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창설

책이름(시리즈 분류)
창세기
Date
날짜
20160821
성경구절
창 2:8-14
시리즈 순서
창세기(5)
종류(주일, 새벽 등)
주일낮
창세기 강해(5)
에덴의창설
창 2:8-14
여호와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있더라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00:00-10:00)
자, 우리 창세기강해 오늘 다섯 번째인데 지난 시간에는 안식일에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에 충격들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그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회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맞죠? 아버지께서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안식일에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은다섯 번째 시간으로 다시 천지 창조의 기사가 등장을 합니다. 창세기 구조는 1장 1절서부터 2장 3절까지가 첫 번째 천지 창조의 이야기죠. 그리고 2장 오늘 4절서부터 이제 다시 천지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모습으로등장을 합니다. 이러게 성경에는 두 개의 창조 기사가 기록이 돼있어요.그래서 혹 학자들 간에는 이걸 이렇게 설명하시는 분도 계세요. 성경은 모세 혼자 썼을 리가없다. 또 하나는 편집설을 주장합니다. 기사 자체가 다르지않느냐. 그러나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 테니까 한번 들어보십시오. 예입니다. 제가 이번 달에 영국에 한 일주일 갔다가 오는 길에 필리핀을들러서 잠깐 브라질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돌아와 보니까 날이 무척 덥더군요. 그런데 제가 브라질에 들렀을 때엔데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운동 경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 끝날 무렵에 우리 나라의 박인비 선수가 116년 만에부활 된 골프에 금메달을 따는 광경을 그 현장에서 목격을 하게 된 거에요. 그러면 제가 엄밀한 의미에서두 개의 이야기를 했어요. 영국에 가서 필리핀 찍고 브라질 들렀다가 일본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는 한달의 여행 기록을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노정에 브라질에 들렀더니 올림픽 경기 중에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골프에 금메달을 땄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여행 이야기를 한 거라고요. 그러면모양은 두 개의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란 말이에요. 목적지가. 이해가 됩니까? 마찬가지에요. 지난주까지 창세기 기사는 하나님이 첫 째날 뭐 만드셨고 일곱째 날에야 모든 창조를 마치셨다 그런데 이제 오늘 본문은 그 진짜 목적지인 협의적 의미에서좁은 의미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기사가 같을 수밖에 없을까요? 다를 수 밖에 없을까요? 다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 2장 4절을한번 볼까요? 창세기.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조 기사가 다시 시작이 되죠?왜 이러게 두 개의 창조 기사가 등장을 하는가 하면 앞의 창조 기사는 대략적인, 전체적인창조 기사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이 창조를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하셨는가 그 목적지를 향해서 범위를 확 좁혀서 세밀하게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자, 이 문장을 읽다보니까 조금 이상한 표현 하나가 걸리지 않습니까? 처음 앞부분에는 순서가 하늘과 땅으로 돼있어요. 그런데 끝날 무렵 즈음 보니까 이 순서가 뒤집어져 있어요. 땅과하늘로 바뀝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부터 두 번째 창조 이야기를조금 더 자세히 시작할 텐데 지금부터 하는 창조의 이야기는 땅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그 뜻이에요. 그래서순서가 바뀐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 땅은 무엇이 가장 큰주제입니까? 인간의 삶이거든요. 인간이 누구냐, 인간이 뭐냐. 인간을 어디서 취합니까? 땅, 흙에서 취한단 말이에요. 사실은흙이라는 표현보다는 더 엄밀하게 정확한 의미로는 티끌이 맞습니다. 티끌. 여러분 화장터에 가서 시신을 불에 태워 나중에 그 분골을 하죠. 그러면한 줌의 티끌로 나와요. 진짜 한 줌밖에 안돼요. 그런데그 안에서 쿵쿵 찧는 소리가 밖에까지 다 들리죠. 벽제 화장터에 가면 참 인간이 정말 별거 아니구나. 한 줌의 재라는 말이 너무 실감으로 들어오죠. 그런데 지금부터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땅에 관한 이야기인데 바로 땅의 주제는 인간이다 그 얘길 하는 거에요. 또 하나 여기에서일반 독자들이 성경을 읽을 때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러나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표현 하나가 나타나게 돼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전부 하나님이라고 돼있어요. 그런데 2장서부터는 이 표현이달라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으로 달라집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뭐 하나님이나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 분이 그분 아닙니까? 맞아요. 자,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그렇게 무심히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성경 기자가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한 대상을 다르게 표현 했을 때는 이유가 있겠죠. 우리 사람도 한 사람을 다른 표현으로 호칭하여 부를 수가 있단 말이죠. 어떻게표현하여 호칭하느냐는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바, 또는 그 사람의 어떤 내면의 상태를 강조하거나 드러낼때 호칭이 달라지는 거에요. 우린 가끔 드라마 같은데 보면 재벌 회사 나오는데 아들이 전부 상무인데집에서는 아버님 그러지마는 회사 나가서도 아빠 그럽니까? 안 그러잖아요. 회장님. 아들이지만 그렇게 부른단 말이죠. 예를 드는 거에요. 자, 그런데그러면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무슨 의미고 여호와라고 말할 때는 무슨 의미인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이 됐을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라고 부를 때는 어떤 사실에 대해서 그냥 주욱 서술을 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를때는 자, 여호와는 사실 이름이 아니에요. 하나님이라는 말은엘로힘인데 이건 하나의 호칭이죠. 대통령 하듯이. 그러면그 앞에 여호와가 붙으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의 이름인가? 그런데 하나님께 이름이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아요. 필요하지 않는 다는 말도 안돼요. 그 하나님은 이름이 필요가 없죠. 그런데 여호와라는 말은 어디서생성이 되냐 하면 출애굽기에 모세가
(10:01-20:00)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너가서 바로에게 내 백성을 놔달라고 얘기를 해라. 그러니까 모세가 뜬금없이 그런 얘길 해요. 바로가 네가 누가 보내서 왔냐 그러면 제가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자기 존재에 대한 설명을이렇게 하신 겁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I am that I 그것은이름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그 말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설명이지 이름이 아니에요. 이때부터 이것이 시대가지나면서 그냥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된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런데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일관된 성경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걸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겁니다. 언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호칭을 하는가? 잘 들으세요. 하나님이 어떤 플랜을 가동하고 그 계획을 진행시키고 거기에 하나님이 의지를 담고 그것을 완성하고자 하는 하나님의플랜이 걸릴 때는 의지가 들어갈 때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이 반듯이 붙습니다. 즉 언약에 관해서 계약관계에 들어갈 때 여호와 하나님이.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어떤 하나님의 플랜을 지금부터 가동시키고 진행시키고 인간의 세계 속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이 호칭의 변화 속에 감추고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경을 여러분들이 앞으로 주욱 읽다가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을 툭 건질 때는 발견될 때는 그런 관점에서 앞뒤 문맥을 읽으면 정확합니다. 그런데 5절을보십시다. 한번 같이 읽읍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경작할사람도 없으니까 채소도 없겠죠 초목도 없었겠죠. 비도 오지 않았고. 그런데어떻게 땅이 적셔져 있느냐. 밑에서 안개가 올라왔다 그랬어요. 지금이 5절, 6절에 설명된 태고 적의 땅의 모습을 스케치 하듯이훅 지나가면서 느낌을 한번 보세요. 느낌. 어떤 느낌이 들어요? 여러분, 이 상황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같지만 역설적으로강렬하게 인간의 손길을 기다리는 땅의 모습이에요. 이 땅은 완성된 채로 창조된 게 아니에요. 자체는 완전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제 여기에다가 인생을 두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채워 나가실 거에요. 사람을 만들어서 이 땅에 두실 거라고요. 이 자연의 상태는 인간의손길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목마른 태도를 설명하는 겁니다. 아직 경작되지 않은 땅.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8절을 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자앞을 잠깐 보십시다. 성경 전체의 얼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를 꼼꼼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랬어요. 자, 지금 많은 고고학자들이나 탐험가들이 이 인류의 첫 거주지였던 에덴이 도대체 이 지구촌 어디쯤일까 마음과 뜻과정성을 다해서 찾아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 분들의 열정이라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지 못 찾고 있죠. 하나님이 감추신 것은 찾기가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설들만 난무해요. 지금의 이라크다. 그 지역이동방의 에덴 위치였다. 또 어떤 학자는 아니다 조금 더 옆에 이란이다.그러나 설은 어디까지나 썰입니다. 그건 설로 그냥 이해를 해야 돼요. 자, 문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랬어요. 창설하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텐트를 치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우리가 텐트는 장막을 얘기하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에서 텐트를 쳤죠? 광야에서 텐트를 쳤어요. 그래서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의 그레고리빌이라는 유명한 구약 교수가 있는데 이 분이 성전 신학이라는 책을 썼어요.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책이에요. 신학생들도 몇 번 읽어야 전체 이해가 될 정도로 어려운 책인데 이 분이 성경 전체를 뭐로 이해했는가 하면 에덴전체를 하나님의 성소로 이해를 했어요. 정확히 맞는 얘깁니다 .그래서여기 표현을 창설하다 라는 표현을 장막을 치다. 장막을 짓다. 나타라는 표현을 썼어요. 나타. 히브리 말인데 이것이 구약에나가서 성막이 됩니다. 그리고 성막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장소로 의미가 부여가 되죠. 그리고 그 성막은 훗날 성전이 되죠. 결국 무슨 얘긴가 하면 에덴은하나님이 거니시는 성전이었어요. 자 그래서 3장 8절을 한번 볼까요?
그들이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자, 앞을 보실까요. 여기 하나님이 어떻게 했다고 돼있어요? 거니셨다. 뒷짐지고 애들 어디서 뭐하나 그 맒이 아니고 이 동산을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하셔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통치하기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거니셨다 라는 말은 즉여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성격을 강렬하게 얘기하는 거에요. 조금 더 보실까요? 8절
동산을 창설하시고 하나님의 성소로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어떡하셨어요? 두시니라. 여기 두셨다는 말은물컵이 있는데 여기 두었다 이 말이 아니에요. 이 숨 이라는 히브리 말은 임명하여 고정시킨다 그 뜻이에요. 누구를? 첫 사람 아담을 에덴 동산이라는 성소에 제사장으로 임명했다는말이에요. 레위기나 출애굽기를 보면 내내 제사장의 직무가 나옵니다. 제사장의직무는 첫째 하나님을 섬기고 둘째 성소의 거룩을 지키는 역할이 가장 중요한 제사장의 역할이에요. 이것이아담에게 부여 된 겁니다. 첫 사람에게. 그래서 첫 사람아담은 베드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왕이면서 동시에 뭐예요? 제사장이란 말이에요. 에덴을 하나님의 성소로 이해를 했을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곳인데 아담을 왕이자 동시에 섬기고이 에덴에 온전함과 풍성함과 거룩을 유지하는 지킴이로, 청지기로 두셨다, 임명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무너진 거죠. 이게 깨지는 거에요. 결국 이 실락원에서부터 모든 인류의 잘못된갈증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갈증 하는 존재가 되었어요. 이렇게 하면 영원히 살까? 이렇게 하면 만족이 있을까? 저렇게 하면 행복이 있을까? 계속 인류는 헛다리를 짚어요. 그래서 죄라는 정의가 뭐냐 하면 하말티아 인데 화살을 쐈는데 과녁이 빗나갔다 이 뜻이에요. 인간의 모든 갈증의 근원적인 뿌리는 에덴의 상실이에요.
(20:01-30:00)
여기에서부터인류의 문제가 발생을 한 겁니다. 여기에서부터 온전함이 깨어지고 평등함이 깨어지고 자, 그 깨짐이 어떻게 발전을 하는가를 우리는 이제 뒷부분에 가서 좀 더 세밀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9절을 볼까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자 앞을 보실까요? 여러분 이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드디어 선악과가 등장을 했어요. 선악을알게 하는 나무. 여러분은 생명 나무에 관심이 있습니까? 선악과에관심이 있습니까? 청년들이 가장 물어오는 질문이 대충 선악과 문제가 많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 쓸데없는 걸 만들어가지고 인간을 곤경에 빠지게 하시는가. 쉬운주제는 아닌데 성령에 의지해서 풀어가 보십시다. 우선 하나님은 두 나무를 두셨어요. 동산 안이 아니에요. 어떤 영어 성경에는 전치사는 IN 이라는 전치사를 썼는데 정확하게 원문은 동산 CENTER에 중앙에. 동산 가운데에는 이렇게 돼있죠. 중앙이란 말이에요. 두 나무가 있어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선악과는원래 명칭이 아니고 그냥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요. 생명 나무. 자, 우선 생명 나무가 뭔지 한번 보십시다. 생명 나무는 뭐예요? 이 생명나무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를 얘기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풍성케 하기 위하여 왔다고 소개합니다. 그래서 인류는 첫 삶에게서부터 생명 나무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먹어 생명에 유익이 되도록 설계되었어요. 원래 근거가 그 생명 나무로부터 그리고 이 생명 나무는 금하지 않았어요. 먹도록돼있어요. 15절을 보시면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게 하며 지키게 하시고
여기 지킨다는 말이 나오고 경작이라는말이 나오죠. 이 경작이라는 말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그 경작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 목적어가동산, 에덴 동산에 있어요. 즉 에덴 동산을 관리하고 섬기고돌본다 그 말이에요. 그리고 뒤에 마감의 의미로써 지키게 했다고 돼있어요. 이게 첫 사람 아담에게 부여 된 임무였어요. 그런데 16절을 보세요.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그러면 동산 각종 나무 속에는 생명 나무가 포함됐을까요? 안됐을까요? 포함된 겁니다. 생명 나무는 금하지 않았어요. 1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네 자 이제 무서운 얘기가 등장을 해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듯이죽는다고 돼있어요. 이 선악의 의미가 무엇이고 반듯이 죽는다는 의미가 뭘까요? 하나님이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시키고 구원을 말할 때는 여러 가지 표현법을 사용하십니다. 비유법도 쓰시고 풍자법도 쓰시고 은유법도 쓰시고 또 환치법도 쓰시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전달하세요. 그런데 이것도 하나의 하나님의 전달 방식이에요. 우리이제 국문학 하시는 분은 전유법 들어보셨을 거에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성경 한 구절을 참고하겠습니다. 창세기 24장 띄워 주세요.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네,이 본문의 맥락을 좀 설명을 드릴께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해야 되는데 종에게부탁을 합니다 .네가 저 먼 우리 친척에게 가서 아내를 좀 구해와라.종이 명령을 받고 길을 떠나요. 먼먼 길을 떠납니다. 그래서하나님의 오묘한 만남과 섭리 속에 드디어 리브가의 집까지 도착을 한 겁니다 .그리고 자초지종 얘기를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리브가의 어르신들이 꺼내놓은 이야기입니다.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일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뭐를 말 할 수 없노라? 가부를말할 수 없노라. 가부를 말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이것이 옳은 일인지, 틀린 일인지 맞는 일인지 우리는 그 권한이 없다 그 말이에요. 그권한은 성경은 지금 뭐라고 돼있어요?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우리도 이제 일상 생활 속에서 겉에 드러난 문장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죠. 그 일은 우리소관이 아니야. 우리 소관이 아니에요. 그건 내 인생의 몫이아니야. 사무엘하에도 보면 바르실래 라는 나이 많은 노인 하나가 등장을 해요. 다윗은 충성스런 부하입니다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는데 혁혁한 공을세워요.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나서 다윗이 그 노인에게 제안을 하죠.나와 같이 왕궁으로 들어갑시다. 그러자 이 사람이 이런 얘길 합니다. 나는 이제 늙어서 쓴맛, 단맛도 매운맛, 짠맛도 구분 못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선악간에 어찌 내가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나는 그냥 왕이 복귀하는 걸로 만족하겠습니다 .내 삶의 터전에서 그냥 지내겠습니다. 이런 부탁을 해요. 거기에서 나는 선악간에 일을 말할 수 없다라는말은 똑같이 합니다. 자, 우리가 보통 선악과 문제가 나오면이제 어느 쪽으로 생각이 물줄기가 틀어지냐 하면 저도 그런 생각을 해요. 어느 목사님 책에서 보니까똑 같은 생각을 했더라고요. 오히려 첫 사람 아담에게 동산을 지키고 섬기고 관리할 수 있는 위치와 임무를부여하셨다면 선악을 더 알도록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치적으로. 그래서분별을 잘 해가지고 실수 없이 동산을 관리 잘 하도록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은로보트 조종하듯이 갖고 놀듯이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도대체 이 관계 속에 무슨 이야기를 성경 기자는 하고 싶은 걸까? 이런선악과 라는 그림 언어를 통해서 본의가 뭐냐? 본의가. 그래서우리는 그것을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어요. 우리 창세기 5장을한번 보세요. 인류가 넘어지는 과정을 소상히 그려내고 있는데 이렇게 돼있습니다. 1절부터 한번 교독을 하죠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참으로 너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뱀이 하는 얘기죠.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자,여기 강조하고자 하는 용례가
(30:01-40:00)
하나님 같이 되어 입니까? 선악을 알게 한다는 겁니까? 하나님 같이 되어 라는 게 강조점이에요. 그러니까 이 선악과는 먹어서 눈이 밝아져 가지고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는 판별력이나 기능을 얘기하는게 아니에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단의 꼬임의 핵심 가치는 자기가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죠.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 그 뜻이에요. 이게 끊임없는 인류의 무모한시도였어요. 하나님같이. 3장 22절을 볼까요?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자 여기에서도 선악을 아는 일에 가초점입니까?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 가 초점입니까? 정말그래서 아담이 하나님처럼 됐나요? 이 말은 사실상 언어유희입니다. 우리집에서도 얘들이 버릇없게 굴면 네가 애비 해라. 아주 아버지 꼭대기에 있구나 이런 표현을 하죠? 그래서 아담이 하나님같이 됐다는 얘기가 아니죠. 그럼 그렇게 될수가 있어요? 없어요? 아무리 아들이 훌륭하고 잘나고 정말짜증나게 완벽해도 아들이에요. 그냥.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선악과의 문제는 선악과를 먹어서 눈이 밝아지고 판별력이 생기고 그 기능을 갖게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 같이 되려는 시도에걸렸다는 것이 문제에요. 그러니까 아까 이 라반과 브두엘의 이야기 속에서도 뭡니까? 이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 이 일의 최종적 권위자가 우리가 아니다. 이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면 그 일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해를 해야 된다 그 얘기에요. 이것은 최종적 권위와 통치와 질서의 문제지, 선악을 아느냐 모르느냐의기능의 문제나 판별력의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제가 종종 그런 표현 썼죠? 하나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요.이건 굉장히 중요한 질서입니다. 이 땅의 모든 시시비비를 가만히 헤아려 보세요. 전부 누구 잣대와 누구 기준으로 시시비비가 일어납니까? 사람이 만들어놓은 잣대와 기준으로 시시비비가 일어나요. 그래서 탐욕이 생기고 빼앗고 점령하고 나라와 나라 간에 전쟁의요인도 보면 결국 같은 논리에요. 인간의 기준으로. 그러니까선악과의 문제는 하나님이라는 창조주 아버지의 최종적 권위를 인정하느냐 아니면 그분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시도를 하느냐의 싸움이었어요. 거기에 아담이 걸린 겁니다. 그래서 내쫓기죠. 에덴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왜? 에덴의거룩과 그 성소를 훼손시키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 에덴을 닫아버려요.그 위치가 동쪽이에요. 입구가. 그런데 성막이나성소의 구조를 보세요. 정확하게 입구가 동쪽입니다. 그레고리빌의 논리대로라면 이 에덴은 하나님의 거니시는 임재 하시는 공간이요 성전이요 성소였다는 얘깁니다. 그렇게슬픔과 죄와 죽음이 파탄과 시듦과 멸망이 인류 속에 찾아왔어요. 그리고 인류 복지가 무너졌지요. 편중이 생기고 편견이 생기고, 오해가 발생하고 죽음의 칼이 들이대어지고착취하고 빼앗고 분노하고 전쟁하고 세상은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에덴을갈망하며 어디가 완전할까? 어디가 행복할까? 인간 갈망의뿌리가 에덴이에요. 여기가 길일까? 저기가 길일까? 길 찾는 싸움이었어요. 온 인류의 역사는. 그러다가 성전의 주제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무너진 폐쇄되어버린 에덴을 새 에덴으로 어떻게 회복해 나가는가? 거기에 이런 그림이 하나 숨은 그림으로 감춰져 있어요. 2장 4절을 볼까요?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그랬어요. 앞을 보실까요? 그게 답이에요. 내력이라는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톨레도트라는 말을 써요. 성경에는 열 개의 톨레도트가 있어요. 열 개의 내력이 있어요. 그런데 그 내력이 전부 누구에게 일관되게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하면 이 톨레도트 라는 말은 의미는 이렇습니다. 알라드 라는 말에서 파생된 표현인데생명을 낳다. 또는 후손, 역사, 결과 그 뜻입니다. 이 톨레도트.그러면 그 창세기에 걸친 열 개의 톨레도트가 전부 무슨 얘기에요? 후손에 관한 얘기에요. 2장서부터는 땅의 얘기를 하겠다 그랬죠. 하나님께서 구원 계획을여기에 감춰 놓으신 거에요. 누구를 통한 구원 계획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계획을 감춰 놓은 거에요. 세상이 아무리 교회를 폄하하고 조롱하고 손가락질 할지라도성경의 원리 대로는 교회를 통해서만 무너진 성소가, 쫓겨난 아담이 새 하늘과 땅을 얻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 이렇게 설명을 해요. 22장을띄워 주세요. 마지막 글이죠.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자 여러분 보세요. 생명수의 강이 어디로부터 나와요?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나와요. 왜 어린 양일까요? 희생 된 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그림을 어린 양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을통해서, 톨레도트, 후손을 통해서 그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진다는뜻이에요. 그래서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십니다.거기서 흘러 나와요. 그리고 2절을 볼까요?
길 가운데로 물을 따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가 그 열매를 맺고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마지막 날에는 뭐의 회복을 보여줍니까? 에덴의 회복, 새 에덴의 회복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리고 그 잎사귀마다 뭘 치료한다고 되어있어요 죽음과 썩음과 시듦과 환란과 곤고의 테러와 전쟁과 비참함과 굶주림과기근에 처해있던 인류를 치료하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이미 이미 창세기에 선교적 명령을 감추어놓았다고요. 중앙 생명 나무로부터 네 개의 강이 발원하여 흐르도록 되어있죠. 오늘 우리가 그 내용은 건너 뛰었습니다마는 이 네 개의 강은 온 땅을 적시도록 돼있고 여기에서부터, 네 개, 이 4라는 숫자는세상 숫자 아닙니까”? 세상을 적시도록 되어있어요. 뭐의확대입니까 에덴의 완전함의 확대의 사명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확대. 그것이 오늘날 선교의 이름으로 사역으로 나타나는 거에요. 길 가운데로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만국을 치료하기 위해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가 가운데 있으리니 그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밤이 다시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취시니라 그들이 세세토록왕 노릇 하리로다
이 창조의 세계는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전 부 예표적 모형의 그림이었어요. 결국 이 때에 가서는 그
(40:01-42:18)
모든 창조의 세계가 새로워지면서 그들이세세토록 무슨 노릇 하리로다? 실권 된 왕위가 회복이 되고 왕 노릇 함으로써 에덴의 회복으로 끝이 납니다. 이게 창세기의 전부 그림이에요. 창세기와 계시록은 짝을 읽어야 될중요한 그림입니다. 자, 오늘 핵심 가치가 뭐예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더라. 임명했더라그 말이죠. 그런데 그 만 선악과에서 무너집니다. 뭐같이되려다가? 하나님같이 되려다가. 그래서 악과 선을 구분하는기능과 능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최종적 권위를 누구로 사느냐? 내가 왕이 되어 사느냐. 우리는 하나님 흉내 내도 하나님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계속 인간은자기가 왕 노릇 하며 살죠. 돈 있는 사람은 돈이 절대 권력인 것처럼 권력 있는 사람은 그 권력이 절대권력인 것처럼. 아니요. 그래서 세상은 지진이라는 방식을통해서 흔들게 되어있어요. 가끔씩 흔들어 주세요. 하나님께서. 정신 차리라고. 지진이 나면 우리는 먼저 뭘 느낍니까? 이 세상은 영원한 초소일 수가 없구나. 흔들릴 수밖에 없구나. 땅의 기초가 흔들리는 거에요. 결국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 온전하도록지음을 받았는가 최종적 권위자이신 하나님의 통치 밑에 무릎을 꿇어 순종할 때 거기에 가장 온전함과 완전함과 넉넉함과 풍성함과 하늘 나라의 복락이약속 돼있는 겁니다. 또 한주간도 여러분들의 일상 속에 그 최종적 권위의 자리가 온전하게 질서가 서고회복되는 순종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