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5)
기억하시는하나님
창8:1-12
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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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창세기 강해를 시작합니다. 오늘은드디어 노아의 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약 1년 만에 나오게 되는 광경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봐도 유익할 것 같아요. 배 안에는 1년 정도 있었습니다. 총 기간을 합해보면. 그런데 1년 동안은 전체가 살던 마을도 물에 잠기고 가까이 벗하여살던 세상도 다 사라지고 사람도 다 죽었어요. 그리고 천지 사방에는 억수 같은 비 정도가 아니라 밑의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찢어지면서 엄청난 물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끝없는 망망한대해. 거기 외로운 배 하나가, 배도 아니죠. 엔진도 없고 키도 없고 돛대도 달지 않은 나무 상자 같은 이상한 구조물 하나가 둥둥 그냥 떠다니는 거에요.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고. 그러면 노아도 사람일진대 어떤 생각이들겠어요. 물이 없어지긴 하나? 배는 앞으로 어떻게 돼나? 물론 노아는 순종했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한그리고 연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이 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불안과 외로움과 무서운 밤이 끊임없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성경을보시면 8장 1절에
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어떻게 했다고 돼있죠? 기억했다고돼있어요. 여러분 오늘 어쩌면 이 기억했다는 자카르 라는 말은 성경 8장 전체에 걸친 중심 언어가 될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되뇌어 보는 것이 신앙이 유익이 될 것 같아서 한번 같이 따라서 해보겠습니다. 자카르.자카르 이 자카르 라는 말은 오늘 여기 표현 된대로 <기억하다> 란 뜻이에요. 그런데 기억하다 라고 번역이 돼있으니까 뭐 얘기 했던 것을 기억했다던지 어떤 노아의 신앙의 행위를 기억했다던지정도로 이해를 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무엇을 기억했는가 목적어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 이 본문은 주어가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한 키입니다. 주어가누구입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돼있어요. 1부서부터 이것을 성도들에게 설명하는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표현력도부족하고 딱히 도움 될 어휘력도 딸리고 해서 어떻게 설명해 드릴까. 여기서 기억했다 라는 것은 언약을기억했다던지 노아의 행위를 기억했다던지 그런 목적어에 의미가 있지 않아요.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결국 성경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는데 우리 창세기 19장을 자막으로 볼까요?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네, 여러분 이 본문을 찬찬히 보시면지금 구원은 누가 받습니까? 롯이 받죠. 그런데 하나님이롯을 구원하시는데 누구를 생각하셨다고 하나요? 예, 좀 안맞는 거 아니에요? 여기 아브라함을 생각하다 라는 말이 기억하다 에 쓰여진 자카르 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자카르 라는 의미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상식적인 개념과는 사뭇 다른 의미일 수가 있단 말이에요. 대표적인예가 롯을 구원하는데 누구를 생각했다고요? 아브라함을 생각했어요. 그럼간단한 상식을 동원하더라도 롯에게 어떤 이유와 조건과 근거가 있다? 없다? 어느 쪽입니까? 없다. 롯에게는전혀 건져냄을 입고 구원함을 입을만한 근거나 조건이나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럼 왜 아브라함을생각하셨는가? 이게 자카르란 말이에요. 기억했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어요. 그 언약의 핵심이 뭐냐 하면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씨라 칭함을 받으리라. 그 사람이 이삭입니다.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자기 힘으로, 실력으로 낳은 아들이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얻어진 아들이에요. 그래서 이삭이 아브라함의 씨에요. 그런데거기서 동원 된 씨라는 단어가 단수를 썼습니다. 이것은 오직 한 분을 얘기하는 거에요. 이삭의 혈통을 통해 누가 오도록 약속 돼있습니까? 아시는 대로 그리스도가오시도록 약속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19장을 다시 한번 띄워주세요.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심판 받아 마땅할 도성이죠? 하나님이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의 구원은 결국 누구를 말미암아 조건이 되는 겁니까?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롯이 구원을 받는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기서 사용하시는 자카르, 생각하다 라는 말은 조건과이유와 근거가 없다 그 말이에요. 한 군데만 더 볼까요? 창세기30장을 띄워 주세요. 읽습니다. 시작.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야곱의 가정 스토리인데 야곱에게는 실질적으로 두 아내가 있었어요. 원래는 여기 등장하는 라헬을 사랑했죠. 그런데 아버지가 수를 써가지고그냥 이때 이 큰 딸을, 어떻게 세상 말로 좀 처분 안 하면 얘는 좀 힘들겠다 해가지고 야곱을 속입니다. 그래서 졸지에 두 아내를 얻게 돼요. 그런데 언니는 원했던 자매가아니었어요. 이 라헬은 유독 야곱이 사랑했던 아내입니다. 그런데문제는 애기가 없어요.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라헬을 어떻게 하사 라고 돼있어요? 생각하사. 그 생각했다는 말이 자카르에요. 여기에는 이유나 근거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우리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한번 들어보고 이해가되면 끄덕여 주시면 됩니다. 적합할지는 모르겠어요. 누가지나가다가 쑥 들어와 가지고 선물을 하나 놓고 가요. 이게 뭐예요? 했더니아주 따뜻한 겨울에 입을 옷인데, 놓고 가면서 하는 말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냥 백화점 갔는데 너무 따뜻해 보이는 옷이 있어서 당신 생각나서 그냥 사왔어요. 거기 이제 우리 말에 애매하면서도 여러 가지로 적용되는 그냥 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그냥. 자, 이것은 생일때문에 사올 수도 있고 결혼 기념일 때문에 사올 수도 있지만 그냥 당신 생각나서 사왔어요 라는 이러한 것은 뜻밖에 기분이 유쾌하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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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물은 이유나 조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말 그대로 정말 그냥이에요. 자, 그런데 100% 하나님의마음을 담아낼 수 없는 비유이긴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셨다는 것은 강조하고 싶은 초점이 뭐냐 하면 조건이 없었다. 내 쪽에 그 기억함을 받는 대상이 되는 내 쪽에 기억 될 만한 이유나 조건이나 근거가 없었다 그 말이에요. 그렇게 기억하신 거에요. 우리를.그리고 1절을 다시 보세요. 이렇게 돼있습니다. 기억하사 그리고 이제 그 기억을어떻게 펼쳐 내시는가를 세 가지 차원에서 좀 접근을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1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자 앞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첫 번째로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행위가 뭐냐 하면 이 땅에 물을 점점점 감소 시키는 작업이셨어요. 자, 우리 지지난 시간에 창세기 강해를 하다가 물 또는 바다는 뭣의 상징이라고 성경 속에서 말씀 드렸죠? 물, 바다는 심판 또는 환란, 고난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태웠던 배가 바다 한 복판에서 풍랑에 고생을 하죠. 또 시편 107편도 그런 기사가 등장을 했고 어쨌든 성경에서 바다라는 것은 세상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상징인 물로 하나님이이 땅을 심판하신 거에요. 홍수로.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그런데 지금 그 심판의 상징인 물이 점점점 감소했습니까? 차츰 감소했습니까? 한꺼번에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차츰 차츰 점점점 감소가 돼요. 그런데 그 점점점 감소되는 물이하나의 결과라면 물이 감소되는 게 결과에요. 원인은 뭐예요? 여기보니까 바람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1절 하반절에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물이 줄어든 건 결과입니다. 그런데무슨 결과로 물이 줄어들었습니까? 바람이 불므로. 보통 고대세계는 항상 물을 말린다, 물을 흡수한다 할 때는 태양이 등장합니다.그리고 우리 일상 속에도 어머니들이 그런 경우가 종종 있죠. 해가 쨍쨍 나고 해가 좋으면볕이 좋으면 젖은 빨래 좀 가지고 나와라. 널자. 볕이 너무좋다. 그래서 태양은 인간의 삶의 에너지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고대 시대로부터 모든 나라들마다 빠지지 않는 중심 신이 누굽니까? 태양신이에요. 바로라는 이름도 그렇고 애굽 제국도 그렇고 바벨론도 그렇고 앗수르도 그렇고 모든 열강과 제국은 항상 그 중심신이 태양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성경 기자가 물이 줄어드는 것을 태양의 기능과 역할의 결과로결부시키지 않기 위해서 여기 해가 등장하지 않아요. 물이 줄어드는데.그런데 대신 뭐가 등장합니까? 바람. 그런데여기 쓰여진 바람은 루하흐. 이게영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그게 루하흐에요. 어디에 운행하셨어요?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그 결과가 어떻게 됐죠? 물은 물로 모이고 뭐가 드러났습니까? 뭍이. 땅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 결과가 뭐의 원인이었어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것이 원인이었어요. 여기서 소용되고있는, 쓰여지고 있는 이 하나님의 영을 상징하고 있는 바람은 그런 의미에서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그 단어가 루하흐입니다. 영. 그 바람이 불자 심판의 상징이었던 물이 땅에서 점점점 말라져 가고 감소되어 가다가 14절 즈음에는 완전히 말라집니다. 14절 한번 같이 읽을까요? 시작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네,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여기 말랐다는 말은 어느 정도의 마른 것을 얘기하냐 하면 물이 하나도 없는, 여러분 이와 비슷한 놀라운기적이 뭡니까? 홍해 사건이에요. 홍해가 물이 양분되어 갈라집니다. 물이 갈라졌다고 해서 그 밑바닥을 바로 건널 수가 없죠. 물기가젖어있기 때문에 질퍽거리고 빠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밤새 뭘 불게 하셨습니까? 바람이에요. 햇빛을 쪼여서 말리신 게 아니에요. 바람을 불게 하셔서 그 바다 밑바닥을 말려 버립니다. 그리고 마른땅으로 건넜다고 성경 기자가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어요. 자, 그러면이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모든 심판을 제거하시는 것으로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생각하십니다. 은혜를 주기 시작하시는데 두 번째 기능이 뭐냐 하면 노아가 두 마리 새를 날려요. 첫 번째 날렸던 새가 뭡니까? 까마귀에요. 그리고 두 번째 날렸던 새가 뭐죠? 비둘기입니다. 까마귀는 안 돌아왔어요. 그래서 자주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까마귀고기를 먹었냐 그러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확실치는않으니까. 그런데 일본에만 가도 까마귀는 길조입니까? 흉조입니까? 까마귀가 재수없는 새로 치부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래서아주 성경적인 나라인가? 뭐 그건 또 아니에요. 까마귀는엘리야를 먹여 살리기도 했어요. 이제 이 까마귀와 비둘기의 의미가 뭘까를 여러 자료를 찾는 가운데 너무너무재미있는 자료들을 많이 발견했어요. 그래서 아주 어떤 제목은 이렇게 해놨더라고요. 까마귀 같은 신자, 비둘기 같은 신자. 대충 결과가 이미 나오죠? 그리고 까마귀를 또 돌아오지 않는 탕자로묘사하기도 하고. 좀 읽다 보니까 까마귀가 너무 딱해. 그리고비둘기가 너무 과대포장 되지 않았나 하는 얄미운 생각도 들고.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으로 얹어져 있는까마귀나 비둘기에 대한 이해를 다 내려놓고 이걸 좀 생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그런 접근을 통해서 까마귀의 명예를 회복해 주고 비둘기에게 얹어진 과대 포장을 벗겨 줌으로써 과연 이 새를 날려 보낸 의도가 뭔가를 생물학적으로좀 접근해 보자고요. 저는 간간히 들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한때 새 장사를 했던 적이 있어요. 새를 잡기도 해보고 키워 보기도 하고 알을 부화시키기도 해보고 암수 구분 하는 법도 배우기도 하고, 새를 잡으러도 다니고 이런 일을 좀 오래 전에 한 일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비둘기와 까마귀는 까마귀가 훨씬 멋지게 생겼습니다. 빛깔이라든지 자태라든지 까마귀가 훨씬 멋져요. 비둘기는 일단 감람나무 잎 하나 물고 온 것 때문에 평화의 상징 뭐 그래 가지고 너무 지나친 대우를 역사적으로받아왔어요. 자, 여러분 비둘기 한번 키워 보신 적 있나요?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비둘기 우는 소리를 들어 보세요. 세상재수 없어요. 정말입니다. 왜 까마귀를 먼저 날려 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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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둘기는 왜 뒤에 날려 보냈는가? 이두 종류는 양식을 찾는 종류도 다르고 서식처가 달라요. 까마귀는 높은 곳에서 삽니다. 그래서 자연히 그들은 먹이감을 높은 지대나 지역에서 찾곤 합니다. 자, 지금 이들을 날려 보낸 노아의 의도가 뭐예요? 물이 얼마나 감소했는가를알아 보려고 이들을 날려 보낸 거에요. 그럼 비둘기 먼저 날려 보내는 게 상식이었어요? 까마귀 먼저 날려 보내는 게 상식이었어요? 까마귀를 먼저 날려 보내죠. 그러니까 이놈들이 안 돌아왔단 말이에요. 이걸 또 어떤 해석을 보니까이 까마귀란 놈들은 이미 다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들만 쪼아먹는 더럽고 부정한 거라고. 이건 좀 의역이죠. 그걸 우리가 우화적 해석 내지는 알레고리라 그래요. 다 죽은 것밖에없는데 죽은 거 먹지 뭐 먹겠어요. 그런게 아니고 까마귀는 높은 지대에 서식하거나 따라서 높은 지대에서먹이를 찾습니다. 반대로 비둘기는 계곡 밑이나 저지대에서 살거나 서식을 하거나 따라서 저지대의 음식을먹곤 합니다. 당연히 비둘기는 뒤에 내보내겠어요? 앞에 내보내겠어요? 뒤에 내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기는 비둘기도 나중에 돌아왔어요? 안 돌아왔어요? 안 돌아왔단 말이에요. 그 의미는 뭘까요? 이제 이 땅의 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싹이 돋을 정도의 사람이 살만한 땅이 되었다는 반증이란 말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는 그냥 노아에 의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용 된 것뿐입니다. 거기다가 너무 지나친 의도적 해석을 해서 까마귀 신자, 비둘기 신자를나누지 말고 이 지면에 심판의 상징이었던 물이 어디까지 사라지고 말랐는가를 확인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어요. 그런데14절에 보니까 이렇게 돼있었죠.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여기에 말랐더라 라는 이 단어는 완전히 물기 없이 마른 상태를 얘기하는 겁니다. 즉, 그 말은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히 거두어졌어요. 자, 그러면 세 번째로 이렇게 해서 이들이 방주에서 완전히 나옵니다. 자, 몇 절을 보시냐 하면 16절을보세요.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다끌어내라 19절 다같이 시작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나왔더라
네 이제 심판이 끝났어요. 홍수가 끝난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7장 1절을 한번 볼까요?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건 누가 하신 말씀이죠? 하나님이하신 말씀이에요. 그리고 8장 1절에 보니까 다 나와라. 다 이끌어 내라. 누가 하신 말씀이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이 심판의 시작과 끝이 누구의 말씀 속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속에 있었어요.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심판이라는 내용도 중요한 내용이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그 모든 과정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고 다가오실 때 그것을 사용하신 method가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시작하셨고 하나님의말씀으로 심판을 마치게 하십니다. 말씀의 방식을 통해서 노아의 가정의 구원을 이루시고 시작하시고 완성해가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이 제일 먼저 했던 게 제단에다가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우리 지지난 주 창세기 강해 속에 8장 20절을 근거로 이런 질문을 했던 거 기억하실 겁니다. 이왕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일소하시려고, 정결케 하시려고 마음을 가지셨다면이참에 방주로 들어가게 하실 때 부정한 것들은 아예 제쳐 놓고 정결한 것들만 데리고 들어가면 훨씬 쉽게 세상이 정화될 텐데 부정한 것, 정결한 것을 같이 데리고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런데 실제 목적은어디 있었다고요? 부정한 것에 있었다고요. 그 부정한 것은누굽니까? 우리에요. 노아에요. 그것들을 살리려고 정결하고 흠이 없는 짐승을 데리고 들어간 거에요. 그리고홍수가 끝나니까 그 정결한 짐승들은 노아라는 예배자에 의해서 뭐가 되어 지금 누워져 있습니까? 제단의제물이 되어 누워져 있어요. 이 정결한 짐승의 최고의 샘플은 누구세요?어린 양 그리스도에요. 그러니까 노아가 이 전체 홍수 심판의 마침표를 뭐로 찍습니까? 다가 올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으로 마침표를 찍는 거에요. 노아가어떤 구원 받을만한 이유나 근거나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카르,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 된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구원이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이 제사는 그런 다가 올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적으로하나의 아이콘을 구약에다 만들어 놓은 거에요. 그걸 클릭하면 열어지는 창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구속의 피가 뚝뚝뚝 보여지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알 듯 모를듯한 한 마디를 남기십니다. 그 제사를 드리는 노아를 보면서 이런 얘길 하세요. 21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제사를 받으셨죠? 그 중심에 하나님 혼자 생각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앞뒤가 잘 안 맞죠? 다시는심판하지 않겠대요. 요지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다시 심판하지 않겠대요. 그럼 버리겠다는 얘길까요? 그 얘기가 아니죠. 이제 이와 같은 심판으로는 다시 멸하지 않겠다. 나는 이제는 특별한방법을 간구할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그 특별한 방법이 무슨 방법이에요? 제단에 어린 양이 죽어지는 다가올 십자가의 갈보리 언덕의 사건을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21절 끝에 보면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돼있죠?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악하면한 번 더 심판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안 하시겠다는 거에요. 왜? 인간은 그래서 개선되거나 고쳐지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흠 없는 정결한 어린 양을 십자가에다가 대속의 제물로 내어 놓으시는 겁니다. 이게 언제부터시작이 되었어요? 하나님의 자카르. 기억하심 에서부터 시작이되었어요. 그 기억하심 때문에 우리와 9장에 가서 무지개언약을 맺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자카르의 기억은, 하나님이우리를 기억하셨다는 말은 언약보다 더 앞선 본질적 개념이에요. 그 기억하심 때문에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고아들을, 정결한 짐승을 내 놓으셔서 부정한 우리들을 살리신 겁니다. 그게노아 방주 사건이에요. 믿습니까? 그게 노아 방주 사건이에요. 신앙은 한마디로 귀결 하자면 이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문제 문제마다 사연마다 기억해 주시면 되요. 하나님의 자카르. 거기서하나님은 직접적 행동을 하신 다고요.
(30:01-33:14)
그게 뭡니까? 아들 예수 그리스도, 정결한 짐승을 노아가 제물로 드렸듯이, 그래서 노아의 이름이 갖는의미가 안식이라는 의미에요. 그래서 노아는 안식을 입는 거에요. 진정한안식을 입는 거에요. 사랑하는 우리 삼일의 성도님들, 첫째는 하나님의 자카르가 여러분의 신앙 속에 매일 매일 절절히 경험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방주를 생각할때마다 왜 그 안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왜 같이 태웠을까? 어린 양의 죽음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 사건 앞에 만난 적이 없는 성도는 참된 성도일 수 없고 교회일 수 없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지금 대한민국은 어쩌면 방주에 떠있는, 세상에 떠있는, 이 바다 같아요.어디로 가야 될지 몰라요. 방향도 잃었고 답답하고 깜깜하고 두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져 있습니다. 요즘은 저절로 기도가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하나님이 이 한국의 교회를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런상황은 하루 아침에 발생한 게 아니에요. 이미 씽크 홀 신드롬이 있었어요. 그런데 무너지기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이미 밑바닥에 엄청난 역사의 시간을 통해서 갉아먹었던 텅 빈 공허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 위에 세워진 거에요. 이게이제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그냥 주저앉는 거죠. 그 지경을 지금 만난 거 아닙니까? 희망이 없는 건가? 그렇지 않아요.하나님이 다시 한번 이 시대를 기억해 주시고, 하나님이 다시 한번 조국의 교회를 기억해주시고 이 나라를 기억해 주신다면 또 내 슬픔, 내 분노를 기억해 주신다면 거기서부터 기적과 회복은소망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자카르, 그 분이 내 인생의 주어가되고 여러분들은 기억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일어나십시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