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갖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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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가나혼인잔치에 대해 매듭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예고했던 대로 오늘은 가나 혼인잔치, 아 지난 주 5부를 제가 했나요?안 했나요? 했죠? 예, 헷갈려요. 지금. 예고했던대로 오늘은 가나 혼인 잔치에 등장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서 어떤 시각을 갖고 있나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즈음주일 밤에 열왕기상이라는 책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건과 일들이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분들에게잘 알려진 갈멜산의 유명한 기도의 사건을 기억하실 거에요. 3여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비가 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그 가뭄의 해갈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게 돼요. 그런데 유심히 보면 혼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 사람이 올라가요. 첫째, 엘리야입니다. 그리고두 번째 아합 왕이 같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이 누구죠? 하인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갈멜산 위에 오르는데 성경을 유심히보면 세 사람의 역할과 시선이 다 달라요. 첫째 엘리야는 말 그대로 기도하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저도 그거 해봤는데 잘 안돼요. 거의 요가 자세 비슷한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기도를 하죠. 결국 큰 비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인물인 아합도그 산에 있었는데 그는 한 가지 한 일이 있어요. 먹고 마시니라. 먹고마시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인물인 하인은 뭘 하죠? 왔다갔다 심부름만 해요. 물론 이 세 사람은 같은 시간에, 같은장소에, 같은 기적을 목격했어요. 그런데 엘리야가 봤던 그비의 소리의 의미와 아합이 이해한 비의 소리의 의미와 하인이 심부름을 통해 이해한 그 기적의 의미는 다 각도가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아주 비슷한 상황이 이 가나 혼인 잔치에서 펼쳐집니다. 지금부터 이 혼인 잔치에 초대된 예수님 그리고 어머니, 하인 그리고연회장 이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좀 펼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부터 설명을드릴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하신 일이 요단강에 가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일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하신 일이 뭐냐 하면 그 주변을 다니시면서 몇몇의제자들을 만나고 부르십니다. 그래서 일단의 작은 무리의 제자들이 형성이 돼요. 그리고 이제 그 제자들을 데리고 이 혼인 잔치에 참석을 하시는 거에요. 자, 혼인잔치 예수님의 상황을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을드린 것처럼 이 혼인잔치는 예수님에게 첫 번째 기적이라 그랬습니까? 표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까? 표적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적과 표적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요? 이적은 말 그대로 기적입니다. 병자가 고쳐지고,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난 거에요. 표적은 이적과는 사뭇 다릅니다. 표적은 싸인판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어떤 목적을가르치거나 목적지를 지향하기 위해서 중간중간에 설치하는 안내판 또는 표지판과 같은 싸인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어요.그 첫 번째 표적이에요. 예수님이 척 들어서니까 예수님의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런데 아주 충격적인, 어머님에게는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귀나이. 여자여,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 때는 일곱 번 등장을 하는데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을 얘기해요.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버릇없는 표현이나 어머니를 하대한 것이 아니라드디어 자기의 신분과 오신 목적에 대해서 공식적이고 아주 official한 차원에서 어머니의 인간적인요구를 거부한 겁니다. 그러면서 또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내십니다.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장차 자기가 대속의제물로, 이 땅에 오신 목적대로 아버지의 명을 순종해서 십자가에 죽어 흘릴 피를 상징한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럼으로써 예수님은 이 첫 번째 싸인판, 표적을 통해서 나는 이땅에 왜 왔고, 무엇을 위해 왔는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사건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사건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역할의 전부입니다. 여기까지는별 어려움이 없어요. 그런데 어쩌면 오늘 이야기에 가장 풍성한 소재를 제공하는 마리아의 순서로 들어가십시다. 여러분, 마리아는 예수님의 몸을 이 땅에 잉태하여 낳게 하신 모친입니다그런데 오늘 이 사건을 여러분들이 어머니 입장에서 한번 이해를 해보자고요. 아들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얘, 포도주가떨어졌다.” 이것은 여러분, 어머니가 꼭 “그러니까 네가 어떤 기적을 좀 일으켜서 이 사건을 해결해다오”. 꼭이 차원만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이 표적이 몇 번째 표적이라 그랬죠? 첫 번째 표적이라 그랬어요. 그럼 이전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얘깁니까? 없었다는 얘기에요. 첫 번째 표적이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을까요? 한국에서 장남으로 산다는것은 어떤 삶인지 아시죠? 저도 이제 장남인데, 4남매 중의장남인데 장남은 평생 잘해야 본전이에요. 잘하면 당연히 하는 거고, 못하면장남이 그래서 되겠냐고 야단을 맞고 제 기억으로 성장과정에서 그래서 어머님에게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사실 없어요.거짓말 같죠? 사실입니다. 늘 아버님이 여덟살 때 돌아가셔 놓으니까 항상 어머님은 제게 엄한 책임과 엄한 삶의 태도만 강조하셨어요. “네가 장남이다, 네가 다 동생들을 거느려야 된다. 네가 잘못되면 다 잘못된다”. 이게 은연 중에 뇌리에 침착이 되는데 그 부담감이라는 게 굉장해요. 그리고잘하면 장남이니까 당연히 하는 거에요.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에요. 그런데 이와 못지 않게 비슷한 concept을 가진 민족이 유대민족이에요. 예수님도 추정컨데 어렸을 때 요셉 목수인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이제 마리아 혼자서 여러 남매를 키웠어요. 그 후에 자녀들을 또 낳았단 말이에요. 그러면 자연히 예수님은 장남이에요. 그러면 홀어머니가 장남에게 갖는시선은 남다릅니다. 남편도 되고, 절대적인 내 인생의 의존자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어머니로써 장남이, 아들이 턱 제자들을 데리고 들어오니까얘,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 말은 “네가 좀 이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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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수습해 줄 수 있겠니?” 정도로 이해해도 틀린 이해는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예수님이아주 서늘한 표현을 하시는 거에요. 갑자기 귀나이. 여자여. 이 일이 나와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했을 때 여러분들이 마리아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아주 그 미묘한 감정이 복잡하게스쳐 지나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5절을 잘 보세요. 5절을 보시면 이러게 돼있습니다.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5절 시작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네, 5절은 마리아의 심경 변화의 아주 중요한 단서와 힌트를 두 가지를 암시합니다.자, 귀로 들으시고 눈으로 보시고 제가 다시 한번 이 본문을 찬찬히 읽어드릴 테니까 우선어떤 기반에도 발을 딛지 말고 뉘앙스만 한번 건져보세요. 어떤 느낌이 드는가
5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자, 앞을 보세요. 이게 아들의 그 냉정한 반응에 따른 어머니의 reaction이에요. 그런데 기분 나빠서 하시는 말씀 같아요? 아들 이상의 어떤 존중감이 여기 깔려 있는 것 같아요? 후자죠? 누가 자기 아들한테, 자기 아들을 거론하면서 하인들한테 무슨 말씀을하시든지 이런 표현을 써요? 이것은 이미 마리아의 의식 한 복판에 인식의 변화가 왔다는 근거입니다. 자, 여러분 마리아는 어머니로서 굉장히 미묘한 감정이었을 것 같아요. 아, 드디어 내가 육신으로 낳은 아들이지만 출생서부터 남다른 출생인걸누구보다 마리아가 잘 알기에 이제는 이 아이를, 아니 이 분을 메시아로서의 위치로 내가 인식을 바꿔야될, 이제는 육신의 아들로써는 이별을 해야 되는 그 시점이 왔구나 라는 인식이 여기에서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해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이 말은마리아의 인식 속에 이미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성도로써, 성도로써 아들,아니 메시아를 대한다는 느낌을 살포시 드러냅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그대로 하라. 이것은 한 번도 마리아의 인생에 흔들리지 않았던 신앙의 원리였어요. 자,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서 아직 처녀의 몸이었을 때 천사가 수태를고지합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내게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다시 거듭 강조하니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사실상 마리아가 그 시대 규율과 율법을 근거로 해서 이해할 때 목숨을 건 결단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고백이에요. 자, 그러면이미 요셉이나 마리아는 아직 젊고 어렸지만 구약의 율법에 대한 이해와 기대와 준비와 수납의 태도가 준비돼있었다는 얘길까요?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얘길까요? 준비되었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어제까지 막걸리 집에서 니나노 하다가 어느 날 내년 이맘때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면 아멘이 가능해요?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첫 번째 기초는 상식 선에서 읽을 줄 알아야 해요. 이미 마리아는 어릴 적부터 구약의 율법을 잘 이해했고 그 율법에 암시했던 그리스도를 기다렸고 그리고 성령의수태고지를 통해서 그 말씀을 그 약속을 그 하나님의 명령을 수납할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거에요. 우리는이 예수님의 어머니 속에 가나 혼인잔치의 현장만 놓고 볼 때 두 가지를 알 수 있어요. 이제는 육신으로서의아들은 결별을 해야 하는 시점을 깨달은 거에요. 그러니 이 마리아가 참 아팠을 것 같아요. 아프다는 표현 보다는 뭐라고 묘사를 해야 할까요? 굉장히 애잔한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기 예수를 성전에 결례를 따라 부모들이 데리고 갔을 때, 거기 그 아기 예수의 구주 나심을 오랜 세월 기다리던 한 선지자가 이런 예언을 했죠. 누가복음 2장을 띄워 주세요. 같이한번 읽어 볼까요?
또 칼이 내 마음을 찌르는 듯 하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함이라
이미 이 아기의운명을 통해서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가슴에는 평생 칼이 찌르는 듯한 고통을 안고 살 것이라는 것을 예고했어요.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자여 라는 말을 또 어디서 하죠? 십자가 위해서 요한복음 19장에 운명하시기 직전에 어머니를 바라보시면서 “여자여, 아들입니다”. 요한을 향하여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운명하십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아마 그 가슴에 칼이 찔러오는 그 아린 아픔의 첫 번째 현장이 이 현장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내내 가슴으로부터 아들을 떠나 보내고 그 아들을 구세주로써 그리스도로써 그러니까 이 5절 속에는 마리아의인식 변화와 그가 오랜 세월 동안 말씀에 순종에 대한 수납의 태도가 있었다는 것을 여기서 암시하고 있는 거죠. 세번째 인물입니다. 예수님, 마리아 세 번째 인물이 하인들입니다. 하인들에게도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가 있어요. 7절을 보세요. 7절 한번 같이 읽읍시다. 시작
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네, 이 명령을 누가했죠? 예수님이 하셨어요. 예수님의 명령은 하나에요.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런데 이 하인들이 태도가 아주 성실했어요. 물을 어디까지 채웠죠? 아귀까지. 여러분 작은 분량이 아닙니다. 돌 항아리 여섯 개에요. 거기다가 물을 채우는데, 이 바쁜 와중에 한 반만 채웠거나 채우는 시늉을 했거나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명령대로 입구까지 꽉 채웠어요. 또 하나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일절하인들의 언어가 소개돼있지 않아요. 말을 안 했나? 기록을안 했나? 그건 알 길이 없어요. 어쨌든 기록되지 않는 걸로봐서 이런 의도는 확실해요. 여리고성을 돌 때 제일 강조했던 게 뭐죠?침묵할 것을 강조했어요. 이럴 법도 하지 않아요? 야, 이 바쁜데 뭐 하는 거야? 도대체.일의 순서가 있지~ 이럴 수도 있잖아요. 갑자기포도주 떨어졌는데 물을 채우라는 거야? 저 양반은 뭐야 도대체? 이럴수도 있죠? 그런데 하인들을 두 가지 특징을 나타냅니다. 아귀까지채워요. 그리고 어떤 발언도 안했거나 소개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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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문제는 이 하인들은 여기까지 에요. 기적을 경험했어요. 하인들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도 알아요. 그런데 여기까지예요. 그런데 네 번째 아주 딱한 사람이 드디어 소개되는데 연회장입니다. 몇절을 보시냐 하면 8절을 보세요.
8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갖다 주었더니
여러분 연회장이라니까그 잔치가 베풀어지는 장소로 오해를 할 수 있는데 그 연회장이 아닙니다. 장소가 아니라 그 연회를 지금주관하고 있는 연회 captain을 얘기하는 거에요. 사람을얘기하는 거에요. 그러자 9절. 가져다 주었더니
9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연회장은 같은 날, 같은 시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지금 경험하고 있어요. 심지어는기적으로 만들어진 포도주도 맛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를 몰라요. 어디서 났는지를. 여기 가장 성경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디서났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이 어디서라는 의미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까 요 주제만 따로 다음 3장에 연결해서 다룰 겁니다. 오늘은 이 주제를 다루기엔 이 주제가너무 커요. 그래서 오늘은 이걸 말하면 또 스포가 되니까 오늘은 이게 중요하다는 정도만 미끼 정도로물고 가지고 다음 주쯤 소개가 될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주제에요. 넘어갑시다. 문제는 이 연회장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 거에요. 기적을 경험하고도몰랐다는 거에요. 신앙 생활 속에 이런 사람 있어요? 없어요? 많죠. 자, 이렇게 이제네 명의 인물이 소개가 됐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이 사건과사람들을 조금 툭 던져놓고 한번 우리가 같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자, 앞을 보세요. 앞을 보세요. 도대체이 사건을 통해서 첫 표적을 말씀하시는데 지난 주 들은 설교로 봐서 알겠어요. 예수님 죽으러 오셨다. 자기의 오신 목적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표적이다, 알겠어요. 그런데 여기 아직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있어요. 누굴까요? 여러분, 지금까지 사람들이 다 소개가 됐어요. 그런데 전면에 확 나서지도, 전면에 소개되지도 않는 인물들이 있어요. 제자들입니다. 지금 이 연회장에 예수님이 혼자 오셨어요? 제자들과 함께 오셨어요? 제자들과 함께 왔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에피소드를 주욱 설명하다가 뜻밖에도 이 목적지가엉뚱한 데로 결어가 맺어집니다. 11절을 한번 볼까요? 전체가같이 읽습니다. 시작
11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여러분, 느낌이 어떠세요? 어, 이이야기 스토리의 결론이 제자들의 뭐를 위한 이야기였어요? 믿음을 위한 이야기였어요. 제자들이 믿었다고 돼있어요. 그런데 이 제자들이 어떤 제자들입니까? 우리 1장으로 넘어가서 41절을보십시다. 제가 읽습니다. 40절부터 읽겠습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우리가 메시아를 믿었다? 만났다? 만났다. 만난건 믿은 게 아니에요. 네? 자, 45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자, 여기서도 믿었다? 만났다? 어느쪽입니까? 만났다. 이렇게 만나진 제자들을 예수님이 데리고어디로 오신 겁니까? 혼인 잔치로 오신 거에요. 제자들을데리고. 뜻밖에도 이 가나 혼인 잔치의 이야기는 제자들로 시작해서 제자들로 끝이 나요. 1절을 볼까요? 이렇게 돼있어요.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자, closing 구절을 보십시다. 11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앞을 보실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이 가나 혼인잔치에참여하신 진짜 의도가, 물론 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진짜 목적은 뭐죠?제자들의 믿음이었어요. 메시아를 만났던 제자들이 이끌려 혼인 잔치에 와서 이 기적을 바라보시면서, 바라보면서 믿게 되었다는 게 진짜 결론이에요. 근데 뭘 보고 믿었죠? 성경을 잘 보세요. 11절.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뭐를 나타내심에? 영광! 영광이 뭐에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는 길을 영광이라고합니다. 그 영광에 처음으로 시선이 열어지면서 이 예수 그리스도, 그들이만났던 그 메시아를 구세주로 믿게 되었다는 고백으로 목적으로 이 글은 끝이 나요. 그러면 이제 이 사건을좀 마무리 하십시다. 교회 안에는 각양 각색의 시선을 가진, 신앙의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해요. 어떤 사람은 하인 같은 시각이 있어요.기적까지를 체험했는데 거기까지예요. 또 더 딱한 사람은 연회장이에요. 기적을 맛보고도 뭐가 뭔지 몰라요. 또 마리아 같은 사람이 있어요. 마리아가 여기서 메시아로 인식을 했다고 해서 그의 믿음이 아직 온전한 건 아닙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무슨 계기는 되었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메시아로 눈뜨는 계기는 되었단 말이에요. 자, 그러면 제자라는 것은 완성이 되어서 제자가 아니죠. 제자라는 것은 장차 이 땅에 세워질 교회의 기초들입니다. 이 지상교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오고신앙의 눈이 열어지는 거에요. 여러분, 요한복음 20장을 한번 띄워 볼까요? 요한이 글을 쓴 이유가 이겁니다. 다같이 시작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네, 요한이 요한복음을 왜 썼는가에 대한 기록 목적을 이렇게 진술했어요. 이것을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이것이 오늘 첫 표적에서 제자들이믿으니라. 뭘 보고요? 영광을 보고. 예수의 영광은 뭡니까? 예수의 영광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십자가에자신이 대속의 죽음을 위해 우리를 구속하고 대속의 사함을 위해서 죽으시는 것이 예수님의 영광이에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기적이냐? 이 문제가 나한테 유익이냐 손해냐? 우리는 어떤 사건과 사연과 문제가 벌어질 때마다 항상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냐 하면 이게 나한테 손해가 될까? 유익이 될까? 이 문제가 해결 될까? 안 될까? 이런 프레임에만
(30:01-34:10)
인생의 문제를 해석하고이해하는 관습이 있다고요. 그런데 예수님에게나 하나님에게는 그런 문제들이 그닥 1차적인 관심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의 관심은그런 우리 인생의 길목에 얹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연, 사고를통해서 뭘 깨닫게 하는 거에요? 믿음을 갖게 하는 게 하나님의 주된 목적이라는 거죠. 교회 안에는 다양한 파들이 있어요. 어떤 형제는 여자친구 따라왔다가장로까지 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빚쟁이한테 빚 받으러 왔다가 걸려가지고 권사까지 된 사람도 있고, 어떤 남편은 부인 ride해주다가 교회 절대 안 들어오고 길거리차 안에 앉아 있다가 1년 지나니까 교회 로비로 들어와요. 그래서심심하면 나가서 담배 한 대 피고, 그리고 한 몇 개월 지나다가 이것도 도대체 저 본당에서 뭐 하는거야 궁금해서. 그런데 그게 괜히 궁금해지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하나님께서그 영혼을 초대하시고 이끄시고 사랑하시기에 궁금해지는 거에요. 도대체 뭐하나 저 안에서. 이게 자기의 의지로 되는 것 같죠? 아니에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주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니까요. 주께서 찾지 않고 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한 사람도 아버지 앞에 올 자가 없어요. 이것을 살금살금 믿음에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의 깊이와 부요를 알아가게 만드는 게 그 분의 1차적인 목적이라는 거죠. 믿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이 믿으니라. 믿습니까? 사랑하는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즈음에 서서 두 가지를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첫 째 내 믿음은 어느 정도 수준에 와있는가? 그 수준은 높낮이의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리 문제입니다. 내 수준은, 영적인문제는 지금 어느 수준쯤 와있는가, 어느 거리쯤 와있는가? 그리고지금 내 인생의 길에 얹어진 수많은 사연, 사고, 사정들이내가 혹시 앞서 설명 드린 그런 도그마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이게 나한테 이익일까? 손해일까? 해결 될 문제인가? 안될 문제인가 전전긍긍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를 결국 누구의 무릎 앞에 앉힙니까? 하나님의 무릎 앞에 앉히잖아요. 인간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안돼요. 생의 갈급함과 전전긍긍함이 있어야 그나마 목이 말라 하나님 앞에 한 호흡이라도 주여 한 마디 더 할 수 있는거에요.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 두 가지 문제를 붙들고 또 한 주를 주의 말씀에 붙들려 여러분들의 믿음을 더 부요하고 견고하게 만들고여러분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를 인식하는 승리로운 한 주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다일어나십시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