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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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 요한복음 7장을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지난 주까지는 예수님에게 인간이 다가갈수록 무지만 드러났어요. 인간이 스스로 예수님을 알기에는 얼마나 실력이 안되고 영적으로 무지한 존재인가 이것이 지난 주까지 요한복음7장의 전체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그 무지에 대한 마지막 끝부분을우리가 살펴 보면서 오늘 본문으로 좀 넘어가겠는데요. 우선 문맥상 흐름을 위해서 33절을 좀 보시기 바랍니다.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께서 조금만 너희들과 같이 있다가 머지않아 나 있는 곳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신 거에요. 그런데 여기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35절 다 같이 읽을까요?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네, 지역적인 공간이동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청중들은. 그러니까 그 무지의 막바지를향해서 청중들은 자기들의 그 무지한 모습을 더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얘기였는데, 아니 어디로 가기에 저러시나? 이방 땅에 선교하러가시나? 이 얘기를 한 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 놀랍고도 신비로운 아이러니가 감춰져 있어요. 하나님은때로는 우리의 허물, 실수, 연약함 심지어는 불신과 거역까지도활용하셔서 그분의 뜻을 이뤄가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청중들은잘못 알아들었어요. 분명히. 어디 이방 땅에 가셔서 선교하시나?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그 무지가 실현됩니까? 실현되지않습니까? 실현됩니다. 예수님이 직접 이방 땅을 가셔서 선교하신것은 아니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겨놓은 제자들이 땅끝을 향해서 복음의 문을 열고 이방 땅으로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이게 하나의 아이러니에요. 예를 들면 구약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사자들이아브라함을 방문했을 때 아브라함이 융숭히 접대를 하니까 축복을 선언하죠? 내년 이맘때쯤 이 집에 생명이있을 것이다. 그걸 장막 뒤에서 사라가 듣고 웃었어요. 참, 주책들이네. 아니 내가 지금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러니까 나무람을 받죠? 네가 웃었다. 아니 안 웃었는데요. 살짝 거짓말을 해요. 아니다 네가 웃었다. 그런데 정말 1년 후에 사내 아이를 주시죠. 그 이름이 누굽니까? 이삭이에요. 이삭의 이름 뜻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웃게 하시다. 이게 하나님의 아이러니에요. 역설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허물, 연약함, 반역, 불신까지도 활용하셔서 꿋꿋하게 그 분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는 겁니다. 어쨌든여기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문맥상 인간의 이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무지가 얼마나 막바지에 가있는가 확인하게 돼요. 그리고 나서 오늘 주제가 성령에 관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뜬금없이성령에 관한 주제가 왜 나왔을까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자가 없기에인간이 더듬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스터디 하거나 깨달아서 도를 닦아서 예수 그리스도를믿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오로지 누구의 역사만이? 성령님의 역사만이 그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순서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무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내시면서 그 다음에 성령님의 기능과 역할을 말씀하시는 거에요. 자 그런 차원에서 이해를 좀 넘어가 보자고요. 37절을 보시겠습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여기 명절 끝 날은당연히 초막절을 애기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말씀하십니다.두 가지를 얘기하셨어요. 누구든지 라는 표현과 목마르거든 이라는 표현이에요. 우리가 번역 성경을 읽어보니까 이게 그냥 평범하게 들려지거나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고도의 예수님의 배려가 절절이 담긴 의도적 표현이에요. 두가지를 안 하셨어요. 특정 대상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번째는 특정 주제를 구분하지 않으셨어요 우선 첫 번째, 누구든지 입니다. 가난한 자든지, 부유한 자든지, 배운자든지, 못 배운 자든지, 센터에 있는 자든지, 저 변두리에 있는 자든지, 장애를 가졌든, 장애를 갖지 않았든, 소외된 사람이든 아니든 망라하고 누구든지 입니다. 저는 이 누구든지 라는 평범해 보이는 예수님의 배려 섞인 단어 앞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거기에 누가 있는 거죠? 송태근 하나가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결국 이 말 속에는 예수님과 내가 있는 거에요. 1대1. 예수님과 여러분들이 있는 거에요. 믿습니까? 그런데 표정을 그렇게 하고 계시면 안돼요. 이 성령께서 이 시간우리의 지혜를 여실 때 이런 평범해 보이는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할 때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내 영혼을 훑고 지나가야 해요. 그렇구나, 그렇구나. 여기에내가 초대되어 있구나. 누구든지. 제가 시간이 된다면 여기앉아있는 분 눈을 한 사람, 한 사람 맞추면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누구든지. 믿습니까? 결국이 표현 속에는 주님과 내가 있다고요. 1대1로.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초대에 내가 1대1로 초대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누구든지. 두 번째는 목마르거든.자 여기에서도 특정 주제를 담았어요? 안 담았어요? 안담았어요. 제 목마름이 다르고 여러분들의 목마름이 달라요 그리고 놀랍게도 신앙 생활을 깊이 한다면 할수록더 세속화 되어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신앙생활을 깊이 하면 육은 더럽고 영만 깨끗한 것으로 오해를 가져요. 이건 소위 영지주의적인 뿌리입니다. 육과 영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사고죠. 성경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없어요. 우리는 이 땅을 딛고 있고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까닭에 때로는 육체적인 물질적인 곤고함 때문에절절할 때가 있어요? 없어요? 너무 많죠. 떡의 문제 때문에. 삶의 문제 때문에. 이것이 영과 분리될 수 없는 문제라고요. 이것이 절실하고 팍팍할때는 영혼이 곤비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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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은 여기서구분하지 않고 목마르거든 보통 표현을 쓰셨어요. 그러면 이 속에는 너의 고민, 나의 고민이 구분되지 않고 영과 육의 목마름이 구분됐다는 얘깁니까? 안됐다는얘깁니까? 안 됐다는 얘기에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예수님은 어떤 인생의 죄래도 해답을 갖고 있는 분이시기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말 속에는 무슨 의미가 감춰져 있나요? 결국그 분에게 모든 대답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든지. 두번째는 뭐죠? 어떤 특정 주제가 아니라 어떤 문제든지 목이 마르거든.목이 마르거든. 이 광범위한 초대 속에 내가 있고 내 삶의 문제가 초대될 수 있다는 감격이이 부름 앞에 있는 거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여러분, 그 다음에 본문을 좀 보십시다. 38절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자, 앞을 보십시다. 여기서 그 배는 믿는 자들의 배입니까? 예수님의 배입니까? 대답을 머뭇거릴 줄 알았어요. 뭔지 느낌에 예수님의 배라 그래야 답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그 배는 믿는 자의 배입니다. 문법을 상식선에서 한번 보세요. 다시,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그러면 그 배가 예수님이 배에요? 믿는자의 배에요? 순리적으로. 고민할 것 없잖아요. 모든 걸 예수를 갖다 붙여야 답이 되는 건 아니에요. 자, 그리고 나서 39절을 보시면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뭐를 가리킴이라?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자, 그러면 무슨 얘기가 됩니까? 나를 믿는 자는 여기서 나는 당연히예수님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이라는 이 용법은 요한복음에 40회이상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런데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뭐가 흘러 나온대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대요. 그럼 그게 더더욱 흠칫 말이 안 될 것같아요. 나같이 누더기 같은 인생 속에 뭐가 나올 게 있다고. 내게서생수의 강이. 더군다나 생수의 강이 여기서 뭘 표현 했죠? 성령을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래요. 그러면 논리적으로는 이 어법이 무슨 얘기가 되냐 하면 내 배에서 성령이 흘러나온다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배가 코이리아 라는 헬라 말을 썼어요. 코이리아. 그런데이 코이리아와 동의어가 뭐냐 하면 카르디아 라는 말을 써요. 이 카르디아는 심령, 마음입니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배라는 것은 심령을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심령에서 뭐가 흘러 나온다는 거에요? 생수의 강이. 그런데 생수의 강은 뭘 가르쳐요? 성령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러면 언뜻 동의가 돼요? 안돼요?동의가 잘 안돼요. 어떻게 나 같은 흠 많은 존재로부터 감히 성령이 흘러 나올까요? 자, 그래서 이 부분을 조금 정확하게 이해하고 오늘 내용으로 들어갈필요가 있는데 에스겔서 47장을 좀 띄워 주세요. 몇 절읽다가 좀 건너 뛰겠습니다. 12절까지 읽어야 하니까
그가 나를 데리고, 에스겔 선지자겠죠? 성전 문에 이르게 됩니다.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뭐가 나와요? 물이 나와요. 물이흘러 나와요.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또 남쪽으로 흘러 가요. 이게 나중에는 또 북쪽으로 흘러 가요. 계속 천지사방으로 이 물이문지방에서부터 흘러 나와 흘러갑니다. 그러면 구약의 모든 성전은 누구의 모형입니까?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에요. 그러면 직역을 하면 누구에게로부터물이 나오는 거죠? 예수에게로부터 물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그 물은 신약의 오늘 본문에 보니까 생수의 강이 되어서 뭘 가르치는 것이라고요? 성령. 성령을 가리키는 거래요. 그 물이 흘러서 9절쯤 건너갑니다.
9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생물이 살고, 그러니까 이 성령에 해당하는 물이 흘러가 맞대 이는 곳마다 죽었던 땅에 열매가맺히고 땅이 살아나고 뿐만 아니에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뭐가 되살아 나겠고? 바다, 바다. 성경 전체에서 바다는 세상의 상징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바다에서 오만 더럽고 악한 것들이 다 일어나요. 그것은세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래요. 폭풍우를 비교할 때 바다에서 일어나죠.세상의 상태를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바닷물이 되살아 난데요. 뭐가 될 때? 성전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물이 바닷물을 되살리는, 세상을 되살리는 거에요. 그리고 이 강이 흐르는 각처의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살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모든 어종들이 다 살아나요. 그 다음에 마지막 12절로 건너 뜁니다.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 나무가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오니라. 그 열매는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그 물이 어디를 통하여나오죠? 성소. 성소는 성전의 가장 핵심 위치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핵심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성소에요. 그 성소로부터물이 흘러 나와요. 그리고 강이 되어서, 생수의 강이 되어서대어지는 곳마다 다 회복과 치유와 소성함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죽으신 다음에 부활하셔서아직도 여전히 두려워 떨고 어느 한 집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뭘 받으라? 성령을받으라 그랬어요. 성경에는 하나님이 숨 쉬는 장면이 딱 두 군데 나옵니다. 처음에 창세기에 보면 아담을 흙으로 빚었어요. 아직 흙덩어리에요. 그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으십니다. 이게 첫 번째 하나님이 숨쉬는장면이에요. 그러자 그가 뭐가 됐어요? 산 영이 되는 거에요. 온전한 사람이 됐어요. 이게 첫 번째 창조에요. 그런데 이 아담은 죄가 들어오고 교만에 빠져서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이 아담의 형상을 가진 죄인의 몸을 입고 예수님이 둘째 아담으로 오신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첫 사람의육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이 슬픔에 빠진 땅의 인간들에게 재 창조를 위해서 제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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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그 제자들은 나중에 무슨 공동체가 되죠? 교회 공동체가 됩니다.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이건 뭐죠? 재창조의 역사에요. 성령님은 그 출처가 누구로부터 나오는 겁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거에요. 그 예수님에게로부터 나온 성령님이지금 누구의 마음에 부어졌습니까?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부어진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 누가 내주하고 계시죠? 성령님이 내주하고계세요. 나는 내 삶을 보면 내주 안 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자기 느낌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눈이 열리고 심령이 새로워져서. 우리가 그분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단,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충만은 달라요. 아직 충만치 못한 상태일 뿐이지우리에겐 여전히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세요. 그런데 이것이 흘러 생수의 강이 되어 넘쳐 흘러 가려면 내안의 이 성령님이 어떡해야 할까요? 충만해야 흐른단 말이에요. 지금나 하나 버티기에도 깔짝깔짝한 상태라면 이게 흐를 수 있을까요? 흐르지 못할까요? 흐를 수가 없어요. 물론 여기서는 비유하건대 성령님을 양으로 비유했지만이건 상태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38절을다시 보세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그심령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시니. 흘러 나올 때는 언제 흘러 나온다고요? 이게 충만해 있을 때 흘러 나온다고요. 믿습니까? 그렇다면 정확하게 여기에서 그 배는 예수님의 배를 가리킵니까? 신자들을가리킵니까? 그렇죠. 믿는 자, 신자를 가리키는 거에요.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 앞에 눈 떠야해요. 첫째는 인간은 이 앞 부분까지 얼마나 영적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다가가 찾기에는 수준이 불가능한존재인가를 들통 났어요. 그래서 누가 오셔야 된다고요? 성령님이오셔야 된다고요.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이제는 충만해져서어떻게 해야 된다는 명령이 함께 담겨있는 겁니까? 이것이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처럼 흘러서 어둠의땅에, 죽음의 땅에, 생명 없는 곳에 흘러가 그것들을 살려내야 된다는 거에요. 이걸 우리는 뭐라고 표현을 하죠? 선교적명령이라고 표현하는 거에요. 이 속에는 무슨 명령이 담겨 있는 겁니까?선교적 명령이 담겨있는 거에요. 이번 특새 주제처럼 온 땅이여 하나님을 예배하라. 온 죽음의 땅에,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에 우리 성도들의 걸음을통해서, 순종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애굽 한 사람 때문에기근의 한 역사가 먹고 살았던 것처럼 살아가는 역사, 회복하는 역사,치유되는 역사가 나타나야 된다고요. 그 명령이 이 속에 담겨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런데 이 성령님이 임할 때 반듯이 따라다니는 공식 같은 환경이 드러납니다. 분열이 일어나요. 분쟁이 일어나요.갈등이 일어나요. 볼까요? 40절.
40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어떤 사람은 참 선지자다 이렇게 표현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다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지역적인 편견에 붙들려서야, 그리스도가 그런 갈릴리 촌구석에서 나오겠느냐? 지역주의는이때도 있었어요. 그 경상도에서 그 촌구석에서 무슨 그리스도가 나오겠느냐? 이 지역주의는 인류의 영원한 고민이에요. 그러자 이런 얘길 이어서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이 사람들은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죠. 율법주의자들이니까.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 틀립니까? 맞습니까? 정확히맞는 정보에요. 문제는 여기서 아이러니가 벌어져요. 율법에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데 그 앞의 그리스도를 못 알아봐요. 교회 안에 이런 자들이많죠. 어릴 적부터 성경 달달달 외우고 정확한 성경의 지식을 알고 있고, 율법 율법 하는데 정작 가슴 한 복판에 어느 날 천둥을 만난 듯 예수를 만난 경험이 없어요. 이 사람들은 얼마나 정보가 정확합니까? 그리스도에 관한 한 다윗의씨, 그가 살던 마음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날 것이다. 그런데그 분이 그 앞에 있잖아요. 그런데 못 알아봐요. 얼마나역설입니까? 뿐만 아니에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잡으려했어요. 44절 같이 읽을까요?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이것 또한 얼마나역설입니까? 잡으려 했지만 손을 델 수가 없었어요. 잡으려하면 잡으면 될 거 아니에요. 손을 델 수가 없었어요. 이말이 얼마나 중요한 얘긴지 아세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가는 여정은 이들이 물리력으로 체포해서 고문을하고 채찍질을 하고 피동적으로 끌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보면 주께서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도 손 댈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 말은 무슨 뜻이 되냐 하면 십자가로 가는 모든 여정은 주님이 스스로 자신을 내어 놓으신 길이었다는것을 설명합니다. 잡으려 했으나 손댈 수가 없었어요. 그권위에 찬 영광스러운 말씀 앞에 누구도 감히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의십자가의 길은 인간이 물리력으로 붙잡아서 체포하고 고문하고 매단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춰 스스로 자신을 내어 놓으신길입니다. 자, 장면은 바뀌어서 빈손으로 이들이 돌아 갑니다. 45절
45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그러자 이 하속들이 아주 신기한 대답 하나를 꺼내 놓습니다.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것처럼 말하는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자, 여러분 앞을 보세요. 이거 무슨 얘깁니까? 잡으러 보냈더니 잡혀가지고 왔어요. 뭐에 잡혀 온 겁니까?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붙들려 왔어요. 이 하속들이 목숨 걸고하는 얘깁니다. 어르신들 우린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그런 영광스런 권위에 찬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잡으라 보냈더니 잡혀가지고 온 거에요. 여러분 이건 뭘 설명하고 싶은 거죠? 결국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만이우리는 그 무지를 열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실증적인 열매로써 뜻밖의인물이 등장합니다. 50절을 보세요.
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누가 등장 합니까? 니고데모가 그들에게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잘 들어 보세요. 우리 율법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니까 율법 잘 알죠?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이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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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에 보면 아무리악한 죄를 진 피고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 않고 재판하거나 처형하는 것은 금하도록 돼있어요. 이건율법사들이 다 알아요. 당연히 니고데모도 알아요. 그러면이 말이 니고데모가 지금 누구를 옹호하고 있는 겁니까? 네, 예수그리스도를 옹호하고 있는 거에요. 뜻밖에도. 요한복음 3장에 등장했던 첫 번째 등장은 예수님에게 얼마나 대단한가 거의 시비조로 와서 따졌던 사람이에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가 거듭나야 되겠다.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아무도 내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자가 없다.그러자 니고데모가 아주 바보 같은 대답을 하나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써 꺼내 놓죠. 내 나이가몇 살인데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 그랬던 니고데모가 웬일로 예수님을 이 위험한자리에서 변호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전체에서 니고데모는 세 번 등장합니다. 마지막 등장 장면을 한번 보십시다. 요한복음 19장 38절을 한번 띄워 주세요. 같이읽습니다.
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39 일찍이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몰약과 침향 섞은 것은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놀랍게도 가장 위험한자리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래를 준비해서 시신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돼있는 겁니다. 자, 영적으로 까막눈이었던 니고데모가 그것도 선생님이 십자가에 처형된그 직후에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는 대범한 태도를 드러냅니다. 누가 하신 역사겠어요? 성령님이 하신 역사에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주를그리스도라 시인도 고백도 할 수 없다는 거에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두 가지 명제 앞에 서야 됩니다. 첫째는 성령님 내 인생 속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임재를 넘어 충만한 붙들림이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내 육신대로아직도 예수 믿은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발목까지 차서 내 마음대로 아직도 무릎까지 차서 내 마음대로, 아직도허리까지 차서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나를 완전히 제압하시고 나를 덮으셔서 성령이 나를 사로잡아 내 안의 충만해진 성령님이 생수의강이 되어 흘러가서 땅끝까지 어둠의 땅에 죽음의 일터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회복하고 살려내고 치료하는데 쓰임 받는 걸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온 땅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까지 쓰임 받는 인생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백과 사모함과 기도의 제목이 오늘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다시 한번 피어 오르는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일어나십시다. 성령이오셨네 우리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