 사도행전에 엄숙하게 기록된 사건이에요. 그러면 거기에 연결시켜서 예수님도 자기네들이 죽일 수 있어요. 없어요? 신성모독죄라면, 죽일 수 있죠. 이게두 번째 질문이에요. 근데 왜 끌고 왔을까? 왜 이 야심한밤에 전부 이 불법한 시간에 소동을 일으켜서 빌라도 관정에까지 예수님을 끌고 와서 죽여달라고 이러고 하소연을 하는 걸까? 이게 두 번째 질문이어야 해요. 이 의도를 알지 못하면 안됩니다. 질문의 요지는 정확해요. 아니 자기들 법으로 신성모독죄라면 예수님도이 번잡 떨 필요 없이 바로 처치할 수 있었어요. 근데 왜 로마에 관정에까지 이관시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려고 했는가 그 말이에요.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넓게는 성경의 성취에요. 왜 신명기에 보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받은 자라 하였으니 예수님은 나무에서 죽었어야 되요. 또 하나는 인간의 무시무시한 악이 여기 도사리고 있어요. 십자가는로마의 법인데 유대 전쟁사라는 책에 보면 이 십자가의 특징을 세가지로 규정했어요. 첫째 이 십자가는여자는 못 죽어요. 참, 여자는 죽는 것도 서러워요. 여기는 남자만 죽어요. 남자만. 두번째는 노예나 반사회적 죄를 지은 자만 죽어요. 일반 잡범들은 십자가에 죽을 권리가 없어요. 이걸 권리라 해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죽을 자격이 안돼요. 가장 끔찍한게 마지막에 벌거벗겨서 죽입니다. 가끔 영화나 그림 같은데 최소한의 것이 가려져서 연출이 되지만 그건그냥 연출이에요. 원래는 다 벗깁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면단박에 죽는 예가 없어요. 십자가에 달면 최소한 일주일 건강한 사람은 기록에 의하면 열흘, 또 그 이상도 가는 사람도 있다고 그래요. 벌거벗겨진 채 사람들이오가는 길목에 그걸 세워놔요. 그게 고통이라는 형벌보다는 사실 무슨 고통이 더 커요? 수치심이에요. 수치심. 인간이물리적인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사실은 수치심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악플을 함부로 달아서는 안돼요. 그건 무시무시한 자판을 두들겨대는 살인이에요. 그거 살인죄라는 거잊지 마세요. 악플 근거 없이 함부로 달면 안돼요. 인류가하나님을 거역하고 최초로 범죄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왔던 죄의 증상적 정서가 뭔지 아세요? 수치심이에요.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누가네게 벗었음을 가르쳐 주었느냐. 부끄럼이에요. 수치심이에요. 수치심은 인간의 원초적 죄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십자가에달리신 거에요. 벌거벗겨져서 누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나의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우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발가벗겨져 십자가에 달리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거 아니에요. 그거 아니에요. 내가 내가 수치스러운 가운데 매달렸어야 될 자리에 나의 수치를 그리스도의 옷으로 덮어주시고 대신 수치를 당하신자리에요. 그게 십자가에요. 성경을 마저 보십시다. 8절
8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묻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자, 잠깐 저를 보실까요? 빌라도의 이 알 수 없는 행동이 참 우리의 모든걸 잘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빌라도가첫 번째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두려웠다 그랬어요. 두려웠다. 두려움을가지고 들어와서 관정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께 물었던 질문이 당신은 어디로부터 왔소 이거에요. 자 유대인들이이랬단 말이에요. 우리에게도 법이 있소. 이 법대로 하면이 사람은 신성모독.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얘기했기때문에 우리는 이 사람을 우리 스스로 죽일 수 있소 라고 얘기 한 거에요. 그 말을 듣던 빌라도가 아내의말도 연결해서 생각이 나고 어~ 그럴 수 있겠다. 왜냐하면깜깜한 한 밤중에 제사장의 무리들에 의해서 끌려온 이 분이 내내 모독을 당하고 수치를 겪으며 매질을 당하는 가운데도, 고요한 가운데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깊은 눈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그 권위.그 뭐로 설명할 수 없는 권위 그게 있었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문 밖에 선 유대인들이그런 소리를 하니까 허~그래 이 사람이 혹시 하나님의 아들일 수도 있어. 두려워한 거에요. 두려움이 왔어요.8절에 그렇게 되어있죠. 두려워하여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무슨질문을 했죠? 당신 어디서 왔소? 물어본 거에요? 우리얘기로 치자면 조금만 무지의 껍질을 깨면 이제 정답을 만나는데 이게 택함 받지 못한 자의 한계에요. 그래도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어디로 몰아넣습니까? 사지로 몰아넣어요. 사지로. 그 종교적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껍질을깨지 못해요. 예수님을 결국 사지로 몰아넣는데 예수님이 대답 안 해요.안 하니까 10절 이렇게 얘기합니다. 빌라도가다같이 시작
10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못하느냐
여러분, 이 10절에 반복되어서 두 번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죠. 무슨 단어입니까? 권한 이라는 단어에요. 이 권한 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는데이 말을 전부 누가 썼나요? 빌라도가 썼어요. 근데 이 권한이라는 말이 엑수시아라는 말을 써요. 헬라말로. 엑수시아라는말은 누구에게만 붙일 때 표현 할 수 있는 언어인가 하면 가이사 황제 그러니까 빌라도가 이렇게 얘기한 거에요. 당신뭐가 이렇게 두려우니까? 상대가 두려우니까? 겁이 나니까? 대개 인제 강아지들도 그러잖아요. 겁이 나면 엄마 한번 이렇게 쳐다보잖아요. 엄마 개 한번 쳐다보잖아요. 당신 내 뒤에 누가 계신지 압니까? 내게는 당신을 죽일 권한 엑수시아도 있고 당신을 풀어줄 엑수시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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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엑수시아는 누구로부터 오는 권한이에요. 가이사 디베료 가이사. 티베리우스라고도 들어보셨죠? 당시 가이사에요. 이 가이사의 권한이 내게 있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준비하다가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 설교 페이퍼옆에다가 이렇게 썼어요. 우하하하하. 라고 무슨 생각이 나서그렇게 썼는가 하면 첫째 웃기기도 했고 시편 생각이 나서 그랬어요. 하늘의 하나님이 웃으심 이여 무지한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 아니 빌라도가 가이사의 권한을 받아 행세해 봐야 몇 년 하겠어요? 여러분이 빌라도가 자결한 거 아세요? 결국 이 번민의 괴로워서 그는 후에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자결합니다. 몇 년 못 갔어요. 기껏 황제의 권한을 가지고 남의 생명줄 놨다풀어놨다 해봐야 3~40년 그걸 권한이라고 행세를 했어요. 그런데요한복음 5장을 한번 띄워주실까요? 다 같이 시작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 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영원하고도 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권한은 누구로부터 오는 겁니까? 하늘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권한을누구에게도 주었다고 성경은 얘기하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그 하늘의 권세가 그리스도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가 여러분들의 현실이 되어있습니까? 아~그건 교회서 하는 얘기 구요. 그건 기도할 때나 하는 얘기 구요. 현실은 목사님 이겁니다. 이거. 아니에요? 예수 믿는 분들이 가끔 가다가 이거 하다가 안되면 또 플랜B를 하지뭐. 항상 대안을 갖고 살아요 .굉장히 지혜롭게 사는 거같은데 우리는 플랜 A외에는 없어야 되요. 우리는 십자가에죽으신 영원한 실세요. 영원한 권세이신 예수만이 우리의 대안입니다. 그외에 내 인생에 플랜B는 없다. 이게 올인하는 자의 삶의태도입니다. 네? 믿습니까?아멘 하신 분만 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막바지를 향해서 가봅시다. 12절
12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가이사의 뭐가 아니라고 소리치죠? 이 사람 놓으면 당신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 충신이라는 말은필로스라고 되어있어요. 필로스는 뭐에요? 친구라는 뜻이에요. 가이사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 그러면 충신이라는 개념이 높아요? 친구라는 개념이 높아요? 친구 개념이 훨씬 높습니다. 즉, 빌라도는 인생의 모든 기초와 근거가 가이사에요. 거기서 임명되었고 그 힘으로 통치를 하는 거에요. 그 힘으로 먹고사는 거에요. 그러니까 대의냐 대세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는대세 밖에는 삶의 기초가 없습니다. 지금 실세가 누구냐? 대의에는관심이 없어요. 그러자 빌라도는 결국 선택 합니다. 빌라도가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 히브리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있더라. 이게 좀 어렵습니다. 아니 뭐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았다는데 어려울게 뭐 있나? 근데 여긴 자동사로 쓰죠. 앉았더라 자동사. 빌라도가 앉아있는 거에요. 그런데 어려움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걸 타동사로도 해석할 수가 있어요. 타동사로 해석하면 누가 앉게되냐 하면 예수님이 앉게 되요. 요한이 일부러 중의적으로 사용 될 수 있도록 곳곳에 이중적 언어플레이를만들어 놔요. 그러니까 이 본문이 자동사로 해석을 하면 빌라도가 재판을 하기 위해서 앉은 거에요 그런데이게 타동사가 되면 예수님이 재판을 하기 위해서 앉아있는 거에요. 이 둘 다를 합치면 무슨 뜻이 되냐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지금은 빌라도가 세상을 호령하고 권력을 가지고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재판하고있는 것 같지만 뒤집어 보면 사실상 예수님에 의해서 세상이 빌라도가 재판 받고 있는 거에요. 의도적으로사도 요한은 이거를 자동사로도 타동사로도 해석할 수 있도록 언어 플레이를 해놔요. 보세요. 우리는 이런 위대한 반전을 많이 보게 될 겁니다. 권세요 실세인줄만알고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내 손에서 물거품처럼 빠져 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걸 미련스럽게 끝까지붙들고 고집하던 내 형제들이 결국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광경을 우리는 보게 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이 13절은 놀라운 반전을 예견한 하나님의 여유에요. 이중적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도적으로 요한은 자동사로도 해석이 가능하고 타동사로도 해석이 가능하도록 해놨어요. 훗날우리는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우리 요한계시록에서 보잖아요. 다 그 앞에 세워지게 될 겁니다. 저는 그날이 옴을 믿습니다. 분명히 그 날이 옵니다. 내가 지금 숨쉬고 살아있는 게 현실인 것처럼 분명히 그 날이 와요. 자, 그리고 이제 결론 15절 다같이 시작
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어머나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본심을 들키고말았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는 왕이 없습니다. 이들이누구입니까? 율법의 선수들이요. 예배의 명장들입니다. 눈만 뜨면 말씀 눈만 뜨면 예배 가르치고 전하고 외치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 절체절명의 기로, 역사의 기로 앞에 서서 왕 중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놓고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본심을 들키고 말았어요. 이런 거죠. 그래도 결론은 돈이야 바보야. 가이사는 물질세계에 총아, 상징입니다.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래도돈이 답이야. 이런 이중적 언어의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안팎에 많아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깊은 빌라도의 재판의 과정은 빌라도가 재판을 당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마세요. 오늘 이 빌라도의 재판을 통해서 우리는 빌라도의 자리에 서서 똑같이 우리가 재판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한주간 내내 또 남은 한달 속에 깊은 울림이 되어서 2020년새해를 어떻게 준비해야 될까 한 주 남은 특새를 미리 깨워 준비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