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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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참 복잡한 거 같은데, 또 복잡하죠. 복잡한거 같은데 깊이 삶을 조금 나보다는 한 발치 떨어뜨려놓고 묵상을 해보면 의외로 또 복잡하지도 않아요. 오히려단순합니다. 저는 오늘 이 요한복음 9장의 길에서 만난 맹인의이야기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그 질서와 원리를 발견하면 참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우선9장에서는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장애인 한 사람을 만나요. 1부 예배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우리 교역자 한 분이 문자를 보냈어요.목사님 맹인이 아니고 시각장애인이라고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좀 의아해서 성경에도맹인이라고 되어 있고 한대, 맹인이라는 표현이 틀린 표현인가? 틀린표현은 아닌데 시각장애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의 표현은 시각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맞아요. 근데 맹인이라는말도 사실은 표준어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제가, 여긴또 그쪽 분야의 전문가들도 앉아계실 테니까 성경에 나와있는 표현대로 그냥 설명을 드려도 너무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데 이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 된 분이에요. 맹인에는 세분화 시키면세 종류의 맹인이 있어요. 여기에 등장한 인물처럼 날 때부터 맹인이 된 분이 계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중도에 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들이 참 많아요. 그리고또 하나는 날 때는 정상적으로 났지만 어떤 질병에 걸려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시력을 거의 잃어버리고 중단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보통 약시라 그럽니다. 이 분들은 글을 쓸 때도굵은 사인펜으로 큰 글자로 써서 필기를 하거나 소통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쨌건 중간에 사고를 겪었던아니면 이렇게 병에 걸려서 약시가 됐던 그분들은 사물에 대한 기억의 경험이 있고 또 특별히 색깔에 대한 선제적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는 무언가를 언어의 표현을 담아서 설명하기가 그래서 수월한데 정말 어려운 것은 그런 경험의기억이 없는 분들에게 어떤 상황을 설명하거나 사물을 묘사하여 전달할 때는 참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여러분 길을 가는데 빨간 장미가 얼마나 이쁘게 담장에 피어있는데 그러면 빨간색을 본적이 있어야죠. 본기억이 없단 말이에요. 예를 들자면 그런 거에요. 대게 이제이런 분들의 직업군이 참 슬프게도 다양하지를 못합니다. 제가 맹인교회에 일을 하면서 그들과 함께 머물때 보통 교회 구성비 가운데 한 30%는 육교 밑이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거리에서 여기에 등장하는 맹인처럼구걸을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이 꽤 많았어요. 슬프게도 그들은 딱히 이 땅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가없기 때문에. 생계 수단으로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한 켠에는 침, 지압, 안마 이런 걸로 생계를 해쳐나가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요즘엔그런 분들이 많지 않지만 제가 그 교회 섬길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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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장애인이라고 있어요. 재가장애인은 사실 말이 재가장애인이지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은집안에 장애인이 있는 게 부끄럽다고 집에서 40년간을 내놓질 않았어요.마흔 넘어서 세상 구경을 한 집사님도 제가 알고 있어요. 뒤늦게 그분은 이제 침, 지압 이런 걸로 생계를 지금도 그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걸로 듣고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참 이중 삼중고의 어려움이 있습니다.요즘은 많이 그쪽 분야가 깨이고 개발이 됐지만 기본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턱도 없어요. 무엇보다도시설은 둘째치고 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우리는 가난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똑 같은 한 인격과 인권을 가지고 존중해달라는 거지 버러지 보듯침 밷고 재수없다 그러고. 실제 이런 일들이 오늘날에도 미개한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고 있다는거죠. 자,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보신지라. 당연히 예수님이 먼저 보셨겠죠. 자 이때 일반사람들이 물었던 게 아니고 제자들이 물은걸 염두 해 두시기 바랍니다. 자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까? 그 부모이니이까? 질문이크게 두 가지에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또 하나는 자기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자 이 질문은 이 시대에는 전혀 낯선 질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질문이 기록에 기록되기까지의 그 당시 사회 사람들의 통념이라는걸 이해하셔야 해요. 유대인들은, 자 제자들도 좁은 범위에서는 제자지만 넓은 범주에서는 유대인군에 속합니다. 유대인들은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 하면 이건 사회 통념이었어요. 누군가가 장애를 겪고 또 장애인으로 태어나면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전생에 죄가 많아서, 죄가많아서. 이건 신학적으로 옳지 않은 거죠. 죄가 많아서 틀림없이이런 맹인으로 태어났거나 또 부모가 죄를 지어서 맹인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통념을 이 당시사람들은 갖고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제자들도 그런 통념에 묶여서 이 질문을 하게 된 거에요. 이 질문은 이 당시 사람들이 듣고 이해할 때는 전혀 이상한 질문이 아니에요.당연한 물음이에요. 이때 예수님께서 그 질문 자체를 뒤집어 엎는 답변으로 대답을 하세요. 3절 같이 읽어봅시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자 여러분, 앞을 보십시다. 예수님이 두가지로 답변을 하신 거에요. 첫째는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에 이런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 하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맹인으로 태어났다.여기 이제 오해를 먼저 좀 걷어내고 본론으로 들어가십시다. 첫 번째 답변에 어떤 오해가있을 수 있는가 하면 그의 죄나 그 부모들의 죄 때문에 이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 속에는 죄가 완전히 없다 그 말이 아니에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원초적인 죄를 가지고 태어나요. 아담이 이 땅에빗어지고 창조될 때는 하나님이 온전하게 만드셨어요. 그래서 그 아담을 빗으신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10:00-15:00)
이 좋았더라 는 말은 토브. 하나님의 선을 얘기합니다.그랬던 아담과 이 세상에 사단의 유혹으로 죄가 들어와요. 그때부터 인간은 폭력과 살인과질병에 묶여서 그 결과가 사망에 이르게 되는 벌을,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죄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죄에요. 그 죄가 없다는 말이아닌 차원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그 사람의 죄나 그 부모의 죄가 아니라는 말의 진의는 이런 뜻입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죄를 지어서 그 결과로써 맹인이 된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구분해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가 되죠 여러분? 어? 안 되요? 이해를좀 하셔야 되는데. 한번만 더 말씀을 드릴게요. 예수님이그 사람의 죄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말은 이 원죄까지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죄는 있지만 이 사람이 맹인 된 것이 어떤 어떤 윤리나 도덕적인 죄의 지은 결과로써 맹인 된 게 아니다 그 뜻이에요. 이해가 되죠 여러분? 구분해서 이해를 하셔야 된다 그 말이에요. 이 부분에서 혼란을 일으키는 분들이 참 많아요. 또 하나 오해를걷어낼 게 있는데 뭐냐 하면 이렇게 돼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걸 일반화시켜서 아 그러면 모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부 장애를 가지고태어나느냐? 그 말도 아니라 그 뜻이에요. 이 말은 보편화시키거나 일반화시킬 수 있는 얘기가 아니고 요한복음 9장이라는 이 맥락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 속에 맹인이되었다 그 뜻이에요. 이해가 됩니까 여러분? 이거는 이렇게기억하면 되겠어요. 이거를 일반화시키거나 보편화시켜서 이해를 가져서는 안 된다. 이 땅의 모든 장애인이 전부 그런 목적으로 그렇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건아니라 그 말이에요. 자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무슨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요한복음 9장의 이 맹인은 이런 경륜 속에 태어난 것일까? 그거를 우리가 조금추적해 보자고요. 도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길래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내고 나타내기 위해서 이 맹인은이렇게 태어나야만 했을까? 해서 여러분 6절을 보십시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자 앞을 보실까요? 예수님이 누군가를 치료하실 때 보통 쓰시는 방법은 말씀으로 하시거나그냥 기껏해야 손을 대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여기는 예수님이 처음으로 수단을 사용하신 대목이에요. 두 가지 수단을 쓰셨죠? 처음이 뭐에요? 침. 어느 참고자료를 읽다 보니까 어느 학자가 이렇게 글을 썼어요. 침 속에는 치료의 효능이 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론이다. 찾아봤더니 일리가 있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억을 가물가물해서 어린시절을 추억해보니까 모기 같은 것들이 물면 엄마가 침을 묻혀서 거기다 발라주셨어요. 기억나세요? 그러고 보니까 그때 나았던 거 같아요. 나았던 거 같아요. 요즘도 그런 방법을 씁니까? 잘 모르겠어요. 요즘은 그렇게 안 하죠? 또 이제 본론은 생각 안하고 침만 기억하고돌아가면 안 되요. 침에 관한 에피소드는 그 정도로 지나가고. 문제는이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진흙은 결국 뭐에요? 흙이란말이에요. 흙에다 이겨서 진흙을 만들어 어디다 발랐어요? 눈에다발랐어요. 이게 과연 뭘까? 이건 아주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퍼포먼스입니다. 성경에는 신이 흙으로 무언가를 하신 사건이 딱 두 번이에요.
(15:00-20:00)
여기 한번이고 또 한번은 어디에 나옵니까? 그렇죠. 창세기에보면 우리를 만드실 때 뭘로 만드세요? 흙으로 빗어서 우리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산 영이 되었다. 사람이 되었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빗으실 때 뭘 사용하셨어요? 손수 흙으로 우리를 조물닥 조물닥 해서요렇게 각각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전부 하나님의 걸작품이에요. 그걸 포이에마라고 그러죠?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에요. 어디 가서 꿀릴 이유가 전혀 없어요. 누가 뭐라 그런들 독창적인모습으로 긍지를 가져야 됩니다. 자꾸 바꾸겠다고 고치겠다고 돈 들여서는 안 되요. 그럴 돈 있으면 차라리, 원래 성형이라는 거는 그러라고 만들어진의학이 아니잖아요. 전쟁 때, 다쳐서, 또는 어쩔 수가 없어서 우리가 성형을 하는 거지 조금 더 이뻐지려고? 이건사실 원래 성형의 기본 정신이 아니에요. 자 그 얘기는 또 그만하고 이게 또 너무 주제가 확대되면 안되니까? 어쨌든 예수님께서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는 사건은 두 번째 창조의 사건이에요. 그러니까 재창조의 선언을 여기서 하고 있는 거에요. 내가 이 땅에왜 육신의 몸을 입고 왔느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야만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나기때문에 죽으로 왔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 죽음이 갖는 결과와 열매가 뭐에요? 우리를 다시 창조하시는거에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뭐라? 새로운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니까이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이 막 기적을 일으키는 치유의 단순한 사건으로만 선을 그어서는 안되고 커다란 구속사적 사건 속에서 재창조의 선언을 하고있는 거에요. 믿습니까? 자 그러니까 이 앞을 보지 못하던불온한 인생 속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드러내고자 하셨다고요. 첫 번째 이유가 뭐냐하면 주님이 이 땅에 무엇 때문에 오셨는가? 이 맹인을 통해 지금 이런 퍼포먼스로 설명을 하시고 계시는겁니다. 그 다음에 7절을 잘 보세요.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네, 여러분 그가 어디로 보내어집니까? 실로암못 가로 보내어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가서 씻으라 그랬어요. 자질문 들어갑니다. 이 맹인이 눈을 떠서 보게 된 것은 예수님이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를 때입니가? 아니면 실로암 못 가에 가서 눈을 씻었을 때입니가? 그렇죠. 눈을 씻었을 때 보게 되요. 자 그러면 그러면, 잘 생각해보세요. 눈을 씻었을 때 구원을 받은 겁니까? 눈을 씻었을 때 구원을 받아 눈이 떠진 거에요? 아니에요. 이미 주님이 길가에서 이 불온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구걸하고 생계를 유지하던 맹인을 보시고 그에게 다가오셔서그가 어떤 요구와 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잘 보세요. 자1절.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누가 보신 겁니가? 맹인이 저 눈좀 고쳐주세요. 눈 뜨고 싶어요 그랬나요? 그런 일절의 대화가이 가운데 없어요. 일방적으로 주님이 홀로 지금 이 인생 속에 개입해 들어가시는 사건인데
(20:00-25:00)
눈을 뜬 것은 실로암 못 가에 가서 씻을 때 눈을 떴지만 이미 그 앞에 주님은 예정가운데 이 백성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구원의 섭리를작용해 들어가셨던 겁니다. 자 우리도 구원받은 걸 가만히 되돌아보면 이 순서가 정확히 일치해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고백을 하죠. 어느 날,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떠지면서 내가 이제야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군요. 주님이 내 구주가 되십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 고백을 해요. 그런데 사실은 믿고 나서 눈을뜨고 나서 돌아보니까 이미 그 자리와 그 고백의 현장에 오도록 까지 성령께서 그 인생 속에 개입하셔서 외롭게 만들고, 곤고하게 만들고, 절실하게 만들고,슬프게 만들고, 절박하게 만들고, 허기지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어서 마음을 다 만져놓은 거에요. 그러던 어느 날 그냥친구가 야 너 요즘 얼굴이 말이 아닌데 교회 한번 가볼래? 그때 이미 마음이 다 열어져 있단 말이에요. 그냥 저항 없이 따라와 앉았는데 꼭 나중에 이런 얘기를 해요. 어쩌면목사님이 내 사정을 다 아시고 전부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대요. 난 그 사람이 온 줄도 몰라요. 예? 게다가 무슨 제 설교가 그렇게 감동적이고 눈물이 나고 그런설교가 아니잖아요. 그냥 겨우 머리를 막 쥐가 날 정도로 집중해서 한 문맥이라도 놓치면 확 헷갈려 버리는그런 설교인데, 나도 알아요. 나도.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할 때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요. 난 그 사람이무슨 사정이 있는지 여기 왔는지도 모르는데. 누가 아시는 거에요? 우리레미제라블에 그 곡에 얹어진 가사처럼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주님이 다 하셨습니다. 이 맹인에게 지금 그 순서가 벌어지고 있는 거에요. 자 그런데 참이 맹인이 눈을 씻은 연못 이름이 뭐에요? 실로암. 어두운밤에. 이거 논산 출신들 이거 다 알잖아요. 기억나요? 군대 갔다 와야만 아는 건데. 오천 명이 넘는 장병들이 예배당에앉아서 이거 부르면 거의 이건 찬양이 아니라 발광이에요. 발광. 난리가나요. 그런데 오늘 이 연못의 이름이 실로암이에요. 그런데실로암이라는 연못의 뜻이 보냄을 받다 라는 뜻이에요. 놀랍게도 드디어 하나님의 두 번째 나타내고자 하는일들이 밝혀져요. 이 맹인은 여기서 눈이 떠지면서 다시 어떻게 되어지는 겁니까? 아직도 눈먼 세상이 가득한 눈먼 도시를 향해서 빛으로, 눈뜸으로파송 되는 현장이 실로암 못 가에요. 요한복음 20장에 보면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일먼저 찾아가신 대가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 한복판에 들어가서 먼저 평안을 선언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고 뭐라 그러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러분 웃기죠? 이 사람들이 지금 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에요? 지금 누구에게잡힐 새라 지금 두목이 십자가에 가장 끔찍한 처형을 당한 입장에 그 졸개들이 지금 다 어느 한 집에 숨어있단 말이에요. 잡힐 까봐, 검거될 까봐, 누가찾아올 까봐.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거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게 뭘 얘기하는지 아세요?
(25:00-30:00)
제가 우리 삼일교회에 부임해가지고 가장 처음에 받았던 충격. 2012년 7월 1일 주일입니다. 그날제가 부임을 했어요. 어쩌다 보니까 7년이 지났네요. 두주만 있으면 만 7년이에요. 7월1일에 부임해서 하루 종일 일곱 번 설교를 하고, 라이브로, 영상 안 띄우고 일곱 번 설교를 하고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그 7월2일 월요일 새벽에 선교를 떠났어요. 여기 대형버스들이 쫙와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청년들 떠나는걸 배웅하기 위해서 나갔다가 저쪽에서 한 청년이 케리어 가방을들고 와요. 그래서 인사 겸 아니 우리 교회 나오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랬더니 7일됐대요. 7일. 그래서 교회 나온 지는 7일될 수 있겠다 해서 예수 믿은 지는 얼마나됐습니까? 그랬더니 교회는 여기가 처음이래요. 아니 무슨선교를 갑니까? 그랬더니 자기 잘 모른대요. 그냥 교회에서가자 그래서 등록을 했고 자기 잘 모르는데 쪽지 주면서 외우라 해서 지금 그거 외우면서 가는 길이래요. 마찬가지에요. 지금부터 이 맹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떤 인식의 변화를 갖고 있는가 흐름을 한번 쫓아가보세요. 11절. 제가 읽습니다. 사람들이눈을 뜨니까, 거지였던 사람이 눈을 뜨니까 물었겠죠? 어떻게된 거냐고?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떠니 보게 되었노라
자 앞을 보세요. 여러분 여기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무슨 설득을 했어요? 설명을 했어요? 그냥 말 그대로 요즘 표현대로 하면 체크팩트 밖에, 아니 팩트체크 밖에 한 게 없어요. 5부 되면 이렇게 되요. 막 앞뒤 말이 바뀌어요. 팩트체크 밖에 한 게 없어요. 자기에게 겪어진 그 사실을 얘기했지 여기 무슨 설득을 했습니까? 설명을했습니까? 게다가 이 맹인이 예수에 대한 표현을 뭐라고 했죠? 예수라하는 그 사람이. 그러면 이 사람이 예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입니까?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까? 예. 모르고있는 사람이에요. 자, 다음절. 17절을 보십시다. 같이 읽습니다.
17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이니이다하니
예, 자 이번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에서 지금 뭘로 표현이 바뀌었어요? 선지자. 그런데 이 선지자라는 표현도 썩 그렇게 마뜩한 표현이 아니에요. 이 당시에는 어느 유대인이든지 이런 정도의 기적과 치유를 하는 사람들은 아 선지자신가보다. 이 사람 아니라도 다 그 공동체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을 갖고 살았단 말이에요.이해가 되죠? 그러니까 여기서 이 사람이 예수에 대해서 선지자라고 한 표현도 대단한 표현이아니에요. 자 다음절, 33절을 가보십시다. 33절 같이 읽습니다.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자 보세요.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 더 이제 근접해져 있어요. 그런데 그 말했다가 이 사람의 인생에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34절을 제가 읽습니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자 여러분 앞을 보십시다. 여기 쫓아내어 보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이거는 그냥 쓸데없는사람 나가! 이게 아니에요. 그들의 견고한 종교 껍데기로 둘러싸여있는 생명 없는 화석화된 유대종교에서 유대공동체에서 파문했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파문을 당하면 구걸도 못해요.
(30:00-35:00)
그래도 유대공동체 안에 있을 때는 구걸이라도 해서 먹고 살았어요. 근데 파문을 당하면그것마저도 못해요. 완전히 벼랑 끝이 아니라 떨어뜨려버린 겁니다. 그공동체는 기껏 눈뜬 맹인을 파문하는 것으로 결론을 끝냅니다. 그때 이 파문 당한 맹인을 예수님이 두번째 찾아오셔요. 35절 읽습니다.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여기 아주 중요한 표현이 드디어 등장을 했어요. 여기 인자라는 말은 신구약을 통틀어서사람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담보한 중요한 신학적 표현입니다. 그런데예수님이 지금 뭐라고 표현하셨죠? 그랬더니 이 눈을 뜬, 지금뭔지 동서남북도 분간을 못하는 이 맹인이, 이제는 맹인이 아니죠, 눈뜬맹인이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이미 그의 마음 속에는 거의 영적인 허기가 다 차 올랐어요. 그분이 누구십니까? 제가 믿고 싶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드디어 자기를 온전히 드러내시고계시하시는데 이렇게 도 o있어요.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절 결론입니다. 시작.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여러분 그가 믿나이다 라는 고백이 38절에서야 나옵니다. 그리고 그 고백다음에 이 눈뜬 맹인의 행동이 어떠했습니까? 그를경배하고 그를 예배했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중요한 사건인가 하면 그 당시 생명 없는 화석화된 종교공동체는 그를 파문해버렸어요. 그런데 사실 이게뒤집어진 얘기에요. 오히려 이 파문 당한 눈뜬 맹인과 예수님이 눈감은 종교를 파문시켜버리는 겁니다. 뒤집어지는 선언이에요. 오히려 파문시켜버리는 거에요.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분리의 시작이에요. 드디어 기독교가유대교라는 종교화된 생명 없는 종교에서 이제 떨어져 나가는 분리 선언이에요. 이런 거죠. 그들은 죽음의 멸망의 상황에 놓여있던 한 걸인을 격려하고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매장시켜버렸어요. 벼랑 끝에 있던 사람을 그냥 떨어뜨려버렸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생명의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예배 함으로서 그 종교를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파문시켜버리는 거에요.멋진 반전이요 역전이죠. 승리중의 승리가 역전승 아니에요?이번에 월드컵 피파 20세 이하 세네갈과의 경기는 미친 경기였어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끝에 승부차기에서도 1번 선수가 실수를 했어요. 끝났구나. 그런데 상대방이 또 실수를 해줄 줄이야 누가 알았어요? 그건 보고 또 봐도 온 세계 언론이 미친 경기라고 제목을 붙였더군요. 미친경기다. 여러분 오늘 이 사건은 그렇게 끝을 맺습니다. 자그러면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도대체 이 맹인의 존재는 우리에게 뭘까요? 저는 이 말씀을 종료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교회와 우리가오히려 이런 파문 앞에 위기에 서 있지는 않는가? 조직은 갖추어졌고 규모는 갖추어졌는데 거기에는 생명이태어나는 일이 없고 생명이 회복되는 일이 없다면 그것 또한 유대교 꼴을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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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회는 계속해서 뭐가 되야 됩니까? 실로암이 되야 되요. 거기서 씻음을 받고, 거기서 정결함을 입고, 거기서 눈이 떠져. 거기서 또 계토화 되지 말고 우리끼리만의 유람선이되지 말고 보내어져야 되요. 우리 아까 뉴스를 통해서 봤지만 교회가 존재하는 양식은 뭐라고요? 선교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교회가존재하는 양식이 선교라면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도 보냄을 받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오해하는게 하나 있어요. 보내어지려면 뭔가 떳떳한 상태에 있고 그래도 보란 듯한 상태에 있고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가진 게 있어야 보내어진다고 생각을 해요. 그건 우리 생각이고. 우리생각이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그 당시 가장 저주스러운 모습으로 죽으셨어요. 사도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이런 얘기를, 나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되었다. 아니 자기 묶임이 왜 복음의 진보가 되었단 얘기입니까? 이유가있어요. 워낙 중범죄자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4명씩 4교대로 지켜요. 시위대에서. 그러면이 4명은 꼼짝 못하고 4*4=16 16명이 24시간을 바울 곁에서 바울을 지켜야 되요. 왜? 바울을 살해하려는 사람들도 많고 워낙 중대한 범죄자로 이제 로마로 가야 되는 인물, 황제 앞에 심판을 받아야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어쨌든 바울 옆에는24시간 16명씩 바울을 지키데 돼있어요. 그럼 바울이 그 사람들 붙들고 하루 종일 뭐했겠어요? 계속 듣든지안 듣든지 복음을 전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바울이 그 얘기를 하는 거에요. 나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는 말은 내가 비록 꽃가마 탄 화려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의 가난과 나의 못남과나의 약함까지도 보내어지고 이 복음과 생명이 나뉘어 흘러가는데 쓰임 받고 있다면 그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 그 말이에요.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폼나는 모습으로 쓰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이왕이면 폼나는 모습으로 쓰면 좋겠습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란말이에요. 제가 요즘 우리 목회자들에게 교역자들에게 금요일 경건의 때마다 하는 얘기가 강조하는 얘기가나를 비롯해서 여러분 멋있게 목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 얘기를 해요. 멋있게 목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뭐 이 땅에 멋있게 살려고 하지마세요. 왜냐하면 이 땅에 멋있게 살려면 반칙해야 되고 위반해야 되고 남 밟고 올라서야 남들이 봐주고알아주고 인정한다고요. 그거 안 하기로 하자는 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름 받은 삶 아니에요? 우리 그 질서 그 원리대로 안 살겠다고 하는 게 이쪽에 들어온 사람들의 각오 아니에요? 명분은 예수를 붙잡았는데 방식은 여전히 놓지 못하는, 몸은 애굽을떠났는데 여전히 그를 지배하고 그를 통치하는 것은 바로의 사고 애굽의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는 거죠. 하나님은언제나 교회가 우리 성도들의 삶이 매일매일이 새로운 실로암이 되기를 원합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나의약함이 보내어지고. 내게 능력을 주셨습니까? 그것도 보내어지는데쓰임 받고.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렸죠? 뭐 세상이 참 복잡한 거 같지만 꼼꼼히 본질을 들여다보면 나는 왜 사느냐? 보냄 받기 위해 산다. 이거 외에 더 할 말 있어요? 보냄 받기 위해 사는 겁니다. 내 못남도 가난도 위대함도. 하나님이 나를 높은 자리 주셨습니까? 그것도 보냄 받기 위해 사는거에요. 실로암. 믿습니까?오늘 이 말씀이 우리 청년들 가슴에, 식어진 가슴에 다시 한번 보내어지는 자로서 불을 지피는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