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사랑하시니라(1)

책이름(시리즈 분류)
요한복음
Date
날짜
20190804
성경구절
요 13:1-11
시리즈 순서
요한복음(31)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00:00-10:00)
지난 주까지는 요한복음 1장부터12장까지 첫 번째 큰 chapter를 마쳤습니다. 표적으로 이루어진 긴 설명들이었어요. 제목을 붙이자면 표적의 책이었다. 표적. 그리고 이제 오늘 13장은두 번째 단락의 첫 번째 사건입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가파른 십자가의 길을 향해서 어떤 여정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래서 이 부분을 영광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20장까지이어질 겁니다. 21장은 결론 겸 에필로그에 해당하죠. 그런데오늘 이 세족식 사건은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사건이죠. 잘 알려진 사건이고. 아마 이 중에도 십 수년 또는 어릴 적부터 하신 분이라면 교회에서, 우리교회는 세족식을 안 하지만 주기적으로 하는 교회가 있어요. 경험들이 있는 분들이 틀림없이 있을 거에요. 저도 세족식을 해봤고 받아도 봤는데 제게 잊지 못할 세족식 하나가 있어요. 교육전도사 시절에 중학생들을 데리고 곤지암 쪽에 어느 허름한 수련원에 여름 수련회를 아이들을 80명을 데리고떠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 아이들을 앉혀 놓고 세족식을 진행하는데 그냥 하다가 집어 치웠어요. 제가 너무 이상적인 꿈을 꾼 거죠. 이놈들이 장난을 하기 시작하는데발을 간질이고 킥킥 거리고 도무지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 거에요. 그도 그럴 것이 동네천하에 둘도 없는 개구쟁이들이 떼로 등록을 해서, 수련회니까 쫓아 온 거에요. 그러니 무슨 세족식이 되겠습니까? 중간에 다 불 키라 그러고 소리빽 지르고 치워 버렸던 가슴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해요. 그리고 이제 세족식은 사복음서에서 유일하게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시마태, 마가, 누가복음 중에 세족식 했다는 장면 읽어 본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요한만 그 대목을 세밀하게 기록을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두 번째는 이 세족식에관련된 수많은 해석들이 있는데 크게 세 가지 견해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 이것은 도덕적이고 모범적인사례를 예수님이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차원에서의 퍼포먼스다. 또 두 번째는 이것은 예수님이성례 전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제정하신 중요한 의식이다. 교회의 성례 전의 한 일원으로 봐야 한다는해석이 있어요. 그리고 또 많은 학자들이 채택하고 있는 기독론 적인 관점이 있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 뭐 더 자세한 견해들이 많은데 각설하고 세 가지 정도 해석적 견해가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딱히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라고 할 수 없는 게지금 말씀 드린 이 세 가지 해석적 견해가 이 사건 속에 다 녹아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건 취하고어느 건 버릴 그런 시각에서 보면 너무 해석이 극단적이 되고 단정적이 되니까 이 세족식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서부터 한 2주 길게는 3주 정도는 다뤄야 이 속의 진짜 모든 의미들이 다 드러날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시간쯤이라고 이해를 하시고, 11절까지설명이 안되더라도 왜 그건 마저 설명을 안 하느냐 따지지 마시고 매주 나오시면 됩니다. 주일 날.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과 진행 할 네 가지 꼭지에 대해서 제목만 우선 설명을 드릴 테니까 차례로 띄워 주세요.
(1) 세족식의 배경
(2) 요한복음에 나타난 성전과 가족으로서의 예수 공동체
(3) 예수님의 죽음과 정결
(4) 왜 정결함을 받아야 하는가
세족식이 그 당시 사회적 통념상 어떤 이해를 사람들에게 가지고있었는가? 그 부분을 좀 볼 겁니다. 두 번째 요한복음에나타난 성전과, 요한은 특별히 성전 신학으로 굉장히 중요한 기록을 했죠? 가족으로서의 예수 공동체를 다룰 거에요. 세 번째 예수님의 죽음과정결의 문제가 뭔가? 네 번째 왜 정결함을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네 꼭지로 구분을 해서 짧게 짧게 설명을 이어 나가도 시간이 바쁘더라고요. 어쨌든 진행을 좀 하도록하겠습니다. 우선 세족식의 그 당시 배경, 사회적 통념은어떠했는가? 세족식 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이해를 갖고 있었는가?그 대목이죠. 자 우선 1절을 좀 볼까요?
1유월절 자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최고의 명절입니다.그런데 이 유월절은 누구의 죽음을 예표하는 구약에 이미 만들어진 절기에요. 자 앞을 잠깐보실까요? 성경에 많은 절기가 등장하는데 성경의 절기를 보통 여호와의 절기라고 합니다. 이유는 여호와께서 제정하신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 절기와성경의 절기는 근본적이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면 세상 절기는 사건이 먼저 발생하고 나서 그 다음에그 사건을 기억하거나 기념하기 위해서 절기가 만들어 집니다. 사건이 먼저 일어나요 그리고 나서 8.15라는 절기가 생기는 거죠. 그럼 8.15라는 절기가 먼저 생겼습니까? 사건이 먼저 생겼습니까? 사건이 먼저 생긴 거죠. 해방이라는 사건이 먼저 일어나서 기념키위해 절기를 만든 거에요. 이게 세상 절기의 질서입니다. 속성이고. 그런데 성경의 절기는 반대에요. 절기가 먼저 만들어 져요. 그리고 그 절기 속에 사건이 성취 되죠. 사건이 채워진다 그 말이에요.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departure한다그 말이에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강렬한 뭐가 암시되고 있습니까? 죽음 죽음이 이 표현 속에 암시되고있어요. 자 그리고 나서 이렇게 돼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세요? 끝까지 이건 사랑의 quality를 말하는 거에요. 사랑의 질,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랑하시는데, 사랑하다가 못되고 말 안 들으면그만 두시는 분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세요? 끝까지. 태평양을건너 지구 끝까지라도. 네가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추적하시는 사랑,그 사랑을 얘기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굽니까? 자기 사람들. 여러분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 안에 내가 있고 여러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염소가 시험지 씹듯이 그냥 덤덤히 앉아 있으면 안되죠.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 한마디에
(10:01-20:00)
사실 설교 끝하고 싶어요. 그 안에 제가 있어요. 그 사랑의 대상에 여러분들이있어요. 믿으십니까? 할렐루야. 자, 그런데 2절을 볼까요?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이제 예수님은이 마귀의 음모와 계략에 이용당하는 유다를 통해서 십자가의 가파른 길을 떠납니다. 이것이 13장부터 시작되는 여정이에요. 이것이 주님이 말하고자 하는 영광입니다. 주님이 죽으셔야 해요.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서. 그 대상이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거요. 이렇게 오늘 본문은 강력한예수님의 죽음이 기초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자, 3절같이 읽습니다. 시작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먹는 중.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막 식사 하시다가, 잠깐 쭉 앉아 봐. 갑자기 옷을 벗어 동이시고 자 발 내밀어라 전부다. 이렇게 갑자기 식사 중간에 발을 씻었다? 그럴 순 없는것 아녜요. 우선 유대 식사법을 알아야 합니다. 일단 유대식사는 깁니다. 굉장히 길어요. 식사 하나 하는 게 사역이에요. 음식이 다 차려집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음식을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제자들을 불러 앉혀놓고 세족식을 진행했다 그 말이에요. 그걸 여기서는 저녁 먹는 중에 라고 표현을 했어요. 자 성경을 또 봅시다. 4절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앞을 잠깐 보십시다. 지금부터 이 세족식이 첫 번째 꼭지의 주제처럼 그 시대의 사회적 통념상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어떻게 이해됐을까? 민수기 19장띄워 주세요. 읽습니다. 한 절이에요. 시작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네, 여기 보시면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기를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어디를 더럽히는 거에요?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거에요. 유대 사람들은 삶의 모든 총체적중심이 어디로 돌아 갑니까? 성소를 중심으로 돌아가요. 그래서그들은 그 성소에 출입을 못하면 목숨은 살았는데 죽은 목숨이에요. 사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들이 성전을 출입하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요. 명예요, 자부심이요, 하나님의 백성 된 중요한 표였어요. 그런데 거기 출입을 못할 때는 언제냐 하면 더러울 때, 불결할 때. 그래서 반듯이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앞에 준비 된 놋 대야에다가 손 발을 씻고 정결이라는 예식을 통과한다음에 성전 안이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한 군데만 더 볼까요? 레위기 15장을 띄워 주세요. 같이읽습니다. 시작
31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
네, 이렇게 된 겁니다. 개인의 부정은 전체 공동체의 부정으로 동의어로생각을 했어요. 개인의 정결은 전체의 정결과 같은 의미로 이해를 가졌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한 사람이 정결 의식을 행하지 않고 바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성소 전체를 더럽히고 파괴하는 동의어에요. 그래서 정결의식은 개개인에게도 중요하지만 전체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절차에요.이런 율법의 사회적 통념이 시작되었다고요. 자 한 군데만 더 보죠. 우리 출애굽기 30장을 띄워 주세요. 저하고 몇 절 교독하죠.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밭침도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뭘 담으라? 물을 담으라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지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떼에도 그리 할지니라
여러분, 19절에 보시면 아론과 그의 아들이라 그랬는데 이들은 무슨 직분의 계승자입니까? 제사장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이 오늘 날은 누구에요? 우릴 얘기한단 말이에요. 베드로 사도가 너희는 다 택한 족속이요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랬어요. 이제 만인 제사장의 의미로 우리가 다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면 그 제사장 들에게 그 두멍에서 물을 담은 놋 대야에서 뭘 씻어요? 수족을씻되. 그러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식사 하다가 앉혀 놓고 수족을 씻겨 나가는 장면은 결국 구약에 성전에들어가기 위해서 반듯이 거쳐야 되는 정결 의식이라는 것을 놓쳐선 안 되요. 21절 다같이 시작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아멘, 그러니까 수족을 씻지 않고, 다시 말해 정결 예식을 행하지 않고그대로 들어가면 죽어요. 성전을 더럽힌 죄로. 그래서 정결의식은 하나님의 성전에 또는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반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이 반듯이 지켜야 하는 정결 예식이라는 거죠. 이것이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는 어떤 의미로 통용되었는가 보십시다. 누가복음7장을 띄워 주세요. 시작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시몬이라는 사람의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는데 예수님이 돌아서서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너는 내게 뭐할 물도 주지 아니하였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야, 이런 거 보면 예수님 참 뒤끝 있으신 거 같아요. 뭐 그런 걸 가지고성경에 기록할 정도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시나? 과연 그런 단순한 의미일까요? 자 지금부터 그 구약에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듯이 거쳐야 하는 정결 예식이라는 그 기초에다가 일반 가정에서는이 의미가 어떻게 이해됐는가 하면 외부인이나 자기 식구가 나갔다가 들어올 때는 문 입구에 돌 항아리 또는 그릇에 담은 물에다가 씻도록 주인은 반듯이제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첫 표적에 물이 포도주로 된 기적이 어디에 담아져 있던 물로 일으킨겁니까? 바로 돌 항아리. 그게 정결 예식 때 쓰는 물이에요. 그 물로 포도주를 만든 거에요. 그렇다면
(20:01-30:00)
만약에 이 누가복음7장에 등장하는 시몬처럼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거절의 의사입니다. 나는 당신을 환대하지 않는다 그 말이에요. 그러면 이것은 심각한거죠. 적어도 집 주인이 외부인에게나 가족이 나갔다가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을 제공한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째 우리는 당신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동시에당신은 나와 한 식탁에서 먹을 수 있는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한 가족입니다. 시편 23편에 후반부에 보면 시인이 이런 노래를 끝내요.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여러분 그 상은 잘 아시는것처럼 그랑프리 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테이블을 얘기하는 거에요. 가족으로 초대된다 그 말이죠. 그런데 이 시몬은 예수님에게 발 씻을 물도 내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상 거절을 얘기합니다. 나는 당신을 환대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뜻이 이 속에포함되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발 씻을 물을 내어 준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라 그랬어요. 첫째는 나는 당신이 기꺼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두번째 당신은 우리 집의 한 가족 공동체로써 당연히 공동체 한 일원으로 될 자격이 있습니다. 이 뜻이에요. 자, 그러면 요한복음 1장12절에 영접하는 자, 받아 들이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뭐가 되는 권세를 주세요? 자녀. 가족이된다 그 말이에요. 가족. 자, 그러면 어라? 이 성결 의식이, 세족식을하는 정결 의식이 단순이 겸손하거나 모범을 드러내기 위한 그런 의미가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기꺼이 환영을 받고그 분의 뭐가 된다는 뜻일까요? 가족이 되고, 한 공동체가된다는 예수님의 선언이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자 그러면여기에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갈 텐데 그럼 예수님이 뭐가 되어야 맞아요? 성전이 되어야 맞아요. 왜? 정결 예식은 어디 들어갈 때 하는 예식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성전이 되야 그 논리가 맞아요. 자, 요한복음 1장 띄워 주세요.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자, 이 대목 우리 설교를 들을 때 배웠어요. 우리 가운데 거하다, 이 거하다는 말이 텐트를 치다 그 말이에요. 하늘의 성전이 이 땅에내려오신 사건이에요. 누구로 화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화해서. 자 요한복음 2장을 넘어갈까요? 띄워주세요.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자,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시작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자, 예수님은 사실상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인데 유대인들은 못 알아 들었어요. 보이는 성전으로 알아 듣고, 야 이 사람이 이게 지금 46년 동안 짓고 있는데 아직 안 됐는데 네가 어떻게 사흘 만에 헐고 나서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느냐? 여기 일으키겠다는 말이 사실은 부활의 의미이고 헌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 하는 거에요. 다음 절 시작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나 예수는성전 된 자기 뭐에요?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에요. 놀랍게도예수님이 자기 육체를 여기에서 뭐로 묘사하셨습니까? 성전. 그러면보세요. 이런 논리가 되는 거에요. 우리가 정결 예식을 통해서씻음을 받고 어디로 들어가야 하죠? 성전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놀랍게도 그 성전이 요한복음에서는 끊임없이 누구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고 한 가족이 된다는 얘기에요. 믿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족식이 그냥 모범을 보이거나 예수님이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퍼포먼스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구속적 의미를, 구원의 긴 프로그램을 암시하고있는 거에요. 자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가족이 어떻게 되는가? 우리 성경을 좀 또 살펴 나가도록 하십시다. 요한복음 19장 띄워 주세요.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자,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의 창을 받으셨어요. 옆구리에. 그러자 그 찔린 구멍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옵니다. 물과 피가 흘러나와요. 그럼 우리의 죄가 뭐로 씻음 받는 겁니까? 예, 그분의 죽음으로 흘리신 피와 흘리신 물로 씻음 받는 거에요. 그래서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이런 힌트를 감춰 놔요. 4절 읽을까요? 13장4절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뭐를 벗고? 벗고 라는 말은 죽음을말할 때 뜻하는 비유입니다. 겉옷을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2절로 건너 뜁니다. 시작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히시고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자, 4절에서 벗고 끝난 다음에 옷을 어떡하시고? 벗다 라는 것은 그리스도의죽음을 예표 하였다면 옷을 다시 입었다는 것은 부활의 은총을 설명하고 싶은 거에요. 그러니까 이 세족식앞뒤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사심을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D.A 카슨 이라는 이제 가을에 우리 교회에오실 텐데, 이분이 이런 설명을 했어요. 벗고 입으시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가 누구의 가족이 되는 겁니까? 예수그리스도의 가족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림 하나를 설명할 텐데,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요. 온 몸 마디가 쑤시는 고통속에 예수님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보라네 어머니라. 그때부터 그 요한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끝까지 모십니다. 십자가 옆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면 이게 무슨 그림일까요? 십자가 속에서 새로운 교회라는 가족 공동체가 태어나는 거에요. 그리스도의새로운 가족이 태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표현을 써요.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자녀, 형제여러분 요한복음 20장을 보세요.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부활 후에 말씀하신 것이죠? 내가 아직 누구에게로? 아버지 표현 나오죠? 올라가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내 누구에게?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라
여기 열거된, 그리고 아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도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뭐가 되는? 자녀가 되는. 그러면 자녀, 아버지, 아들, 형제, 자매 이거 다 어느 공동체에서만 쓸 수 있는 표현이요, 관계 설명입니까? 가족에서만 쓸 수 있는 표현이고
(30:01-38:21)
관계 설명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십자가라는 죽음의 방식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누구의 가족으로 불러 주셨다는 거에요? 예수님의 가족으로. 자 여기까진 알겠어요. 그러니까 뭐 예수 가족 됐다는 거 아니야? 알지, 믿지. 그런데 도대체 예수의 가족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 마지막으로 그 부분을 함께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렇게 된 겁니다. 제자들을 앉혀 놓고 예수님이 첫 번째 제자부터 한 명, 한 명씩발을 닦고 수건으로 닦아 주시고 물로 닦고 수건으로 닦아 주시고 쭈욱 오는데, 그걸 지금 누가 쳐다보고있었을까요? 당연히 베드로가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다가 야, 이건말이 안 된다. 왜? 그 당시 남의 발을 닦는다는 것은 웬만한종도 안 하는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그런데 감히 우리의 대 선생님이 그 웬만한 종들도 잘 안 하는그런, 특별히 유대인들은 종이라도 그런 일을 안 합니다. 그런데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정성껏 닦아가시는 모습을 볼 때, 저놈들 어떻게 저 상황 속에서 저러고 그냥섬김을 받지? 아무 소리 않고 가만히 있지? 아무래도 내가좀 나서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자기 순서에 왔겠죠. 그러자 딱 베씨가 성격이 다혈질이고 극단적이지않습니까? 그래서 한 얘기가 8절이에요. 8절을 잘 보시면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이 절대로라는말은 영원히, 씻지 못하시리이다. 그러자 여러분 항상 극단적인표현을 하는 분들이 다 철들이 없어서 그래요. 인생이 얼마나 고양이 눈알처럼 변하는지를 몰라서 그래서. 그러자 예수님은 심리학자에요. 그 극단적인 표현을 받아서 극단적으로설명을 하세요. 메시지를 넣어서. 그래?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내가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덥석 물어가지고 그래요? 그럼 목욕을 시켜 주십시오. 이목욕에 관한 문제는 다음 시간에 다룰 텐데 이게 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과연 상관이 없다는말이 무슨 말일까? 아니 뭐 그까짓 일을 가지고 또 상관이 없다고 하실까? 자,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인용하겠습니다. 누가복음을 띄워 주세요.
12 그 둘째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이야기죠?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 지라
자, 여러분 여기 분깃이라는 말이 상관이란 뜻입니다. 내가 너와 상관이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네게 함께 할 유업이나 상속이 없다 그말이에요. 그러니 이게 간단한 말입니까? 간단한 얘기가 아니에요. 즉 예수님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천국에서 함께 누릴 그 모든 상속과 유업을 함께 나누고 함께 누린다는뜻입니다. 믿습니까? 그 얘길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고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가족이 됐다는 것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한계가 있기 때문에 설명 불가입니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어마어마한초대 앞에 우리가 서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원수 덩어리였던 우리들을 죄 없는 예수님이 자기가 대신죽어서 우리를 아들 삼아 주시고 가족 삼아 주셔서 뭘 지금 함께 누리겠다는 거에요? 하늘의 분깃을, 하늘의 상속을 유업을 잇게 하고 함께 누리겠다는 겁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즈음에 서서 중요한 고민하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아직도 가슴 한 켠에 풀어내지 못하는이 감정의 응어리들, 관계에서 온 상처들. 넓게는 내 주변의사람들과의 살면서 조금 가깝게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가장 가깝게는 심지어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도 몇달씩, 몇 년씩 서로 말은 주고 받는데 대화가 아니에요. 그냥정보만 왔다 갔다 하는 거에요. 그건 가족이 아니죠. 동거인이죠. 특별히 그리스도인 사이에 이런 것들이 너무나 많아요. 돌아보면 별거 아닌데, 그 한 마디 때문에. 저 놈은 가해자고 나는피해자야. 그러지 마세요. 사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담보 된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감히 가해자, 피해자 소리가 나옵니까? 있을수가 없어요. 있을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거 풀어내지 않으면이거 십자가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건 악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욕되게 하는거에요. 제가 언제 여러분 마무리는 항상 부드럽고 좋은 마무리를 했지 이렇게 서슬 퍼렇게 끝냈던 적이있나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그냥 아, 또 한편 복잡한설교 듣고 돌아간다 그러지 마시고 반듯이 내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어떤 존재였으며, 그분의 피로씻어주신 정결 예식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예수의 가족이 되었고 그 가족이 됨은 나에게 누려지는 영광과 나눔이 얼마나 복된가를 기억해서 십자가 앞으로모든 마음의 멍에, 짐들을 풀어 내놓고 당장 머뭇거리지 마시고 이 말씀을 듣고 일어서서 그 풀어내지못하는 생의 무거운 부담들을 십자가 앞에 털어내기로 결심하는 우리 삼일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그 사랑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