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7)
꿈의충돌
창37:1-11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아내들 빌하와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말하더라
3 요셉은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형들이 아버지가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들으시오
7 우리가밭에서 곡식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다시 꿈을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그의 꿈을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형들은 시기하되그의 아버지는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00:00-10:00)
이번주간에 어느 분이 힘겨운 목회 현장의 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어요. 목사님 제가 이러려고 이 교회에온 것이 아닌데 하면서 쭉 사정과 정황을 이야기 하는데,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이분이 겪었더라구요. 뭐 그건 또 남의 교회 이야기니까 우리가 소상히 말하는 게 또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이 정도로 하고 제가 말끝에힘들어 하는 후배를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것 때문에 당신 부르셨는데 그 힘든 자리니까 당신을부르셨는데, 당신이 해야 될 역할이 딱 하나 있다면 비바람이 불어도 그 자리에 서서 그거 잘 감당하는것이 지금 당신의 소명입니다. 라는 말을 했어요. 그리고오후에 교역자들 전체 금요일 마다 미팅을 하거든요. 간단히 그 얘기를 되돌려서 하면서 우리 교역자님들에게도그런 마음을 좀 나눴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참 목회를 잘하고 싶고 목회를 참 감동스럽게 하고 싶고, 폼 나게 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있다. 근데 그것도 내려놔라. 목회가 어떻게 다 폼이 나고 영광스럽고 감동스럽겠냐? 어쩌면 그건우리의 기준과 우리의 욕심일수도 있다. 하나님은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그랬고 자기자신을 부인하라고 했지, 폼 나고 감동스럽고 영광스러운 목회를 하라고 그러지 않았다. 모두가 참 동감은 하는데 그 말 자체가 참 힘든 말이죠. 어쩌면똑같은 이야기를 오늘 이 밤에 여러분한테 하게 될 겁니다. 지금 세워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이 시간이 시대에 나에게 맞긴 그 위치적 역할은 뭘까 그것을 보는 거죠. 자 오늘 여러분들하고 좀 창세기 37장을 열어서 보고 싶은데요. 뭐 너무 유명하고 너무 익숙하고 너무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죠. 여러분 생각에 만약에 내가 오늘 이 밤에 여기 서서 말씀을 준비하고 설교를준비하는 설교자로 섰다면 이 문단을 제목 하여 뭐라고 붙이고 싶습니까? 나 같으면 이 문단 이 내용정도면이런 제목을 붙이고 싶다. 아 그럴 리 없으니까 혼자 하세요. 그래도그래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뭐라고 붙이고 싶습니까? 뭐라그러시는지 잘 안 들리네요. 그래도 저렇게 반응해주시니까 고맙네요. 저는이 대목에 제목을 붙여봤어요. 방송실 잘 들으시고 이따 또 묻지 마세요. 제목이 뭐냐고 설교 끝나면 꼭 제목을 묻거든요. 형제가. 꿈의 충돌 꿈의 충돌 입니다. 왜 꿈의 충돌인가를 오늘 이해가 안되면또 다음주가 있으니까 다음주쯤 완성을 보면 됩니다. 우선 37장1절부터 차근차근 들어가봅시다.
1야곱이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자여러분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곧 뭐하던 땅이죠? 거류하던 땅이에요. 근데 그 땅에 야곱은 뭐하였으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거류와 거주는같은 개념일까요? 다른 개념일까요? 어 생각 안 해봤는데.. 좋아요. 생각하시라고요. 이게원어를 봐도 다른 개념입니다. 거류는 거의 나그네 개념이에요. 그런데뒤에 표현되어있는 거주는 원주민으로서의 본격적인 정착을 설명하는 거에요. 아버지 때는 적어도 그 집안이이 땅에서 나그네였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그 아들 야곱에 넘어오면서 이 땅은 드디어 이스라엘 나라의기초가 될 뭐가 되죠? 토지와 땅이 되요. 원주민으로서 자리잡는겁니다. 이건 또 하나 이면에 문자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설명이 빠져 있지만, 뭘 암시하는가 하면 드디어 하나님의 신실성으로, 성실하심으로 하나님의약속이 공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혹시 집을 지어봤거나 집 짓는걸 전 과정을보신 분 계십니까? 네 저는 다행스럽게 예배당을 한번 제가 직접 가서 지은 건 아니지만 전 과정을 함께겪었던 적이 있어요. 한 2년동안, 2년동안 그런데 집 짓는 과정이요 오묘 막측해요. 대단히 신기한게 많아요. 그게 우리는 옆에서 전문가가 아니니까 저 양반이 저걸 왜 저기다 놓지 그런데 그 사람은정확하게 설계도면을 따라서 설계자에 의해서 거기다가 뜻 모를 배치를 하는 거에요. 당장 표면적으로 볼때는 왜 저기다 놓지 뜻 모를 배치에요. 그런데 설계한 사람은 거기에 어떤 재목으로 몇 센티 두께에어떤 한 모양의 부분인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과 완성이라는 게 항상 두 개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우리 인간이 놓치죠. 시간의 질서와 공간이라는 역사의 개념에서 진행이 되고 있다는 걸 놓쳐요. 그러니까우리는 늘 무엇만 볼 수밖에 없죠. 네 부분만 볼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서오해가 생기고 혼란이 생기는데 그걸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믿음의 시각으로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포착하는 눈을 가지는훈련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왜 하나님의 전체그림을 봐야 되요. 근데 그시간이라는 역사의 공간에서 지나가는 인간은 툭툭툭 지나가요. 그러니까 잘 몰라요. 자기가 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고 왜 그때 한 대 얻어맞고 지나갔고 잘 몰라요. 근데 골인지점에 미리 가가지고 이 전 공정과정을 이렇게 슬쩍 지켜보면 아 저게 저래서 필요했구나 아 저게 정말그때 있어야 했었구나. 내가 괜히 신경질 부렸네 뭐 이런 깨달음이 오는 거죠 근데 우리는 다행스럽게도우리 손에는 뭐가 있죠? 하나님의 말씀이 있잖아요. 말씀이라는완성된 그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거를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깨달음을 통해서 그거를 만지고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에게 꿈을 주는지 아십니까? 말씀을 가진자에게 꿈을 줘요. 생각을 해보세요. 부활절 날인가 제가설교했던 기억이 나는데 물론 잊었겠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만져보고도 안 변했어요. 심지어는다 고향 땅으로 낙향했다니까요. 그 능력의 부활을 경험하고도 제자들은 변한 게 없었어요. 기억나시죠? 그런데 그들이 어디서 어디서 확 뒤집어 집니까?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모세의 글과 선지자의 글을 풀어주실 때 뭐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네, 하나님의 말씀이 풀어지고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이 부활이 그런의미였구나, 그 부활이 드디어 십자가의 바른 이해와 맞닿아지니까 그 부활이 진짜 무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요. 제자들이 처음에는 부활을 목격하고도 아무 변화도 없었고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뭐냐 하면
(10:01-20:00)
부활?그래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어가던 그분이 부활한들 내 이 고단하고 사연 많은 삶에 무슨 무슨 영향력을 줄 텐데?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그 부활 사건이 어떤 다른 이해와 맞닿아지니까? 십자가의 다른 이해와 맞닿아지니까 그제서야 경천동지할 지각의 지진이 일어나는 거에요. 이 부활이 이런 의미였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 우리의죄를 대속하고 죽으실 수밖에 없었구나. 무엇이 그걸 다 풀어줬어요? 하나님의말씀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 보다도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배우는 게 가장 우선적 삶에 첫 자리여야 합니다. 믿습니까? 특별히 주일 낮에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그냥 제가 설명 그렇게 널널하게 할 수도 없고 그냥 임팩트한 것만 좀모아서 아주 다이제스트판으로 설교를 하다 보니까 조금 낮 설교는 드라이해요. 그런데 저녁에 오시면 시간이널널해요. 시간이.. 끝나면 집에 갈 시간 밖에 없으니까충분히 설명을 해드리니까 저녁예배시간에 많이들 오세요. 많이들 오고 계시지만 자, 그런데 오늘 성경을 좀 마저 보십시다
야곱이 가나안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뭐하였으니? 거주하였으니
그러니까 이런 거를 염소가 시험지 씹듯이그냥 덤덤히 읽어 넘기면 이건 정말 너무 아깝잖아요 여기 안에 담아진 복음에 의미가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니까 꼭꼭 씹어서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2절, 한번 보십시다 2절
2 야곱의족보는 이러하니라
그러니까 여기서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자, 앞을 보십시다. 우리 지난주 배웠던 족보가 누구의 족보였습니까? 옳지 에서의 족보였어요. 근데 에서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게 뭐죠? 다 잘돼. 뭐 끄떡하면 왕, 못해야 족장. 다 이런 사람들이에요. 그렇죠? 기억나시죠? 이제그런데 이상하게 잘 될수록 어디를 떠나더라?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약속한 장소에서 떠나게 되더라. 잘 될수록. 그러면 그 형통과 그 번영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내용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예를 들면 롯도 결국 아브라함과헤어질 때 잘돼서 떠났어요. 잘돼서. 그래서 우리가 모든기독교의 기준마저도 내 세속적 기준으로 성경을 보거나 하나님을 이해해서는 큰일납니다. 달라요. 그래서 오늘 1절에 보니까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 하였으니
이건 사실상 누구를 빗댄 대조인지 아십니까? 에서를 빗댄 대조에요. 에서는 잘되니까 떠나더라 그 말이에요. 아버지 약속과 멀어지더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세상적으로 별 볼일없이 여전히 그냥 그럭저럭 아무것도 아닌 야곱은 역설스럽게도 아버지의 거류하던 땅에 뭐가 되죠? 유업을이을 원주민이 되요. 그리고 오늘 이제 그의 본격적인 톨레돗 톨레돗은 족보입니다. 족보 2절에 이렇게 시작을 했어요.야곱의 톨레돗 야곱이 족보는 이러하니라 톨레돗 야코프. 자 이 말은 이런뜻입니다. 사실상 36장까지는 1절까지를 포함시킵니다. 보통 학자들이 37장 1절까지를 36장의결론으로 포함시킵니다. 그리고 이제 진짜 37장은 오늘 본문인 2절서부터 인정을 해요.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이 말은 앞의 36장도결국은 지금부터 야곱의 족보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앞에 서론 격에 잠깐 언급하고 지나간 것에 불과해요. 진짜 성경기자의 의도는 이제부터, 오늘부터 중요합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자, 그럼어떠하길래? 성경을 좀 볼까요? 중요한 성경 전체의 전환점인데,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 그의 형들과함께 뭘 칠 때에? 양을칠 때에 어떤 해석을 찾아보니깐요 이 17세라는 나이를 좀 재미있게 영해를 해놨는데 영해라는것은 조금 allegorical하다 그 말이에요. 해놨는데그냥 재미 삼에 들어두시면 손해는 없을 겁니다. 히브리 자음이 모두 몇 개인지 아시죠? 아 모르시나요? 참, 스물두글자입니다. 스물두 글자에요. 근데 그 중에 요셉에 나이에해당하는 열일곱 번째 글자가 혹시 뭔지 아시죠? 아 참 모르시는군요.패라는 의미입니다. ‘패’ 이 글자를 제가 시간관계상 준비를 못했는데 ‘패’라는글자를 나중에 찾아보면 사람이 얼굴을 옆으로 해가지고 입술을 열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글자모양 자체가재미있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글자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렇게되어있어요. 그니까 마치 그 사람이 옆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글자의 그림을 갖고 있어요 그게 히브리알파벳에 열일곱 번째 글자에요. 근데 글자 발음은 패라고 합니다. 패그 글자의 의미가 뭐냐 그게 중요한데 그것은 ‘말하다’ 이뜻이에요. 전하다. 이 뜻이에요. 말하다 전하다 근데 이 야곱이 그리고 뭘 꾸었죠? 꿈 꿈 꿈은 히브리말로할람 입니다 할람 이 말은 그 단어가 갖는 밑에 어 의 라고 하는데 의미를 보면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회복하다 세우다’ 참 신기하죠?회복하다 세우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꿈을 주셨는데 뭘 위해서 꿈을 주신 것입니까? 회복하고뭔가를 이루고 세우기 위해서 꿈을 주신 거에요. 근데 이제 요지는 야곱이 이 꿈을 의미를 과연 알았을까몰랐을까 입니다. 결론은 몰랐습니다. 보통 우리가 이제 인본주의적해석경향을 따르면 이렇게 익숙히 들어왔죠. 야곱은 어린 나이 때부터 그 꿈을 부여잡고 그 꿈을 이루기위해서 모진 핍박과 환난 속에 그 고난의 역사를 뒤집어쓰고 이겨낸 끝에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러면 이게이제 위인전이 됩니다. 성경이 성경이 아니고 위인전이 되요. 이런인본주의 시각이 한때 주류를 이루었던 적이 있어요 그러나 요즘은 누구든지 그렇게 설교는 안 하죠. 문제는우리는 오늘 본문을 근거로 해서 열일곱 나이에 요셉이 꿈을 꾼 꿈의 의미, 또 요셉의 객관적인 오늘우리들도 보기에 이상하지 않을 정도에 상식으로 한번 요셉의 인생을 툭 제 3자의 자리에 던져놓고 해석을한번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2절을 한번 다시함께 읽어볼까요? 2절시작
2야곱의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아내들 빌하와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말하더라
자, 뭐 우리들도 여러 형제와 엉켜서 이제 살기도 하고 지금 지냈던 경험들이 있죠.요런 캐릭터 여러분 곱게 느껴지십니까? 근데 우리말 성경을 보면 형들의 잘못을 요셉이 아버지에게일일이 갖다가 고했다 라고 비쳐집니다. 근데 사실 히브리어가 말하는 원문이 말하는 어감을 고대로 살린다면이게 뜻밖에 그런 말이 아니에요. 이 말은 요셉이 형들의 행동거지를 험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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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의미에요. 정확하게. 험한 말 나올뻔했는데 이 참 나쁜 분이에요. 그 의도를 가지고 그러니까 히브리어사전을 찾아봐도 이 대목에서는 요셉이 형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단순히 팩트를전달한 게 아니라 자기의 감정을 실어서, 왜냐하면 여종들의 자식들이거든요. 자기 정통 아버지의 총애 받는, 사랑 받는 라헬의 자녀입장에서 볼때 나머지는 뭐로 보이겠어요? 이건 종들의 자식이거든요. 그러니까요셉이 일일이 팩트를 전달한 정도가 아니라 형들의 잘못을 자기의 불편한 감정을 섞어서 험담했다라고 되어있어요. 그러니까갑자기 이상해지죠. 성경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그렇게 읽어야 되요. 사실은 성경에서는 인간의 어떤 행동들에 대해서너무 거룩한 방향으로 봐주고 읽을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런걸 원하지도 않아요 그냥 성경이 쓰여있는그대로 읽어보세요. 이건 우리가 그냥 슬쩍 읽어도 왜 이렇게 얄미운 짓을 했을까? 못된 짓을 했을까? 이렇게 보여집니다. 자 3절 볼까요 3절
3요셉은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무슨 옷을 짓죠? 채색 옷을 지었더니
그러니깐야곱의 편애가 형제들간에 이런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편애 근데 이 편애에 은혜가있어요. 물론 겪어야 되는 종들의 아들인 형제들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싫은 세월이었겠지만, 요셉과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보다도 황홀한 관계는 있을 수 없어요. 제가엊그제 우리 대학부 개강 수련회를 하면서 초두에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롭다고생각하십니까? 그랬더니 이제 한 켠에 있던 젊은 형제가 이래요. 여러분들은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공평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공평하지 않습니다. 저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죽으신 것만 봐도 공평하지 않아요. 보통 아가페 사랑하면은 신적인 사랑, 공평한 사랑, 정의로운 사랑으로 이해를 하죠. 근데 하나님의 사랑에는요 아가페적요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사랑을 그런 헬라 식 개념으로 사등분 해서 스트로게 사랑, 필리아 사랑 이렇게 구분할 수 있겠어요. 사랑은 복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공평하지 않습니다. 보세요. 수천 명이 앉아있어도 아버지 눈에는 자기 자식만 눈에 띄게 되어있어요. 어느아버지든지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점적이고 굉장히 질투심이 강하고뿐만 아니라 이해불가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사건만묵상해 봐도 하나님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아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이 사랑 자체를 뭐라 할건 없어요. 문제는 이 편애적인 사랑 때문에 이 가정에서벌어지는 그 수많은 스토리들이 이제 과연 우리 구원사적으로 무얼 설득하고 싶은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자성경을 또 보십시다.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이제이 채색 옷을 지어 입힌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히는 옷이기도 하고.토라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정확하게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적어도 집안에 여러형제들 가운데 이렇게 채색 옷을 입힐 때에는 하나님의 토라 교육에 가장 열심과 적극적인 인물에게 입힌다. 그래요. 그리고 그에게 이 집을 이어갈 상속권을 준답니다. 이게 이제 토라를연구하는 분들의 보편적 해석입니다. 저는 그 해석에 부분적으로 동의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아직은 요셉이 꿈의 의미도 모르고 형제들을 배려할 만큼 성숙하지도 않아요. 하는 행동을 보면 자 볼까요 5절
5요셉이꿈을 꾸고 이제드디어 첫 번째 꿈을 꾸죠 할람 꿈을 꾸어요 자기 형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데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자여러분 앞을 보십시다. 한번 따라서 해볼까요 내가 꾼 꿈을 어떡하시오?들으시오. 이 말을 요셉이 할 때에 그 자기가 꾼 꿈의 의미를 몰랐다 그랬습니까? 알았다 그랬습니까? 몰랐다 그랬어요. 근데 뭘 도대체 말하려는 걸까요?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도 모르는데 뭘 말하려는 걸까요? 꾼 꿈에 팩트를 말하는 겁니다. 자긴 그 꿈의 의미를 아직 몰라요 근데 성경을 볼까요 6절
6요셉이그들에게 이르대 청하건데 내가 꿈 꿈을 들으시오
7우리가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렇게되어있어요. 자, 안 그래도 이 형제들간의 관계가 유쾌합니까? 불편합니까? 굉장히 불편해요. 만사가아슬아슬한 관계인데 제일 미움의 대상이었던 불편한 요셉이 어느 날 꿈을 꾸었다고 형들에게 와서 자기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그냥 얘기를 하는데꿈의 내용이 아주 빌어먹을 내용이에요. 누구 입장에서 볼 때는? 형들입장에서 볼 때는 이자식이 진짜 아버지가 예뻐하니까 아주 꿈까지 기가 막힌 꿈을 꾸네 뭐 어째? 우리단이 너한테 절을 해? 이런 상황이 지금 벌어진 거에요. 자그리고 7절을 볼까요 8절 다같이 시작
8그의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이 꿈이 결국은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뭐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합니까? 네 미워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자, 이것은 영적인 문제에요. 육으로 머물고영적으로 아직 거듭나지 못한 공동체나 개인이나 집단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진행에 대해서 생리적으로 미워하고 싫어하게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걱정하여 기도할 때도 그 말씀을 언급하세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겠으나 그래서예수님도 70인 전도대를 파송 할 때, 파송 하기 직전에마가복음에 9절을 보면 그건 의도적인 배치일수도 있는데, 제자들을데리고 어디를 방문하십니까? 네. 고향을 방문해요 고향을. 그런데 고향에 가서 아주 플랜카드 펼쳐 들고 성대한 환영을 받았나요? 망신을당했나요? 거의 내쫓기다시피 망신을 당합니다. 그러면 여기서질문이 있어요. 예수님은 그걸 모르고 제자들하고 폼 잡으려고 들어가셨을까? 알고서도 들어가셨을까요? 그렇죠?예수님이 모를 리 없죠. 한 행보 하나가 온 역사와 인류를 위한 구원의 메시지가 될 텐데그걸 모르고 데려갈 리가 없어요. 여기서 더 이해가 안되죠. 보통사람들 같으면 고향을 찾을 때는 뭔가 좀 자랑하고 싶고 으스대고 싶고, 재고 싶어요. 그래서 차도 막 어마무시한 걸로 빌려서 타고 내려가고 옷도 좀 좋은 걸로 사입고 또 뭐 거닐고 데리고 위세를떱니다
(30:02~40:00)
보통 그렇게 하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이 제자들 데려가서 자기가 고향 땅에서 어떤 수모를 겪을지를 예수님이 모를 리 없죠. 알고도 데려가서, 그것도 제자들 다 보는 앞에서 그래도 존경 받고사랑 받는 스승인데 아주 동리사람들한테 개망신을 당하고 쫓겨나요. 거기서 도대체 예수님이 그려내고자하는 메시지 핵심은 뭘까요? 그리고 나서 바로 제자들을 당시 전 세계를 상징했던 70인을 선정해서 파송 합니다. 이 얘기죠. 너희가 가야 될 세상에는 방금 내가 고향 땅에서 겪었던 배척처럼 너희를 지독스럽게 싫어하고 지독스럽게 미워할것이다. 직장에서도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요. 그러니까안 믿는 상사가 괴롭히는데 너무너무 죽을 만큼 힘들대요. 그건 정말 환난이고 핍박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있어요. 생리적으로 우리를 배척하고 싫어하게 되어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걸 미리 선언적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그래서알면서도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을 먼저 방문하신 거에요. 그리고는 돌아오셔서 70인 전도대를 세상으로 보냅니다. 너희가 가야 될 세상이 이와 같은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야곱의 아들들이 현재는 아직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 차원에서 구성원이 되지 않은상태이기 때문에 요셉 한 사람을 공격을 합니다. 근데 여기서 요셉은 결국 나중에 누구의 예표가 되냐하면 은전20에 팔리죠. 예수그리스도의 예표가 된 사람이에요. 예표라는 것은 본인이 아는 예표도 있고 본인이 모르게도 예표가 될 수 있어요.하나의 상징 같은 개념이죠. 요셉은 여기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예표인지도 모른 체 그 인생이그렇게 흘러갑니다. 자 우리 성경을 또 마저 보십시다.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이 요셉은 말하는 은사를 가진 것 같아요. 생각을 해보세요. 8절에보시면 그 첫 번째 꿈 때문에 성경기자가뭐라 그랬죠? 더욱 미워하였더라. 기본적으로 밉고 꿈 때문에 더욱 미워하였더라. 그러면 이제 뭐 우리가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얘가 아이큐가 두 자리만 되도 이런 짓 안 할거에요. 앞서 꿈 얘기했다가혼꾸녕이 났으면 그 다음에는 이러고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또 얘길 해요.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뭐가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열일곱숫자의 히브리수가 뭐라고요? 패그래서 말하면서 뭐 얻어맞았나 패? 아 이런 거 안 해야 되는데. 저도알아요. 저도 이러면 요즘 아재라는 이야기를, 저는 뭐 아재소리만 들어도 황송하죠. 자 문제는 요셉이 사실 두 번 꿈을 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요셉의 생애 통해드러낼 어떤 일들을 확증적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결론은 요셉은 몰랐어요 그랬기에 그가 얘길 한 겁니다. 말을 한 거에요. 9절을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9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절 다같이 시작.
10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자,여기에서 요셉이 야곱이 놀랍게도 요셉을 꾸지람하면서 그 꿈의 내용을 다 말해버렸어요. 열한별은 요셉의 형제들을 얘기한 거겠죠? 그리고 해와 달은 뭘 얘기한 걸까요? 두 부모를 얘기한 거에요. 야곱이 그걸 지적한 겁니다. 야단을 치면서 정말 엄마아빠가 또 네 형들이 너한테 절하겠느냐? 그런데그 다음 성경을 잘 보세요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11절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어디에 두었더라? 간직해 두었더라
자 이게 이제 야곱이 서서히 인생의추가 하나님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힌트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상한 데를 한군데 일부러처음에 말을 아껴두었던 어느 지점을 지적해드릴 테니까 같이 따라가보십시다. 2절을 다시 가보세요 2절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
자 여러분 어떠세요? 지금부터 누구 족보를 이야기하겠다고요? 성경기자가? 야곱의 톨레돗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누구 이야기를 시작해요?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가 한 장에 끝납니까? 지금? 이게 여러 장에 걸쳐 앞으로 계속돼요. 누구 족보를 이야기한다 그래놓고? 야곱의 족보를 이야기한다 그래 놓고. 비브리클 신학교에모교수는 이 대목에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사실상 요셉의 그 길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는야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근데 성경전체 그림에서는 정확한 지적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단순히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을 하나님이 구속하셔서 그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구속하시며그를 완성해 가시는가에 대한 전체 얼개에요. 그 삽입 절로 요셉의 이야기가 장대하게 기록된 겁니다. 근데 방금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죠? 요셉은 누구의 예표라고요? 결국은? 그렇습니다. 그럼이 창세기가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전체 그림이 들어와요? 안 들어와요? 네 결국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야곱을 이스라엘 만들어가는가? 아니우리를 이스라엘 만들어가는가를 말하고 싶은 책이 야곱의 톨레돗은 이러하니라.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를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야곱의 톨레돗인데 결국 누구의 이야기로 써내려 가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이야기로 써내려 가야 되요. 믿습니까? 이 창세기가 그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여호수아에서 보면 열 두 정탐꾼이 가나안에들어가요. 40년전에. 근데 결론은 10대2로 보고가 갈라집니다. 두명은 하나님의 언약을 강조해요. 언약.. 여호와께서 이 땅을허락하셨으니 우리가 들어가면 얻고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명은 뭘 와서 보고합니까? 리포트를 해요. 그냥 보고를 합니다. 어느 땅은 지형이 어떻게 되어있고 그 땅 군인들 신장을 보니까 거의가 1미터 90에 중후장대하며 우리에게는 마치 우리가 메뚜기 같이 느껴집디다. 그러니까팩트에요. 팩트만 보고 온 거에요. 우리가 한 생을 그리스도인으로살면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매뉴얼을 가지고 자기 눈으로 계속 보기 시작하면 그런 보고밖에는 건지질 못합니다. 신앙생활 속에. 그런데 40년후에 열두 명이 아닌 두 명을 들여보냅니다.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두 정탐꾼을 들여보내요. 여호수아가. 근데 그건 또 희한하게 들어가서 정탐도 하기 전에 붙들려요. 붙들린게 아니라 들통이 나요. 누구네 집에 숨어들어가죠? 라합의집에 숨어 들어가요. 라합은 누구입니까? 기생입니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를 듣나요? 자기 조상들이 홍해를 건널 때, 40년전 홍해를 건널 때 상천 하지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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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변 원수의 세력들을 어떻게 물리쳤는가에대한 소문을 벌써 듣고 있어요. 듣고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그 안에 있더라고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 두 정탐꾼을 그 안에 들여보낼 때는 왜 들여보냈을까요? 실패할거뻔히 알 텐데? 하나님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그 여인을 만나게 한 거에요. 여러분, 오늘 이 밤에 여러분들이 그 라합이 만났던 하나님. 하나님은 바로 그런 간증과 가슴의 스토리를 가진 주의 백성들을 만나보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비록 여기는 지금 야곱으로 앉아있어요. 야곱의 톨레돗. 근데 그 야곱이 이스라엘로 만들어지고 영광스러운 창세기 50장의 그약속의 원뿌리로 등장하기까지 전체 사실 누구 이야기를 쭉 써놨어요? 요셉의 이야기를 아니 그리스도 이야기를써놨더라구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애굽에 내려가셨고, 어떻게그들을 끌어올리셨고,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것은 이미 그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하나님의 손길이 지금 작업이 시작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당대 그 한시적인 시간에 머물렀던사람들은 그 전체 그림을 못 보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뒤집어지고 난리가 난 거에요. 우리가그럴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 구약성경 뒷부분에 가면 하박국 서에 하나님이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신다고 돼있는가 하면 잠잠히 사랑하시며 그 무슨 뜻일까요? 진짜 쎈 이야기입니다. 잠잠히 사랑하세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문제에 대해서 단 한번도 흔들렸던 적이 없어요. 얘 너 지금 그것 때문에 겁 먹고 있지? 너 그것 때문에 지금 속상해 하지? 괜찮단다. 두고 봐. 잠잠히 사랑하세요. 우리안에서는 지금 지구가 벌써 열두 번도 더 뒤집어져 있는데 잠잠히 사랑하세요. 이때에 이 때에 우리에게필요한 게 뭐죠? 그분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가 그분의손을 놔도 그분은 단 한번도 우리의 손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믿습니까? 오늘 이 밤에도 그 야곱의 톨레돗을 시작하면서 왜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했는가를 기억하여 그것이 우리를사랑하셨던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것을 붙들고 여러분들은 모든 기도의 내용들을 잘게 썰어서 뭉뚱그려 기도하지 말란 거에요. 아주 자세하고 아주 시시콜콜하게 좋은 기도는 시시콜콜한 기도입니다. 아주별 얘길 다 하세요. 담임목사 뭐 목소리 이상한 거까지 다 기도하세요.제 목소리가 좀 듣기가 좀 탁한 목소리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좋은 기도는 멋진 기도가아니라 시시콜콜한 기도가 좋은 기도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다보면 어떻게 열한 시 반에 일어날수가 있어요? 열두 시까지 해도 모자를 거에요. 오늘은 내 기도의 시간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찬양 하나 하십시다. 제가 이번 주에 참 이 찬양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가 오신 이유’ 제가 이 가사를 한번 읽어드릴 텐데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순종의 눈물 온 세상 다시 빛나게 한 생명의 눈물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죽어야 살게 되고 져야만 승리하는 놀랍고 영원한 신비
지으신 그대로 회복시킨 우리의 창조주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로 아버지 뜻 이루셨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이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소망 그 사랑 그 생명 아름답고 눈부신 십자가의 길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이유
저는 요즘 이 찬양을 부르면서 또 누가복음통해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찬양을 부르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마귀에게 이끌려 받았던 돌을 떡을만들라는 시험은 허기에 대한 시험이 아니었어요. 그 시험은 바로 인간으로 오신 예수를 무너뜨리기 위한마귀의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예수님은 무너지지 않죠. 사람이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오. 그 말이 갖는 의미는 나는 이 땅에 온전한 인간으로 왜 와야 됐는지 아느냐인생들이 실패한 그 죄를 다 내가 지고 십자가의 길을 향해 걷다가 그 길 끝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대신 죽고 구속을 이루어야 아버지 뜻을 이루는것이기에 기꺼이 그 죽음의 쓴 잔을 마실 수 있었던 겁니다. 주님이 오신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을 그 자리에 보낸 이유이기도 하고 고단한 피곤한 곤고한 삶의 자리에 여러분들을 놓아두신 또한 중요한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가 오신이유’ 찬양하십시다.